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 운영하는 ‘봄그늘 협동조합’
“시각장애인의 따스한 말 한마디가 지친 마음을 보듬어줘요”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인근 그레이프라운지 3층. 이곳에 빛 한 점 없는 칠흑의 공간이 있다. 이 어둠은 포근함과 편안함을 준다. 빛을 차단한 이 공간에서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바로 ‘마음보듬사’라고 불리는 시각장애인이다. 상담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80시간 이상 이론과 실습 교육을 받고 투입된 그들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민간자격증을 획득해 지난 2018년부터 심리상담을 맡고 있다. 거창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충분하게 듣고 공감하며 “괜찮아요”, “당신을 믿어요”와 같은 말을 나누는 동안 사람들의 울음은 잦아든다. 마음보듬은 장애인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존재’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바꾼 시각장애인 특화 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통해 시각장애인 일자리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봄그늘 협동조합을 찾아갔다.
Q. 마음보듬사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이 사업을 펼치는 봄그늘 협동조합(이하 봄그늘)은 서울대 학생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봄그늘이란 명칭은 내담자의 그늘진 마음에 봄을 선물한다는 의미와 함께 시각장애인을 봄의 눈으로 보게 한다는 이중적인 뜻을 담고 있어요.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는 ‘시각장애인이 대화 서비스를 해준다’는 목적으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협력해 지난 2018년부터 시작했어요. ‘장애인도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닌 ‘장애인이 더 잘하는 직업’, 즉 시각장애인 특화 직업으로 개발한 것이죠. 이 서비스는 여섯 명의 매니저와 열 명의 시각장애인 마음보듬사가 담당합니다. 매니저는 상담 접수를 받고 이동이 불편한 마음보듬사를 상담실까지 안내하는 일을 해요.
Q. 사업 구상 및 실행 과정이 궁금합니다.
A. 봄그늘은 서울대 소셜벤처 경영학회 ‘봄그늘팀’으로 출발했어요. ‘비즈니스로 사회공헌을 실현한다’는 설립 취지에 맞게 프로젝트 선정 회의를 하던 중 두 가지 사회적 문제가 화두에 올랐어요. 시각장애인의 직업이 상당히 한정적이라는 점과 스트레스를 겪거나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시각장애인의 경우 안마사와 극소수의 점역·교정사, 특수학교 교사가 직업의 대부분을 차지해요.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고자 시각장애인과 함께할 수 있는 서비스를 기획했습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을 통해 5명의 시각장애인을 소개받고 공간을 임대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했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데 성별과 나이는 물론, 보이지 않는다는 장애는 제약이 되지 않더라고요.
Q. 마음보듬사가 되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나요.
A. 마음보듬사는 기수별로 모집하는데, 현재 2기까지 진행됐어요. 정기적으로 공고를 내기보다는 인력 충원을 요할 때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의 지원을 통해 접수를 받아요. 올해 안에 추가 모집할 계획입니다. 특별한 자격 조건은 없으나 상담 경험이 있다면 마음보듬사라는 직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가장 중요한 건 마음가짐입니다. 잘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되고, 서툴거나 어려운 점도 하다 보면 나아져요. 하지만 그 밑바탕에 의지나 열정이 없다면 한계가 있기 마련이에요.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공감하려는 자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는 태도가 마음보듬사의 가장 큰 자질입니다.
Q. 마음보듬이 전문심리상담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A. 50분 동안 완전한 암막 속에서 1:1로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죠. 어둠은 유대감과 친밀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타인의 표정을 살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고요. 상담사에게 분석당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전문심리상담을 꺼리는 분도 이곳에서는 편하게 마음을 드러낼 수 있죠. 내담자와 마음보듬사 모두 별칭을 사용하기에 신원 노출의 염려가 없습니다. 전문심리상담에 비해 비용도 적게 들고요.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는 전문심리상담과 또래상담의 중간 형태라 할 수 있는데, 전문심리상담이 문제 해결과 극복에 중점을 두는 반면, 마음보듬사의 심리상담은 감정의 순화를 돕고 내담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데 초점을 맞춰요.
Q. 어려운 점이나 아쉬운 부분은 없나요.
A. 구성원 다수가 대학생 신분이기에 운영 시간이 한정적이에요. 서울대점은 월·목·금 3회, 강남점은 월~토 저녁에 운영하는데, 받을 수 있는 예약에 한계가 있어 이용자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수익적인 문제도 그렇고요. 그런 점을 보완하고자 온라인 대화 서비스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되면 현장감과 몰입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듭니다. 익명성은 물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순 있으나 그것이 라포르(rapport) 형성과 친밀도를 충분히 유지해주지는 않습니다.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의 장점은 편리함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위로와 힐링입니다. 마음보듬사를 만난 후 고민과 우울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다거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와 같은 후기를 접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시각장애인 마음보듬사들도 이 일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Q. 향후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요.
A. 차츰 인지도가 쌓이다 보니 이용 문의와 함께 마음보듬사에 관심이 있는 시각장애인의 문의도 늘고 있어요. 그때마다 앞으로도 더 분발해 ‘멘탈 헬스케어’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가 완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요. ‘블라인드’가 시각장애인이란 의미보다 어둠 속에서의 공감, 사람 대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위로로 자리매김했으면 합니다.
문의: 누리집(www.maeumbodeum.com), 카카오톡 채널 seeshade (10:00~22:00)
김수정·신혜령 기자
* 손끝으로 읽는 국정 152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