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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太白山1,567m)
<태백산 천제단>
도립공원 태백산은 이름 그대로 높고 넓고 밝은 산이다. 태(太)는 날카롭지도 모나지도 않은 부드럽게 끝없이 넓고 둥글다는 뜻이요, 생명의 시작 곧 처음이란 뜻의 알(卵)을 의미하기도 한다. 백(白)은 희다 밝다 막힘이 없다는 뜻이며, 장자(長子)곧 순위가 빠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라의 최북단에 최고의 높은 산으로 영남의 젖줄 낙동강의 발원지로서 백두산이 한반도의 지붕이라 한다면 태백산은 영남의 지붕이다. 정선 정암사에서 영주 부석사에 이르기까지 강원도 남부와 경북 북부를 영향권에 두고, 청옥산, 각화산, 문수산, 선달산, 구룡산등 수다한 산봉을 자산(子山)으로 거느린다. 태백산남쪽 안동시 북부 산악지대에서 해 뜰 무렵 눈 덮인 태백산을 바라보면 웅장미와 함께 둥글고 밝다 못해 황금빛으로 붉게 빛난다. 현재 태백시 관할구역만으로 도립공원으로 축소되어 있으나 태백산 권역 전체로 확대하면 산의 높이 산의 넓이 식물의 생태계 역사성 등의 종합점수는 국립공원 상위 수준이다.
태백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기를 신라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 5년10월에 왕이 친히 태백산을 순행하여 국태민안을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태백산에는 모두 3기의 천제단이 있는데 정상 장군봉에 장군단(將軍壇), 영봉에 천왕단(天王壇), 영봉아래에 하단이라 칭하는 인왕단(人王壇)이 있다. 고대 우리민족은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해서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고 믿고 산정에 제단을 쌓고 하늘에 기원제를 올렸다. 천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지 단군에게 제사하는 제단이 아니다. 단군신화는 어디까지나 신화일 뿐이지만 민족정신을 하나로 묶어놓는 근간으로 단군은 어느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고조선 곧 단군조선의 역대 왕 들을 총칭하는 것이 단군이고, 고조선을 건국한 특정한 인물을 지칭할 적에는 단군왕검이 된다. 천지만물을 통치하는 하늘임금과 이 땅의 뭇 백성들 사이에서 하늘임금의 뜻에 따라 홍익인간의 통치이념으로 이 땅의 일개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을 왕(王)이라 부른다. 신라는 오악(五岳)을 두었는데 중악(팔공산), 동악(토함산), 서악(계룡산), 남악(지리산)과 함께 태백산은 신라의 최북단에 위치하여 북악(태백산)이라 했다.
태백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탄지(始炭地)로 백산(白山)에 흑탄(黑炭)이 묻혀 있다. 태백탄전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우리나라 산업화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 무렵 함백산과 태백산 탄전을 총칭하여 함태탄광이라 불렀다. 태백산 산록에서 자생하는 금강송(金剛松)은 목피가 붉어 적송(赤松), 속이 황금색이어서 황장목(黃腸木)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태백산록 춘양목(春陽木)은 목재로서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데 생산지를 뜻하는 속칭 춘양목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기도 했다. 정상에서면 강원 남부일대와 경북북부 일대가 두루 조망되고 맑은 날은 동해 일출을 볼 수 있다. 태백산은 소백산, 덕유산, 한라산, 무등산과 더불어 설경의 명산으로 알려져 있고 6월 초순 만개하는 철쭉명산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단풍은 태백산의 심장이라 칭함을 받는 봉화 구마동 계곡이나 각화사 등지로 가야한다. 산이 크기 때문에 계절에 맞게 지역을 선택한다면 사계절 어느 때 찾아도 좋다.
嶺南의 지붕 太白山에 滿發한 雪花
<백단사~반재 오름길의 설경>
오늘 산행기점은 백단사(白檀寺)매표소다. 08시30분이다. 매표소에 사람이 보이지 않아 쑤욱 들어가니 매표원이 쪽문을 열고 “입장권을 구입해서 들어가세요!”하고 소리쳤다. 나는 뒤돌아보며 “아니 여기는 경로우대도 없소!” 하고 일침을 가했더니 매표원은 “그러면 이야기를 하고 들어가야지요.”하고 문을 닫았다. 영동지방에 오늘까지 5일째 폭설이 내려 산간마을은 교통이 두절되고 시설물 피해가 심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겨울은 큰 눈이 내리지 않아 폭설이 내리기만을 기다렸다가 이번 기회에 실행으로 옮겼다. 이제는 눈이 그칠 때가 되었다 싶었는데 오늘도 눈이다. 일출까지 염두에 두고 단독산행에 나섰으나 아쉽게도 일출의 꿈은 접어야했다. 이곳 백단사지구는 천제단까지 4,5km,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당골을 비롯하여 유일사, 화방재, 금천계곡과 함께 태백산도립공원 산행기점의 하나다. 숙박업, 요식업, 굿당 등이 있다. 1986년 10월3일 내가 처음 단독으로 태백산 산행을 한 이후 오늘 다시 찾고 보니 감회가 새롭기까지 하다.
