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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의 푸르름 속에서 붉은 기운을 느끼다. 장성 축령산
1. 일자: 2016. 11. 27 (토)
2. 장소: 축령산(621m)
3. 행로 및 시간
[추암마을(10:50) -> 자연치유안내센터(11:20) -> 축령산/팔각정(11:46~12:04) -> (건강숲길) -> 삼거리 갈림(12:26) -> 무래봉(12:30, 567m) -> 자작나무 숲(13:04) -> 세심원(13:13)) -> (알바 ~13:29) -> 금곡마을(13:44) -> 갈림(14:05) -> 안내센터(14:15) -> (숲내음숲길) -> 이정표(14:22, 추암 3km) -> 임종국 수목장묘(14:30) -> 추암마을(15:07), 약13.2km / 4시간 20분)]
< 다시 축령산 산행을 준비하며 >
네트워크 전파 이론은‘사건-연결-싱크(Sync)-증폭’순으로 전개된다. 2주 전 남양주 축령산에 간 사건과 동일한 산 이름이 연결고리가 되어 잠재의식 속에 싱크 현상이 나타나더니 또 다른 축령산 산행에 대한 기대가 커져간다. 어쩌면 장성 축령산을 예약해 두었기에 남양주 축령산에 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310km 넘게 떨어져 있는 산이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연결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다.
우연히 들른 ㅈ산악회에서 본 사진 한 장에 시선이 머문다. 비록 정지된 화면이건만 사진은 많은 걸 이야기해 준다. 측백나무의 건강한 줄기와 울창한 수림의 숲, 길게 난 길…. 스토리를 전하는 사진의 매력에 이끌려 예약을 한다. 이유를 불문하고 그곳에 가야 한다.
다시 길을 나선다. 길은 도로와 다르다. 도로는 이동 효율성에 맞게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길은 편백나무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벗과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 누군가에게 일터이기도 하다. 하여, 길은 그 자체가 존재의 의미다.
장성 축령산은 조림가 임종국 선생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선생이 1950년대부터 (1평에 1원에 산 땅에, 한 그루에 1원 했다는) 나무를 수 십 년에 걸쳐 심어 평생의 업으로 가꾼 숲, 그 숲은 자연과 땀과 시간이라는 자양분을 받아 국내 최고의 자연 친화 힐링 숲으로 거듭났다. 편백·낙엽송·삼나무 등 수령 5-50년 생의 숲이 널찍하게 바다를 이룬다. 주변이 천연림인 상수리·졸참나무·떡갈나무 등으로 둘러싸여 편백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 인공수림 사이로 산의 7부 능선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임도로 들어서면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한다. 사진만으로는 감질난다. 가서 내 눈으로 그 장엄함을 확인해 보아야겠다.
산행 거리는 11.8km로 짧지 않지만 대개 4시간 남짓이면 끝이 난다. 높이 250미터에서 시작한 길은 정상까지 3km가 주 오르막이며, 이후 내리막 2km를 내려선 후 평지와 비고 100~150m 오르내리며 다양한 이름의 숲을 거니는 것으로 이어진다.
< 희망사항 >
지난 11년간 이어진 주말산행 동안 대략 600번이 조금 넘는 등산을 했고, 그간 300개 가량의 산을 오른 것 같다. 봉(峰) 과 령(嶺)을 제외한 순수 독립 산을 기준으로 한 기록이니 고수 반열은 아니지만 부끄럽진 않은 수준이다.‘300산 등산에 붙여’하는 이름으로 뒤돌아 볼 때 산행은 한마디로 미지로의 여행이었다. 산은 매력은 비경쟁성, 따로 또 함께도 가능하며, 도처에 산재해 있으며, 능력이 되면 극한에의 도전도 가능하다는 게다.
무릇 먼 길 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강과 같아야 한다고 했다. 그 행위가 필생의 여정이라면 더구나 강물처럼 흘러가야 한다. 도중에 부단히 만나고. 부단히 소통하고, 부단히 스스로를 변화하면서도, 스스로의 의지로 흘러가야 한다. 등산도 삶도 모름지기 이러해야 한다고 믿는다.
장성 축령산은 그 존재를 지금에야 알았지만, 꽤 많은 이들이 칭송하는 숲 트레킹의 명소다. 늦게나마 찾게 되어 기쁘다. 새로운 많은 것들과 만나고 좋은 인연을 맺기를 바래본다.
(여기까지는 산행 준비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장성 가는 길에 >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 작은 우산 하나를 손가방에 챙기고 집을 나선다. 가을 내내 계속되는 토요일 흐린 날씨를 이젠 당연한 일로 받아 들인다. 다만 오늘은 비가 오후 늦게 시작되기를 바래본다. 사당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여러모로 편해 좋다. 7시가 다 되어도 날은 아직 껌껌하다. 계절은 겨울 깊숙이 향해 간다.
