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6-27 고향의 흙 냄세 맡으러 와룡방문
자유인 조동화는 6월 내내 바쁘지 않은 날이 없구나.
손녀딸 혜윤이와 놀아 주어야 하고, 모임에도 나가 친목회도 참석해야하고, 동고간들 만나 식사도 해야하고 옛직장 선후배들과 친목도 하다보니 왠 시간이 바쁜지 바쁘다 바빠..........
혜윤이와 놀아주고 잠자는 사이 오후가 되어 고향의 흙냄세 맡으러 내고향 김제 와룡을 방문하였지.
고향의 죽마고우 한용 친구집에 들리니 옥수수를 경작하여 수확을 했는데 농산물조합에 내 놓기전, 신 품종으로 찌지 않고도 먹는 당도가 높은 옥수수를 많이 주었다.
황한용 그는 국교1년후배이며 이리중학1년 후배이기도 한 고향마을 와룡 농촌에 정착한 죽마고우이다.
어린시절 삐비도 뽑아먹고, 산에가서 개구리도 잡고, 새도 잡고, 뒤동산에 올라가 딩굴고 놀고 내가 고구마도 한용이네 집에 가서 많이 얻어 먹었제.
죽마고우 황한용은 농사를 지으며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으며 장남은 육사를 졸업하여 중령으로 복무하고 있다.
황한용 죽마고우의 어머님은 93세로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며, 우리어머님보다 2살아래이시다.
죽마고우의 어머님 “태미떡” 어린시절에는 이름으로 알았으나 시집온 지역명으로 칭호하였다.
“태미댁”을 사투리로 “태미떡” 그렇게 불렀다.
죽마고우 황한용친구의 어머님이 건강하게 활동하시기를 조동화는 늘 기도하며 살아갈 것이다.
죽마고우 황한용 어머님의 만수무강 빕니다.
죽마고우 한용집에 들른후 100여미터 떨어진 산소에 들리었다.
나의 산소에는 납골당이 있고 봉분 세기가 있다.
묘역에는 납골당을 조성하여 고조부 증조부 작은어머니의 유골함이 안치되여 있고, 봉분으로는 조부님과 할머니합장봉분이 있으며 나의 부친과 모친봉분이 있으시다.
납골당에 계시는 작은어머니는 남원에서 시집온 박금례님이시다.
숙부에게 박금례님은 시집와서 딸과 아들을 낳았으나 아들 기승을 낳고 2년만에 저세상으로 가시었으니, 커 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지하에서 얼마나 통한의 시간을 보내시었겠는가.
숙부 조병무님과 숙모 박금례님은 신혼의 보금자리를 시골집에서 대가족이 함께 같이 살았기에 금실이 좋은 모습을 보아왔다.
아랫채에 숙부님은 신혼방을 차리고, 웃채 핼랑채에는 웃방 아랫방 두개가 있었는데 상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나 내동생들5명 13명이 한집에서 살았읍니다.
상상해 보시요. 한이블속에서 포개어서 잣지요. 그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읍니다.
오늘날 한국의 사회상은 다섯집중 두집이 혼자사는 세상으로 변하여 독거노인도 많고, 나홀로족이 많아 갈수록 개인주의 세상이 되얐지요.
도시 곳곳에 원룸이 왜 이렇게 많아. 그만큼 나홀로족이 많아지는거야.
잘못 되여가는 세상의 변화같은디......아이도 낳고 바른세상으로 갔으면 혀.
공원에 산책 나가면 무슨 강아지 끌고 댕기는 사람이 많은지 강아지 천국 되얐어.
조동화는 한 시절을 회고하며, 납골당을 다듬고 봉분 세기를 낫으로 벌초하였다.
산소 면적이 그리 크지는 않으나, 아무도 신경쓰는이 없고 오직 벌초는 장손인 나의 몱이여.
나의 시대가 가면 누구하나 손대는이 없어 산소가 풀밭으로 변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로구먼.
강아지세상, 조상도 모르고 산소는 풀밭세상.....
한탄가를 부르며 봉분묘역을 벌초하였지요.
정신혁명을 이룩하여 대한민국사회가 바른길로 나아가길 염원하나이다.
조동화의 벗님들아!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와 편리한 세상이 되어 조동화 이사람도 스마트폰과 함께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오.