<반재 갈림길의 설경>
<반재 갈림길 주변의 활짝 핀 상고대>
<반재~망경사 등산로의 눈꽃>
백단사를 지나서 1,8km을 걸어올라 반재다. 태백산에서 통행인이 가장 많은 고개인데 얼핏 고개 같아 보이지 않는다. 잘 알려진 재는 재인데 세숫대야를 엎어 놓은 것 같아 반(盤)재다. 반재는 당골광장에서 천재단으로 오르내리는 중간에 위치 쉼터로 이용된다. 천제단2,2km, 당골광장2,2km, 백단사1,8km이다. 이번 눈은 습설(濕雪)이라 상고대도 잘 피었다. 눈(目)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반재주변의 눈(雪)꽃은 가히 환상적이다. 한파주의보까지 내려진 터라 옷을 두껍게 입었더니 온몸이 땀이다. 나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하산하는 사람들은 대개 아마추어 사진작가들로 카메라에 삼각대 까지 메고 내려온다. “일출을 보았느냐?” 물었더니 사람들마다 “눈꽃은 굿인데 일출은 못 보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망경사 풍경>
<용정각 주변의 설경>
망경사(望鏡寺)다. 옛적에는 일출과 운해가 좋아 망경대(望鏡臺)라 했고, 이곳에 태백산산신을 모시던 신당이 있어 망경사(望鏡祠)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백산에 오르내리며 느낀 소감은 망경사는 늘 태백산의 흉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견해일까? 절 옆에 왕이 천제를 올릴 때 제수로 사용했다는 용정수(龍井水) 샘터가 있다. 예전에는 등산객들이 즐겨 이용하던 수량풍부하고 물맛 좋은 샘이었다. 지금은 절에서 주변에 건물을 지어 올려 흔적도 찾기 어렵다. 태백산 최고의 샘, 이름만 남아있는 용정수(龍井水), 예전에 없던 용정각을 비롯하여 주변의 잡다한 시설물들을 철거하고 샘터주변을 자연그대로 원상복구 해야겠다.
<단종비각>
용정에서 천제단 길로 100m쯤 올라 서면 단종비각(端宗碑閣)이 있다. 1955년 만경사스님이 건립한 비각의 비명(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과 현판(端宗碑閣)은 오대산 월정사 탄허 스님이 썼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단종의 혼령은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장릉(莊陵)에 묻힌 단종에게 민간에서 단종의 제사를 지내왔던 이곳에 세운 비각이다. 단종(端宗1441~1457; 조선 6대왕)은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 청령포(淸玲浦 명승 제50호)에 유배되었다. 이 억울함을 들어줄 자가 없어 맺힌 한을 홀로 삭히며 단종(端宗 李弘暉 1441~1457)은 이렇게 노래했다.
두견새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스스로 원한 맺힌 새가되어 궁궐을 떠나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푸른 산중에 외로운 몸 그림자 되었구나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밤마다 선잠이요 잠자리마다 선잠이고 窮恨年年恨不窮 (궁한연연한불궁) 맺힌 한 삭히려 해도 한은 끝이 없고나 聲斷曉岑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두견새 소리 멎은 새벽에 잔월은 희고 血流春谷落花紅 (혈류춘곡낙화홍) 피맺힌 봄 골짝엔 붉은 꽃잎 떨어지는데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하늘도 귀먹어 하소연 듣지 못하는지 何奈愁人耳獨聰 (하나수인이독총) 어찌하여 수심 많은 내 귀만 홀로 밝은가.
