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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請說
普發此等妙音聲하야 稱讚如來功德已하고
衆會歡喜黙然住하야 一心瞻仰欲聽法이로다
時解脫月復請言호대 今此衆會皆寂靜하니
願說隨次之所入인 第八地中諸行相하소서
이와 같은 묘한 음성 두루 내어서
여래의 크신 공덕 찬탄하고 나서
모든 대중 환희하여 잠자코 앉아
일심으로 우러르며 설법 듣고자 하도다.
그때에 해탈월보살이 청하는 말씀,
“여기 모인 대중이 정숙하오니
바라건대 다음에 들어갈 바를 따라
제8지의 모든 행상을 말씀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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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請說) : 법을 청하다
*
보발차등묘음성(普發此等妙音聲)하야 : 이러한 등 아름다운 좋은 소리를 발해서
칭찬여래공덕이(稱讚如來功德已)하고 : 여래의 공덕을 칭찬하고 나서
중회환희묵연주(衆會歡喜黙然住)하야 : 대중들은 환희해서 묵묵히 머물러 있어서
일심첨앙욕청법(一心瞻仰欲聽法)이로다.: 일심으로 우러러 보고 설해주기를 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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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해탈월부청언(時解脫月復請言)호대 : 해탈월 보살이 다시 청해서 말하되
금차중회개적정(今此衆會皆寂靜)하니 : 지금 대중들은 고요히 이렇게 있으니
원설수차지소입(願說隨次之所入)인 : 원컨대 차례를 따라서 들어간 바의
제팔지중제행상(第八地中諸行相)하소서 : 제 8지중 모든 행상들을 설해주십시오. 라고 이렇게 청했다.
2, 修習方便
爾時에 金剛藏菩薩이 告解脫月菩薩言하사대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於七地中에 善修習方便慧하며 善淸淨諸道하며 善集助道法하며 大願力所攝이며 如來力所加며 自善力所持며 常念如來力無所畏不共佛法하며 善淸淨深心思覺하며 能成就福德智慧하며 大慈大悲로 不捨衆生하며 入無量智道하니라
그때에 금강장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말하였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제7지에서 방편 지혜를 잘 닦고, 모든 도를 잘 깨끗하게 하며, 도를 돕는 법을 잘 모으느니라.
큰 원력으로 포섭하고, 여래의 힘으로 가피한 바가 되고, 자기 선근의 힘으로 유지하므로, 여래의 힘과 두려움 없음과 함께하지 않는 부처님의 법을 항상 생각하느니라.
깊은 마음으로 생각함을 청정케 하며, 능히 복덕과 지혜를 성취하며, 대자대비로 중생을 버리지 않고, 한량없는 지혜의 도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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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방편(修習方便) : 방편을 닦아 익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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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爾時)에 : 이시에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 금강장보살이
고해탈월보살언(告解脫月菩薩言)하사대 : 해탈월보살에게 고해 말씀하사되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어칠지중(於七地中)에 : 7지 가운데
선수습방편혜(善修習方便慧)하며 : 방편혜를 잘 수습했으며
선청정제도(善淸淨諸道)하며 : 청정한 모든 도를 잘 청정하게 했으며
선집조도법(善集助道法)하며 : 조도법을 잘 모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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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력소섭(大願力所攝)이며 : 큰 원력의 섭한 바이며
여래력소가(如來力所加)며 : 여래의 힘으로 가지하는 바이며
자선력소지(自善力所持)며 : 자기의 좋은 힘을 가진 바이며, 자기 힘이 없으면 안된다.
상념여래력무소외불공불법(常念如來力無所畏不共佛法)하며: 상념 여래력과 무소외와 18불공법을 항상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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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청정심심사각(善淸淨深心思覺)하며 ; 심심 사각을 잘 청정히 하며
능성취복덕지혜(能成就福德智慧)하며 : 복덕 지혜를 능히 성취하며
대자대비(大慈大悲)로 : 대자대비로
불사중생(不捨衆生)하며 : 불사중생하며
입무량지도(入無量智道)하니라 ; 한량없는 지혜의 도에 들어가느니라.
3, 無生法忍
入一切法의 本來無生無起無相無成無壞無盡無轉과 無性爲性과 初中後際가 皆悉平等과 無分別如如智之所入處하며 離一切心意識分別想하야 無所取着이 猶如虛空하며 入一切法如虛空性하나니 是名得無生法忍이니라
“일체 법의 본래 나는 일도 없고, 일어남도 없고, 모양도 없고, 이룸도 없고, 무너짐도 없고, 다함도 없고, 옮아감도 없으며, 성품이 없는 것으로 성품을 삼으며, 처음과 중간과 나중이 모두 평등하며, 분별이 없는 진여와 같은 지혜로 들어갈 곳에 들어가느니라.
모든 마음과 뜻과 식으로 분별하는 생각을 여의었으며, 집착함이 없으며, 허공과 같으며, 일체 법에 들어가 허공의 성품과 같나니, 이것을 말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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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법인(無生法忍) : 무생법인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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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일체법(入一切法)의 : 일체법의
본래무생무기무상무성무괴무진무전(本來無生無起無相無成無壞無盡無轉)과 : 본래 무생 무기 무상 무성 무괴 무진 무전
무성위성(無性爲性)과 :성품이 없음으로써 성품을 삼은 것과
초중후제(初中後際)가 :처음도 중간도 끝도
개실평등(皆悉平等)과 : 개실 평등함과
무분별여여지지소입처(無分別如如智之所入處)하며 ; 분별이 없는 여여한 지혜에 들어간 바의 곳에 들어간다. 처음에 있는 입(入)자를 여기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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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체심의식분별상(離一切心意識分別想)하야 : 일체 심의식의 분별상을 떠난다. 사람들이 전부 일체 심의식의 힘으로 분별을 하는 것이 문제다.