스마트폰의 세상의 변화는 정이 깃들고 포근한 맛이 나는 꿈꾸는 세상은 아니여.
누가 그러더라구.
대한민국이 어쩌다 개같은 나라가 되얐는지 한탄하드라고...
아니 다섯집중에 두집이 혼자사는 세상이 정신나간 세상이 아니고 뭐여.
산중에 들어가 스님이나 될일이지 원룸에서 혼자살면 행복한거여.
오손도손 살면서 아이도 낳고 정이 깃들어야 살맛나는 세상 아니여.
공원에 개를 가지고 나오면 봉지하나 가지고 나와 냄세나는 개의 똥은 집으로 가지고 갈 일이지 그냥 버리고 가는거여.
공중도덕이 말살되야가는 현실을 보고 한탄가를 아니 부를수 없구나.
스마트폰세상의 병폐속에서도 편이함을 느껴야제.
조동화는 어디를 가든 지갑이 필요가 없네.
좋은 경치가 눈에 보이면 사진도 마음데로 찍고 좋은 세상 같은디, 인간의 우정과 희망은 빵점이여.
스마트폰이 지루함과 무료함을 달래주는 만능 요술방망이제.
조동화 이놈은 쓰잘띠 없이 저만 걱정없이 잘살면 되지 무슨 세상걱정인가..
우정이 깃들고 희망이 넘실데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어영부영 하루가 흘러가도다.
신록의 계절 6월도 저물어가고 무더운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위대한 자연의 교향악으로 건강과 행운을 기도드립니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합장한 봉분이여.
할머니는 1964.5.16. 57세에 파상풍으로 갑자기 일주일 앓다가 내가 이리중학1학년때 돌아가시었는데 하늘도 슬펐는지 장사지내는 날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조동화는 상여 앞에서 영정을 들고 철길을 거쳐 산너머 바떰으로 해서 선산까지 도착하였다.
이시절에는 동네에 상여를 보관하는 상여집이 있었는데 바떰에 있었다.
철거하지 않고 지금도 있었다면 문화재로 가치가 있었으리라.
할아버지는 1983.8.4. 77세에 노환으로 돌아가시었다.
봉분앞에는 비석을 세우는 풍습이 있어 할아버지 할머니를 추모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상석 제단도 설치해놓았다.
돌 꽃꼿이는 납골당과 같이 설치해 놓았는데 납골당의 돌 꽃꼿이는 분실하였다.>
<여그가 우리 어머님 아버님 봉분이다.
봉분을 벌초하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었다.
아들들 잘 되기만은 바라셨던 부모님 불효한 죄를 사모곡으로 대신합니다.
봉분앞에 난초가 피여 하늘나라에 계신 나의 부모님을 위안하는구나.
어머님은 1996년3월18일 69세 돌아가시었고
아버님은 1999년12월5일 73세 돌아가시었다.
감기증세로 낫겠지 하다가 낫지 않아 두어달만에 원대병원에 입원 진찰을 받아보니 폐암으로 판명되여 일주일만에 돌아가시었는데, 나의 세째동생 도권이 걱정을 많이 하시었었다.
봉분을 벌초하며 어머니 생각을 하다가 내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해지고 말았구나.
잘해드리고 싶어도 이세상에 안 계시기 때문에 목이 메어 어찌할 수가 없구나.
어머니라는 말보다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말이 있을까?
어머님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 !
비가 오나 눈이오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오직 자식걱정에 밤낮을 고생만 하시었던 어머니 연일정씨 정순봉님이시여!
시골사실적에 밥도 한상에서 먹지 않으시고 부억한켠에서 누른밥으로 끼니를 때우시던 어머님 모습이 눈에 선하여, 불효한 이자식은 눈물로 참회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말고 행복의 꿈나라에서 영생불멸하세요.>
조동화의 어머니의 여한가(餘恨歌)
우리어머님 정순봉님이 이세상에 아니계시고 저세상으로 가시고 어머니의 회한가를 읆어봅니다.
인간의 근본은 어머니로부터 세상에 나왔기에 어머니는 이세상을 떠나갔지만 언제나 어머니를 사모하면서 세상을 개척하며 살아간다.
