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송리[大松里]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에 큰 소나무가 있어 대송(大松)이라 하였다. 달리 대송개라고도 하였는데, ‘개’는 포구를 뜻하는 말로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 대송포촌(大松浦村)이라는 관련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대송동(大松洞)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대송동과 환치동이 통합되어 하동군 남면 대송리가 되었다. 1933년 남면과 금양면(金陽面)을 합쳐 신설된 금남면(金南面) 관할이 되었다.
자연 환경
높은 산지가 자리한 북동쪽의 금오산(金鰲山)[849m] 줄기가 남서 방향으로 남해를 향해 뻗어 내린 100~300m 산지 사이로 평지가 길게 형성되어 있고, 거기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골짜기에서 발원한 작은 물줄기들이 대송천을 이루어 대송들 한복판을 지나 남해로 흘러든다.
현황
대송리는 금남면 중앙부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3월 31일 현재 면적은 5.92㎢이며 총 151가구에 322명[남자 174명, 여자 14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송, 사등(砂登), 환치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마을 뒷편의 금오산 정상 남쪽 아래 달바구[月岩]라 불리는 바위굴 암벽에 고려 시대 불상으로 추정되는 하동 금오산 마애불(河東金鰲山磨崖佛)[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0호]이 있다. 사등마을은 조선 후기 충주 지씨(忠州池氏)가 남해군에서 건너와 정착한 이래 김해 김씨를 비롯하여 여러 성씨들이 정착하였다. 환치마을에는 하동군 생활 폐기물 매립장이 있고, 마을 앞으로 남해가 펼쳐져 있다. 조계종 사찰인 금정사(金頂寺)가 있다.
참고문헌
『호구총수(戶口總數)』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한국지명총람』10-경남편III·부산편(한글학회, 1980)
『하동군지』(하동군지편찬위원회, 1996)
『하동군 지명지』(하동문화원, 1999)
『금남면지』(금남면지편찬위원회, 2004)
하동군청(http://www.hadong.go.kr)
출쳐:(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금정사[金頂寺]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금오산 남서쪽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금정사는 1948년에 정우경이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15번지에 설립하였으며, 당시에는 금강사(金剛寺)라고 하였다. 6·25 전쟁을 겪고 난 뒤에 정우경이 이 사찰을 떠나자 여러 승려들이 주석하였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주지 없이 20년을 지냈다. 1970년에 김문수가 주지로 부임하여 현재 위치인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35번지로 이전하면서 금강사(金剛寺)를 금정사(金政寺)로 개칭하였다. 그때에 대웅전, 종각, 요사채를 건축하였다. 1999년 혜철(慧哲)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금정사(金政寺)를 금정사(金頂寺)로 개칭하고, 삼성각, 충혼전, 안심요 3층, 진신사리석탑과 화장실 등의 건물을 신축하였다.
활동 사항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정기 법회를 열고 있다. 1954년 금정사의 발원으로 6·25 전쟁 때 조국 수호를 위하여 전사한 하동군 출신의 군인 및 청년 기동 대원 334명의 얼을 추모하고 이들의 값진 희생을 민족 유산으로 보존하고자 영령탑을 건립했는데, 그 호국 영령들을 기리는 사업도 하고 있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금정사에는 대웅전, 삼성각, 충혼전, 요사채, 종각, 안심요 등의 건물이 짜임새 있게 자리 잡고 있다.
관련 문화재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호인 「하동 금정사 산신탱(河東金頂寺山神幀)」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12호인 「하동 금정사 칠성탱(河東金頂寺七星幀)」, 국가보훈처 현충 시설 43-2-13인 금정사 영령탑이 있다.
참고문헌
『금남면지』(금남면지편찬위원회, 2004)
문화재청(http://www.cha.go.kr)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024-01-26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