이런 분별 저런 분별 이 생각 저 생각, 생각과 감정의 표현으로써 우리의 삶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펼쳐 놓고 우리가 거기서 살아간다. 그것이 일체 심의식 분별상인데 그러한 것을 다 떠나서
무소취착(無所取着)이 : 취착하는 바가 없는 것이
유여허공(猶如虛空)하며 : 마치 허공과 같음이니
입일체법여허공성(入一切法如虛空性)하나니 : 일체법이 허공성과 같은 데 들어가나니
시명득무생법인(是名得無生法忍)이니라 : 이것의 이름이 무생법인이다. 무생법인이라고 해서 생함이 없는 것이 아니다. 생하되 생함이 없는 것 아까 무공용이라는 말을 했던 것과 같다.
4, 殊勝한 行
佛子야 菩薩이 成就此忍하면 卽時에 得入第八不動地하야 爲深行菩薩하야 難可知며 無差別이며 離一切相과 一切想과 一切執着이며 無量無邊이며 一切聲聞辟支佛의 所不能及이며 離諸諠諍이며 寂滅現前이니 譬如比丘가 具足神通하고 得心自在하야 次第乃至入滅盡定하면 一切動心憶想分別이 悉皆止息인달하야 此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住不動地에 卽捨一切功用行하고 得無功用法하야 身口意業의 念務皆息하야 住於報行이니라 譬如有人이 夢中見身이 墮在大河하고 爲欲度故로 發大勇猛하며 施大方便이라 以大勇猛施方便故로 卽便覺寤하나니 旣覺寤已에 所作皆息인달하야 菩薩도 亦爾하야見衆生身이 在四流中하고 爲救度故로 發大勇猛하며 起大精進이라 以勇猛精進故로 至此不動地하나니 旣至此已에 一切功用이 靡不皆息하야 二行相行이 悉不現前이니라 佛子야 如生梵世에 欲界煩惱가 皆不現前인달하야 住不動地도 亦復如是하야 一切心意識行이 皆不現前하나니 此菩薩摩訶薩이 菩薩心과 佛心과 菩提心과 涅槃心도 尙不現起어든 況復起於世間之心이리오
“불자여, 보살이 이 인(忍)을 성취하고는 즉시로 제8 부동지(不動地) 들어가나니 깊이 행하는 보살이 되어서 알기 어려우며, 차별이 없으며, 일체 모양과 일체 생각과 일체 집착을 여의며, 한량이 없고 끝이 없으며, 일체 성문과 벽지불이 미칠 수 없으며, 모든 시끄러움을 여의어서 적멸(寂滅)이 앞에 나타나느니라.
마치 비구가 신통을 구족하고 마음이 자재하게 되어 차례로 멸진정(滅盡定)에까지 들어가면 모든 동(動)하는 마음과 기억하는 분별이 모두 쉬느니라.
이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부동지에 머물면 일체 공들여 작용하는 행[功用行]을 버리고 공들여 작용함이 없는 법[無功用法]을 얻어서 몸과 입과 뜻으로 하는 업과 생각과 일이 모두 쉬어서 과보의 행에 머무느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꿈에 몸이 큰 강에 빠졌는데 건너가기 위하여 큰 용맹을 내어 방편을 베풀었고, 큰 용맹을 내어 방편을 베풀었으므로 꿈을 깨게 되느니라. 꿈을 깨고 나면 하던 일이 모두 쉬게 됨과 같으니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의 몸이 네 가지 폭류[四流]에 있음을 보고 제도하기 위하여 큰 용기를 내어 크게 정진하며, 큰 용맹으로 정진하므로 이 부동지에 이르느니라. 이 지위에 이르면 일체 공들여 작용함이 모두 쉬어서 두 가지 행과 형상 있는 행[相行]이 모두 앞에 나타나지 아니하느니라.
불자여, 마치 범천에 태어나면 욕계의 번뇌가 앞에 나타나지 아니하나니 부동지에 머무는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마음과 뜻과 식(識)으로 하는 행이 앞에 나타나지 아니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보살의 마음과 부처의 마음과 보리의 마음과 열반이라는 마음도 일으키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다시 세간의 마음을 일으키겠는가.”
*
수승(殊勝)한 행(行) : 수승한 행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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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菩薩)이 : 보살이
성취차인(成就此忍)하면 ; 이 무생법인 이 인(忍)을 성취하면
즉시(卽時)에 : 즉시에
득입제팔부동지(得入第八不動地)하야 : 제 8부동지에 들어가서
위심행보살(爲深行菩薩)하야: 깊은 행을 하는 보살을 위해서
난가지(難可知)며 : 난가지 하며
무차별(無差別)이며 : 무차별이며
이일체상(離一切相)과 : 모양과
일체상(一切想)과 : 생각과
일체집착(一切執着)이며 : 일체 집착을 떠나며
무량무변(無量無邊)이며 : 무량무변이며
일체성문벽지불(一切聲聞辟支佛)의 : 일체 성문 벽지불의
소불능급(所不能及)이며 : 소불능급이며
이제훤쟁(離諸諠諍)이며 : 모든 시끄럽고 다투는 것을 떠났으며
적멸현전(寂滅現前)이니 : 적멸이 현전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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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비구(譬如比丘)가 : 비유하자면 비구가
구족신통(具足神通)하고 : 신통을 구족해서
득심자재(得心自在)하야 : 마음에 자재함을 얻어서
차제내지입멸진정(次第乃至入滅盡定)하면: 차제로 내지 멸진정에 들어갈 것 같으면, 멸진정에 들어가기까지도 많은 순서가 있으니까 결국 멸진정에까지 들어가게 될 것 같으면
일체동심억상분별(一切動心憶想分別)이 : 마음이 움직이고 기억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이
실개지식(悉皆止息)인달하야 : 모두가 다 쉬어버린다. 여기 비구라고 했다.
소승들이 수행하는 모습을 이렇게 간단하게 그리고 있다.
