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을 찾아볼까 하고 봄 마중을 나갔다. 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그늘진 계곡엔 살얼음이 겨울과 이별을 하느라,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겨울잠을 자고 있던 나무들이 바스락 소리에 놀라 부스스 눈을 뜬다. 성격 급한 산수유는 계곡을 흐르는 물길 따라, 노랑무늬로 징검다리 수를 놓아 봄을 맞고 있다. 진달래는 옛 여인의 자태를 갖춘 양, 연분홍 치마가 보일 듯 말 듯 바위틈에 숨어 봄님을 바라보며 수줍음을 탄다.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 잡은 묵밭 하나가,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잡초들만 무성하다. 망초, 쑥, 씀바귀, 지칭개, 구절초들이 뒤엉켜, 봄볕을 서로 품으려고 두 팔을 벌린다. 그중에 냉이를 캐어갈까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눈썰미가 있어야 진짜 냉이를 찾을 수 있다. 냉이와 닮은 나물들이 서로 가짜를 속이려고, 바람결에 몸을 흔들며 얼굴을 가린다. 꽃샘추위 몰래 올라온 냉이가 톱니바퀴 이파리를 하고 앉아, 가짜 얼굴을 밀치며 진품 향기를 날린다.
가지고 간 도구가 없어 나뭇가지를 다듬어 흙을 파헤쳤다. 하얀 뿌리가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며 쑥 올라왔다. 원시적인 도구라 많은 힘이 들고 뿌리가 끊기는 것도 있다.
냉이는 지혈작용을 한다고 했고, 봄 향기를 담은 나물 중에선 으뜸이다. 봄을 생각하면 냉이가 저절로 떠오른다. 겨우내 저장된 식품을 먹다가, 향이 진한 냉이는 다른 나물에 비해서 입맛을 돋워주는데 최고의 인기가 있다. 이른 봄에 나온 냉이는 이파리가 짧고 도톰하다. 뿌리는 통통하고 길어 먹음직스럽다. 향이 짙어 뿌리의 맛으로 먹기도 한다. 따뜻한 봄기운을 받으면서, 차츰 이파리가 얇고 넓적해진다. 뿌리는 짧아지고 잔뿌리가 많이 생겨, 굵던 다리가 점점 가늘어진다. 따가운 봄볕 아래 냉이는 진한 향을 점점 잃어간다. 식물들은 종족번식을 위해서, 더 이상 채취하지 못하게 방법을 취하는 모양이다. 향기로운 맛을 지니지 않으니, 모두들 채취를 멈춘다. 냉이는 많은 번식을 하기 위해, 여러 갈래의 장다리꽃을 피워낸다.
둘째 딸 임신 초기에 감기에 걸린 적이 있었다. 약을 먹을 수 없어 한 달가량 기침을 앓은 적이 있다. 오랜 기침 때문에 기운이 빠질 대로 빠져서 지쳐 있을 때였다.
식육식당에 들려 돼지고기 목살과 냉이에 고추장을 넣고, 주물럭거려 구워달라고 했다. 보온을 위해 은박지에 싸서 집으로 달려왔다. 급하게 펼쳐놓고 누구 먹어보란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한 근이나 되는 양을 모두 다 먹었다. 그러자 일주일도 채 안되어, 감기가 산 너머 멀리 달아난 적이 있었다. 그것이 신기하여 감기 걸린 임산부만 보면 그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감기가 걸릴 때마다 추억처럼 떠오른다. 뱃속에서 먹은 음식이 적응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둘째 딸은 신기하게도 그 음식을 즐겨 찾는다. 추운 겨울을 견뎌낸 냉이 뿌리는 인삼 뿌리와 맞먹는다고 했다.
“추위를 견뎌낸 냉이 뿌리의 효능일까?”
“고단백질 고기의 효능일까?”
“매운 고추장의 열기로 감기가 치료된 것일까?”
세 가지가 모두 어우러져, 감기의 특효약으로 효험을 발휘했는지도 모른다.
들판엔 냉이와 닮은 나물이 있어서 구분이 어려울 때가 있다. 냉이, 지칭개, 매운개가 비슷하다. 눈썰미가 없는 사람은 다른 나물을 캐서 쓴맛, 매운맛을 다 느끼고 나서야 냉이향을 맛 볼 수 있다.
잔설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냉이도 보였다. 허술한 농기구로 힘겹게 한 웅큼 캐고 묵밭을 둘러보았다. 냉이는 잡초 속에 태어나, 한 줌의 거름을 흡수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인다. 엄동설한 추위에 얼기도 하여, 이른 봄에 이파리 끝에 마른 잎이 붙어 있다. 종자를 남기기 위해 어린것은 두고 왔다. 힘들여 캔 적은 양이지만, 봄 향기를 밥상 위에 올려놓으리라. 냉이는 봄마다 된장국에 우려내서, 밥투정꾼들의 입맛을 돋워주는 봄의 전령사로 꼽히고 있다.
지난날 먹었던 음식이 생각났다. 양념고추장으로 버무린 돼지고기에, 냉이를 넣고 구워 저녁상을 차렸다. 오늘 저녁 밥상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온 동네에 군침이 도는 봄 향기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