나의 어머님 연일정씨(延日鄭氏) 정순봉(鄭順奉)께서는 모현동 옥호동에서 1928년도(소화3년) 음력 8월15일(양력 9월28일)에 태어나 1996년5월5일(양력, 음력은3월18일) 69세에 사망하시었다.
나의 어머님께서는 두 살때 아버지(나의 외할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나의 외할머니)를 26살 때 여의시었다.
어머님 정순봉님은 21살 꽃 다울제 숙명 처럼 혼인하여 6.25사변통에 장남 조동화를 이세상에 보내여 두 세 살씩 터울 두고 육남매 기르느라 철 지나고 해 가는 줄 모르는 채 살았구나!
꿈속에서도 그리던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는 조동화를 잉태하여 이세상에 보내여 주셨으니, 이세상 항해하며 행복한 세상을 항해 하는것이지.
어머니는 사랑의 여신(女神)이고, 희망(希望)의 여신이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다 품어 주시고, 애간장을 녹이며 모든 것을 내어주시었다.
어머니 정순봉(鄭順奉) "어머니" 라는 이름은 영원한 향수이며, 불러도 불러도 가슴속에 사무쳐 자꾸만 그리운 이름이여.
어머니의 마음 아들을 구하기 위하여 불구덩이도 들어가는 용기를 나는 압니다.
어머니의 고귀한 사랑...............................
★★★봄 여름에 누에치고, 목화 따서 길쌈하고
콩을 갈아 두부 쑤고, 메주 띄워 장 담그고
땡감 따서 곶감 치고, 배추 절여 김장하고
호박고지 무말랭이 넉넉하게 말려두고
어포 육포 유밀과 과일주에 조청까지
정갈하게 갈무리해 다락 높이 간직하네
찹쌀 쪄서 술 담그어 노릇하게 익어지면
용수 박아 제일 먼저 제주부터 봉해두고
시아버님 반주꺼리 맑은 술로 떠낸 다음
청수 붓고 휘휘 저어 막걸 리로 걸러내서
들 일 하는 일꾼네들 새참으로 내보내고
나머지는 시루 걸고 소주 내려 묻어두네.★★★
옮겨온 글로 할머니 어머니들의 삶이었다.
고향 산천 김제 와룡
조동화가 태어나고 자라온 마음속 깊이 간직한 고향산천 언제 가보아도 그립고 정든 김제 와룡땅 고향산천이다.
내가 와룡에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왔고, 조상대대로 이어져 온 땅이었기 마음이 서려있는 곳이여.
다정함, 그리움, 안타까움이 가는 어머님의 품안같이 따뜻한 고향산천 와룡이여.
현대인들에게 고향산천의 의미가 퇴색되여 가지만, 고향땅 와룡은 평안하고 포근하고 아름답고 선조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
와룡인들 외지에 나가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솔찬히 많은데 와룡땅이 풍수가 좋은곳인 한가봐.
조동화의 선산에서 바라본 내고향 와룡마을 모습이다.
<호박씨를 뿌려 놓았는데 비가 오더니 호박넝쿨이 생기가 돋아 몇딩이라도 따 먹을수 있겠구먼.>
기차길옆 내고향 옛집 와룡이여!
호랑이 담배피우던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호남선 기차길 옆 내고향 옛집 와룡이여!
내가 결혼하여 신혼때 교통이 불편한 와룡에서 익산까지(약15km) 출퇴근을 하였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였다.
호남선 와룡역은 작은 간이역으로 하루에 열차가 완행열차만 2-3개열차만 정차하였다.
버스도 없던 그시절 교통수단은 오직 열차만 있으니 신혼부부의 애환을 상상해 봅시다.
우리집에서 50여미터 떨어진 호남선 철길은 기차가 매일 수십차례 달린다.
내가 신혼시절 호남선 철길을 지나는 화물열차에 승무시 기관조사 조동화의 편리를 위하여 기관사님은 잠시 나의집 앞 철길에 기차를 정차시키면,
아내는 도시락을 기관차로 가지고 오던 추억이 있었다.
김제 와룡의 나의 어린시절은 우리의 전통사회 씨족 3대4대가 살았기에 우리집도 상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아버지 어머니 나 동생들과 대가족이 살아왔으나, 핵가족 개인주의 시대로변한 한국사회상은 세집중 한집은 혼자사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하네요.
조동화가 와룡에서 태어났을적 나의 둘째고모 조병례님은 나를 안고 엎고 귀여워 하시다 김제로 시집을 가시였다.
