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오타마는 풀옷을 입거나 무덤사이에 버려진 천으로 몸을 감싸거나 혹은 걸레로 옷을 지어 입었다.
또 고오타마는 무더위 속에서도 시원함을 찾지 않고 추위가 와도 따뜻함을 찾지 않고 그의 자세는 한결 같았다.
소나기가 쏟아져서 몸을 씻어내려도 그는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파리와 모기가 몸에 붙어 피를 빨아도 쫓지 않았다.
또 고오타마는 시체와 인골이 흩어져 있는 묘지에서 야숙을 하였다.
그럴때에 양치는 아이들이 침을 뱉고 진흙을 던지며 귀에 나뭇가지를 쑤셔 박았다. 그래도 고오타마는 움직이지 않았으며 아이들에 대해 손톱만큼도 진심을 일으키지 않았다.
고오타마는 입을 다물어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한 생각으로 아픔을 섭수한 후 몸과 뜻을 조복하여 수행하자 겨드랑이 밑에서 땀이 흘렀다......중략......고오타마는 또 하루에 한 알의 과일을 먹고 혹은 대추를 먹고 혹은 팥,콩을 먹으며 혹은 쌀,보리를 한 알씩만 먹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만을 먹었고 혹은 이틀에 한번, 사흘에 한번을 먹고 이윽고 이레에 한번을 먹고 드디어는 보름에 한번을 먹었다.
그때에 고오타마는 몸이 점점 여위어 갔다. 살갗은 익지 않은 오이가 말라 비틀어진 것 같았으며 수족은 갈대와 같았고 드러난 갈비뼈는 부서진 헌집의 서까래와 같았으며 척추는 대나무 마디와 같았다. 뱃가죽을 만지면 등뼈가 만져지고 손을 들어 몸을 만지면 몸의 털이 말라 떨어졌다. 해골이 드러나고 눈이 깊이 꺼졌으며 일어서려면 머리를 땅에 박고 넘어졌다.......' [ 방광대장엄경, 불본행집경 ]
정각을 이루신 땅 보드가야.
석가세존께서 29 나이에 출가를 하신후 처음 알라라카라마와 웃타카라마푸타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 부족함을 아시고 다시 정각을 위해 6년간 고행을 하신다.
그 고행의 땅이 바로 보드가야의 무상정각을 이루신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이 곳 말로는 둥게스와리라는 전정각산(前正覺山). 석가세존께서 보리수 아래 좌정하시어 일체를 조복받으시기전 이곳에서 고행을 하셨다 한다.
이 주변 마을에서는 석가세존의 이야기가 설화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다.
*둥게스와리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을 하신곳으로 알려진 곳의 전경이다
보드가야의 마하보디대탑에서도 둥게스와리까지는 오토릭샤를 타고 꽤나 가는 거리이다.
직선상으로야 니란자라강을 건너면 바로 우뚝 솟은 산, 둥게스와리가 보이지만 삥 돌아 가다보니 가깝지 만은 않은 거리다.
오토릭샤의 덜컹거림에 비포장 논두렁길을 한참을 달리다보면 뱃속에 내장들이 서로 만나 반갑다고 악수를 나눌 정도로 속이 울렁거리게 오토릭샤는 달려간다.
둥게스와리 바로 아래에는 우리나라의 정토회에서 운영하는 수자타아카데미 학교가 있으나 시간이 이미 수업이 파한 시간인지 방학인지 굳게 닫힌 문을 뒤로하고 정신 없이 산을 오른다.
* 둥게스와리에 부처님께서 고행을 하신 토굴로 이르는 길
콘크리트길을 따라 오르면 티벳사원이 있고 그 안에 부처님께서 고행을 하셨다는 굴이 있다.
오토릭샤도 외진 곳이라 그런지 운전자와 보조자 둘이서 향한 길이다. 강도도 종종 잘 출몰한다는 곳이라 그런가 싶다.
오토릭샤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바삐 뛰어 내려 콘크리트 길을 오른다.
강한 햇살 속에 경사길을 오르려니 땀이 온 몸을 적신다.
* 부처님께서 그 옛날 아마도 이 산에 저 바위와 흙을 밟고 다니셨으리..
인도에서는 보기 드믈게 평지 위에 우뚝 솟은 둥게스와리 산도 볼만하지만 바위산에 척박한 느낌이 드는 이곳에 도착해 정말 무엇에라도 홀린듯 정신없이 산을 오른다.
길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티벳사원은 조용하다.
오후의 땡볕에 모두다 그늘로 피해든듯, 길위에 벌레 마저도 햇살을 피해 숨어 버릴 정도로 무더운 날씨다.
얼굴은 세수를 한듯 땀방울이 흐르고...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인도인 몇 명이 음료수를 들고 쫓아나온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2배 정도 비싸게 파는 따끈하게 데워진 음료수.
음료수에 눈이 갈 시간이 없다. 인도인들에게 부처님의 토굴이 어디인지를 묻자 친절하게도 안내해준다.
* 가운데 보이는 절벽 아래 문이 부처님께서 고행을 하셨다는 토굴이다
문앞에 이르자 감히 발길을 들이지 못하고 먼저 무릎꿇고 향을 사르고 삼배를 올린다.
경전 구절에 보았던 부처님께서 고행 하시던 그 장면들을 되뇌이니 눈물이 핑하니 돌고 코끝이 시큰거린다.
흐르는 땀방울 덕에 눈물도 땀이 되어 흐른다.
음료수 한병이라도 팔아보기 위해 곁에서 떠나지 않고 기다리는 인도인들에게 잠시 혼자 있게 해달라 청하고 기도를 마친후 사주겠다 약속하고서야 마음을 가다듬고 토굴 안으로 들어선다.
