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4주일 2023년 12월 24일
눈물 많은 곳에서 감사를
루가 1:26-38, 사무하 7:1-11, 16, 로마 16:25-27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여인을 생각합니다.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는 그녀의 친척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를 갖지 못한 채 나이가 들어버렸습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슬픈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규율을 착실히 지키며 살았고, 그녀의 남편 역시 성전에서 일하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기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본인에게나 주변의 시선이나 당시 율법으로나 분명 아픔이었습니다. 아마 엘리사벳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눈물이 하느님을 움직였는지, 위로의 선물로 아기를 잉태하게 하십니다.
엘리사벳은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셔서 이제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되었구나’ 오늘 복음 바로 직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1:25)
부끄럽다는 말의 본래 의미는 치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슬픈 여인에게 위로와 선물로 인해 치욕스러움을 벗었기에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여기 또 한 여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천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새기고 질문도 할 정도로 신중하고 사려 깊었습니다.
혼인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을 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끔찍한 형벌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괴이한 일이 일어났음에도 마리아는 순종합니다. 마리아가 일반 사람과는 다른 대단한 영적인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임에도 우리가 마리아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녀의 순종이었습니다. 그녀는 확신이 있었고, 그 이전에 성찰과 식별이 있었습니다.
천사가 본인의 잉태 사실을 전했을 때, 마리아는 곰곰이 생각합니다.
곰곰이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의 표현으로 말하면 기도하는 것입니다.
관상적 성찰 혹은 식별이라 부릅니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분노하거나 마냥 놀라거나 어떻게든 본인의 힘으로 풀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먼저 기도합니다. 그리고 순종했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고 사람의 판단과 능력으로 무슨 일을 이루어 간다면 그 끝은 분명합니다.
천사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잉태 사실을 알리는 장면을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마리아가 성령으로 인해 받은 은총이 무엇일까요? 우리도 이런 은총을 받고 있을까요?
어떻게 그런 은총을 받을 수 있으며 은총을 받은 이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은총(grace)을 구약에서는 헤세드(chesed), 신약에서는 카리스(charis)라고 하고
라틴어로는 그라씨아(gratia)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모두 '감사'와 관계가 있습니다.
은총의 근원은 곧 감사하는 마음자세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나의 목적과 능력, 바람과는 관계없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우러나는 기쁜 마음입니다. 기쁨으로 지금의 현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은총의 시작입니다.
은총이어서 감사하는 것 이전에, 감사로 인한 은총이 먼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마리아가 순종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충격적이고 어려운 일이 될지 모르나 장차 이 아이를 통해 받은 영광스러운 은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머리로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어 가는 과정이 한 번에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렇듯 기도란 이해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차 받은 그 엄청난 고난과 눈물이 앞에 있음에도 기도로써 마음이 움직이고 이해가 되고, 기도 가운데 확신이 서니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1독서에서 다윗은 멋진 건물을 짓고는 하느님의 궤를 그곳에 모시려 합니다.
하느님은 거절하십니다. 하느님의 궤가 있어야 할 곳은 화려한 곳이 아니라, 백성들의 땀과 수고 그리고 눈물이 어우러진 그들의 집, 천막이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마리아가 감사하며 부른 성모송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심과 걱정, 부족함과 두려움이 가득한 그곳에 주님이 계신다는 노래입니다.
오늘 로마서(16:25이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열렸다고 선언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이 전하는 하느님은, 그리고 우리가 고백하는 그 하느님은, 근심하는 이들의 하느님, 눈물 많은 여인들의 하느님, 한숨과 걱정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 가장 치욕스러운 자리에서 만나는 하느님이십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가지 않는 길을 가도록 길을 터주시는 진취적인 하느님이십니다.
슬픈 이에게 위로를, 지혜로운 이들에게 도전을 주시는 하느님을 기억합니다.
수태고지는 나의 가장 아픈 곳, 슬픈 곳, 부족한 곳, 치욕스러운 곳, 게으른 곳, 미처 내가 알지 못하고 있는 나의 잠자는 그곳, 거기로 그분이 오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깊이 패인 상처 같은 나의 아픔과 눈물 많은 그곳으로 예수님이 오실 것입니다.
오늘 한 여인은 부족함이 채워짐으로 슬픔이 감사가 되었습니다. 감사할 줄 알기에 그것이 은총이 된 것입니다. 다른 여인은 지혜로움과 기도함에도 자식을 잃는 큰 시련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기 때문에 은총입니다. 확신으로 순종하였기 때문에 은총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눈물 많은 그곳 가운데로 그분이 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두려움과 부족함 그 한가운데에 그분이 태어나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마구간같이 부족하고 옹색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염려하지 맙시다. 우리의 가장 눈물 많은 그곳, 우리 마음의 마구간으로 그분이 오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