나의 둘째고모 조병례님께서 2021.3.5. 91세로 세상을 떠나시여 풀지못한 이야기를 풀길 없어 아쉬움이 사무쳐 온다.
나는 김제에 사시었던 조병례 고모님 살아생전 한달에 한두번 늘 아내와 방문하여 문안을 드리곤 하였다.
나의 고모님과 고무부님이 안치된 유해가 성남시 분당구 새나리오79번지에 있으니 하늘에 계신 고모 조병례, 참전용사이셨던 고모부 홍이표님을 뵈러 간다 하고 가지 못하고 있다.
장조카인 나를 안고 엎고 그렇게 이뻐하시었던 고모 조병례님이 저 세상에 가고 없으니, 온갖 아쉬움으로 점철된 조동화의 인생사 지나간 날을 회상하며 고모부 홍이표님이 내가 문안하고 나오면 차 뒤 꽁무니가 안 보일때까지 배응하던 하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아! 6월은 조동화에게 세상사 속세의 잡념을 버리고 조상에 대한 참회의 시간이 되어 감개무량하다.
이세상에 아니계신 님들이여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소서.
<조동화는 와룡의 죽마고우 92세이신 친구 어머님을 작년 4/27 문안하며 카네이션꽃을 만수무강하시라고 드렸다. 한해가 흘러갔으니 인자 93세이시구나.
죽마고우 한용 어머님은 정신이 아주 좋으시며 기억력이 좋으시고 조동화는 건강하게 활동하시기를 기도하며 살아갈것이다. >
<천주교 전주교구 김제 요촌성당 와룡공소 와룡공소장 최영범선생과 와룡신도들이 기념사진을 남기어 오래된 사진으로 보이는데 칼라사진이 있었구나.
죽마고우 한용친구가 설명을 좀 해주어야 할판이여. 나이드신 어르신분들은 저세상으로 가시고 한용친구 어머님만 살아계시구먼.
우리어머님 모습도 보이네.
와룡공소 역사는 요촌성당 관할로
71.8.15 신설(이때는 미사공간이 없어 아마 집에서 미사집전 했을거여)
77.9.21 성당기공식(요촌성당 박창신신부님 부임후 예산배정으로 기공식)
79.2.18 준공.
와룡공소는 공소장 최영범선생의 작고와 더불어 신도도 줄어들어 어느때 폐소하고 말았제.>
<옛날 옛적의 사진속 고향 어른들은 모두가 저세상 하늘 나라로 가시었으나 추억을 세기고자 회상해 보았다.
맨좌측에 서 계시는 안경쓰신 어른이 조동화의 아버지이시다.
시력이 좋으셨는데 아마도 멋이 있으라고 안경을 쓰신 것 같다.
아버님께서 이세상에 오시여 조동화를 만드시었다.
조동화의 아버지 조병옥님은 여느 아버지와 같이 큰아들 동화가 잘되라고 인도하고 기도하시었다.
키는 크지 않으셨지만 멋쟁이셨다.
늘 아버지는 양복차림에 넥타이를 메고 외출하시었다.
농촌에 사시면서도 일은 많이 하지 않으셨다.
이리도 한세상 저리도 한세상 즐거웁게 사시다 가시었으면 되얐지요.
인생이 100년도 못살면서 1000년어치의 걱정을 하고 살면 않되지요.
조동화의 아버지는 멋지신 분이었지요.
염문도 많이 뿌리시었으나 아들사랑은 극진 하시었지요.
사진속 와룡 동네 어르신들은 모두가 이세상을 떠나시었지만,
남원 광할루 구경을 가시었나 상상해 봅니다.
정구형 아버님도 우리아버님 옆에 서 계시는데 정구형 한번 알아맞추어 봐요.
정구형 아버님은 동네 세멘일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네요.
하도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정구형 아버님 조남이 "점자 동자"가 맞으신지 모르겠네요.
내가 머리를 헤메이다가 기억을 되살려 보았네요.
그러고 윗줄 오른쪽 첫번째 서 계시는 윤상용(1935년생)고향 어른도 보이네요.
조동화보다는 15세 더 드시었다.
윤상용님의 아들은 윤석창이여.