16세로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해 영월 땅 장릉에 묻힌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단종애사 (端宗哀史), 세조의 어명을 받아 단종에게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청령포를 뒤돌아보며 금부도사 (禁府都事) 왕방연 (王邦衍 ?~?)이 인간적인 고뇌를 토로하며 이렇게 시로 읊었다. “천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사육신과 생육신을 낳게 한 단종애사, 그 중에 성삼문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려다 실패해 세조로 부터 불에 달구어진 쇠막대기로 몸을 찌르고 살을 지지는 능지처참형(陵遲處斬刑)으로 처형당하고 일족을 멸하는 형벌까지 가해졌다. 매죽헌 성삼문(梅竹軒 成三問1418~1456)이 처형을 앞두고 읊은 절명 시
絶命詩(절명시)
擊鼓催人命 (격고최인명) 둥 둥둥 울리는 북소리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데 回頭日欲斜 (회두일욕사) 고개를 돌려보니 해는 지려 하네 黃泉無一店 (황천무일점) 저승에는 주막하나 없다하니 今夜宿誰家 (금일숙수가) 오늘밤은 누구의 집에서 묵을 고!
왕권을 빼앗아 왕위에 오른 세조는 그 과정에서 권력유지에 장애가 될 만한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고, 억울하게 온갖 악행을 일삼아 그 죄 값으로 악성 피부병에 시달렸다. 병을 고치기 위해 전국의 명의들을 불러들여도 백약이 무효라, 물 좋기로 이름난 오대산을 찾아 우통수(于筒水)로 몸을 씻기도 하고, 삼파수(三派水)로 씻으면 좋다는 말을 듣고 속리산을 찾기도 했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멀쩡한 사람도 못된 마음을 먹으면 닭살이 돋는 법, 의원이 못 고치는 마음의 병은 먼저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어야 고질병도 고칠 수 있지 않았을까?
<영봉 천제단>
장군봉 정상으로부터 300m거리 남쪽의 영봉 (靈峰1,560,6m) 천제단(天祭壇)이다. 얼핏 바람 많은 제주의 민가의 돌담장처럼 엉성해 보이나 제단을 에 두룬 담장은 풍압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레 바람구멍을 두었다. 돌이 귀한 태백산 산마루 이 높은 곳에서도 수천 년 비바람에도 허물어지지 않는 천제단인 것이다. 우리민족은 이곳에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 신앙의 대상을 하나님, 하늘, 천신, 천왕 등 어떤 표현을 써도 좋다. 그 뜻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을 지칭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고래로부터 우리민족은 하늘을 숭상하는 민족이었다.한배검이라는 신위가 모셔져있는 천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단인데 무슨 단군할아버지를 뜻하는 한배검인가? 무릇 천제단은 이름 그대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제단이다.
<영봉 천제단에서 바라본 장군봉>
이곳에서 매년 10월3일이면 개천제가 봉행된다. 여기에 태백산 정상 표지석이 있어 대부분 사람들은 정상으로 알고 있다. 태백산에서 조망이 제일 좋고 3개의 천제단 중 그 중심에 위치한다. 천제단하면 이곳을 생각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오늘도 제단에는 술과 과일이 차려져 있다. 누군가가 기원제를 드린 모양이다. 천제단이 있기 때문에 태백산 산기도가 가장 영험하다해서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천제단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요즘도 쉽게 볼 수 있고 추위가 물러가면 천제단에서 이따금 천제단의 한배검 신위가 모셔진 제단 앞에서 돌담을 따라 빙글빙글 돌고 돌아가는 무녀(巫女)의 신바람 나는 강신무(降神舞)도 볼 수 있다. 산 아래 소도동 당골에는 굿 당이 있어 전국의 무속인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태백산에서 북으로 정선 정암사, 김립(金笠)선생의 묘소가 있는 영월 김삿갓면 마대산(馬垈山),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소백산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면 영주 부석사가 있다. 그곳까지 태백산 품안에 든다.
<태백산의 정상부>
태백산은 해발고도 900m가 더 되는 곳까지 차로 오르니 요즘은 간단히 오를 수 있지만 옛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호랑이가 유난히 많았던 태백산록에는 곳곳에 호랑이에게 잡혀 먹힌 사람의 무덤인 호식총(虎食塚)이 있고 입산 시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기원제를 지내던 산신당이 곳곳에 있다. 때문에 적어도 오륙 명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무장을 했을 것이고, 걷는 것이 일상화된 시절에도 삼척 죽서루에서 태백산에 오르려면 하루 이틀로서는 어림도 없었을 게다. 여름에 올랐을 것으로 보이는 문정공 근재 안축 (文貞公 謹齋 安軸1287~1348)선생의 시 登 太白山 (등 태백산)을 생각해 본다.
