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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오씨 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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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댁 손자 글방 스크랩 영랑생가(永郞生家)
오대댁(병연) 추천 0 조회 81 09.03.20 10:5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영랑과 강진

 

강진은 영랑얼음막걸리, 영랑화랑에 온통 영랑 뭐 라는 간판투성이다.

영랑이 이 고장에서 어떤 존재인지 짐작이 간다.

 

이런 강진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필자는 속초 영랑호 때문에

영랑이 속초 쪽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 적도 있었다

 

 

 

사진: 영랑얼음막걸리

 

 

영랑 김윤식(1903-1950)의 시는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하다.

필자 일행도 그 정도 배웠을 먹물은 들어 있건만 나이 들어 가물가물한지

국화꽃 지은 사람 이지? 또는 나보기 역겨워 가실 때는 아냐? 한다.

 

국화 옆에서는 미당(未堂 한자 약한 사람은 말당이라고도 함)서정주 고,

나보기가 역겨워 하며 진달래 운운 한 사람은 소월(素月)이라고 튕겨주며,

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을 들려주자 그제서야 아 맞아 하고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을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五월 어느날 그 하로 무덥든날

떠러져 누운 꼿닙마져 시드러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뻐처 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三百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옴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영랑생가

 

영랑생가는 강진군청을 마주보고 왼쪽으로 1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사진: 영랑생가 들어가는 길. 가로수가 끝나는 곳에 생가가 있다.

 

 

 

사진: 영랑생가 앞, 왼쪽에는 또 다시 영랑 이번엔 빌라가 있다.

 

시인의 생가는 초가집이지만 규모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크다.

하긴 그 세월에 일본 유학 갈 정도면 집안 재력이 상당했을 것이다.

(영랑은 1920년대 초 아오야마(靑山)학원 영문과 다니다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했다.)

 

입구를 들어가면 초가니까 행랑채라고 하긴 뭘 하지만

행랑에 해당하는 건물이 있고 그 앞에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비(詩碑)가 있다.

 

 

 

답사 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다시 읽어보니

영랑생가 소개하며 끝에 유씨의 특징인 까칠한 멘트가 달려 있다.

 

.소담한 초가 안채와 뒤뜰의 해묵은 동백꽃은

영랑의 시처럼 아름답지만 요새 만든 영랑 시비는

우악스러워 고가의 분위기를 망쳐버렸다..

 

 

 

사진: 인터넷에서 찾은 영랑시비. 유홍준 씨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쓸 때는 이런 생김새라 트집을 잡은 모양이다.

 

유씨의 평이 15년 전 이야기로 그 뒤 바꾼 듯 한데

유 씨 이야기가  거기에 영향을 끼쳤는지?

사람이 때로는 악질로 굴 필요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많이 세웠다.

미학적 운운 하며 뭘 망쳤느니 하기에는 필자의 식견이 태부족하지만

입구, 안채, 사랑채, 장독대 등등 가는 데 마다 놓여 있어 걸려 넘어질 지경이다.

 

 

행랑에 딸린 문으로 들어가니 안채가 보인다.

 

 

사진: 영랑생가 안채

 

측면으로 두 칸인 겹집에 툇마루를 갖추고, 끝에는 헌함(軒檻-나무난간)까지

돌렸으니 비록 초가라도 촌집치고 규모가 있다.

 

안채 오른 쪽에 장독대가 있고 그 앞에 오매 단풍 들겄네 시비(詩碑)가 있다.

 

 

 

장광에 골불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보며

-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니리

바람이 자지어서 걱졍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매 단풍 들것네

 

맞춤법이 지금과 다르고 전라도 사투리까지 섞여 알아 듣기 힘들다.

장광이란 장독대의 전라도 사투리라고 그런대로 알아 듣겠는데

골불이 무엇인가 했더니  골 불이 아니고 골붉은 이다.

. 

하여튼 시를 보면 근처에 감나무가 있어야 할 텐데 보이지 않는다.

