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10여년 전에 발간된 적이 있는데 양장본으로 재탄생을 하였다. 물론 처음 발간된(1999년으로 기억된다) 상실의 풍경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어떤 부분이 바뀌어서 재 탄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큰 틀은 변함 없으리라. 한권에 전체 이야기가 실린것이 아니라 누명에서 시작하여 선생님 기행,20년을 비가 내리는 땅,빙판,어떤 전설,이런 식(式)이더이다,청산댁,거부 반응,상실의 풍경,타이거 메이저로 이어지는 10가지 단편들의 묶음이다. 물론 이야기들 간에 어느 정도의 연관성은 있다. 암울했던 시절을 다룬 소설이라서 그런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하긴 조정래 작가의 작품 치고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해피엔딩 끝나는 작품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아리랑이 그랬고 태백산맥도 마찬가지이며 최근에 읽은 허수아비추도 마찬가지이다. 뭔가 아쉬움가 여운을 남기고 끝이 나는데 어설프게 결말을 내려 독자들로 하여금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작품들보다는 조정래 작가의 계획된 어설픈 결론이 훨씬 낳은 것 같다.
19금의 이야기에 관련된 표현은 비롯하여 다분히 자파적인 색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극우주의자들로부터는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사상과 이념에 대해 거침없는 표현으로 군부 독재시대에서는 발간이 금지되었을 법하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아주 어렸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였기에 아련한 추억속으로 빠져들게 하기도 한다. 그 시절에는 그랬었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으면서도 멋모르고 베트남전에서 우리 군의 활약상에 대해 통쾌해하고 '베트남은 이제 공산국가가 되었으니 나쁜 나라다' '미국이 없었더라면 6.25를 거치면서 우리는 공산국가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었다. 조정래 작가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한편으로는 적개심이 솓구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좌익을 옹호하게 되기도 한다. 지금은 어느정도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이 되어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대중들의 의식 변화에 미친 영향은 상당히 클 것이다. 무조건 좌익은 나쁘다. 6.25는 북한의 일방적인 남침이었으며 미국은 우리를 해방시켜준 은인이다라는 생각에 일침을 가해주었다. 어찌보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역사학자의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조정래 작가의 색을 다분히 담고 있는 10편의 단편소설들. 등장한 주인공들이 모두 행복해지고 암울했던 주인공들의 과거가 빛을 발하고 나쁜 마음을 먹은 자는 벌을 받고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보상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은 동화책에서나 존재하는 이야기이고 현실은 전혀 다른 법이다. 그래서 이 작품들도 역시 소설이기는 하지만 다분히 현실에 근간을 둔 작품이라는 생각을 빼먹을 수 없다. 소설이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아버지가 납북하셨다는 이유만으로 자식들이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야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반미를 외치면서도 미제 담배를 피우고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사먹으며 카투사에 입대하려는 경쟁이 치열한 것은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이런 현실을 굳이 외면하려 들지 않고 날카롭게 지적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