장성 추암마을까지 거리는 265km 남짓, 빠르면 3시간이면 가겠지 기대하며 눈을 붙인다. 동쪽 차장으로 붉은 기운이 비친다. 새벽 산에서 보던 일출을 고속도로에서 목격하니 기분이 새롭다. 슬그머니 무박산행이 그리워진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초입부터 막혔는데, 선잠이 들다 깨다 반복하다 보니 내장산IC를 나와 장성 땅에 들어선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기대는 늘 깨지는 법, 손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배낭으로 옮긴다.
대장이 코스 안내를 한다.‘꿈꾸는 소년’이란 닉네임답게 무척 감수성이 뛰어난 분이다. 이은상 선생의 ‘산악인의 선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하더니, 선물도 나눠주고, 트랭글 궤적을 장황히 설명하더니, 시 한편 읊조리며 안내를 끝낸다. 행동에 자상함과 진실성이 묻어나 싫지 않았다.
(산악인의 선서는 처음 들었다. 신기해 인용해 본다.)
산악인의 선서.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 자연에 동화 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 추암에서 축령산 팔각정 >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는 우중충한 날씨, 상가 입간판이 어지러운 추암마을에서 길은 시작된다. 들머리가 헷갈려 앞서 가는 이를 따라 나선다. 잠시 후 갈림이 나온다. 좌측으로 ‘축령산 5.3km’라는 표지가 보인다. 우측은 도로, 발이 좌측으로 간다. 한참을 가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돌아 나온다. ‘축령산까지는 3km 남짓’머릿속 정보가 일깨워준다. 무리를 따라 도로를 걷는다. 고도가 서서히 올라간다. 15분쯤 걷자 잠시 흙 길이 나타나며 ‘장성편백치유의숲’간판이 등장한다. 본격적으로 휴양림 숲에 들어서나 보다. 오락가락 하던 비는 이내 그친다. 등로 좌우 조릿대 뒤편으로 대나무 숲이 울창하다. 이어질 편백 숲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 대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 >
도로가 계속된다. 무언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건물이 나타난다. 기념비도 있고 안내센터가 등장한다. 축령산 정상은 좌측으로 가야 한다. 이상한 건 정상으로 향하는 표시는 없고 금곡마을 안내는 커다랗다. 마치 산에 갈 사람은 알아서 가라는 식이다. 숲에 들어선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참나무들 사이로 인공미가 느껴지는 편백나무 숲이 빽빽하다. 편백은 키가 무척 크다. 날이 흐려서인지 사진은 현장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오르며 바라보는 풍경에는 온통 회색 빛 하늘 아래 산들이 너울져 흐르는 모습이 들어온다. 마음을 착 가라앉히는 풍경이다. 정상에서는 막힘 없이 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 20여분 가파른 비탈을 치고 오르자 팔각정이 서 있는 축령산 정상에 도착한다. 등산만이 바램이라면 그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11:45, 축령산 정상에 선다. 팔각정에서 바라보는 장성 일대의 풍경은 그윽하다. 산 아래 마을, 그 뒤로 다시 산줄기, 그 뒤편으로 다시 마을과 산이 중첩되며 흘러간다. 뒤로 갈수록 색의 농담은 엷어진다. 우리 내 산야의 전형적 풍경이다. 눈에 익숙해 편안하고, 그 익숙함 속에서도 변화를 찾느라 분주하다. 작은 저수지를 찾아내고는 목적 달성을 한 냥 벤치에 앉아 도시락 통을 편다. 달콤한 유자와 매콤한 생강 맛이 일품이다. 차 한 잔에 속이 치유된다.
팔각정 나무 기둥을 액자로 삼고 흐르는 산줄기를 담아본다. 내 눈에 보이는 만큼 사진은 풍경을 표현하지 못했다. 후미 일행들이 줄지어 올라온다. 하나 같이‘블랙야크 100대 명산’현수막을 들고 있다. 팔각정을 내려와 정상석을 배경으로 나도 인증사진을 찍는다.
