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1.주일오후찬양예배 설교
*본문; 삼하 12:7~15
*제목; 사무엘하서강해(12) 하나님께서 회개케 하셔야 참 회개를 할 수 있다!
1. 다윗의 범죄
지난 주에 천하의 ‘믿음의 사람’ 다윗도 죄에 빠지는 장면을 배웠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쟁 시 왕은 전장의 최일선에 서는 것이 이스라엘의 법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승리하는 것이 일상이 되다보니 하나님의 은혜도 되어진 것을 잊어버리고 교만하여 져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는 데, 그는 왕궁에 거한 것입니다. 죄의 시작이 바로 이것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음”입니다.
믿음의 자녀는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자녀는 늘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코람데오)
믿음의 자녀는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죄의 타겟이 됩니다.
다윗은 있어야 할 자리를 놓치는 바람에 죄가 시작됩니다.
죄의 첫 출발점은 “나태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다행입니다. 돌이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살인”하는 죄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핑계할 수도 없는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진짜 죄인이 되면, 내가 죄인인지를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죄에 무감각해지는 것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남의 아내를 빼앗고, 그의 남편을 죽이면서도 통회하지 않습니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오히려 남의 아내를 취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습니다. 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2. 회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드디어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1~6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삼하 12:1~5)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이를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단은 이 이야기를 직선적으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꾸며서 말합니다. 다윗 왕을 직접 책망하는 것은 두려웠나 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왕은 그 이야기에 분개하면서 ‘이웃의 양을 빼앗은 그 사람’을 책망합니다.
이 때 나단은 용기를 냅니다. ‘7~11절’입니다.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삼하 12:7~11)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전하라고 하신 모든 말씀을 다 전한 것입니다.
칼이 영원토록 다윗의 집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과 네 아내들이 백주에 다윗의 눈앞에서 능욕을 당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더 아픈 것은 밧세바가 임신한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삼하 12:14)
다윗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보통 이 정도 죄에 빠지면,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는 죽이고 자신의 죄를 덮어버리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다윗입니다.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삼하 12:16~17)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그 아이를 위해서 7일간을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진짜 회개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회개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 중심으로부터 회개하고 삶을 고치는 것입니다.
회개도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회개는 적당하고 거짓된 것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회개는 영혼을 바꾸고 삶을 온전히 바꾸는 참회개가 됩니다.
회개도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참 회개를 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아이가 죽다!
그러나 아이는 죽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기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죽이시는 것입니까? 벌을 하시려면 다윗에게 직접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것이 다윗에게는 가장 큰 형벌입니다. 다윗은 자식을 마음에 묻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이보다 더 큰 아픔이 있습니까?
그리고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은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약속 있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마음에 묻은 다윗을 마음 아파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밧세바가 둘째를 임신하는데, 그 이름이 바로 그 유명한 “솔로몬”입니다. 또한 그 이름의 의미도 큽니다. “솔로몬”은 “샬롬”의 변형된 단어입니다. 그 뜻도 사실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다윗의 아픔을 채워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다른 이름이 “여디디야”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란 의미입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더 표현해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약속 있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의 표현대로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행 27: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 27:25)
이 믿음으로 충만하신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믿음의 자녀는 항상 "있어야 할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윗처럼 죄의 먹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어리석어도 약속이 있는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이 있습니다. 구원하시고, 지키시고, 우리 삶을 완성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