석창아우는 아버지가 않 게시어도 어머님 모시고 아들 노릇 잘 한다 하니 효자이로구먼.
석창아우 몇달전 너의 아버지 묘역 부근에서 만난적 있지.
석창아우 아버님 윤상용님께서 일찍 세상을 떠나시어 안타깝기 그지 없구려.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즐겁게 행복하시기를 기도하나이다.
석창아우 건강하여라. 행복하여라.
조동화의 아버님은 자식들에게 훌륭히 되라고 기대를 많이 하시었는데, 어디 자식들이 부모마음처럼 잘 따라줍니까.
양념딸 월선이를 많이 사랑해주고 아끼었다. 이세상에 아니계시니 잘 해드릴수 없네.
인생의 시계를 되돌릴수 있다면 아버지의 회한가를 부르지 않을텐데 조동화는 눈물로 참회하며 지극하신 아버님의 마음을 압니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아버지 존경합니다.>
아버지의 눈물
시인-이채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며 떳떳하게 정의롭게 사나이답게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
남자보다 강한 것이 아버지라 했던가!
나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위해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더라.
오늘이 어제와 같을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희망으로
하루를 걸어온 길 끝에서 피곤한 밤손님을 비추는 달빛 아래 쓴 소주잔을 기울이면 소주보다 더 쓴 것이 인생살이더라.
변변한 옷 한 벌 없어도 번듯한 집 한 채 없어도 내 몸 같은 아내와 금쪽 같은 자식을 위해 이 한 몸 던질 각오로 살아온 세월.
애당초 사치스런 자존심은 버린 지 오래구나
하늘을 보면 생각이 많고 땅을 보면 마음이 복잡한 것은 누가 건네준 짐도 아니건만 바위보다 무거운 무겁다 한들 내려놓을 수도 없는 힘들다 한들 마다할 수도 없는 짐을 진 까닭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소리가 없고 소리가 없으니 목이 메일 수밖에 용기를 잃은 것도 열정이 사라진 것도 아니건만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아 살아가는 일은 버겁고 무엇하나 만만치 않아도 책임이라는 말로 인내를 배우고 도리라는 말로 노릇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눈물이 없으니 가슴으로 울 수밖에 아버지가 되어본 사람은 안다.
아버지는 고달프고 고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이기에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약해서도 울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아버지는 혼자서 운다.
아무도 몰래 혼자서 운다.
하늘만 알고 아버지만 아는........................
조동화는 알어 아버지가 되어봐서 아버지는 아무한테도 말못하고 혼자서 울지.
아버지는 강해야 되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인이 되얐는데, 우리어머니는 솜리떡 양국떡 송방리떡도 보이는구먼. 떡이 뭐여 댁이 맞은데 사투리 떡으로 불리었지.
동네 어른들이 부부동반으로 놀러 나가시었는데 관망대 같기도 하다.
남자어른들은 여떫분인데 여자분들은 여섯분이여.
두분 어디갔어. 석창이 아우 숙제여. 어머니한테 물어보아 알려주어.>
<오래된 사진인데 정구형 어머님도 보이네.
순박한 시골 와룡의 아낙네들이여.
조동화어머님도 계시고.
흰저고리가 놀러가는데 외출복이었구먼.
어머님들은 거의 대부분 저세상에 가시었고 사진속 아가씨는 좋은 인연만나 어디엔가 시집가서 잘 살고 있으리라.
안고 있는 아기가 누구인지 장성하여 시집가서 자식 낳고 살고 있겠지.
석종이가 보이는데 가방을 메고 있구먼. 고인이 되였지만 선들아주머니(선들떡)도 보이고.>
<내가 어린시절 나의 할아버지가 비슷한 동네 어르신들과 사진을 찍어었구먼.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어디 금산사 가서 찍은 사진 같소이다.>
<나보다 16살 더 드신 숙부님의 신혼시절 사진이다.
내가 결혼하여 신방을 꾸린 그방에서 숙부님께서도 신방을 꾸며 사시었다.
금실좋은 사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으나 아이 둘을 남기고 작은 어머니는 하늘나라에 1965. 9. 4 일찍 가시었다.
생모가 살아계시었더라면 안고 있는 저 딸도 운명이 달라졌으리라.
이세상을 항해하며 어머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으리라.
숙부님은 1934년생으로 금년 89세이시다.
