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영화 성춘향전으로 데뷔한 후, 겨울여자·속 별들의 고향·적도의 꽃·깊고 푸른 밤·황진이·사의 찬미 등 한국 영화사와 길을 함께 해온 배우 장미희가 97년 '아버지' 이후 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여배우, 대학교수, 그리고 40대 중반의 여자 장미희. 봄빛 찬란한 대학교정에서 그를 만났다.
보리울에서 보낸 여름
2002년 여름, 장미희는 전북 김제 금산사 일대에서 회색의 수녀복을 입고, 시장에서 고물 잔뜩 묻은 떡을 집어먹고, 성당 지키는 개와 친해지며 그렇게 넉 달을 보냈다. 영화 '보리울의 여름'에서 완고한 성격의 원장수녀로 거듭나기 위한 행보였다.
연기 경력 27년. 사람으로 쳐도 장성한 어른이다. 그 27년간, 데뷔 이후 줄곧, 꼭 해보리라 벼르고 별렀던 역할이 성직자였단다. 늘 정갈한 멋을 내고 서늘하게 들리는 고음의 목소리는 어쩌면 회색의 수녀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20대의 성직자가 아닌, 이 나이에 하게 된 성직자는 어떤 의미인가라는 자문을 하게 되었어요. 감독님이 내게 주문하는 배역이 무엇인지도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이 나이 정도의 배우가 해야 하는 연기의 깊이도 생각해야 했고, 종교인의 아우라 같은 이미지를 어떻게 연기해낼 것인가 고민했죠.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연기를 하려 들지 말고 그냥 극중 원장 수녀님처럼 청소만 열심히 하고 다니자'였어요. 그래서 정말 청소만 열심히 하다가 왔어요 4개월 동안. 그래서 단 한두 컷이라도 수녀님과 같은 그런 인간적 욕망이 잘 절제되어 있는 모습으로 비쳐지면 좋겠다, 라는 것이 바람이었죠. 그런데 만용을 부렸나봐요. 만족 못하겠어요. 이번 작품이 오히려 제게 앞으로의 과제로 남을 것 같아요.”
영화를 준비하면서 성당에서 수녀님들의 생활을 직접 경험해 보고 교육용 프로그램을 받았다. 체코 프라하의 성당도 다녀왔는데, 아이들이 뛰노는 무덤가, 해골로 이루어진 샹들리에는 충격이었다.
“영혼이 다 빠져나가 그저 사물화되어 있는 해골들을 보면서 인간 삶의 시간과 영혼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됐어요. 사후의 영혼에 대한 것보다도 지금 내 영혼에 대한 게 궁금해요. 그래서 분석심리학의 책들을 읽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많이 꾸는 꿈 중에 하나인데, 제가 하늘을 막 날아오르는데 밑에서 사람들이 제 발을 잡아당기고 저를 잡으려고 하는 꿈을 꿔요. 정말 자주 꾸는 꿈이었는데 융의 심리학 책에서 보니까 자신을 높이고 싶은 욕구를 표출하는 꿈이래요. 내가 정말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었구나, 라면서 스스로 반성을 했어요. 그런 상징을 알고 나니까 그 꿈을 안 꾸던데요.”
나이 먹는다는 것
대학강단에 서면서 스크린에 뜸했었던 장미희. 혼자 산다는 것, 또 약간은 도도한 모습에서 장미희는 여느 40대 여자와 같은 일상을 갖고 있을 것 같지 않다, 라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지금 식구는 강아지 세 마리, 새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예요. 얼마 전에 가족이 된 앵무새는 밥을 안 주면 새장에 매달려서 농성을 해요. 제 얼굴을 알아보는지 모르는 사람이 오면 숨어버려요.” 마땅한 며느릿감이 없어서 아직 강아지를 장가보내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제 아이 예뻐하는 엄마의 모습 같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만은 40대의 중년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그 비결은 무엇일까.
“피부관리 한 번 제대로 안 받아요. 배우로서는 창피한 얘기죠. 다만, 아침에 일어나면 나무에 음악 들려주고 10시 반까지는 제 시간을 가져요. 누가 와서 초인종 눌러도 안 열어주죠. 그렇게 휴식시간을 가져야 하루를 피곤하지 않게 보낼 수 있어요. 군것질 안 하고, 육식도 안 하고, 생선 많이 먹어요. 운동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가요. 제가 원래 운동하는 걸 좋아해요. 이번 촬영 때도 젊은 친구랑 배드민턴으로 자장면 내기했는데, 제가 이겼어요.”