멸진정에 들어가는 것이 최고 목적이지만 혼자 들어가 있으면 어쩌자는 것인가?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면서 불쌍한 중생들을 돌보면서 사는 것, 혹 실수도 하고 좋은 일도 하고, 하다보면 실수도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대승불교하고 소승불교의 차이가 그런 점이다. 멸진정에 들어가서 아무도 없이 저 달 뒷면에 혼자 가서 무수한 세월을 보낸들 그게 세상에 무슨 이익이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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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보살마하살(此菩薩摩訶薩)도 : 이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주부동지(住不動地)에 ; 부동지에 머묾에
즉사일체공용행(卽捨一切功用行)하고 : 일체 공용행 유위법 유주상 이런 것을 다 버리고
득무공용법(得無功用法)하야 : 무공용법을 얻어서
신구의업(身口意業)의 : 신구의 업으로써
염무개식(念務皆息)하야 : 생각하되 생각하는 바가 없다. 생각하는 바가 전부 다 쉬어 버려서
주어보행(住於報行)이니라 : 과보의 행에 머문다. 무공용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신구의 업을 다 활용하되 그것이 하는 바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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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유인(譬如有人)이 : 별을 한 열 개를 쳐도 좋은 내용이 나온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들이 꿈 가운데
몽중견신(夢中見身)이 : 몸이
타재대하(墮在大河)하고 : 큰 강에 떨어져서 물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위욕도고(爲欲度故)로 : 그 강을 건너고자 하는 고로
발대용맹(發大勇猛)하며 : 큰 용맹을 발해서
시대방편(施大方便)이라 : 대방편을 베풀었다.
자기가 헤엄을 칠 줄 알든지 모르든지 주변에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붙잡고 온갖 발버둥을 다 치는 것이다.
이대용맹시방편고(以大勇猛施方便故)로 : 대용맹을 사용하는 까닭으로 방편을 시설하는 까닭으로
즉변각오(卽便覺寤)하나니 : 꿈에 물에 빠져 있는데 온갖 발버둥을 다 쳐서 나오려고 막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기각오이(旣覺寤已)에 : 곧 꿈을 깨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발버둥을 안치면 그대로 꿈으로 흘러가버릴텐데 발버둥 치는 바람에 꿈을 깨게 되었다. 우리 중생살이는 전부 꿈을 꾸는 것이고 정각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꿈을 깨는 것이다.
그러니까 꿈을 깨는 데는 깬 것이나 깨지 않은 것이나 그 자리가 그 자리다. 늘 침대 위에서 편안히 자고 있지만 꿈으로 어떤 죽는 상황을 꿈꿔서 꿈을 깨지 못하면 그냥 침대에서 가버리는 것이다. 발버둥을 치다보면 꿈에서 깨버린다.
모든 사람은 다 그런 경험이 있다.
악몽을 꾸었을 때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다 보면 깨어나듯이 깨닫는 것도 그와 똑같은 이치다.
그러니까 발버둥을 안치면 안된다. 정진해야 된다.
용맹정진해야 된다. 뭘 하든지 간에 머리를 벽에다 쳐박든지 어쩌든지 송곳을 가지고 무릎을 찌르기도 하든지,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정진할 때 큰 부엌칼을 시퍼렇게 갈아서 세수대야에 물 하나 딱 떠놓고 거기에 얹어놓고 추운 방에 앉아서 용맹정진하는 것도 많이 보았다.
뒤에 못을 쳐놓고 거기에 노끈을 매고 목에도 걸어서 조금만 졸아도 노끈이 목에 와서 잠을 깨우게 한다든지 그런 일들은 부지기수로 있는 일들이었다.
그런 방편, 그런 대용맹으로써 결국은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용맹으로서 그렇게 각오하고 나서는
소작개식(所作皆息)인달하야 : 소작개식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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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도 : 보살도
역이(亦爾)하야 : 또한 그래서
견중생신(見衆生身)이 : 중생신이
재사류중(在四流中)하고 : 사류 중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사류는 욕류(欲流) 유류(有流) 견류(見流) 무명류(無明流)다.
욕은 색성향미촉 사물이라든지 소리라든지 향기라든지 맛이라든지 감촉이라든지 이것이 전부 탐욕을 부리는 것이다. 그것이 좋으려고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하고 또 소리도 귀에 달콤한 소리를 들으려고 하고 향기도 맛도 감촉도 탐욕을 부리는 것이 전부 욕류다. 우리는 욕계에 사니까 미혹하게 산다. 유류는 욕계 색계 무색계에 대한 미혹한 것이고 견류라고 하는 것은 그릇된 견해 잘못된 소견 그리고 또 무명류라고 하는 것은 고집멸도(苦集滅道) 4제에 대한 무지, 고집멸도 이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다. 이것이 마치 큰 물결이 흘러가는 것과 같아서 거기에 떨어져 있다. 거기에 떨어져 흘러가면서
위구도고(爲救度故)로 : 우리가 건너가고자 하는 까닭으로
발대용맹(發大勇猛)하며 ; 대용맹을 발해서
기대정진(起大精進)이라 : 대정진을 일으킨다.
이용맹정진고(以勇猛精進故)로 : 용맹정진 하는 까닭에
지차부동지(至此不動地)하나니 : 그것을 가지고 이 부동지에 이르나니
기지차이(旣至此已)에 : 이 부동지에 이르고 남에
일체공용(一切功用)이 : 일체 공용이
미부개식(靡不皆息)하야 : 다 쉬지 아니함이 없다.
거기에 가서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되 함이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함이 있는 이치가 다 쉬어 버린다.
일체 하는 것은 공용이고 함이 없이 하는 것은 무공용이다.
