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의 눈물
김주민
비 그친 뒤 하늘이 더욱 맑다. 맑고 고요함 덕으로 참새 소리가 선명하다. 참새들은 재잘재잘 소리 내며 우르르 몰려왔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먹이를 찾으려는지 놀려고 하는지 속내를 알 수 없다. 재잘거리는 소리는 높은 경음이다. 짧은 음계인 짹짹 소리는 웃음인 것 같기도 하고 울음인 것 같기도 하다. 내 마음에 따라 기쁠 땐 웃는 소리로 우울할 땐 우는소리로 들린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친구와 인디언 놀이를 한 적이 있다. 인디언처럼 얇은 옷만 입고 뛰어다니다 어떤 목표물을 향해 막대기나 돌을 던지는 게임이다. 집 앞에는 거친 갑옷을 두른 감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감나무 가지 위에는 참새들이 자주 놀러와 가지를 흔들며 노는 놀이터다. 돌을 던져 감이나 참새를 맞춰 떨어뜨리자고 결의한다. 참새 무리가 감나무 위에 앉았다 날아가기를 반복한다. 우리는 감나무 아래서 적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숨을 죽인다. 새들이 다시 날아들 때 돌을 마구 던진다. 푸드덕. 참새들이 놀라 일제히 흩어진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검은 물체 하나가 수직으로 낙하한다. 참새, 감, 돌 이 중 하나가 분명하다. 돌은 아니겠지. 돌이라면 포물선을 그리다 가지 사이를 지나 뒷동산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남는 건 참새와 감 둘 중 하나. 분명하지 않은 게 또 하나 있다. 누구의 돌에 맞아떨어진 것이냐다. 그래도 중요한 건 묵직한 물체가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참새나 감이 분명하다. 참새라면 어쩌지. 겁이 덜컥 났다. 그런데도 내심 참새가 누워있기를 기대한다. 가시넝쿨을 살며시 헤집는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또르르 미끄러진다. 옆에서 떡하니 버티며 빨간 앵두를 거느리고 있는 나뭇가지를 젖히자 참새 한 마리가 배를 드러내고 누워있다. 잡았다. 손뼉을 치며 기뻐하기가 무섭게 자기 돌이 맞힌 거라고 우긴다. 동시에 돌을 던졌으니 누구 돌에 사살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우기는 사람이 승자다. 살생했다는 죄책감은 없다. 오히려 무언가 잡았다는 성공의 쾌감이 훨씬 컸다. 성공의 쾌감 다음이 문제다. 돌아가신 참새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골칫거리다. 구워야 하는지 삶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다 친구 누나에게 가져가기로 한다. 친절하고 마음씨 예쁜 누나다. 피 흘리는 참새 머리를 엄지와 검지로 살포시 집어 들고 뛰어갔다. 참새고기는 어떤 맛일까. 누나! 우리가 참새를 잡았어.
손가락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참새를 보자 호랑이를 만난 토기처럼 누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왠지 불안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가엾은 새를 잡으면 어떻게 해!. 칭찬받으리라 예상하고 뛰어왔던 발걸음이 멈칫. 고개가 앞으로 나가다 한 박자 뒤로 젖혀진다. 무얼 잘못했나. 어리둥절하다. 맛난 참새를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허황된 꿈이었다. 너희들 누나 말 좀 들어봐. 작은 생명 하나도 아주 소중한 거라고. 모든 생명은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어. 그러기에 그 누구도 미물을 함부로 희생시켜선 안 되는 거야. 돌을 던져 참새를 맞춰 떨어뜨렸으니 잘못했지. 호미를 가져와라! 뒷동산에 묻어주게. 누나는 혼자 땅을 파고 우리는 물끄러미 한 발 뒤로 물러선다. 다 묻고 나서 묵념하란다. 어떻게 하지. 고개만 숙이면 되는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고개 숙여 잘못을 뉘우치고 잘 가라고 인사하면 된단다. 묵념하면서 곰곰이 생각하니 생을 다하지 못한 참새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자기 나름대로 자유롭게 날고 싶었을 뿐인데. 장난 어린 돌팔매로 생명을 빼앗았으니 한을 품을지 모를 일이다. 어린 시절 참새에 대한 기억은 생명의 소중함을 넘어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말라는 일침으로 다가왔다. 이제 참새도 나의 친구다.
그렇게 참새는 오랫동안 삶의 동반자였다. 삶의 동반자로서 참새는 아파트 지킴이다. 참새는 아파트 인근 숲에 숨어 출퇴근 시간에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다. 그날도 참새 소리를 들으며 제천으로 출장 가는 중이었다. 근래 들어 모처럼 맑은 날이었다. 맑은 날씨 때문인지 유독 참새 소리가 크게 들렸다. 하얀 뭉게구름은 시소를 타듯 흘러가고 바람은 한결 따사로 왔다. 완연한 봄이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니 오창을 지나 증평 IC를 거쳐 중부고속도로로 달리라는 안내를 한다. 요금은 5,200원입니다라는 기계음이 탁하게 들린다. 오창 구름다리를 지나 우회전하여 100m쯤 달리고 있었다. 참새 한 마리가 갑자기 허공에서 내려와 찻길에 살포시 앉는다.
어 어 안 되는데. 차선은 2차선. 옆 차와 뒤차가 바짝 붙어 있어 정차하거나 피할 수도 없는데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바퀴에 치이지 않을까. 다시 날아오르면 차 밑에 부딪힐 텐데. 운명에 맡겨야 하나. 참새야 하늘로 빨리 날아가든지 그냥 그 자리에 잠시만 앉아있어. 차가 너를 넘어갈 찰나의 시간만 참아라. 그러면 안전할 수 있을 테니. 넌 작으니까 괜찮을 거야. 백지장 정도로 가까워질 때조차 참새는 여전히 모이를 쪼고 있다. 콕 콕 콕. 간절히 기도한다. 제발 움직이지 마라!. 차가 지나가는 순간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리는듯하다. 드득. 아!. 차 안 룸미러로 참새가 날아가는지 뒤를 본다. 날아갔을 거야. 스스로 위안해 보지만 결국 살생하는구나. 친구가 되자고 맹세했던 참새를 내치다니.
불현듯 중학교 시절 친구 생각이 난다. 나랑 좋은 친구가 되자고 다가온 친구였다. 그 시절 나는 누군가 다가오면 내심과 달리 보이지 않는 유리벽으로 거리를 두곤 했다. 친구도 나를 원망하면서 어느 순간 참새처럼 멀리 떠나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아련하게 보고 싶다. 마음껏 놀고 싶은 참새에게는 자유를 빼앗았고 친해지기 위해 다가온 친구에게는 사랑을 빼앗았구나. 참새야 친구야 앞만 보고 달려온 무지한 나를 용서해다오. 어둠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이른 저녁. 참새는 여전히 짹짹거린다. 참새 소리가 자유를 만끽하며 웃는지 사랑을 갈구하려 우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제 나 자신 스스로가 참새가 되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