2) 영적 야곱의 우물에 대하여
요4: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요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 시쯤 되었더라
요4: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요4: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주님은 복음의 영적 원리에 따라 갈릴리로 가시기 위하여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게 됩니다.
이곳은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는
말씀처럼 이 샘은 영적으로 복음을 뜻하기는 하지만 야곱의 우물이란
사마리아 여인들이 먹고사는 율법적인 물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신 것과 때가
‘제 육 시쯤 되었더라’ 는 말씀 속에 영적으로 큰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것을
우리는 생명 적으로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먼저 주님이 행로에 곤하신 것을 물리적으로 먼저 보면
유대를 따나 갈릴리로 가는 도중에 육신의 피곤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행로란 제자들과 동행하는 데 힘이 드신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제자들과 동행하는데 곤하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은 말씀의 본체이시고 영체의 본질이기 때문에
제자들과 한영이요 한 몸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고하면 주님이 곤하신 것입니다.
그르고 제 육시가 가진 영적 원리는 육시부터 구시까지가 어두움이 몰려오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어두움이 몰려오게 되면 주님은 곤고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빌라도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을 때도 제 육시였고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가 비로 제 구시였다는 것을 보더라도
제 육시와 제구시가 가진 영적 원리대로 주님이 곤고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 영적으로 주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물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필요한 것이 물리적인 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물이 되는 생수인 복음과 사랑이 영이 주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영의 본질이며 근본이며 생명의 근원이지만 주님은 이렇게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영체이기 때문에 사마리아의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물론 물리적으로 물을 길러 사마리아 여인이 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보여주시고자 하는 영적 원리는 다른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자적 기록은 영적 수건이며 초등학문이기 때문에
바로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로 기록되어
영적 소경들과 귀머거리 들은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도록 가라지를 덧뿌려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뒤로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 야곱의 물과 생수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시고 있지만
이러한 영적 법칙을 모르면 들어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먼저 소경 둘을 고쳐준 것이고
이어서 벙어리를 말하도록 고쳐 준 다음
본격적으로 주님이 직접 나서서 영적 교훈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지혜가 깊은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음으로 해서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군요,
누구를 사랑한다는 그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이랍니다.
어머니에 조건 없는 사랑, 우리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조건 없이 누구를 사랑하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샬롬!
항상 감사합니다.
주일날 주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큰 축복 받으세요.
*^-^*
좋은 성경 자료 감사합니다.
샬롬!
항상 감사합니다.
주일날 주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큰 축복 받으세요.
*^-^*
감사합니다.
샬롬!
항상 감사합니다.
주일날 주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큰 축복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