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 ; 연천역-3번국도-동막골-풍혈-통재-성산-병풍바위-연천역-군자산-천주교 성당-연천역 (9시간소요)
(부부산행)
양파속같이 벗기면 벗길수록 볼것이 많은것이 연천이고
구절양장 가파른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니 성산이고 군자산 이었다.
성산( 520m)
母山은 지장봉(877m)이다.
정상의 삼면이 성령산성으로 싸여있어 성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산이다.
산성은 20m가 넘는 수직절벽의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병자호란때 연천현감 이창조가 주민과함께
청나라 군사를 무찔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산이다.
연천역에서 3번 국도를 따라 가다 동막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아미천과함께 아스팔트를 3km 정도 따라가면 風穴 안내판이 나온다,
아미천을 가로막은 보(사방댐)
산의 제일 높은곳이 성산정상이다.
정상은 참나무 군락이고 북쪽과 남쪽은 절벽이며 북쪽으로는 지장봉,북대,고대산이 보이며
남쪽의 절벽 바위에서 본 서쪽 아래로 동막계곡너머 군자산과 멀리 군사분계선도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확인할 수가 없다.
風穴
동막골 남쪽에 있는 천연 바위굴
안내판에는 굴의 깊이가 16m이고 굴의 높이는 2,2m
여름에도 얼음이 녹지 않을 정도로 찬공기가 흘러 나오고
겨울에는 얼음이 얼지않고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고 했는데
직접 확인해 보니 굴의 깊이는 잘 모르겠고 높이는 아주 낮으며
안내도가 미비해 찾는데도 어려웠으며 관리도 억망이며 풍혈이란 말이 먹히지 않는곳이었다.
거북이 바위,
멀리서 볼때는 비슷하였다.
바로 아래엔 탱크 훈련장이다,
중간쯤엔 동막골 유황온천이 있다.
멀리 종자산(642.8m)도 보이고
그 아래에 있는 재인폭포와 106미리 포사격장도 있으며
포소리는 계속 천지를 진동하고있었다.
성령산성은 (해발 510m)보개산 남쪽자락에 위치하여
세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으며 그중 서쪽 봉우리는
城嶺또는 성재라고 부르며 성벽의 길이는 740m이다,
성안의 분지에는 우물터도 있다고 해 찾아 보았지만 물이 있었을 리가 없고
단, 넓은 분지가 산의 봉우리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옛날 군인들이 만들어 놓은 교통호가 작은 성벽 같은 느낌이다.
성산의 북쪽으로는 보개산과 고대산의 험준한 봉우리들이 솟아있고
남쪽으로는 통현리와 은대리의 광활한 가사평 벌판이 한눈에 들어와
군사적 요충지가 될수밖에 없었음을 알수있다.
정상에서 병풍바위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거대한 남근상이 있다.
동막골 유원지가 있는 3번 군도에서 바라본 성산 정상.
연천군의 서쪽에 있는 군자산 오름길의 체육공원인 군자정,
군자산 해맞이장소에서 본 연천 시가지와 멀리있는 지장봉 능선,
군자산은 군시설때문에 정상을 갈수가 없어 철망주위만 맴돌다 다시 내려왔다.
오는 길 군청앞의 은행나무 단풍이 너무 좋아 살짝 담아왔다,
연천역,
연천역은 6,25전까지 북위 38˚선 이북에 위치하여 북한철도 관할 이었는데
북괴는 남침을 준비하면서 후방에 있던 전쟁물자 특히 전차를 전방부근까지
수송하기 위하여 1948년 4월 화물홈(역사 건너편 위치 240m)을 시설하여
사용 하였음은 북괴의 6,25남침을 증명하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역내는 분수와 국화가 만발하고 바람개비 수십개가 동시에 돌아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국철은 매시 20분에 동두천으로 출발 하기에 남은 시간을 이용해
연천 천주교 성당 국화전시장을 둘러 보았다.
저렇게 많은 국화를 누가 키웠으며 저렇게 손을 보았는지 ,,,,,,,
감탄스럽고 황홀했다.
사진으로 다 소개하지못해 미안,
역광이라 사진이 좋지 못하다.
오르지 못한 군자산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바위끝에 자라던 고사목에다
누군가 이름표를 달아 주었다,운무비천(雲霧飛天)이라고...
경기 연천의 군자산(327,8m)과 성산(520m) 부부산행,
전차와 대포소리가 듣고 싶으면 연천으로 가라, 하루 종일 듣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집에서 5시 21분 지하철로 동두천까지 가서 다시 국철로 바꿔 탄다. (운임 1,000원 경노, 500원)
8시 30분 연천역에 도착 그곳 식당에서 뼈다귀 해장국으로 (6,000원)아침식사를 하고 성산 가는 길을 물으니 역전 사거리 패밀리마트 앞에 매시 20분이면 동막골 유황온천 셔틀버스(봉고차에 쓰여 있음)가 오니 그곳까지 가서 걸어 올라가면 택시비는 벌수 있다고 귀뜸 해 준다.
