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골골 멋진 계곡과 명산이 중첩돼 있는 밀양(密陽) 땅에는 고장 이름처럼 봄볕마저도 비밀스럽게 드는 것일까. 흐릿한 하늘에 낀 구름 사이로 햇살이 조심스럽게 내비치는 봄날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밀양 낙화산 보담산을 찾았다. 근교 산행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산이기는 하지만, 기존 코스가 아니라 상동역을 종점으로 삼은 북서쪽 코스다.
특히 독립운동가인 약산 김원봉 선생의 어린 시절 흔적이 있는 상동면 고정리 고답마을에서 출발지로 삼아 마을 주민들이 문방우산으로 부르는 봉우리를 거쳐가는 코스로 새롭게 개발했다. 또 문방우산의 숨겨진 명품 동굴인 문방우태랭이도 답사, 소개함으로써 신선함을 더했다. 소담스런 진달래 군락지와 멋진 조망, 풍성한 이야기꺼리가 어우러진 코스라 하겠다.
■상동역 중심으로 11㎞ 4, 5시간짜리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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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의 이창우 산행대장이 밀양 보담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능선 중간에 만난 바위 전망대에 오르고 있다. 연붉은 진달래가 산꾼의 길동무가 되어주는 가운데 멀리 비암골 깊은 계곡이 내려다보인다. |
코스 전체 길이는 11㎞,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50분쯤 걸리며 동굴 탐험(?)과 휴식시간 등을 포함하면 5시간가량 잡아야 한다.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고답마을 오르풀 표지석앞~취수탱크 앞 삼거리~전나무숲 앞 능선 사거리~달성 서씨 묘~(송전탑 공사장 우회)~문방우태랭이(문방우굴)~문방우산 정상~'보두-3' 삼거리~낙화산 정상~'보두-2' 위치~보담산(보두산) 정상~바위 전망대~고답고개~삼거리~광주 안씨 묘 앞 갈림길~큰고개(임도)~밀양 가르멜 여자수도원~송강정(재실)~금산주유소~상동역 순. 전체 구간 중 80%는 산길, 나머지는 임도와 도로다.
고답마을 '오르풀' 표지석 앞에서 남동쪽에 솟은 문방우산을 보면서 마을 안쪽 길로 오른다. 표지석 위 감나무밭이 바로 일제강점기 만주와 국내에서 일제 경찰과 일본군을 공포에 떨게했던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 선생이 다녔던 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칠성바위 전설 속 바위들이 민가와 밭 중간 중간에 흩어져 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듯한 예쁜 전원주택을 지나 조금 더 오르자 취수탱크 앞 삼거리. 이 지점이 오르풀 마을이 있던 곳이다. 우측으로 꺾어 오른다. 배꽃과 진달래 등이 어우러져 봄날 산행의 흥취를 돋운다.
■문방우산 송전탑 공사 탓 10여분 우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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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방우산 정상 아래 바위 밑에 숨어 있는 문방우굴. |
조금 더 가니 송전탑 공사 방해 행위에 대비한 경찰 임시검문소가 있다. 산행객이라고 말하니 흔쾌히 길을 내준다. 길은 어느새 시멘트길에서 산길로 변해 있다. 소나무 굴참나무가 엇비슷하게 섞여 있는 숲 속 계곡을 따라 길이 잘 나있다. 한 차례 갈림길을 만나지만, 계속 직진해서 계곡을 좀 더 타고 오르니 옛날 화전민들의 생활터전으로 보이는 집터가 나온다. 이런 깊은 산 중에도 사람들이 살았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3분쯤 더 올라 서니 전나무숲이 우거진 지능선 사거리다. 주변은 온통 연분홍 꽃대궐. 전나무숲을 보면서 우측 1시 방향으로 꺾어 오른다. 파평 윤씨 묘를 지나고, 좀 더 큰 능선길에 올라 달성 서씨 묘에 당도할 때까지는 길이 편안하다. 그런데 정면 송전탑 공사장 관계자가 길을 막는다. 공사로 인해 산행로가 임시 폐쇄됐으니 더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2중 철조망까지 둘러 친 채 철통방어 태세를 갖춰 놓았다. "아무리 공사를 하기로서니 사람은 다닐 수 있도록 통행로 정도는 확보해 줘야 할 것 아니냐"는 취재팀의 항의성 반론에도 아랑곳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철조망 우측으로 길 아닌 길을 낼 수 밖에 없다. 10분가량 어렵사리 통과한다. 올 여름이나 가을 쯤 공사가 마무리되면 다시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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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는 좁지만 안은 넓은 문방우굴 천장의 박쥐들. |
산행로로 다시 합류, 3분 쯤 오르니 울룩불룩한 근육질 바위들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살짝 가파른 구간을 지나는데, 길 오른쪽에 대문 같이 육중한 초대형 바위가 나타난다. 고답마을 주민들이 문방우로 부르는 문바위다. 이 바위 오른쪽 아랫부분에 바로 그 동굴, 즉 문방우태랭이가 있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우측으로 10m가량 들어서니 정말로 사람 한 명 드나들 수 있을 만큼의 바위 밑 동굴 입구가 보인다. 몸을 굽혀 동굴 속으로 들어서니 갑자기 움푹 꺼지면서 어림잡아 3, 4평 정도는 되어 보이는 넓은 공간으로 변한다. 바위 틈새로 떨어지는 석간수를 받았던 세숫대야 모양의 바위 그릇이 2개나 보인다. 인공적으로 바위를 깎아 만든 폼새다. 이 동굴에서 임진왜란 때 왜군으로부터 화를 피하기 위해 주민들이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가 충분히 납득되는 순간이다. 동굴 천장에는 박쥐가 5, 6마리 매달려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놀란 듯, 이리저리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기까지 한다. 이번 산행 중 최고의 짜릿한 순간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 피해 숨어 살던 동굴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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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화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밀양 엄광리 일대를 둘러싼 크고 작은 산들과 영남알프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
다시 산행로로 나와 7분가량 오르막을 치면 문방우산 정상. 해발 528m인 이 산 정상에는 펑퍼짐한 공간에 표지석조차 없다. 잠시 숨을 돌린 후 왼쪽 10시 방향에 보이는 낙화산 정상을 향해 길을 재촉한다. 살짝 내려선 후 다시 오르막을 치는데, 길은 곧장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왼쪽으로 슬쩍 우회하도록 열려 있다.
