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線의 여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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線의 여행 아주 오래전 미국 오레곤주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조그만 포구에 ‘The smallest harbor in U.S.A.' 란 표지판을 선명히 달아놓은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관광객 끄는 방법도 가지가지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작은 포구는 어디에 있을까요? 글쎄요, 잘은 모르겠으나 제주도 서귀포시 월평포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레곤에서 보았던 포구와 비교할 수 없게 작은 2백 평 쯤 되는 미니포구입니다. 소형 보트 10척이면 부두가 가득 찰 만큼 작습니다. 그런데 포구 형태가 아주 신기합니다. 부두는 암벽에 둘러싸여 있고, 작은 배가 드나들 만큼 좁고 깊은 수로가 바위 틈새로 나 있습니다. 절벽위에서는 잘 보이지만 바다 쪽에서 보면 내부를 볼 수 없습니다. 007영화 같은 곳에 나오는 비밀병기를 숨겨놓은 요새를 연상케 합니다. 며칠 전 이 포구에서 가벼운 트레킹 복장을 한 3백여 명의 남녀노소가 모였습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기획한 간세다리 걷기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간세다리는 방언으로 ‘게으름뱅이’를 뜻합니다. 이글을 계속 읽으면 왜 이런 말이 붙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참가자는 가족끼리, 연인끼리, 나홀로족 등 다양했습니다. 말씨를 종합하니 토박이 제주도 사람이 제일 많았지만 서울 사람도 꽤 됐고, 간간이 경상도 사투리도 들렸습니다. 젊은 여자 네댓 명은 각자 서울을 출발했는데 제주공항에서 낌새를 보고 ‘간세다리’ 여행객인 줄 알고 즉석에서 일행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가수 양희은씨도 배낭을 지고 간세다리들 틈에 끼어 있었습니다. 제주도 구경, 대부분이 해보셨겠죠?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구경해보셨나요? 차를 타셨습니까, 자전거여행을 했습니까? 혹시 몇 시간씩 걸어서 구경해 본적은 있나요? 여행을 ‘點’과 ‘線’으로 분류해봅니다. ‘點의 여행’은 차를 타고 관광 포인트를 찾아 방문하고 다음 행선지로 옮기는 식의 여행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여러 곳을 중점적으로 보는 대부분의 관광방식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線의 여행’은 탈 것에 의존하지 않고 걸어서 하는 여행을 말합니다. 두 발로 걸으며 산천경개도 구경하고 인간과 땅과 공기 내음을 맡으며 하는 여행입니다. 아직 걸을 수 있는 기력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線의 여행을 하는 것도 건강에 좋고, 자연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수양, 요새말로 내공을 쌓는데도 좋을듯합니다. 제주올레의 간세다리 걷기는 완벽한 線의 여행입니다. 제주 해안선은 약 200킬로미터, 그 중에서도 서귀포 쪽 해안 100킬로미터가 훨씬 지형이 다양하고 그래서 걷는 재미도 있고 보는 즐거움도 큽니다. 월평포구에서 서쪽으로 약 18킬로미터를 걷는 제주올레 제4코스는 제주도에서도 가장 로맨틱한 해변길입니다. 절벽길, 숲길, 개울길, 농로, 송림, 백사장, 대나무길, 자갈길, 해식동굴, 굿당길이 있고 조그만 오름도 하나 넘습니다. 간세다리 걷기에는 철칙이 하나 있습니다. 올레지기 기수(旗手)보다 결코 앞서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도 물론 말릴 사람은 없습니다만, 아무도 안 알아줍니다. 솔바람 부는 월평 해안
월평해안은 일반 관광객들이 전혀 모르는 숨어 있던 비경인데, 제주올레가 이번에 길을 텄습니다. 만곡형태의 해안선은 거의 2킬로미터에 걸쳐 백척이 넘는 절벽으로 둘러쳐져 있고 절벽 위를 따라 소나무들이 연달아 서 있습니다. 이 소나무에 바다를 타고 온 봄바람이 부딪치면 “쏴~ 쏴~” 하는 소리와 함께 서늘한 솔바람으로 변합니다. 간세다리 3백여 명은 아무도 걷지 않았던 이 길을 걸으며 솔바람을 맞았습니다. 때로는 계곡 비탈길의 상록수림 속을 탐방하기도 하고, 느닷없이 고목등걸에 세워진 굿당을 보며 살아 숨쉬는 무속신앙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백합화원을 지나기도 하고 농부의 감시를 받으며 마농(마늘)밭을 조심조심 건너가기도 합니다. 야생화가 활짝 핀 해변가를 걸으며 현무암 만물상이 바다를 수놓은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코스의 또 하나의 특징, 그건 제주도에서도 유난히 새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線의 여행이 주는 맛은 우리가 자연을 구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이 우리의 모든 것을 쳐다보게 우리 몸을 자연 속에 내맡기며 걷는 것입니다.