이행상행(二行相行)이 : 공용과 무공용 두 가지 행을 서로 행하는 것이
실불현전(悉不現前)이니라 : 다 현전하지 아니하느니라. 무공용의 경지에 이르면 유공용이고 무공용이고 다 없어진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행상행이 실불현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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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생범세(如生梵世)에 : 비유하자면 범천 세상에 태어남에
욕계번뇌(欲界煩惱)가 : 욕계 번뇌가
개불현전(皆不現前)인달하야 :개불현전이다. 범천은 색계천이니까 욕계번뇌는 다 현전하지 않듯이
주부동지(住不動地)도 : 부동지에 머무름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다 이와같아서
일체심의식행(一切心意識行)이 : 일체 심의식행이
개불현전(皆不現前)하나니 : 다 현전하지 않나니
*
차보살마하살(此菩薩摩訶薩)이 :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보살심(菩薩心)과 : 보살심과
불심(佛心)과 : 불심과
보리심(菩提心)과 : 보리심과
열반심(涅槃心)도 : 열반심도
상불현기(尙不現起)어든 : 일어날 길이 없다. 보살심이 좋다하든 불심이 좋다하든 보리심이 좋다하든 열반심이 좋다하든 거기는 그것이 일어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일어나지 않거든
항부기어세간지심(況復起於世間之心)이리오 : 그런 불심 보리심도 일어나지 않는데 세간 마음이 일어날 까닭이 없다. 아주 명쾌한 표현이다.
무공용 부동지에 이르면 무공용행이 되니까 보살행을 행한다. 행하되 이미 그때는 모든 행위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나 일체가 그냥 보살행이지 보살행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자동으로 그냥 보살행을 하는 것이다.
5, 諸佛現前
佛子야 此地菩薩의 本願力故로 諸佛世尊이 親現其前하사 與如來智하야 令其得入法流門中케하고 作如是言하사대 善哉善哉라 善男子야 此忍이 第一이라 順諸佛法이어니와 然이나 善男子야 我等所有十力無畏十八不共諸佛之法은 汝今未得이니 汝應爲欲成就此法인댄 勤加精進하야 勿復放捨於此忍門이니라 又善男子야 汝雖得是寂滅解脫이나 然諸凡夫는 未能證得하야 種種煩惱가 皆悉現前하며 種種覺觀이 常相侵害하나니 汝當愍念如是衆生이니라 又善男子야 汝當憶念本所誓願하야 普大饒益一切衆生하야 皆令得入不可思議智慧之門이니라 又善男子야 此諸法法性은 若佛出世어나 若不出世에 常住不異니 諸佛이 不以得此法故로 名爲如來라 一切二乘도 亦能得此無分別法이니라 又善男子야 汝觀我等의 身相無量과 智慧無量과 國土無量과 方便無量과 光明無量과 淸淨音聲도 亦無有量하야 汝今宜應成就此事니라 又善男子야 汝今適得此一法明하니 所謂一切法無生無分別이어니와 善男子야 如來法明은 無量入이며 無量作이며 無量轉일새 乃至百千億那由他劫에도 不可得知니 汝應修行하야 成就此法이니라 又善男子야 汝觀十方無量國土와 無量衆生과 無量法種種差別하야 悉應如實通達其事니라
“불자여, 이 지위의 보살은 본래의 원력으로 여러 부처님 세존이 친히 그 앞에 나타나 여래의 지혜를 주어서 법의 물결[法流]에 들어가게 하고는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시느니라.
훌륭하고 훌륭하여라, 선남자여, 이 진리[法忍]가 제일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법을 수순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선남자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열 가지 힘[十力]과 두려움 없음[無畏]과, 열여덟 가지 함께하지 않는[十八不共]모든 부처님의 법은 그대가 아직 얻지 못하였으니 그대는 응당 이 법을 성취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할 것이요, 이 진리의 문에서 놓아 버리지 말도록 하라.
또 선남자여, 그대는 비록 이 고요한 해탈을 얻었지마는 그러나 모든 범부들은 아직 능히 증득하지 못하였으므로 여러 가지 번뇌가 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거친 생각[覺]과 미세한 생각[觀]이 항상 침노하나니, 그대는 마땅히 이와 같은 중생들을 불쌍하게 생각하도록 하라.
또 선남자여, 그대는 마땅히 본래에 세운 서원을 기억하고 일체중생을 모두 크게 이익하게 하여 불가사의한 지혜의 문에 들어가도록 하라.
또 선남자여, 이 모든 법과 법의 성품은 부처님이 세상에 나셨거나 나시지 않았거나 간에 항상 있어 다르지 아니하며, 모든 부처님이 이 법을 얻었다고 해서 여래라고 이름하는 것이 아니니, 일체 이승(二乘)도 또한 이 분별없는 법을 능히 얻을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그대는 나의 몸이 한량없고, 지혜가 한량없고, 국토가 한량없고, 방편이 한량없고, 광명이 한량없고, 청정한 음성이 한량없음을 보나니, 그대는 이제 마땅히 이 일을 성취하도록 하라.
또 선남자여, 그대는 이제 다만 한 가지 법에 밝음[法明]을 얻었나니, 이른바 일체 법의 남[生]이 없고 분별이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법의 밝음은 한량없는 데 들어가서 한량없이 작용하고 한량없이 굴러가며, 내지 백천억 나유타 겁에도 알 수 없나니, 그대는 마땅히 수행하여 이 법을 성취하도록 하라.
또 선남자여, 그대는 시방의 한량없는 국토와 한량없는 중생과 한량없는 법의 갖가지로 차별한 것을 보나니, 그런 일을 모두 사실과 같이 통달하도록 하라.”
*
제불현전(諸佛現前) : 제불이 나타나 격려하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지보살(此地菩薩)의 : 이 보살의
본원력고(本願力故)로 : 본원력고로
제불세존(諸佛世尊)이 : 제불세존이
친현기전(親現其前)하사 : 친히 그 앞에 나타나서
여여래지(與如來智)하야 ; 여래 지혜와 더불어
영기득입법류문중(令其得入法流門中)케하고 : 법이 흐르는 문 가운데 들어가게 하고
작여시언(作如是言)하사대 : 이러한 말을 하되
*
선재선재(善哉善哉)라 : 선재선재라
선남자(善男子)야 : 선남자야
차인(此忍)이: 차인은 무생법인이다. 차인이
제일(第一)이라 : 제일이라.