< 축령산에서 임종국 수목장 묘 >
숙제를 미리 한 기분으로 ‘건강숲길’에 들어선다. 지도상 가야 할 길을 살피려 했으나 떨어지는 빗방울에 번거로워 무작정 앞사람을 따라 나선다. 잠시 후 비가 눈으로 바뀐다. 가늘긴 하지만 분명이 올 겨울 첫 눈이다. 날이 더 추워져 눈발이 거세지길 바래본다. 대개 그렇듯 기대는 기대일뿐 이내 눈은 비로 바뀐다. 아쉽다. 내리막이 길게 이어진다. 숲은 낙엽을 융단마냥 깐 짙은 갈색이다. 낙엽을 밟으며 휴양림을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 축령산 정상에서 >
20여분 걸었을까 원두막 같은 정자가 보이고 이정표가 있다. 우측으로 600미터 가면 임종국 선생의 수목장 터가 있단다. 직진은 금곡마을로 표시돼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직진한다. 작은 언덕을 치고 오르자 ‘무래봉 567m’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무언가 좀 이상하단 느낌이 온다. 좌측으로 금줄이 쳐 있고, 문수사 표기도 본 것 같다. 기대했던 편백나무 숲은 보이지 않고 동네 뒷산 같은 분위기의 야산이 쭉 이어진다. 잠시 후 이정표가 또 나온다. 누군가가 한 직진하지 말라는 X자 표시가 있고, 금곡영화마을 안내판도 보인다. 주변이 어지럽다. 무언가 이상하단 느낌은 들었지만 걸음에 관성이 붙어 직진한다. 우측으로 펜스가 쳐 있고 인공 조림된 편백 숲이 울창하다. 멀리 앞서가는 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다.
1시가 막 지난다. 편한 길을 걷다 보니 속도가 무척 빠르다. 평균 속도가 시속 3km를 넘어선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눈이 섞인 진눈깨비다. 배낭 커버를 한다. 자작나무 군락을 지난다. 자작의 흰 나무줄기가 숲을 풍요롭게 해 준다. 언덕을 내려서자 또 평지 등로가 이어진다. 낙엽과 억새 그리고 편백의 조화가 멋지다.
산 길이 끝이 나고 도로가 나타난다. 곧 다시 숲으로 들어가겠지 하고 느긋하게 걷는다. 세심원(洗心院)이란 건물에 도착한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집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지 폐가 분위기나 난다. 직진과 우틀 길이 나 있는데 모두 포장도로다. 망설이다. 직진한다. 일행이 6명으로 늘었다. 한참을 더 가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아무래도 너무 많이 온 것 같다. 숙의 끝에 되돌아 가기로 한다. 빗속에서 살핀 지도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도에는 금곡마을이 아예 없다. 세심원 좌측 길로 내려선다.
13:30분, 어디서 잘못 됐는지는 몰라도 분명 등로를 잘못 들었다. 도로가 길게 이어진다. 지나는 택시도 있다. 여차하면 택시를 부르면 되겠다 싶어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마을 앞을 지난다. 초겨울 빗 속 인적 없는 마을을 돌아든다. 이곳이 금곡마을 인가 보다. 앙상한 가지에 한 가득 수확하지 않은 과실이 그대로 남은 감나무를 본다. 붉은 색이 탐스럽다.
< 금곡영화마을로 향하는 숲을 거닐며 >
14:05 고대하던 이정표를 만난다. 길이 나뉜다. 어지럽게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 중 한가지만 눈에 들어온다. 임종국 기념비까지 2.14km가 남았다 한다. (오전에 지난 치유센터 옆에 기념비가 있었는데 자세히 살피지 못했고, 그 비석이 임종국 기념비 인줄은 몰랐다.) 일단 본능적으로‘임종국’을 따라 가야 한다고 믿었다. 앞서가던 일행의 생각도 같았다. 6명이 무리가 되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를 길을 향해 또 걷는다. 오르막 포장도로가 쭉 이어진다. 주변은 온통 편백나무 숲이다. 마을에서 20분을 넘게 도로를 걸었다. 길을 잃어도 대안이 있으리란 확신에 마음이 편해진다. 빗방울은 더욱 굵어진다. 주변의 붉은 색조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편백의 푸르름보다 짙은 갈색의 낙엽 쌓인 길과 감나무가 있는 마을과 길을 걷는 이의 붉은 색조가 인상적이다. 빗속 다양한 색의 조화 속에서 붉은 기운이 압권이다. 비 오는 초겨울 축령산의 대표 색은 붉음이다. 언제 다시 눈이 섞인 비를 맞으며 배낭 메고 우산 들고 숲 길을 걸을 수 있겠는가? 내 인생 아무도 다시 경험하지 못할 행운이라 여겨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던가, 아니 진정으로 이 비 내리는 포도 숲 길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금곡마을의 감나무 축령산 자연휴양림에서 >
고도를 꽤 많이 치고 올랐다. 도로가 끝이 나고 흙이 나타난다. 휴양림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2시 15분 무렵 숲 해설 센터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거세진다. 너른 공터 앞에 잘 조성된 편백 숲이 넓게 이어진다.