제주 컨벤션센터가 들어선 바닷가는 지삿개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상절리로 유명한 해변입니다. 송림 사이로 난 산책길은 아스콘으로 편안하게 포장됐고, 곳곳에 공원시설을 만들고 울타리도 돌을 잘 깎아 만들었습니다. 정원수는 거의 외래종인 워싱턴야자수가 한 아름이 넘게 자랐습니다. 點의 여행객들에겐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된 길이 좋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월평 오솔길을 걸어온 線의 여행객에겐 그렇게 맛있는 길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컨벤션시설을 최첨단으로 만드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만, 해변가를 공원화하면서 자연의 90%를 치우고 그 자리를 서울의 호텔정원 같은 곳에서나 어울릴 인공으로 채워놓은 것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해안 절벽을 따라 늘어선 소나무와 덩굴식물은 이 지역의 독특한 생태인데, 바다조망을 위해서인지 소나무만 남기고 그 사이에 초목은 모두 제거해버린 것이 마치 도시의 가로수를 보는 듯 볼품이 없었습니다. 이 보다 20년 먼저 개발한 신라호텔 일대의 자연보전 상태보다 후퇴한 것이니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나 자연의 미래가치를 제대로 내다보지 못한 대실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베릿내의 추억 베릿내는 중문 천재연 폭포가 흘러 바다로 빠지는 냇물의 이름입니다. 한문으로 ‘星川’이라고 쓰니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그 해변은 까만 먹돌이 파도에 휩쓸려 굴러가고 굴러오는 소리가 일품이었는데 하천 하구를 방파제로 막아 요트 마리나를 만들면서 경치도 변했고 그 먹돌 구르는 소리도 없어졌습니다. 작은 먹돌은 사라지고 바닥에 묻혀있던 큰 붙박이 돌들이 해변을 가득 메웠습니다.
지금도 어디엔가 사는 해녀들이 무사기원을 위해 굿하러 찾아오는 게 분명한 듯 길가의 굿당에는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천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올레 제4코스에는 오름도 있었습니다. 바로 베릿내 마을 뒷산으로 소나무 숲으로 덮여 있는 베릿내 오름입니다. 해발 101미터로 별로 높지 않지만 올라보면 오름의 요소는 다 갖추고 있습니다. 나무계단 수백 개를 타고 올라 가기만하면 꼭대기 전망대에서 솔바람을 맞으며 넓은 태평양, 중문관광단지, 한라산 등을 시원하게 내다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베릿내오름 정상에 있는 굼부리, 즉 분화구입니다. 마치 말밥굽 모양으로 패여 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 두어 개의 크기인 굼부리 안을 들여다보면 이곳 주민들의 문화와 경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경사면을 따라 무덤이 여러 개 있고 아직도 노란 열매를 단 밀감 과수원이 있습니다. 굼부리는 예부터 풍수가들의 관심을 끌어 물만 고이지 않으면 으레 무덤이 많습니다. 멀리서도 수입석재로 만든 까만 비석이 세워진 것을 보면 자손들이 잘 된 모양입니다. 바닷가 굼부리는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밀감과수원이 생긴 것입니다. 오름 걷기는 흙길을 걷는 것이어서 참 느낌이 좋습니다. 線의 여행이 아니라면 베릿내의 내력을 이렇게 밟아가며 구경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모래가 그리운 낙타
낙타보다 더 불쌍한 것은 물개와 바다사자들인 것 같습니다. 간세다리들이 지나가자 수조에 수용됐던 물개들이 버릇이 된 탓인지 재주를 넘는 것이었습니다. 그 좁은 수조안에서 빨리 움직이다 콘크리트 벽에 부딪친 탓인가, 아니면 조련사에게 기합을 받아서일까, 이 놈들의 정수리에는 여기저기 상처자국이 많았습니다. 인간에게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면서도 처우는 변변치 않아 보였습니다. 바로 인근 수조에서도 캘리포니아산 바다사자가 비슷하게 좁은 물속을 헤엄치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모래바람이 그리운 낙타에게 비바람을 몰고 오는 넓은 대양은 별로 매력없는 곳이지만, 캘리포니아산 바다사자에게는 불과 50미터밖에 있는 태평양 파도소리가 참을 수 없는 향수를 느끼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뿐더러 모래 위를 걷거나 더 큰 수조에서 헤엄칠 행복도 영영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물개야 그럴 수 없지만 차라리 낙타는 바닷가 모래사장 위를 걸어 다니게 하면 멋있는 구경거리가 되겠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파도소리 듣기