찾다가 말았는데 나중 일행 중 하나가 뒤 안에서 감나무를 보았다고 한다.

 

생가 뒤쪽으로 이어진 산에는 동백과 대나무가 있다.

 

 

 

 

마당에서 산이 시작되는 곳에 시비(詩碑)가 또 있다.

 

 

 

사진: 마당에서 산이 시작되는 곳 동백나무 아래 시비(詩碑)가 있는데

그 주위에는 유홍준이 이 맘 때 남도에 피는 동백꽃에 대하여 친 구라 대로

“…목이 부러지듯 잔인하게 떨어져 풀밭에 누워 피를 토하고…” 있다.

 

 

 

동백닙에 빗나는 마음

 

내마음의 어?듯 한편에 끗업는 강물이 흐르네

도처오르는 아츰날빗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듯 눈엔듯 또 피ㅅ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잇는곳

내마음의 어린듯 한편에 끗업는 강물이 흐르네

 

 

맞춤법이 구한말도 아니고 거의 1500 년대 초 최세진의 훈몽자회 수준인데

사투리인지 고어(古語)인지 알아 듣기 힘든 말까지 들어있다.

 

도처오르는 은 돋아 오르는, 도도네는 돋우네 일 텐데 은결은 무엇일까?

 

내용 상 은(銀)물결 곧 은파(銀波)일 수 밖에 없겠는데

시인이 살던 당시 은결이란 말을 실제 썼는지?

아니면 시인이 만든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장독대를 지나면 사랑채가 보이고 사이에 잘 가꾼 정원이 있다.

 

 

사진: 사랑채로 이어진 정원

 

영랑 생존 시에도 이랬는지 아니면 복원하면서 가꾸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강진 같이 물산 풍부한 곳에 이렇게 아늑하게 살다 보면

사람이 전투적이 될 수는 없다. 그저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밖에.

 

 

 

사진: 영랑이 지내던 사랑채

 

격식 있는 대갓집 사랑채는 아니나 규모가 꽤 크지 않은가?

그런데 영랑 당시 집이 뒤틀렸는지 뒤 안에 또 있는 시비에

사개틀닌 古風의 퇴마루에 가 적혀 있다.

 

 

 

아즉 떠오를 긔척도 업는 달을 기둘린다

아모런 생각업시

아모런 뜻업시

 

이제 저감나무 그림자가

삿분 한치식 올라오고

이 마루우에 빛갈의 방석이

보시시 깔리우면

 

나는 내하나인 외론벗 간열푼 내그림자와

말업시 몸짓업시 서로 맛대로 잇스려니

이밤 옴기는 발짓이나 들여오리라

 

사개맞춤은 목조가옥 각 부분을 레고블럭 조립하는 식으로 맞추는 것이니

사개틀닌 툇마루란 그 중 마루가 뒤틀렸다는 뜻이다.

한식 목조가옥은 생각보다 까다로워 자칫하면 나무가 뒤틀린다.

 

사랑방 안에는 영랑의 모형을 만들어 놓고 그 옆에 모란 그림을 놓아 두었다.

 

 

 

영랑생가를 나오며 유홍준이 걸었던 딴지가 생각나는데

전문(全文)은 번잡스러우니 요점만 옮기면 이렇다.

 

 

그 어려운 정지용의 시에 곡이 붙어 향수가 국민애창곡이 되었는데

영랑의 시는 가락만 붙이면 바로 노래가 될 정도로 운율적인데

어째서 아직 노래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우에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풀아래 우슴짓는 샘물가치

내마음 고요히 고흔봄 길우에

오날하로 하날을 우러르고십다.

 

새악시볼에 떠오는 붓그럼가치

詩의가슴을 살프시 젓는 물결가치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 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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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3.23 16:02

    첫댓글 영랑 시인 초가집 생가 아늑한 고향집 향수를 느껴보며 "모란이 피기까지"는 "오매 단풍들것네"어렴푸시 시는기억하되 영랑님의 시라는점 새롭게 자세히 알게되어 감사합니다,볼수록 좋기만합니다,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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