순제불법(順諸佛法)이어니와 : 모든 부처님 법을 순함이어니와
연(然)이나 : 연이나
선남자(善男子)야 : 선남자야
아등소유십력무외십팔불공제불지법(我等所有十力無畏十八不共諸佛之法)은 : 아등 십력과 무외와 무외는 4무외다. 18불공 제불지법을
여금미득(汝今未得)이니: 그대는 아직 얻지 못했음이니, 무생법인을 얻었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갖춘 것까지는 아직 못갖추었으니
여응위욕성취차법(汝應爲欲成就此法)인댄 : 그대가 응당 이러한 법들을 성취하고자 할진댄
근가정진(勤加精進)하야 : 더 가행정진을 행해서
물부방사어차인문(勿復放捨於此忍門)이니라 : 이 인문(忍門) 무생법인의 문을 버리지 말라. 가져가야 되는 것이다.
*
우선남자(又善男子)야 : 또 선남자야
여수득시적멸해탈(汝雖得是寂滅解脫)이나 : 그대는 비록 적멸 해탈을 얻었으나
연제범부(然諸凡夫)는 : 연이나 모든 범부는
미능증득(未能證得)하야 : 아직 증득하지 못했으니
종종번뇌(種種煩惱)가 : 종종의 번뇌가
개실현전(皆悉現前)하며 : 다 앞에 나타나서
종종각관(種種覺觀)이: 종종 각관이, 각관은 살피는 것이다.
상상침해(常相侵害)하나니 : 항상 서로 침해하나니
여당민념여시중생(汝當愍念如是衆生)이니라 : 그대는 마땅히 이러한 중생들을 불쌍히 생각할지니라.
*
우선남자(又善男子)야 : 또 선남자야
여당억념본소서원(汝當憶念本所誓願)하야 : 그대는 마땅히 본래 서원한 바를 기억해서
보대요익일체중생(普大饒益一切衆生)하야 : 일체중생을 크게 요익하게 해서
개령득입불가사의지혜지문(皆令得入不可思議智慧之門)이니라 : 불가사의한 지혜의 문에 득입하게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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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남자(又善男子)야 : 또 선남자야
차제법법성(此諸法法性)은 : 제법의 법성은
약불출세(若佛出世)어나 : 법성 뿐만 아니라 인과도 마찬가지다. 인과의 도리도
약불출세(若不出世)에 : 부처님이 출세했거나 출세하지 않았거나 간에
상주불이(常住不異)니 : 항상 있어서 다르지 않나니. 인과의 도리도 그렇고 법의 성품도 그렇고 진리도 그렇다. 부처님이 와서 말씀했다고 존재하고, 말씀하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아니한다면 진리가 아니다.
도불가수유리(道不可須臾離), 도라고 하는 것은 한순간도 떠나있지 아니하다. 가리(可離)면 비도(非道)라 만약에 떠나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부처님이 와서 설명했든 설명하지 아니했든 관계없는 일이다. 법성이나 인과의 이치, 진리는 그렇다.
제불(諸佛)이 : 제불이
불이득차법고(不以得此法故)로 : 이 법을 얻은 고로
명위여래(名爲如來)라 : 여래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일체이승(一切二乘)도 : 일체 이승도
그 얻지 않는 것과 부처님 여래 하고는 관계없다고 하는 뜻이다. 그것을 얻었다고 여래고, 얻지 않았다고 여래가 아니고 하는 이치가 아니다.
차원이 다른 설명이다.
역능득차무분별법(亦能得此無分別法)이니라 : 일체 이승도 이 무분별법을 능히 얻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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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남자(又善男子)야 : 또 선남자야
여관아등(汝觀我等)의 : 그대는 우리들의
신상무량(身相無量)과 : 신상무량과
지혜무량(智慧無量)과 : 지혜무량과
국토무량(國土無量)과 : 국토무량과
방편무량(方便無量)과 : 방편무량과
광명무량(光明無量)과 : 광명무량과
청정음성(淸淨音聲)도 ; 청정음성도
역무유량(亦無有量)하야 : 또한 한량이 없음을 관해서
여금의응성취차사(汝今宜應成就此事)니라 : 그대가 마땅히 응당 이 일을 성취케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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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남자(又善男子)야 : 또 선남자야
여금적득차일법명(汝今適得此一法明)하니 : 그대는 지금 다만 이 한 법의 밝음을 얻으니
소위일체법무생무분별(所謂一切法無生無分別)이어니와:소위 일체 법 무생무분별이어니와
선남자(善男子)야 : 선남자야
여래법명(如來法明)은 : 여래의 법의 밝음은, 부처님 법이 밝다고 하는 것은
무량입(無量入)이며 : 무량입이며
무량작(無量作)이며 : 무량작이며
무량전(無量轉)일새 : 무량전일새
내지백천억나유타겁(乃至百千億那由他劫)에도 : 내지 백천억 나유타 겁에도
불가득지(不可得知)니 : 가히 알지 못함이니
여응수행(汝應修行)하야 : 그대는 응당 수행해서
성취차법(成就此法)이니라 : 이러한 법을 성취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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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남자(又善男子)야 : 또 선남자야
여관시방무량국토(汝觀十方無量國土)와 : 시방무량국토와
무량중생(無量衆生)과 : 무량중생과
무량법종종차별(無量法種種差別)하야 : 무량법 종종차별을 관해서
실응여실통달기사(悉應如實通達其事)니라 : 다 응당히 여실히 그 일을 통달할지니라.