옛날 이곳에 호텔도 없고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았을 때는 모래톱이 긴 백사장을 ‘진모살’(긴 모래)라 했고 모래톱이 짧은 백사장을 ‘존모살’(작은 모래)로 불렀다고 합니다. 아마 이곳을 유일하게 지나다녔던 해녀들에게는 이런 이름이 실용적이며 편했고 ‘해수욕장’같은 현대어는 범접하기 어렵게 낯설었을 겁니다. 존모살 옆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절벽 위는 바로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경치 좋은 중문골프장 10번 홀이 있습니다. 골퍼들이 태평양을 향해 골프공을 날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곳입니다. 그러나 골퍼들은 게임에 몰입한 나머지 모래톱에 부서지는 파도의 숨소리를 듣는 간세다리들의 여유로움을 느끼지는 못할 것입니다. 들어도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 파도소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배 언론인 중에 부산에 고향을 둔 이두석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렁이는 파도를 보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고만 온몸의 DNA가 모두 일어나 춤추니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게 되는 기라.” 파도소리는 인간 뇌세포에 각인된 원초적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낙사만더가 얘기했던가요, 인간은 원래 물고기에서 진화되어 나왔다고... 올레 제4코스를 따라 걸으면 파도소리 하나는 실컷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해변을 따라 파도소리가 제각각 다릅니다. 같은 바닷물인데도 거대한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 모래사장에 멍석처럼 말려오면서 저희들끼리 부딪치는 파도소리, 자갈밭을 구르는 파도소리가 모두 저마다 특성을 드러냅니다. 봄비를 흠뻑 맞다 ‘존모살’을 지나면 절벽을 끼고 울퉁퉁한 갯바위길을 1킬로미터 쯤 걸어야 간이 포장된 해변도로가 나옵니다. 원래 아무렇게나 쌓인 돌무더기 때문에 걷기가 험한 곳이었는데, 간세다리 여행객들을 위해 제주도에 주둔하는 해병대 91대대와 93대대 및 해군 장병들이 자연 상태를 최대한 살리면서 울력으로 길을 정리하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제주올레측은 길 이름을 새로 ‘해병대길’이라고 붙여놓았습니다. 불러보니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 곳 해안마을에는 옛날부터 남자들은 으레 군복무를 해병대에서 마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전통까지 있다니까요. 돌길을 걸으면 딴전을 부릴 수가 없습니다. 헛디디면 발목을 삐기 십상입니다. 그래도 흘끗흘끗 바다를 보면 검푸른 물결이 현무암 돌에 부서지는 모습이 시원하고, 바로 고개를 들면 백척이 넘는 주상절리 절벽이 절경을 이룹니다. 이 길은 點의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올 일이 없습니다. 자동차로만은 쉽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낮인데도 인적은 없고 해조음만 울립니다. 겨울에도 남향 절벽 틈에는 야생화가 피고 파란 싹이 돋아날 정도로 한국에서 제일 먼저 화신이 전달되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바위도 보고 파도도 보고 야생화도 보고 하늘을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이 코스에는 파도에 바위가 깎여 만들어진 해식동굴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들렁궤’는 사람이 나다닐 수 있는 통로 동굴이고, ‘다람쥐굴’은 옛날 선사유적지입니다. 이 굴들이 바다 수위보다는 10미터는 족히 높아 보이는 곳에 위치한 것을 보면 옛날 바닷물의 수위를 짐작해볼 수도 있습니다. 해병대길을 걸을 때 이미 봄비가 촉촉이 얼굴을 적셨습니다.