20분 후 보두-3 119위치 표지목이 서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5분쯤 더 가야 해발 626m 낙화산 정상이다. 정상석에는 597m로 잘 못 표기돼 있다. 정상석 앞 10m 지점의 전망대에 서서 바라보면 밀양시 산외면 엄광리를 둘러싼 보담산 비학산 중산 석이바위봉 꾀꼬리봉 등이 눈 앞에 그림처럼 펼쳐지고 멀리 남쪽으로는 금오산 만어산 칠탄산 등의 크고 작은 명산들과 운문산 자락까지 조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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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화산에서 보담산으로 가는 길에 만난 진달래군락. |
보담산 방향으로 살짝 내려선 후 다시 작은 봉우리를 오르니 '보두-2' 119위치표지목을 지나고 3분 후 보담산 정상이다. 보두산이라는 이름도 함께 통용되는 산이다. 전망은 특별한 것이 없다. 엄광리 순환 종주 산행로인 왼쪽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길을 잡아 내려선다. 곳곳에 진달래가 만발했다. 두어 곳의 바위 전망대에서 주변 경관 조망도 즐기고 고성 이씨 묘를 지나니 달성 서씨 묘 한참 밑으로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관통(고정2터널)하는 느낌이 든다.
■낙화~보담산 바위능선길 호쾌한 조망 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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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인 밀양 상동터널 앞 벚꽃. |
보담산 정상으로부터 쉬엄쉬엄 1시간쯤 내려서면 사거리 고개다. 일명 고답고개. 2011년 5월께 취재팀이 영남알프스둘레길 개척 산행을 할 당시 지났던 곳이다. 우측 1시 방향 넓은 길을 따라 3분쯤 가면 또 한번 갈림길이다. 왼쪽 길을 택해 평지 같은 길을 걷는다. 3분 후 '전주 이씨의 부인 광주 안씨 묘'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 무덤 쪽으로 꺾어 능선길을 탄다. 봄꽃들의 시중을 받으며 걷는 유순한 길이다.
20분가량 능선길을 걷다보면 임도에 닿는다. 일명 큰고개. 임도 저편으로 올라 계속 능선길을 타도 되지만, 취재팀은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밀양 가르멜 여자수도원을 지나고 1㎞가량 더 내려서면 예쁜 전원주택이 즐비한 금산리 마을에 닿는다. 마을 중간에 있는 재실인 송강정 앞을 지나 25번 국도변 금산주유소에서 오른쪽으로 도로를 따라 10분쯤 걸으면 종착지인 상동역에 닿는다.
◆떠나기 전에
- 옛 경부선 철로였던 상동터널 2곳 둘러볼만
산행을 마친 후 상동역에서 밀양강 건너편에 있는 옛 경부선 철로 터널을 방문해 보는 것도 썩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상동역에서 밀양 방향으로 500m쯤 이동한 후 오른쪽 안인교를 건너자마자 다시 오른쪽 소로로 접어들어 500m쯤 가면 만발한 벚꽃의 호위를 받고 있는 듯한 2개의 상동터널(사진)을 만난다. 1905년 경부선 개통 당시 철로용 터널로 축조된 이 터널들은 각각 길이 60m, 40m가량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1960년대 경부선 선로가 현재의 상동역 쪽으로 바뀌면서 철로의 기능은 사라졌고, 바닥에는 콘크리트 포장이 된 상태다. 터널 양쪽 벽의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과 천장은 벽돌로 이뤄져 있는데 건립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당시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느낄 수 있다. 문화재청으로부터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204호)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교통편
- 부산역 발 상동역 행 열차 07시50분 출발
부산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상동역에 내린다. 상동역 정차편은 하루 5회(일반요금 4300원) 운행하는데, 오전 7시50분 출발편을 타는 것이 가장 좋다. 상동역에 오전 8시45분 도착하면, 역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고정리로 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전 9시5분 전후 통과한다. 오전 10시27분 출발편을 타면 상동역에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요금 6000원 안팎.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청도 방면으로 좌회전 하자마자 긴늪사거리에서 청도 방면으로 우회전 25번 국도를 탄다. 약 7분가량 가면 상동역에 닿는데, 역 주차장에 차량을 세워놓고 오전 9시05분에 있는 버스를 타고 고정리로 들어가야 산행을 마친 후 귀갓길이 편하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51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