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빠사나 수행이라는 것은 자기자신의 실재를
직접 경험하는 자기 관찰 방법이다."
- S. N. 고엥카
‘위빠사나(Vipassana)’는 팔리어로 ‘뛰어난’ 또는 ‘다양한’이라는 의미의 접두사 ‘위(Vi)’에다가, ‘보다(See)’라는 동사의 명사형인 ‘빠사나(Passana)’가 결합된 단어이다. 즉 ‘뛰어나게 봄’ 다시 말해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 통찰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 통찰’하려면 어떻게 봐야 할까. 내가 보고자 하는 방식에 대한 자기의(Self-righteousness), 집착, 의도를 완전히 내려 놓고, 있는 그대로(As is) 봐야 한다.
말이야 참 쉽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고 그리 쉽지도 않다.
아무리 위빠사나 수행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빼놓지 않고 읽어,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글자 하나 빼먹지 않고 달달 외우고 있을지라도, 책을 통한 이해는 실제 눈을 감고 호흡과 몸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실참 수행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리 국물과 맞닿더라도 국자는 맛을 알지 못하지만 혀는 국물 맛을 아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들은 모두 스스로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욕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발끈 화가 난다. “제가 날 어떻게 안다고 그런 말을 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라고 항변하면서.
여실히 자신을 들여다 보는 방법
여실히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24시간 동안,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찍은 CCTV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나는 참 운 좋게도 24시간 동안은 아니지만 TV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약 1시간 정도, 나를 찍은 영상을 들여다 본 일이 있었다.
동영상 속의 나를 보면서 나는 기겁을 했다. 일단 씨름 선수처럼 우람한 팔뚝에 깜짝 놀랐고, 순간순간 ‘콕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워 보이는 표정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나름 자세가 좋다고 여겼는데 찍어 놓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골프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이들 중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골프 치는 장면을 좀 찍어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세를 볼 수만 있다면 어떻게 고쳐야 할지 금방 답이 나오겠지만 우리 눈이라는 것은 어찌 된 것이 딱 우리 자신만은 잘 볼 수가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명상 수행이라는 것은 밖으로만 향해 있던 내 시선을 거두어 의식의 눈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게 해준다. 호흡을 비롯한 몸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마음의 작용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다 보면 ‘나’라고 믿고 있던 것의 실체를 여실히 꿰뚫어 보게 된다.
매번 호흡이라는 것이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고, 몸의 감각도 매 순간 다르다. 내 의식에서 일어나는 작용, 즉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도 항상하지 않다.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인 것이다. 스스로에게 조차 교묘하게 감추려 했던 순간 순간의 생각, 감정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부끄러워진다. 남들을 향해서만 날카롭게 서슬을 세웠던 관찰력으로 나를 살피고 나면, 나를 포함한 모든 중생들을 향해 연민의 마음만이 남게 된다. 그래서 바래주게 된다.“우리 모두가 행복하기를… 평화롭기를… 고통에서 해방되기를….”이라고.
위빠사나 명상은 자신을 관찰함으로써 해탈할 수 있는 수행법이다
사야지 우바킨, 고엔카 식의 위빠사나 수행법
아무리 붓다 제자들이 여러 차례 결집하여, 세존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애썼을지라도 2600년 동안, 아무런 변형, 삭감 없이 원형 그대로 현재까지 불법이 보전되었다고 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비상한 기억력을 갖춘 아난존자가 “나는 이렇게 들었다.”며 세존의 말씀을 녹음기처럼 읊었고, 아라한과를 취득한 여러 제자들이 이를 인증해 전달된 초기 경전들은 붓다의 육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고통을 소멸시키고 진리의 길과 열반을 직접 경험하기 위한 수행법은 네 가지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 비구는 몸에서 몸을, 느낌에서 느낌을, 마음에서 마음을,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서 머문다.”
붓다의 이 위빠사나 수행법에 대해 나라마다, 스승마다, 전통마다 해석이 분분하며 관찰의 대상이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직접 수행을 해본 후, 나의 느낌을 말하자면 작은 해석의 차이가 큰 차이를 낳는다.