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봄비를 맞으며 걷는 것이 그렇게 춥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얀 비닐 비옷을 입은 올레꾼들이 해안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지만 그들의 얼굴에 서둘거나 불편해하는 기색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모두가 웬만한 비는 맞겠다고 마음먹고 덤벼든 간세다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후 6시 간세다리 중에서도 게으름뱅이인 필자가 마을 이장님이 마련한 날오징어 한조각과 소주 한잔의 몰래 응원을 받으며 제일 꼴찌로 종착지인 난드르 당케에 도착했습니다. 앞에는 높이 삼백척의 ‘박수 절벽’의 웅장한 모습이 이슬비 속에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바다냄새를 맡으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7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3백여 명의 간세다리들을 이끌고 18킬로미터 걷기행사를 마친 ‘제주올레’ 서명숙 사장이 필자에게 다가섰습니다. “좋수게~.”(좋지 않습니까) 線의 여행,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가뿐합니다. 올레 20여 년 동안 기자생활(시사저널 편집장과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역임)을 해오던 서명숙씨는 몇 년 전 피말리는 기자생활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염증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서 되나?”란 물음을 안고 정처 없이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걸을만한 길은 모두 문명으로 차단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성 야고브가 예수사후 스페인전역을 돌며 전도했던 장장 8백킬로미터의 도보순례길, 즉 ‘산티아고길’을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주올레’를 탄생시키기 위한 산고의 아픔이었던 모양입니다. 서명숙씨는 작년 그렇게 동경했던 ‘산티아고길’ 순례도보여행을 했답니다. 긴 여행기간 중 만난 영국여성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처럼 스페인을 찾을 수는 없다. 저마다 돌아가면 자기 나라에 까미노(길)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그곳에서 쉬어가고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그는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향 제주의 옛길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사라진 길과 다정한 올레들을 되살릴 수는 없을까. 끊어진 길을 다시 이을 수는 없을까.” 제주의 전통가옥에는 대문이 없습니다. 대신 긴 돌담길이 동네 큰길과 집 마당을 연결하여 줍니다. 이 길을 ‘올레’라고 합니다. 또한 인토네이션을 붙여 ‘올레?’라고 말하면 묻는 말 “오겠느냐?”의 뜻이 되기도 합니다. 그는 귀국하자 곧 ‘제주 올레’ 라는 이름의 사단법인을 만들었습니다. 제주에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을 받으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걸어야 하는, 아니 한달쯤이라도 걸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자동차의 도움도, 방해도 받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걷게 해주는 것이 꿈입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동네마다 돌아다니면서 옛길을 걷고 그 유래를 공부합니다. 입소문을 타고 제주올레는 서울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지고 있습니다. 서명숙 사장은 대형 여행사로부터 제휴하자는 제안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제의가 당황스럽습니다. 애초 영리목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뜻은 없었고 그래서는 사람에게도 자연에게도 뭔가 잘못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모양입니다 |
첫댓글 언제나 그리운 고향이 어릴 적 모습이길 바래어 보지만 이렇게 글로나 옛 정취를 느끼게 하네요. 퍼가도 괜찮은 것 같에서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