6, 八種의 殊勝因由
佛子야 諸佛世尊이 與此菩薩如是等無量起智門하사 令其能起無量無邊差別智業하나니 佛子야 若諸佛이 不與此菩薩起智門者인댄 彼時에 卽入究竟涅槃하야 棄捨一切利衆生業이어니와 以諸佛이 與如是等無量無邊起智門故로 於一念頃에 所生智業이 從初發心으로 乃至七地의 所修諸行으로 百分에 不及一이며 乃至百千億那由他分에도 亦不及一이며 如是阿僧祗分과 歌羅分과 算數分과 譬喩分과 優波尼沙陀分에도 亦不及一이니라 何以故오 佛子야 是菩薩이 先以一身으로 起行이어니와 今住此地하야는 得無量身과 無量音聲과 無量智慧와 無量受生과 無量淨國하야 敎化無量衆生하며 供養無量諸佛하며 入無量法門하며 具無量神通하며 有無量衆會道場差別하며 住無量身語意業하야 集一切菩薩行하나니 以不動法故니라 佛子야 譬如乘船하고 欲入大海에 未至於海하야는 多用功力이어니와 若至海已하야는 但隨風去하고 不假人力하나니 以至大海一日所行으로 比於未至하면 其未至時에 設經百歲라도 亦不能及인달하야 佛子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積集廣大善根資糧하야 乘大乘船하고 到菩薩行海하야 於一念頃에 以無功用智로 入一切智智境界하나니 本有功用行은 經於無量百千億那由他劫이라도 所不能及이니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이 보살에게 이와 같은 한량없이 지혜를 일으키는 문을 주어서 한량없고 끝이 없이 차별한 지혜의 업을 일으키게 하느니라.
불자여, 만일 모든 부처님이 이 보살에게 지혜를 일으키는 문을 주지 아니하였으면 그때에 곧 구경의 열반에 들어서 모든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업을 버렸을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이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이 없이 지혜를 일으키는 문을 주었으므로 잠깐 동안에 내는 지혜의 업이 처음 발심한 때부터 제7지에 이르도록 닦은 모든 행으로는 백 분의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고, 내지 백천억 나유타 분의 하나에도 또한 미치지 못하며, 이와 같이 아승지 분과 가라 분과 산수 분과 비유 분과 우파니사타 분의 하나에도 또한 미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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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종(八種)의 수승인유(殊勝因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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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종의 수승한 인유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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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제불세존(諸佛世尊)이 : 제불세존이
여차보살여시등무량기지문(與此菩薩如是等無量起智門)하사: 한량없는 지혜를 일으키는 문을 주어서, 세존이 보살에게 이러한 지혜를 일으키는 문을 준다는 것이다. 가피를 말한다.
영기능기무량무변차별지업(令其能起無量無邊差別智業)하나니 : 그로 하여금 능히 무량 무변 차별 지혜의 업을 일으키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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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약제불(若諸佛)이: 만약 모든 부처님이
불여차보살기지문자(不與此菩薩起智門者)인댄 : 보살에게 이런 지혜를 일으키는 문을 주지 아니했다면
피시(彼時)에 : 그때에
즉입구경열반(卽入究竟涅槃)하야 : 곧 구경열반,
마지막 열반에 들어가서
기사일체이중생업(棄捨一切利衆生業)이어니와 : 중생을 이익케 하는 업을 버리게 돼 버린다.
지혜가 참 중요한 것이다. 부처님이 지혜 일으키는 문을 주는데 만약에 그 지혜가 없다면 그런 뜻이다. 곧 구경열반, 마지막 열반에 들어가서 일체중생을 이익케 하는 업을 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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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불(以諸佛)이 : 모든 법이
여여시등무량무변기지문고(與如是等無量無邊起智門故)로 :이와 같은 등 무량무변 지혜 일으키는 문을 주는 고로
어일념경(於一念頃)에 : 일념 가운데
소생지업(所生智業)이 : 생긴 바 지혜의 업이
종초발심(從初發心)으로 : 초발심으로부터
내지칠지(乃至七地)의: 7지의
소수제행(所修諸行)으로: 닦은 바 제행으로
백분(百分)에 : 백분에
불급일(不及一)이며 : 불급일이며
내지백천억나유타분(乃至百千億那由他分)에도 : 내지 백천억 나유타 분에도
역불급일(亦不及一)이며 : 역불급일이며
여시아승지분(如是阿僧祗分)과 : 이와 같이 아승지분과
가라분(歌羅分)과 : 가라분과
산수분(算數分)과 : 산수분과
비유분(譬喩分)과 : 비유분과
우파니사타분(優波尼沙陀分)에도 : 우파니사타분에도
역불급일(亦不及一)이니라 : 또한 하나에도 미치지 못함이니라. 8지부터는 무공용이니까 이 7지 소수제행, 7지까지 닦은 바 모든 수행으로는 미치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자기 아들에게 주는 것과 남의 아들에게 주는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그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 간단하다. 가라분 산분 수분 비유분 우파니사타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유주상과 무주상의 차이도 그와 같다.
무공용 유공용 유위 무위의 차이가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경계를 통과하는 데는 그렇게 어렵다. 그래서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옛날에 비행기가 음속을 통과하는데 그렇게 펑 하고 소리가 난다.
그것은 하나의 비유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무공용과 유공용 유위와 무위가 참 그렇게 어려운 경계선이다. 어렵지만 경계선을 통과를 해야되고 그러려면 부단한 정진과 용맹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결국은 꿈을 깨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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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오 : 하이고오
불자(佛子)야 : 불자야
시보살(是菩薩)이: 이 보살이
선이일신(先以一身)으로 : 먼저 일신으로써
기행(起行)이어니와 : 행을 일으키거니와
금주차지(今住此地)하야는 : 지금의 이 지혜, 제8지에 머물러서는
득무량신(得無量身)과 : 무량신과
무량음성(無量音聲)과 : 무량음성과
무량지혜(無量智慧)와 : 무량지혜와
무량수생(無量受生)과 : 무량수생과
무량정국(無量淨國)하야 : 무량정국 청정한 국토를 얻어서
교화무량중생(敎化無量衆生)하며 : 무량중생을 교화하며
공양무량제불(供養無量諸佛)하며 : 무량제불에게 공양하며
입무량법문(入無量法門)하며 : 무량법문에 들어가며
구무량신통(具無量神通)하며 : 무량신통을 갖추며
유무량중회도량차별(有無量衆會道場差別)하며 : 무량중회 도량 차별이 있게 되며
주무량신어의업(住無量身語意業)하야 : 무량 신어의 업에 머물러서
집일체보살행(集一切菩薩行)하나니: 일체 보살행을 모으나니
이부동법고(以不動法故)니라 ; 부동지법을 쓰는 까닭이니라. 부동법 움직이지 않는 법 동하되 동함이 없는 이치를 쓰는 까닭이니라. 아주 선명하다.