登 太白山 (등 태백산)
直過匠工入紫煙 (직과장공입자연) 긴 허공 곧게 지나 붉은 안개 속 들어가니 始知登了最高顚 (시지등료최고전) 최고봉에 올랐다는 것을 비로소 알겠네 一丸白日低頭上 (일환백일저두상) 둥그렇고 밝은 해가 머리위에 나직하고 四面群山落眼前 (사면구상낙안전) 사면으로 뭇 산들이 눈앞에 내려앉았네 身遂飛雲疑駕鶴 (신수비운의가학) 몸은 날아가는 구름 쫒아 학을 탄듯하고 路懸危磴似梯天 (노현위등사재천) 높은 층계달린 길 하늘의 사다리인 듯 雨餘萬壑奔流漲 (우여만학분류창) 비온 끝에 온 골짜기 세찬 물 불어나서 愁渡縈廻五十川 (수도영회오십천) 굽이도는 오십천을 건널지 걱정이 되고나!
<태백산정상 장군봉의 천제단>
태백산정상 장군봉(將軍峰1,567m) 천제단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만인 10시30분이다. 최근에 정상 표지 석을 세워 알리고 있다. 영봉 천제단은 제단에 타원형 돌담을 둘렀으나 장군봉 천제단은 직사각형의 돌담을 둘렀다. 3개의 천제단 중에 장군봉 천제단과 영봉 천제단 만이 돌담을 둘렀는데 이는 바람이 거센 고지대라 천제를 지낼 때 방풍역할을 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장군봉 주변의 설경>
<장군봉 주변의 설경>
태백산 서쪽에 산이 많은 영월 땅 어느 산마루에 올라보아도 동쪽의 태백산은 웅장하며 밝고 둥근 해 (太陽)와 둥근달 (太陰)은 필시 태백산 산마루로 솟아오른다. 그래서 태백산일지도 모른다. 매월당 김시습 (梅月堂 金時習1435~1493)이 영월 땅 어디에 선가 태백산을 바라보고 쓴 시가 있으니
望太白山 (망태백산)
西望遙遙太白山 (서망요요태백산) 서쪽에서 아득하게 태백산을 바라보니 碧尖高揷聳雲間 (벽첩고삽용운간) 푸르고 높은 산이 구름사이로 솟아있네 人言獄頂神靈異 (인어옥정신령이) 사람들이 산 고스락에 기이한 신령이 있다더니 辯得乾坤造化關 (변득건곤조화관) 하늘과 땅 사이에 조화로운 문이 되는 구나!
<주목 군락지의 설경>
장군봉 뒤쪽으로 내려서면 주목군락지가 있다. 표피가 붉어 주목(朱木)이라 한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고사목을 대상으로 한다. 태백산 풍경사진을 담아 가려는 사람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 오늘도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카메라 장비를 지키며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 사진은 해 뜰 무렵과 해질 무렵이 제일 좋다. 사진은 기계와 기술 그리고 날씨가 좋아야 좋은 사진을 담아 갈수가 있는데 오늘은 날씨가 흐려 어려울 것 같았다. 30분이 넘게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장군봉, 영봉 천제단을 거쳐 영봉 남쪽 100m 아래 천제단(下壇)으로 왔다.
<영봉 남쪽아래 하단 풍경>
하단(下壇)이다. 영봉을 배경으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제단이 있는데 원래의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제단 앞에 묘지 1기가 있다. 명당이라면 힘든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옛 사람들이 쓴 묘다. 옛적 봉화쪽에서 태백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추울 때 모닥불을 피워놓고 쉬어 갔을 것으로 보이는 곳이다. 여기서 옛 사람들의 태백산 유산기를 생각해본다. 조선후기 문인이며 화가였던 능호관 이인상(凌壺觀 李麟祥1710~1760)선생은 을묘년(乙卯年 1735년)에 올랐던 사흘간의 “유 태백산기”에서 “안동을 출발 순흥을 거처 봉화 각화사에서 유숙하고 승려 60인을 선발하여 대동하고 태백산 산행을 시작했다. 겹옷을 입고 무룹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어 정상이 보일 즈음에는 북방으로부터 휘몰아치는 칼바람은 온 산천을 찢어내는 듯 으르렁 대며 울부짖었다. 불을 피워 몸을 녹인 다음 걷고 또 걸었다. (巨木吼怒:거목후노) 큰 나무는 울부짖어 분노하고 , (小木哀鳴:소목애명) 작은 나무는 슬피 울어댔다. (至天王堂:지천왕당) 정상 천제단에 오른 후, (太白山祠:태백산사) 태백산 망경대(望鏡臺)를 거처, (抵素逃里店:저소도리점) 산 아래 소도동 주막에 이르니 (夜已三更:야이삼경) 이미 밤 열두시 경 이었다.”라고 썼다.