* 당신께 올리는 향
굴안에 고행상을 모셔 놓았다.
굴안에 들어가니 시원함보다도 푹푹한 열기가 서려있다.
잠시 앉아 눈을 감는다..부처님 당신께서 이 곳에서 그토록 모진 고행을 하신뜻을 감히 흉내라도 내볼 요량이다.
겁많은 이 중생이 감히 흉내내기도 어려운 고행이며 스스로를 절복하신 고행이다.
마왕도 조복한 고행이며 위없는 대도에 이르는 고행이었다. 그 누구의 시선도 중요치 않았으며 오직 당신의 지혜의 눈만이 스스로를 살피고 깨뜨리신 고행이었다.
* 토굴안에 고행상
눈물을 훔치고 땀방울을 훔치고 굴을 나서 바라보니 저만치 정각을 이루신 마하보디대탑이 아스련히 보인다.
* 둥게스와리에서 바라본 정각을 이루신 땅
저 만치 니란자라강이 보이고 그 건너 깨달음의 땅이 있다.
경전에는 보통 고행림이라 하여 니란자라강 근처 우루벨라 숲속에서 고행을 하신줄로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경전상에도 고행림과 산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근 6년간 부처님께서는 이곳과 저 아래 숲속을 옮겨 가시며 고행을 하신게 아닐까 싶다.
근처 시다림(시체를 버리는 곳)에 가셔서 옷을 찾으시고, 숲속에서 선정에 드시고 이 산 토굴에서 고행을 하셨던듯하다.
* 니란자라(니련선하)강
오른편 우측으로 나무 사이 뾰족히 솟은것이 마하보디대탑으로
바로 그 자리가 바르게 깨달으신 자리이다.
그 옛날 이 강을 가로질러 저 곳에 이르시어 정각을 이루셨다.
부처님께서는 고행을 하시며 자신의 몸을 항복받으시고 중도를 깨달으신다.
그리고 그 몸으로 힘겹게 걸으시어 이 니란자라강에 이르셨다. 강에 내리시어 몸을 씻으시고 강둑으로 올라오려 하셨건만 쇠약한 몸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으심에 근처에 있던 수신(樹神)이 가지를 드리워 잡고 오르시게 하였다지...
그 곳에서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받으시고 기운을 내시어 강을 건너 그 자리에 임하셨다지.
같은 그 자리 니란자라 강이건만 당신의 건너심과 나의 건넘은 왜 이다지도 낯설게만 느껴지는지..
지금은 여름철이라 그나마 강물이 많지만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셨을 즘은 겨울인지라 강물이라기보다는 작은 냇가에 가까웠다하니 쇠약하신 몸으로 건너기엔 그나마 다행이었으리라.
* 수자타 공양녀의 집터에서 바라본 둥게스와리
이 지역 주민들의 말로는 수자타는 둥게스와리쪽이 아닌 반대쪽의 마을에 살았다하고 지금도 그 집터에는 탑을 세운 흔적이 있다한다.
둥게스와리는 니란자라강과 또 다른강이 만나는 지점의 가운데 인데 둥게스와리에서 니란자라강을 건너면 바로 정각을 이루신 그 땅이고, 둥게스와리에서 니란자라강이 아닌 다른 이름의 강을 건너면( 그 강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수자타 마을이라한다.
* 저 멀리 우측으로 작게 하얀 건물이 수자타가 부처님께 우유죽을 공양한 자리에 세워진 사찰이라한다.
지역 주민의 말에 따르면 둥게스와리에서 고행을 하신후 니란자라강이 아닌 다른 강을 건너 수자타의 공양을 받으시고 다시 수자타 마을쪽을 가로질러 오셔서 니란자라강을 건너 정각을 이루셨다는 말이 된다. 아마도 구전되며 내려온 이야기중 하나가 아니련가 싶다.
* 수자타 스투파
수자타가 살던 집터에 세워졌다는데 정확한 기원은 없고
아마도 아쇼카대왕때부터 세워진게 아닌가하는 안내판만 있다.
* 수자타 스투파 상부
탑이 하도 커서 그 위에는 저렇게 나무도 자란다. 저 뒤편으로는 니란자라강이 보인다.
나무 밑에 포즈를 잡은 사람은 이 지역 사람인데 이런저런 설명을 잘 해주던 학생이다.
나 또한 아마도 부처님께서 걸으셨을 그 길을 따라 걸어본다.
니란자라강은 흙탕물이 되어 흐르고 물은 따뜻하다 못해 약간 뜨거울 정도다. 발을 담그고 걸음을 옮겨본다.
* 니란자라 강가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과 개
부처님께서 건너셨던 그 강.
이 강을 건너 부처님께서는 정각을 이루셨다한다.
건너기에 깊지도 않고 그리 넓지도 않은 강이건만 나는 그 분처럼 용감히 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연인을 떠나보낸 여인의 마음처럼 서럽고 한스럽게 강 건너편만을 바라본다.
뜨거운 모래 위에 오른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세존께서 향하셨을 그 길에 예를 올릴 뿐이다..
* 사이클릭샤
열심히 페달을 굴러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버는 약간의 돈.
아마도 당신이 부처님께서 고행하실 무렵에 있어다면 부처님을 저 정각의 땅으로 모셔 나르고
무한한 공덕을 쌓았으련만, 나의 부덕한 업 또한 후회스럽고 당신의 업 또한 후회스러운 만남입니다.
총총히 발걸음을 옮기셨을 그 모습을 상상하며 나 또한 부끄럽게 그 길을 쫓아 정각의 땅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