많이 걷고 운동하시어도 건강이 예전같지 못하다.>
<조동화의 둘째고모 조병례님이시다.
고모님은 2021.3.5. 91세로 세상을 떠나시여 풀지못한 이야기를 풀길 없어 아쉬움이 사무쳐 온다.
조동화가 와룡에서 태어났을적 1살때 나의 둘째고모 조병례님은 나를 엎고 댕기며 귀여워 하시다 김제로 시집을 가시였다.
나의 고모님과 고무부님이 안치된 유해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새나리오79번지에 있다.>
<조동화가 신방을 차린 와룡 고향집 아랫채에서 찍은 사진이구나.
꿈 많던 젊은이도 세월을 못 이기고 황혼의 노을이 되였구나.
1969년도 철도학교 시절 나의 모습이여.
나의 옛날 이름은 조재곤이라 하였고 김제조씨 시조 조연벽의 24세손으로 문량공 조간의 후손이다.
김제 와룡의 기차길옆 나의집에서 어린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기차가 검은연기를 내품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렁차게 움직이는 기차의 기관사의 꿈을 갖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국립철도학교 원서를 월연대에 사시었던 조찬익종친(운전조역)으로 부터 가지고 와 기관사과에 지원 합격후 1년간의 교육을 마치고 철도청공무원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다가 군에 입대 3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1975년 복직하여 40여년 철도를 천직으로 알고 2009년 정년퇴직했다.>
♣불변의 세가지 진리♣
● 제행무상(諸行無常)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형태 있는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 '나도 꼭 죽는다' 라고 인정하고 세상을 살아라.
죽음을 감지하는 속도는 나이 별로 다르다고 한다. 청년에게 죽음을 설파한들...자기 일 아니라고 팔짱을 끼지만 노인에게 죽음은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림과 같나니 하늘. 부모. 남편. 아내라 할지라도 그 길을 막아주지 못하고 대신 가지 못하고함께 가지 못한다.
하루하루, 촌음을 아끼고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외길이다.
●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헤어짐이 세상사의 법칙이다. 사랑하는 사람. 애인. 남편. 부인. 자식. 명예. 부귀영화. 영원히 움켜쥐고 싶지만... 하나 둘 모두 내 곁을 떠나간다.
인생살이가 한때의 흐름인 줄 알라. 끄달리고 집착하고 놓고 싶지 않는 그 마음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며 만병의 시초이니 마음을 새털같이 가볍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운 사람, 피하고 싶은 것들과 반드시 만나게 된다.
원수. 가해자. 아픔을 준 사람. 피하고 싶은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며, 가난. 불행. 병고. 이별. 죽음 등 내가 바라지 않은 일도 종종 나를 찾아온다.
세상은 주기적 사이클 나도 자연의 일부인 만큼 작은 사이클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이를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이라 한다.
현명하고 지혜롭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은 능히 헤쳐나가지만우둔하고 어리석고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은 파도에 휩쓸리나니 늘 마음을 비우고 베풀며 살라.
- 좋은 글 -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다 생각해 보듯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흔히들 인생이란
공허한 꿈이라든가
물거품 같고 뜬구름 같다던가
불확실한 향해라던가
죽음을 향한 행진이라던가
꼭두각씨 놀음이라던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인생이란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으앙! 하고 울며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과 만나고
형제 친척들과 만나고
남편 아내 자식과 만나고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그러다가 다시 하나 하나 헤어져서
마침내 혼자서 죽어가는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
아득한 과거로부터
인생은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생로병사 희로애락 속을 그렇게 살아왔다.
만날 땐 미리 헤어질 준비를 하고
헤어질 땐 다시 만날 꿈을 안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돌고 도는 우주처럼
인간도 영겁다생을 그렇게 흘러간다.
만남은 깨달음이요 재생이요 창조요 환희이며
헤어짐은 인고요 진통이요 방황이요 기다림인데.
인생은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
===마음,마음,마음 중에서===
인생70고개를 넘어간 이세월 이 나이에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만한 나이지요.
우리세월은 아름다운 것, 즐거운 것, 행복한 것, 맛있는 것, 추억할 것, 배려할것을 좇아 삶을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이여.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작새의 모습을 감상하며 눈을 즙겁게 하자구.
<길조의 기운을 나타내는
상서로운 동물 아름다운 공작새를 감상해 봅시다.