눈 산행을 할 적에는 주의할 점이 있다. 쌓인 눈의 표면은 평평해 보일지라도 산지의 특성상 바닥이 고르지 못해 깊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정상적인 등산로라 할지라도 인적이 드문 길은 피하여야하고 등산로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물속에 빠지면 헤엄이라도 치지마는 눈 속에 빠지면 헤엄도 칠 수 없어 동행자가 없으면 구조 받지 못해 매우 위험하다.
<부쇠봉 아래 부쇠봉 삼거리>
하단에서 내려오면 이정표가 있는 부쇠봉 삼거리다. 백두대간 길과 문수봉 갈림길이다. 여기서부터 소백산 방향 백두대간 길은 오지 산행가들 만이 간간히 다니는 봉화 땅이다. 그래서인지 태백산도립공원 권역 밖이라 이정표에 거리 표시도 없이 그저 “백두대간”으로 만 표기되어져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같은 산 하나를 두고서 얼마나 신경전을 벌리는지 모르는데 봉화군에서는 도무지 신경을 안 쓰는 모양이다. 옛적 영남인들이 태백산에 오르내렸던 길목인 이곳에 봉화군에서는 안내표시판을 세워두었으면 참 좋겠다. “어서 오십시요! 여기서부터 봉화군입니다.” 라고 말이다.
<문수봉의 설경>
<운무에 가려진 문수봉에서 바라본 태백산 정상부>
부쇠봉(1,546,7m)을 지나 자작나무군락지 능선 길을 따라 문수봉(文殊峰1,517m)이다. 천제단에서 3km 거리에 있는 이곳은 태백산에서 대표적인 돌너덜로 된 봉우리다. 태백산정상부가 건너다보이는 곳인데, 자연그대로 두질 않고 여기에도 여러 개의 돌탑을 쌓아 경관을 망쳐놓았다. 날씨가 흐려 멀리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긴 채 0,8km 거리의 소문수봉으로 향했다. 문수봉에서 눈길을 미끄러지듯 내려와 소문수봉 갈림길이다. 여기서 당골광장 3,4km, 금천동 3,6km이다. 이정표에 소문수봉 0,5km로 표기된 것을 보고 이곳에 초행길인 어느 부부는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나를 만나 “여기서 소문수봉까지 몇 분 거리냐?”고 묻길래 “2분 거리 밖에 안 된다.” 하자 따라나섰다. 숲을 헤치고 올라서니 0,1km 거리 곧장 소문수봉(小文殊峰1,465m)이다.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산길거리는 정확히 잴 수는 없어도 거리표기가 너무 잘못되었다. 오래전 지리산 음정마을에서 벽소령으로 오르는데 벽소령은 가까워지는데도 오를수록 거리는 멀어졌던 이정표가 생각났다. 등산로 이정표를 세울 때는 전국이 동일한 모델로 기본적으로 현재위치, 방향, 거리를 정확히 했으면 한다.
<소 문수봉의 설경>
소문수봉(小文殊峰1,465m)은 정상에 돌너덜이 있어 문수봉을 닮아 소문수봉이라 한다. 동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이 금천동 먹 뱀이 골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탄지가 있어 검은 뱀이 기어가듯 골짝물이 검게 흘러내려 이름 붙여진 골짝이다. 태백산 소문수봉 동쪽 기슭 금천계곡 먹물배기에서 국내 최초로 석탄이 발견된 이래 함태(함백산, 태백산)탄광지역은 한때 석탄 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때문에 석탄수송과 목제수송을 위해 지금의 영동선 (영주~강릉)의 첫 구간이었던 영암선(영주~철암)이 7년 공사 끝에 우리기술로 부설된 최초의 철로(1955년 개통)이다. 영암선이 개통된 이후 15년간이 춘양목의 수난기로 기록되기도 했다.