9시 20분 허름한 봉고차가 온다, 동막골 유황온천이라고 크게 쓰여 있어 대번에 알 수 있다. 늙스름 한 기사분이 정겹게 맞아준다. 사실 우리는 온천이 목적이 아닌데........
사람은 고작 우리 부부를 포함 네 사람뿐이다, 아무리 온천이 좋다 해도 이른 오전부터 온천을 찾을 한가한 시골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아주 규모가 대단한 온천이 수지가 맞을는지 의문이다.
건물의 유지비와 종업원 급료가 걱정될 것 같다.
산에 먼저 갔다가 오겠다면서 인사 하고는 다시 나와 3번 국도에서 포장길을 따라 동막골 유원지로 한참을 가다보니 풍혈 안내판이 있다.
온천에서 20여분 걸린다. 기대와는 상반되게 아무 느낌 없는 실망만 안은 채 200여m다시 돌아 나와 제2 등산로로 오르는데 벌써 나뭇잎이 절반이상 떨어져 수북수북하고 급경사 돌길을 20여분 오르니 능선이었다. 오른쪽으로 호랑이 바위를 보러 갔다,
그 바위봉은 벙커로 되어 있는데 호랑이가 아닌 고양이바위도 아닌 그저 두리뭉실한 바위봉에 불가했다.
다시 돌아와 359봉에 오르니 삼각점이 있다(철원 459 2007 복구)
거북바위를 지나(자세히 보니 거북 같기는 하다)전망대에 오르니 연천읍과 군자산이 보이고 기갑부대 탱크훈련 상황이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저렇게 많은 탱크는 나도 처음으로 본다.
동시에 20여대가 움직이는 탱크를 보며 뒤에서는 우루루쾅쾅 대포소리가 지축을 흔드니 과연 이곳이 전방이구나 싶은 분위기가 온몸의 전율을 느끼게도 한다.
전망대를 지나 암릉길을 조금 가니 성산의 암벽(자연성)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오르는데 안전시설이 되어 있지만 미끄럽기는 매 한가지다.
올라가니 이곳이 바로 성재이며 오른쪽으로는 민간인 출입통제간판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건너 산엔 안부로 올라가는 길이 갈지(之)자로 어렵게 나 있다.
오른쪽인 남쪽엔 신라 때 창건 되었다는 오봉사지(五峰寺址)가 있고 그 안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1호인 오봉사지 부도가 있다.
510봉 분지에는 옛날 우물터였다는 웅덩이도 있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물이 나올 리가 없는 지역인데 장마 후에는 가능할는지 모르겠지만........
나무들이 잘 자라 시원했으며 작은 성 안 같은 분위기며 성산 정상을 올라가니 젊은 산객 네 명이 큰 코펠에 라면을 가득 끓이고 있으며 점심 준비를 하는데 그 냄새가 먹음직했다.
우리도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정상은 그늘이라 바람에 춥기도 해 아래 양지로 가서 먹었다. 하산 길은 너무 경사가 심하고 낙엽이 길을 덮고 있어 미끄럼에 주의를 많이 해야 할 구간이었다.
한참을 내려오니 아스팔트 도로인 3번 郡道이다.
등산 안내도가 있는 3번 등산로이다. 마침 택시가 오기에 타고(5.000원)나왔다.
빈 차로 돌아가는 길이니 이정도만 받겠단다.
우리 부부는 바로 군자산을 향했다.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접근이 불가능하고 아래 해맞이 등산로만 한 바퀴 도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
(경북 문경시 농암면 군자산(948m)은 한번 볼만한 산이다)
다시 돌아 군자정에서 남은 간식털이를 하고 군청과 경찰서를 지나 역으로 돌아오니 조금 전에 떠나버렸다. 다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역무원에게 가 볼만한 곳을 알려달라고 하니 국화 전시장을 추천한다.
천주교 성당인데 연세 드신 수녀님이 관리를 하고 계시는데 너무 아름답게 가꾸셔서 땀과 정성, 보람을 느꼈었다.
연천군은 8,15 광복 후 1951년 유엔군에 의해 수복될 때까지 북한에 속해 있었던 곳이며
1979년 연천읍으로 승격 하였다.
연천역으로 돌아와 5시 20분차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차탄 4 리에 있다는 마애불을 못 본 것이 좀 서운 하지만 또 기회 있길 바라며 산행기를 남긴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