내기에 이겼다고 마냥 좋아하는 그의 모습이 의외라고 말하자 늙어서 그런가 보다며 미소를 보인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살맛 나는 일이에요. 늙는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라고 감탄할 때가 있어요. 젊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었던 문학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라던가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을 때, 참 좋다라고 생각해요. 피부와 같은 외양의 노화야 자연스러운 것이죠. 뭐 요즘에는 기능성 화장품이 많아서 좀 예쁘게 나이들 수도 있고 말이에요.”
내 인생의 봄
“얼마 전, 샘터에서 '인생의 봄날'에 대한 글을 청탁 받았어요. 그래서 가만 생각해보니 '보리울의 여름'을 찍으면서 아이들과 생활하고 평화로이 지냈던 그 몇 개월이 내 인생에 봄날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내 봄날은 그랬었지'라고 회상하기엔 너무 이른 그.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생각을 안 물어볼 수 없어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사랑의 기회는 어디에서나, 언제든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항상 열려 있어요. 다만 첫눈에 반하는 그런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이라든가 하는 그런 걸 떠나서, 만나면서 '이 사람이구나'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으면 결혼해서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아직 그런 남자 분을 못 만났죠. 좋은 사람 있으면 언제든지 할 거예요. 그렇다고 지금 고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화목한 가족을 보면 가끔 쓸쓸하기도 하지만, 혼자라서 쓸쓸할 때보다는 혼자라서 편할 때가 더 많아요. 내 일에 비중을 더 둘 수 있으니까 자아성취에도 좋잖아요. 상대가 있어도 고독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니까요. 항상 열려 있는 '가능성'에 더 만족해요. 언제든지 사랑할 수 있다, 라는 게 매력 있잖아요.”
혼자 사는 데에 익숙해져서 더 편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에 “저 망치도 박을 줄 알고, 운전도 할 줄 아니까 결혼할 필요 없어요”라며 웃는다.
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 교수,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서울영상위원회 부위원장, 국제영상자료원연맹 서울총회 홍보대사 등의 열거하기도 숨찬 직함들. 일상의 70%가 공식적인 업무. 숨차지는 않을까.
“일탈이라는 것 제겐 필요 없어요. 뭐 지금 시대 자체가 언제든지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제 일들 중 제가 싫어하는 게 없잖아요.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연기를 가르치는 것이니까 너무 재미있고, 연기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논문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것 하나까지도 나에게 너무 유익하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들이니까요. 내가 너무너무 하고 싶어서,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이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죠.”
배우, 장미희
영화 '보리울의 여름'은 촬영 작업이 끝났음에도 개봉이 꽤 늦어졌다.
“완성도 있는 마무리를 위해 음악작업, 편집작업 등 후반기 작업이 길어졌어요. 영화 내용이 가족의 달에 잘 어울리기 때문에 오히려 시기 적절한 것 같아요. 이라크전쟁도 있었는데 이 영화가 화합·평화·통합 등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겠죠.”
1958년 생, 세월만큼 참 많은 작품을 했다.
“얼마 전 제 작품 정리를 하면서, 작품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요. 한 배우로서 대표작 열 개쯤은 쉬이 꼽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대표작품을 딱 두 개만 더 만들고 싶어요. 젊었을 때 '무대에서 죽는다'라는 말 공감하지 못했었는데 요즘 들어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아요. 배우가 인생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연기와 사투를 벌이지 않으면 무엇으로 인생을 채우겠어요? 전 아직 배우로서 많이 부족해요. 제 고정된 이미지 때문일 수도 있겠죠. 앞으로 심리극이나 내면의 선과 악이 교차하는 그런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어요.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를 보면 참 부러워요. 할리우드 같은 경우는 나이 많은 여배우들도 자신의 혼을 다해서 연기할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또 관객들이 그걸 찾아서 보잖아요. 우리나라 관객 여러분들도 그렇게 배우들을 사랑해주고 또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져주시면 더 좋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그럼 메릴 스트립 같은 명배우들도 많이 나타날 겁니다.”
그에게 있어 현재라는 시간은 삶의 최종적 목표와 가치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노란 물을 담으면 노랑이 나오고 평화를 담으면 평화가 눈으로, 손으로, 말로 나오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런 배우가 되면서 그로 인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삶을 완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배우인 거죠.”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새로운 캐릭터로의 변신을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배우. 장미희가 나이 들어도 아름다운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