공작새는 덕을 상징하며, 복되고 좋은일이 생긴다고 하네요.
조동화는 자연의 절경도 좋아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새 공작새를 감상하며 아름다움을 느끼며 눈을 즐겁게 하지요.
꼭 동물원에 가지 않아도 화면으로 볼수 있어 스마트폰 IT세상에 감사하는거여.
즐겁게 살자. 감사하며 살자. 이것이 조동화의 신조여!
내눈에 감사하는거여. 내눈이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공작새를 감상할수 없제. 기왕 사는 인생 감사하며 살아야지.>
인도의 국조 공작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작새의 정확한 명칭은 '인도공작(Indian Blue Peafowl)' 입니다. 인도가 원산지인 이 인도공작은 화려한 꼬리 깃털을 주요한 특징으로 가지고 있는데, 인도에서는 예로부터 공작새의 깃털이 힘, 건강, 권위를 상징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옛 선조의 지혜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공작새의 생활 습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청록빛에 화려한 무늬의 깃털을 가진 수컷 공작새들은 짝짓기 시기가 되면 경쟁적으로 암컷을 향해 구애를 펼칩니다. 수컷이 깃털을 뽐내는 모습을 지켜본 암컷은 그 중 깃이 가장 길고 화려한 수컷을 짝짓기 대상으로 선택합니다. 깃털이 화려하고 무늬가 선명하다는 것은 그만큼 수컷 공작새가 강하며, 생존능력이 좋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317년경부터 약 200여 년간 인도를 통치해온 마우리아 왕국은 공작을 상징으로 삼았던 최초의 나라였습니다. '마우리아'는 '공작'이라는 뜻으로, 이 왕국의 선조가 정원에서 공작을 관리하던 관리인이었던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또한 인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왕자인 브리슈니 부족의 크리슈나 왕자는 언제나 공작 깃털이 꼽혀있는 머리띠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리슈나는 훗날 목축과 농업의 신으로 숭배되었는데, 후대에 전해지는 그림이나 이야기 속에서 크리슈나는 늘 공작 깃털로 만든 왕관을 쓴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 인드라 또한 공작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인드라는 공작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공작을 타고 날아다니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신입니다. 이처럼 공작새는 역사와 신화를 통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함께 해 왔으며 인도의 문화에서 결코 뗄 수 없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인도의 여러 신화는 공작새가 힘과 번영을 의미하는 새이자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성한 새로 자리잡게 하였습니다. 인도의 왕들은 자신의 권위를 보이기 위해 대대로 정원에 공작새를 길렀으며, 수컷의 깃털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짝짓기 시기가 되면 귀한 손님을 초대하여 함께 공작새를 구경했습니다. 공작새는 왕족을 중심으로 일반 국민들의 생활에까지 밀접하게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길에서 공작새가 보이면 절대 해치지 않고 먹이를 주어 보살폈습니다. 또한 천이나 장식물에 공작새의 깃털 모양을 그려넣으며 공작새의 아름다움을 찬양했습니다. 이러한 관심과 사랑에 힘입어 1960년대에 이르러 공작새는 비로소 인도의 국조로 공식 지정되었고 '인도공작'이라는 본래의 명칭에 맞게 현재는 인도의 가장 유명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흰 공작의 아름다운 자태 자바공작(P. muticus)과 인도공작(P. cristatus)의 두 종류가 있다. 자바공작의 수컷은 날개길이 약 55cm, 꽁지길이 약 60cm이다. 몸빛깔은 녹색이고 목덜미는 파란색을 띤다. 머리 위에는 끝이 뾰족한 꽃술 모양 장식깃이 곧게 서 있으며 얼굴은 잿빛이 도는 흰색이다. 암컷은 약간 작고 온몸이 갈색빛을 띠고 있다. 번식기가 되면 수컷은 동그란 무늬가 있는 윗꽁지덮깃을 부채모양으로 벌리면서 암컷에게 구애행동을 한다. 보통 이 깃털을 꽁지깃으로 생각하나 본래의 꽁지깃은 그 밑에 있다. 인도공작은 자바공작보다 약간 작다. 날개길이는 약 50cm이며 꽁지깃도 짧다. 머리의 장식깃은 부채모양이고 비녀를 꽂은 모양과도 비슷하다. 수컷의 목은 새파랗고 등은 청동색이다. 암컷은 온몸이 갈색을 띠며 수컷보다 약간 작은 편이다. 인도공작의 개량종으로 온몸이 흰 백공작과 수컷의 날개만 검은 공작도 있으나 근래에는 드물다. 인도공작은 인도의 나라새이기도 하다.두 종류 모두 밀림의 물가에서 나무열매와 벌레 따위를 먹으며 산다. 둥지는 땅 위에 잔가지나 풀을 모아서 만들고, 6∼10개의 흰색 알을 낳아 암컷이 품는다. 새끼는 약 24일 만에 부화하며 부화하는 즉시 걸을 수 있다. 유럽에서는 옛날부터 고기 맛이 매우 좋아 고급 요리에 사용하였다.