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승선(譬如乘船)하고 :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욕입대해(欲入大海)에 : 큰 바다에 들어가고자 함에
미지어해(未至於海)하야는: 바다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다용공력(多用功力)이어니와 : 그래서 공력을 많이 쓴다.
바다에 이르기까지, 예를 들어서 옛날에 육지에서 배를 만들어서 대해까지 끌고 가는 경우를 상상하면 된다.
요즘은 조선소의 도크 시설이 아주 잘 돼 있어서 배를 그 자리에서 만들고 그 자리에서 진수식을 하는 것이 간단히 문만 열어버리면 큰바다로 바로 들어간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다.
미지어해 하여서는 공력을 많이 써야 된다.
약지해이(若至海已)하야는 : 만약에 배를 끌고 가서 바다에 이르렀다고 하면
단수풍거(但隨風去)하고 : 수풍거라. 다만 바람을 따라서 갈 뿐이다.
불가인력(不假人力)하나니 : 사람의 힘이 필요치가 않다.
사람의 힘을 가지 하지 아니한 것과 같나니
이지대해일일소행(以至大海一日所行)으로 : 큰 바다에 가서 하루동안 바람을 이용해서 행하는 것으로써
비어미지(比於未至)하면 : 아직 바다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는 몇날 며칠 배를 만드는 데서 끌고 가는 일에 비교를 할 것 같으면
기미지시(其未至時)에 : 그 아직도 이르지 못할 때에
설경백세(設經百歲)라도 : 설사 백년을 지난다 하더라도
역불능급(亦不能及)인달하야: 능히 미치지 못하듯이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적집광대선근자량(積集廣大善根資糧)하야 : 광대한 선근 자량을 쌓고 쌓아서
승대승선(乘大乘船)하고 : 큰 배에 올려서 대승선을 타고
지보살행해(到菩薩行海)하야 : 보살행의 바다에 이르러서. 대승의 배를 타고 보살행의 바다에 이르러서 그렇게 되면
어일념경(於一念頃)에: 일념경에
이무공용지(以無功用智)로; 무공용지로써 한순간에 무공용지에 아무 힘도 들지 않고 그저 바람 따라서 쑤욱 가는 그러한 경우와 같은 지혜로써
입일체지지경계(入一切智智境界)하나니: 일체 지지의 경계에 들어가나니
본유공용행(本有功用行)은 : 본래 있는 공용행은
경어무량백천나유타겁(經於無量百千億那由他劫)이라도:백천 나유타 겁이 지난다 하더라도
소불능급(所不能及)이니라 : 능히 미치지 못함이니라.
유공용과 무공용의 차이다.
우리가 금강경 공부할 때나 뭘 할 때 ‘그저 상없이 하라’고 들었다.
금강경 전부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을 사정없이 벼락치듯이 깨부수는 가르침이다. 그것은 반야지(般若智)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스님들이 한 철간 열심히 공부하면 뭔가 소견이 나온다. 화두에 대해서 어떤 자기 안목이 하나 생겼다면 예를 들어서 무(無)자 화두 하면 ‘무자 화두에 대해서 여러분들 아는 바를 답해서 보내 주시오’ 하고 해제가 되면 편지를 써서 전국 사찰에다 돌린다. 그것이 뭐하는 짓인가?
자기가 무자 화두를 알았으면 알았고 했으면 했지 다른 사람이 안 것과 비교를 해서 그래 ‘너는 나보다 못하고 나는 너보다 낫다’고 하는 그것이 전부 아상이다.
평생 공부를 해도 아상 하나 못지운다.
아상 하나 못지우는 그것이 여기 부동지에서 말하는 무공용과 유공용의 차이다.
평생 공부를 해도 유공용에 떨어져서 ‘내가 공부했다’고 하는 그 마음 그 상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된다.
‘내가 지금 아상에 떨어져서 하는 짓인가 아닌가’도 모르고 그냥 나부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 하나 캐치하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아 내가 아직도 너무 아상에 몰입되어서 그렇다’고 하는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것도 모르고 아상을 그냥 내놓으면 서로 잘 아는 사이라 하더라도 거북한데 그런 일이 참 너무 많다.
그래서 금강경은 겨우 오천자 밖에 안되는데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그렇게 여러번 읊조린다.
우리 병이 거기에서 기인이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생각까지는 아직도 상(想)덩어리가 물렁물렁하다. 간으로 치면 간이 물렁물렁해야 되는데 그것이 어떤 형상으로 굳어지면 간경화가 된다. 간경화까지 되면 아주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금강경에는 생각 상(想)자가 아니고 모양 상(相)자를 썼다.
모양 상(相) 자는 우리 간으로 치면 경화가 되었다는 뜻이다. 생각 상(想)자는 아직도 간에 병이 크게 많이 들지 않았고 유연하다.
생각은 바꿀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상 상(相)자를 쓰는 것은 경화가 돼서 어떤 형상화 되었다는 뜻이다.
형상화 되었다고 하는 것은 벌써 문제가 큰 것이다.
그래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은 형상 상자를 쓴다.
물론 어떤 번역에는 생각 상자로 번역된 책도 있긴 있지만 대다수가 형상 상자, 모양 상자로 되어 있다.