배낭을 정비한다. 현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는 몰라도 이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잠시 후 나타난 이정표에 마침내 추암마을이 등장한다. 거리는 3km다. 마음의 여유를 찾고 이정표를 찬찬히 살핀다.‘모암마을, 문암마을, 금곡마을, 추암마을’ 모든 이정표는 마을 이름 중심으로 표기돼 있다. 산악회 지도에는 없는 표시들이다. 인터넷 상의 정보와 현장 정보의 불일치가 여러 혼란을 초래했다.
등로를 찾은 보상은 컸다. 일단 숲 길 품격이 지금껏 걸어온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임도 양 옆으로 난 편백 숲은 그 높이와 굵기가 감탄을 자아낸다. 왜 이곳에 ‘치유’란 단어가 붙여졌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거 같다. 빗속에서도 숲의 기운이 그대로 전해진다. 피톤치드, 식물이 유해 균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내뿜는 물질, 일종의 독소가 인간에게는 안식을 가져다 준다. 값으로 따질 수 없이 비싼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신다. 축령의 숲은 명불허전이다.
< 편백나무 숲에서 / 임종국 수목장 묘 >
황홀한 숲을 걷다 보니 시간의 흐름을 잃어버렸다. 곳곳에 너른 쉼터가 산재해 있고 그곳에선 어김없이 잘 자란 편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14:30, 길이 나뉜다. 좌틀해 임종국 선생 수목장묘에 들른다. 이 숲의 창시자, 영웅의 묘 치고는 소담스럽다. 공터 중간에 그리 크지 않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옆에는 작은 꽃다발이 놓여 있다. 난 사실 임선생을 잘 모른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국내 최고의 조림가란 사실이 내겐 별 흥미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소박한 수목 묘를 보고나니 마음이 바뀐다. 영웅이 자기 땅에 묘를 작게 쓸 수 있다는 건, 그 인격의 크기가 묘의 크기에 반비례함을 알기에 그리고 이 버려진 땅에 이리 훌륭한 숲을 가꾸었다는 걸 내 눈으로 목격한 이상, 그는 더 이상 내게 범인이 아니다. 새삼 선생의 업적이 대단해 보인다.
< 임종국 수목장 묘에서 추암마을 >
정작 필요할 땐 없더니 휴양림 안으로 들어오니 넘쳐 나는 게 이정표다. 임도와 숲 트레킹 길이 여러 번 나뉜다. 숲내음숲길이라 명명된 오솔길을 걷고 싶었으나 우산을 들고 비탈을 내려서야 해 대신 너른 임도를 따라 간다. 굳이 새로 가꾼 트레킹 코스가 아니더라도 편백의 기운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오전에 지났던 치유센터 건물을 지난다. 마당에 세워진 비석이 임종국 선행 기념비였다. 빠른 속도로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우회 숲 길이 있음을 알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 왔던 길 그대로 내려간다.
추암 식당 앞에서 트랭글 종료 버튼을 누른다. 날머리에 도착해 놓고 보니 무척 길게 걸었다 생각했는데 거리는 13.2km, 시간은 휴식 포함 4시간 20분이었다. 초조한 마음은 지나온 길을 더 멀고 길게 느끼게 하나 보다.
빗방울은 조금 가늘어졌으나 여전히 추적추적 내린다.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이 비 그치면 본격적으로 겨울로 들어설 게다.
< 에필로그 >
산을 다녀온 다음날까지도 정확히 어떤 경로로 산행을 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현지에서 찍어온 길안내 지도를 들여다 봐도 마찬가지다. 또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돌아 내려왔다. 눈비가 오고, 갈래 길이 워낙 많았고, 여러 명이 함께 걸으니 앞사람을 무작정 따라가고, 길치인 내 능력도 한 몫 했지만, 근본적으론 명세기 국내 최고 건강 숲 길이라면서 들쑥날쑥, 중요한 포인트에서는 이가 빠진 안내판 탓이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의 범위 내에서 사고가 이루어지나 보다. 길 중심의 지도는 현지에서 마을 중심의 안내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다름을 예상하거나 인정하는 마음의 여유만 있었어도 최소한 당황하진 않았으리란 생각을 해 본다.
버스 차 창으로 여전히 비가 들이친다. 빗물에 번지는 불빛을 어지러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온 나라가 촛불 열기로 뜨겁다. 아집과 독선에 찬 위정자는 살면서 자기와 측근 외에는 마음을 열지 못하고 살았나 보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고 사는 인간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경험해 보지 않았고 하려고도 하지 않는 그런 닫힌 마음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본다.
바람에도 꺼지지 않은 촛불이 눈비에도 밝게 광화문을 빛내 주기를 바래본다.
< 축령산 산행 궤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