<출처 두산백과>
아름다운 자태의 공작새
공작새는 꿩과(Phasianidae)에 딸린 조류.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꼬리 날개는 정확하게 말하면 꼬리 날개가 아니라 그 윗부분에 있는 상미통(上尾筒)이 늘어난 것으로 구애행동에 필요한 신체구조이다
공작새는 수컷만이 꼬리를 부채처럼 펴서 암컷에게 교신할 수 있다
공작은 날기도 좋아하며 길고 화려한 털을 나부끼면서 제법 멀리까지 날아간다
수컷은 아름다운 꼬리 날개를 펴고 암컷에게 사랑을 전한다 나무가 많은 숲속에서 살며, 먹이를 구하는 일과 잠자는 행위는 언제나 일정한 곳에서 행하는 습성이 있다.
<공작새는 꿩 科(Phasianidae)에 속하는 새로, 몇 종(種)의 화려한 조류깃이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생김새가 꿩과 비슷하나 몸집은 더 크다.
공작(peacock)은 꼬리가 무거워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지 못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공작도 분명 새이다.
공작은 저녁에 지붕이나 나무에 안식처를 찾기 위해 날아다니며 또한 많은 천적들을 피하기 위해 안전한 장소로 옮겨 다니기도 한다
공작새는 우리가 흔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동물이다.
공작새의 가늘고 긴 깃털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람들은 공작새를 좋아하지만 공작새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공작새를 좋아하지만 공작새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꿩의 수컷 장끼의 아름다움이 보기가 좋아 화면으로
눈의 즐거움을 맛보고자 상서로운 장끼의 모습을 감상해보자.
누가 동화의 마음을 알까?
오직 이세상은 내가 생각하는데로 되는거여.
이것이 나의 행복이여.
편리한 스마트세상은 나의 것이여.
장마의 계절에는 집에서 아름다운 새들의 합창에 취해보자.
꿩( 학명 : Phasianus colchicus)
꿩은 털이 아름다워 상서로운 존재로 받아들어져 신비로운 새로 여겨졌으나, 고기가 맛이 좋아 꿩의 신비로움나 호기심이 없어졌다.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며 성질이 급한편으로, 꿩고기가 맛이 있어 많이 사육한다.
꿩이 날 수 있는 거리는 매우 짧고, 날 때의 속력은 시속 약 60킬로미터 정도.
꿩이라 불리는 이유는 "꿩-꿩-"하고 울기 때문이다. 실제로 들어보면 금속 양동이를 두드리는 것처럼 굉장히 높은 쇳소리로 운다. 전체 몸길이는 대략 수컷이 80 cm, 암컷이 60 cm 정도이다. 생김새는 닭과 비슷하나 꼬리깃이 길고 발톱이 5개이다. 수컷과 암컷의 몸 빛깔이 아주 다른데, 흔히 얼굴이 붉고 빛깔이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수컷을 장끼, 단색의 보호색을 띠는 암컷은 까투리라고 부른다.
☛수컷: 장끼
암컷보다 훨씬 크며, 밝고 화려한 색상의 깃털이 특징이다. 또한 얼굴은 파란 바탕에 눈 주위가 빨간 잉크를 쏟은 것처럼 붉다. 한자로는 웅치(雄雉)라고 한다.
☛암컷: 까투리
꺼병이처럼 깃털 색깔이 어두운 단색이다. 이는 주변 환경에 잘 녹아들기 위한 보호색이다. 한자로는 자치(雌雉)라고 한다.
===나무위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