<소문수봉에서 내려다 본 속칭 먹뱀이 골>
태백산은 밝은 산이다. 겨울에는 눈이 덮혀 희고 초여름은 흰 철쭉이 덮여 희다. 그러나 겉은 흰데 속은 검다. 겉과 속이 달라 표리부동 (表裏不同)하다. 하지만 속에 든 검은 석탄은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에너지원이었고 밝게 불을 밝히는 화력발전용 연료가 되었다. 이처럼 알고 보면 표리상동(表裏相同)하다 하겠다. 그러니 태백산은 그 이름값을 유감없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금천계곡풍경은 알프스산록의 목장주변 풍경과 흡사하다.
<소문수봉~당골광장 하산로의 눈꽃>
여기서 당골 광장까지 3,5km 1시간 거리다. 자작나무 숲길을 따라 골짝에 내려오노라니 눈꽃은 활짝 피어 어떤 것은 벚꽃처럼 보이고 어떤 것은 백목련이 핀 것처럼 보였다. 당골의 본디 이름은 전국의 무속인들이 몰려들어 굿판을 벌렸다 해서 제당골인데 줄여서 당골이다, 당골 광장에 도착하니 13시30분, 1월에 왁자지껄했던 눈꽃축제도 모두 끝나고 간간히 등산객들만 오고갈 뿐이었다.
오늘 행로는 백단사매표소~반재~용정각~단종각~연봉 천제단~정상 장군봉 천제단~주목군락지~장군봉 천제단~영봉 천제단~하단~부쇠봉 삼거리~문수봉~소문수봉~당골광장 거리 14km, 5시간소요.
2014년 2월11일 화요일 흐리고 눈 |
첫댓글 제 고향 산행정보를 아주 자세하게 올려 주셨습니다.
저도 자주 등산하는 곳이랍니다.
3월에는 친구들 내외 여럿이서 가려고 계획도 세웠구요.
눈이 많이 내리고 있을 때 다녀오셨네요.
안전하게 산행을 마치셔서 아주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신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태백이 고향이시군요.
태백산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보니 줄이고 줄였으나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네요.
<자세하게>라고 평가해 주시니 고맙고요.
3월 초순까지는 눈 산행이 가능할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요.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전체 사진을 감상하며 完讀 하였습니다.
저도 몇년전에 겨울 산행으로 가보아서 보는것 만으로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눈길은 사람이 가지 않은 초행길은 작대기로 가늠하여 안전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어제는 A체널에서 관찰 카메라 태백산 등산객들과 설경이 나와서
많은 분들이 찾는 태백산 잘 보았고 霜固帶, 雪景 漢詩 잘 감상합니다.
琴堤님은 태백산 밑에 사시니까 눈꽃 산행은 어려움이 없겠네요.
작심을하고 갔더랬는데 일출을 보지 못해 아쉬고요
눈까지 날려 흑백사진이 되고 말았군요.
霜固帶는 정말 좋았습니다.
험하고 힘든 겨울 산을 다녀오시고 멋있는 설산의 일품 설경과 함께
긴 산행기를 올려주셔서 감상 잘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태백산은 명산이라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다보니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내용이 길어지면
실증을 내기 쉽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줄이고 줄였어도 내용이 긴 듯하네요.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에 태백산에
갈 기회가 생기면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송운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영산인 태백산은 눈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겨울 산객들이 많이 찾는곳이지요 정상부근의 주목 군락지가 명품이고요
또한 비료푸대로 신명나게 눈썰매는 타는 재미난 곳이기도 하고요
설경의 아름다움을 멋지게 담아오셨습니다
설경 감상과 함께 상세한 글 고맙습니다
태백산은 돌들이 없어
미끄럼을 타도 다칠 염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태백산은 눈꽃산행의
최적지가 아닐까 합니다.
태백산 천제단의 氣를 받아
어려운 금연을 아주쉽게 하
게되었답니다. 10년도 넘어...
천제단에서 기도하면 한가지는
무조건 이룬다는 說이 저에게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잘 찍은 눈덮인 천제단의 사진을 보니 기운이 나네요
태백산 정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요.
태백산은 삼각산, 계룡산, 마리산등과 더불어
산 기도는 기도발이 세다는 평을 받고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적 안동시내의 각급학교의 교가에는
태백산과 낙동강이 약방감초처럼 들어가 있었습니다.
금연도 어렵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일도 성취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더군다나 중간 중간 古人들의 漢詩까지 窮究하여 올려주시니,
풍치가 더욱 멋스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많이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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