우판디타 전통의 위빠사나 수행법에서는 지금 현재의 모든 경험, 즉 소리, 호흡, 몸의 감각, 감정, 생각 등 현재 내 의식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관찰 대상으로 하는데 반해 레디 사야도 - 우바킨 - 고엔카로 이어지는 위빠사나 수행법에서는 ‘몸의 감각’을 관찰한다. 물론 고엔카는 자신의 전통이 정통 위빠사나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가르치는 수행 전통에 대한 고엔카의 말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를 깨달음에 이르게 했고 그가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쳤던 수행법이 바로 위빠사나이다. 이 수행법이 인도에서는 서서히 잊혀지고 사라졌지만 미얀마에서는 불교가 전래됐던 초기의 가르침이 그대로 보존되었다. 그 후 세월 위빠사나 명상은 자신을 관찰함으로써 해탈할 수 있는 수행법이다의 흐름과 함께 미얀마에서 조차도 위빠사나가 진화하고 변화했지만 레디 사야도 - 사야 텟 지 - 우바킨 - 고엔카로 이어지며 전수된 수행법은 붓다 시대에 행해졌던 수행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몸의 감각 살피기
고엔카 식 위빠사나 수행은 ‘몸의 감각’을 관찰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첫날부터 ‘몸의 감각’을 관찰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평생 정신줄 놓고 살았던 이들은 몸의 감각을 느끼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고엔카 명상센터에서는 첫 나흘 동안에는 오로지‘호흡 알아차리기(아나빠나 사띠) 수행’만을 시킨다. 호흡 알아차리는 방법도 각 수행 전통마다 참 다르다. 미국의 많은 명상센터에서는 아랫배, 가슴팍, 코끝 이렇게 세 장소 가운데한 곳에 의식을 두고 호흡을 알아차리라고 하는데, 고엔카에서는 오직 들숨과 날숨이 드나드는, 코와 윗입술 사이의 감각만을 관찰하라고 주문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방팔방으로 향해 있는 우리들의 산만한 주의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훈련을 하기 위함이다. 명상센터에 들어간 첫날에는 알아차림 자체가 잘 되지 않는다.
늘 너무 재미있는, 내 안이 아닌, 밖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 딱 감고 집중하여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 보려 하는데 그것(사띠)이 잘 안 된다. 잡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방석 위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은 콩밭을 헤매이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마음이 산만하여 별다른 감각을 느끼지 못했을지라도 나흘째 밥 먹고 하루 종일 그 제한된 몸의 부위에만 집중하다 보면, 숨을 들이쉴 때 공기가 콧구멍을 지나면서 만들어내는 미묘한 통증마저도 알아차릴 정도로 알아차림이 확립된다. 그만큼 몸의 감각을 감지하는 기능이 예리해진 것이다.
‘알아차리려는 대상(즉 몸과 마음)으로부터 알아차림(사띠)이 떠나지 않고, 몸과 마음에 무언가가 일어남과 동시에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해진 이 시점부터는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본격적인 위빠사나(慧)수행을 할 수 있는 예비자격(定)을 비로소 갖추게 되는 것이다.
바꾸려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평정심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닷새째부터 9일째까지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을 계속하게 된다. 첫날은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세세히 한 부위씩, 빠짐 없이 몸의 감각을 살피고, 그 다음날부터는 스캔하듯이 한 번에 훑어내린다. 그 후에는 내장과 뼈를 스캔하면서 몸의 감각을 살피고, 의식으로 척추뼈를 통과하며 감지되는 몸의 감각을 살핀다.
이렇게 몸의 감각을 관찰하다 보면 처음엔 아무 감각 없던 몸에 참 여러 가지 감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렵기도 하고, 쑤시고 결리기도 하며 열이 나기도 하고 서늘해지기도 한다. 몸을 위로부터 아래로 스캔해가다가 통증이 너무 커서 스캔이 되지 않으면 그 통증을 면밀히 관찰한다.
왜 몸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가 고엔카 명상센터에서는 하루 종일 명상 수행을 한 후, 저녁
시간에 고엔카 선생의 법문을 듣는다. 그 가운데 “열반에 이르기 위해 왜 이처럼 몸의 감각에 깨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옮겨본다. 이는 사실, 고엔카의 깨달음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 작용에 대해 과학자처럼 예리한 관찰력을 가지고 끝까지 파고들었던 붓다의 결론이다.