나[我]라로 하는 집착이 워낙 큰 문제이고, 우리 일상 생활을 하는데도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너무 경화되기까지 그렇게 자기 고집을 내세우고 자기 주견을 내세우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어려움이 되고 자기 자신도 힘들고 일상생활에서도 힘든 것이다.
물론 대한불교의 소의경전은 화엄경이지만, 우리 조계종에서 소의경전으로 삼는 경전이 금강경이다. 너도 나도 금강경, 속인도 스님도 금강경, 아이도 어른도 전부 금강경 금강경 하는 판인데 금강경에는 그 좋다고 하는 사성제 팔정도 부처님의 기본 교리라고 하는 것도 한 글자도 없고 그저 상이야기만 해놓았다. 왜인가? 왜 그렇게 되어 있는가? 그것을 왜 이렇게 우리 조사스님들은 숭상했는가?
내가 근래에 여러가지 정황을 생각해 볼 때 ‘아 역시 사람은 나라고 하는 그 상하나 때문에 살기는 하지만 나라고 하는 그것을 참 떼내기가 너무나도 어렵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수행을 아주 많이 한 어떤 스님에게 대중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대중들을 모아놓고 ‘야, 참 상내지 않기가 그렇게 어렵다. 이 세상에 상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 사람들이 ‘상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상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하고 이야기가 되었다. 그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스님이 있다가 ‘그런데 스님은 상이 없지 않습니까?’하고 조실스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조실스님이 빙그레 웃었다. 그 웃음이 무엇인가? 결국은 상이다.
상이라는 것은 그렇다.
예를 들어서 포수가 날아가는 매를 잡으려고 활을 잔뜩 겨루고 있는데 자기 옷은 물에 젖고 있는 것이다.
자기 옷이 물에 젖는 줄 모르고 매만 겨누고 있는 꼴이다.
그런 이야기가 조사 어록에는 부지기로 많다.
자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박수소리)
하강례
토란과 수선화
입승스님이 큰스님께 드리려고 고구마 한 박스와 감 한 박스를 가져왔다고 하시면서 올해는 고구마 수확이 많지 않아서 대신 토란을 사서 난로에 구워먹는다고 하셨다.
매일 한 두 개 세 개 먹으면 배도 부르고 염증도 잡는다는 토란은 곡성에서 제일 생산을 많이 한다고 하셨는데 큰스님이 일본수필 도연초 이야기를 하셨다.
“거기 보면 어떤 스님이 토란을 좋아해가지고 출가하면서 저그 집을 팔아가지고 토란 집에 갖다가 다 줘버려. 그리고 나서는 내 평생 여기 다니면서 토란 먹겠다고 그런 이야기가 있어.”
입승스님도 도연초를 두 번이나 읽었는데 그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내친 김에 큰스님이 젊은 시절 문학책을 읽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중국사람이 쓴 생활의 발견이라고 하는 유명한 책이 있어. 임어당. 내가 그걸 처음에 좋다고 해서 사서 읽는데 도저히 안 넘어가는 거야. 씨름 씨름 몇 날을 씨름하다가 어느날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 그걸 읽었어.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술술술 넘어가고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는 거야. 그때에 해인사 강원에서 법정스님 인연으로 학인들에게 맞춤법, 원고쓰기, 문학강의를 해서 모든 스님들이 문학에 바람이 나가지고 이광수 전집도 사서 읽고 문학서적을 많이 사서 읽었지. 법정스님 영향으로 문학에 바람이 나가지고 한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글을 쓴다 해쌌고.” 하면서 큰스님이 웃으셨다.
이날 법문을 듣다가 ‘꿈을 깨기 위해서는 발버둥을 쳐야한다’라고 하신 말씀과 문학책도 그렇게 ‘씨름 씨름을’ 하셔서 결국엔 ‘술술’ 읽어내셨다고 하신 부분이 오버랩되었다.
*
봉사하시는 분들에게 일일이 수선화를 나눠주신 스님이 계셨다. 회장스님이 수선화 이야기도 한참을 하셨다.
“은선암에서요 직지사. 토종이 있더라고요, 수선화하고 다알리아를 갖다가 심었는데 맨날 불사한다고 여기 파고 저기 파고 하니까 다알리아는 종적이 없어지고 수선화만 남았어요.”
추운데 수선화가 되느냐고 큰스님이 물으시자 부도밭에 심었다고 회장스님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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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두 분의 가까운 스님들이 열반하셔서 큰스님은 과천 남태령 정각사에도 가셨었고, 봉암사에도 가셨었다고 했다.
봉암사 적명스님과 함께 찍은 젊은 날의 사진도 보았는데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젊은 수좌 세 분의 모습이 풋풋했다. 지난 해 봄 극락암 명정스님이 열반하셨을 때도 적명스님과 큰스님이 나란히 앉아 공양하시는 사진을 찍었다고 보살님이 말씀해 주셨다.
운문사 학장스님이 큰스님을 위로해 드리고 싶어서 일부러 영결식날 봉암사까지 혼자 가셔서 헌화하시려고 흰 꽃을 들고 계신 큰스님을 멀리서 뵈었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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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PD가 인사를 오자 ‘이번에 행사를 잘 했다’라고 큰스님이 <대한불교 조계종 부산연합회 승보 공양 대법회>를 언급하셨다.
*
“또 새해를 맞이했어. 한해한해 퍼득퍼득 간다.”
하시면서 큰스님은 ‘2020년 좋은 해다’라는 말씀과 함께 70권째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책에 <전법륜(轉法輪)>이라고 써 주셨다.
일일(日日)이 꽃으로 장엄하며 나아가리
생사(生死)의 한가운데서도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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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큰스님 감사 합니다.
오래오래 강녕 하시옵소서~♡
나무 대방광불 화엄경
나무 대방광불 화엄경
나무 대방광불 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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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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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복습하는 즐거움!
참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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