수많은 인류에게 해탈로 향하는 수행을 선물한 고엔카 선생
“내가 일으킨 집착이 강한 정신적 반응(行, sanskara)을 일으키며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집착은 좋아함과 싫어함의 순간적인 반응 때문에 일어난다. 좋아함은 욕망, 싫어함은 혐오로 발전되지만, 근본적으로 이 둘 모두가 집착이다. 좋아함과 싫어함의 순간적 반응들은 신체적 감각 때문에 일어나고 신체적 감각은 6가지 감각기관이 감각의 대상과 접촉하면서 일어난다.
6가지 감각기관은 마음과 물질의 흐름, 즉 생의 흐름 때문에 존재한다. 생의 흐름은 의식의 흐름 때문에 생긴다. 의식의 흐름은 정신적 반응인 상카라 때문에 일어난다. 모든 상카라는 의식의 흐름에 추진력을 더해준다. 상카라에 의해 의식에 주어진 힘 때문에 이 순환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적 반응(行, sanskara)은 왜 발생할까? 이는 무명(無明,avijja)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상카라를 일으킨다. 그래서 무명이 있는 한 괴로움은 계속되는 것이다. 고통이 일어나는 과정의 근원적 이유는 무명이다. 우리들은 어리석어 스스로 불행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무명이 소멸될 수 있다면, 고통도 소멸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여기, 감각의 연결점에서 그 연결고리를 부숴버릴 수 있다. 예전엔 아무런 알아차림 없이 좋아함과 싫어함의 반응이 그저 일어나게 방치해 둠으로써 감각이 강한 욕망이나 혐오로 발전되게 했었지만 이제는 감각에 반응하는 대신, 그 감각의 무상함을 이해하는 지혜와 평정심으로 단지 관찰만 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고통의 수레바퀴를 멈추고, 해탈을 향해 수레바퀴를 굴릴 수 있게 된다.
수행하고 있으면 새로운 상카라를 일으키지 않으므로 과거 상카라 중의 하나가 마음의 표면 위로 올라옴과 함께 몸에서 감각이 일어난다. 이때 일어난 몸의 감각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평정함에 머문다면, 몸의 감각은 결국 사라진다. 또 다른 과거의 상카라가 계속해서 신체적 감각을 통해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할 지라도 반응하지 않고 계속 평정함에 머물면, 결국에는 소멸되며 이와 함께 우리들의 괴로움도 소멸된다.
무지 때문에 신체적 감각에 반응한다면, 상카라가 증식되며 불행도 증식하게 된다.
수행은 새로운 상카라 만들기를 멈추고, 오래된 상카라들을 풀어내고 해체한다. 점차적으로 위빠사나 수행자는 모든 상카라들이 소멸되어진 단계, 즉 완벽한 해탈과 완전한 깨달음의 단계를 향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내 삶의 고통은 모두 내가 만든 것
다른 전통의 명상 수행과 고엔카 식 위빠사나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 점이라 생각된다. 어리석음으로 인한 집착과 고통이 몸의 감각으로 몸 속에 기억돼 있다가 우리가 관찰하기 시작하면 다시 몸의 감각으로 떠오른다는 것. 그리고 이를 지속적으로 관찰함과 함께 ‘무상, 고, 무아’의 지혜(위빠사나의 지혜)를 일으키면서 완벽한 평정 가운데 머물 때, 그 고통의 근원들(어리석음으로 인해 몸 속에 잠재해 있던 고통의 원인, 즉 상카라)은 하나둘씩 사라진다는 것. 그렇게 모두 정화되고 나면 해탈 열반에 이른다는 것…
방석 위에 앉아 있던 나는 엉덩이, 어깨 부위에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을 감지했다.
사띠의 힘이 커진 만큼 통증의 크기도 엄청났다. 그 몸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통증은 이리 저리 움직이기도 하고 늘어났다가 줄어들기도 하다가 결국엔 사라진다. 고통이란 본래 실체가 없는, 무상함(아니짜) 그 자체이니까. 이 관찰 대상에 대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이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상태는 수행자로 하여금 이 세상 그 무엇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평정심을 결과한다.
결국 내 삶의 고통은 모두 내가 허락하고, 내가 만든 것이었다. 매 순간 깨어 있지 않아 어리석음으로 집착한 결과였다.
나는 수행시간에 내게 너무나 미안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렇게 감정 찌꺼기를 흘려보내고 나니 비온 뒤 하늘처럼 마음이 청명해졌다. 고요한 수행 시간에 여기저기서 콧물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그들도 같은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내 삶의 고통은 모두 다 내가 만든 결과라는…
강한 결심으로 앉기
고엔카 명상센터에서는 5일째부터 ‘아딧타나’를 권장한다. 아딧타나는 강한 결심으로 수행한다는 뜻으로 한 시간 동안의 좌선 시간 동안, 그림처럼 움직임 없이 앉아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강한 결심으로 앉아 있으려니까 몸의 이곳저곳이 간지럽다. 땀은 또 물처럼 똑똑 떨어진다.
그것 한 방울만 닦으면 열반일 것 같다. 하지만 움직이면 안된다. 그래서 그 감각 자체에 대해 마음챙김을 한다. 이렇게 강행군으로 수행을 시키는데는 이유가 있다. 간지러움, 땀의 흐름 등의 감각에 바로 반응하는 것은 또다른 상카라를 만드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관찰하다 보면 그 감각 역시 실체가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사띠의 힘이 극대화 되면 아주 미세한 몸의 감각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게 되고, 미세한 과거의 상카라까지 모두 정화되기 때문이다.
고엔카의 위빠사나 명상은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다음 단계의 수행인 보시와 봉사
고엔카는 현재 미국 명상계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죠셉 골드스타인, 샤론 살츠버그, 람 다스, 다니엘 골맨 등 서구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켰으며 미국에 영향을 끼친 '통찰 지혜(Insight)' 명상 스승 1세대 가운데 중심이 된 스승이다.
고엔카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살아 있을 때, 약 1,300명의 보좌 지도자를 양성했는데, 그들은 고엔카의 육성 녹음을 사용하여 코스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고엔카 명상센터를 통해 10일 코스에 참가하는 이들은 연간 약 12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세계의 고엔카 명상센터는 완전 100퍼센트 무료로 진행된다. 물론 코스를 마치고 난 후에는 보시를 할 수 있다. 지도 교사와 운영자들은 어떤 급여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식사 준비와 청소 역시 자원봉사자들이 아무 댓가도 없이 하는 것이다. 그들은 봉사를 통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 세계의 고엔카 명상센터는 상업주의에 빠지지 않고, 순수한 목적으로 전파될 수 있었다. 전세계 160여개 명상센터가 모두 이처럼 구 수련생들의 보시와 봉사로 유지되고 있다.
성장 및 확장의 문제와 관련한 질문에 대한 고엔카의 답은 성장 지상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감동을 준다.
“조직이 확장만을 위해 노력하면 낡고 썩기 시작합니다. 성장하고 확장하려는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더 주기 위해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순수한 담마의 의도가 살아 있으며 쇠퇴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담마의 의도를 갖고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입을 수 있기를!" 하고 바라면, 여기에는 집착이 없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의 조직이 단지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집착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담마를 오염시키게 됩니다.”
감옥에서의 위빠사나
고엔카는 감옥에서도 위빠사나 명상을 가르쳤다. 1993년 인도의 뉴델리 티 하르감옥에서 1,000명의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첫 코스를 진행한 이후, 다른 나라 감옥에도 소개돼 경찰과 군인을 비롯, 1만명 이상이 10일 코스에 참가했다.
2007년에 발표된, '담마 브라더스(The Dhamma Brothers 담마 브라더스)'는 앨라바마주, 베세머에 위치한 도날슨 재활 감옥에서 열린 위빠사나 명상 코스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거칠고 위험해보이던 중범자들의 얼굴이 명상 수행 이후 수행승처럼 고요하게 변하는 모습은 커다란 감동을 준다.
수행의 기쁨…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 30분부터 하루 총 10시간 30분간 계속됐던 고엔카 명상센터에서의 수행. 수행하는 것만큼 값지고 행복한 경험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수행은 인간의 몸을 받은 존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위이다.
교도소에서의 위빠사나.
흉악범들이 수행자의 모습으로 바뀌는 기적을 볼 수 있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