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성상납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룬 영화 <노리개>(감독 최승호)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18일 개봉한 이 영화는 첫날 전국 255개 상영관에서 총 2만 1086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3위를 기록했다. 제작단계에서부터 연예계 성상납 문제를 소재로 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노리개>는 자연스럽게 지난 2009년 자살한 여배우 장자연씨를 떠올리게 만든다. 실제로 이 영화는 이 때문에 기획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연예계의 고질적 치부인 성상납 로비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다보니 대기업과 매니지먼트사 등이 영화제작에 참여하기를 꺼려했고, 제작과정 중에는 외부로부터의 자본 외압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그들은 '장자연 사건'으로 이미 큰 홍역을 치룬 터라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의 제작과 상영이 마냥 불편했을 것이다. 이제는 시간이라는 망각의 커튼 뒤로 가려져버린 2009년 그 무렵 그녀를 중심으로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 젊은 여배우는 왜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시간을 거슬러 2009년으로 돌아가 보자.
- <장자연 사건은 2009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초대형 스캔들이었다. 출처:구글이미지>
2009년 3월 7일 탤런트 겸 영화배우인 장자연씨가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된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여배우의 단순자살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어느날 실명과 지장이 찍힌 한 문건이 언론에 전격적으로 공개된 이후부터였다. 이 문건에는 장자연씨가 술접대와 성상납을 했다는 사람들의 실명과 폭행 등의 범죄 사실 등이 적혀 있었고, 이로 인해 그녀가 말할 수 없는 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호소하는 내용들도 있었다. 문건이 공개되자 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갔다. 문건에 나와있는 언론사 대표, IT업체 대표, 금융업체 대표, 방송국 드라마 PD 등이 줄줄이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고 마치 들불처럼 연예계를 둘러싼 대형스캔들로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2009년 4월 6일에는 민주당의 이종걸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당시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장자연 문건에 따르면 당시 조선일보 방사장을 모셨고, 그 후로 며칠 뒤 스포츠조선 방사장을 모셨다고 했다. 보고 받았나? 이 때문에 경찰이 늑장 대처를 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장자연 리스트'에 언급된 언론사 대표가 조선일보의 방상훈 사장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이로써 세간에 떠돌던 유력인사들의 일부 실명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은 사회의 유력인사들이었다. 출처:구글이미지 검색>
우울증에 의한 단순자살로 처리될 사건이 장자연의 전 매니저에 의해 유서와 성상납 문건이 공개되고, 급기야 국회의원까지 나서 경찰의 늑장대처를 추궁하자 경찰은 뒤늦게 재수사에 나섰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하겠다"며 사건 수사에 성역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이는 국민과 언론을 향한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늑장수사와 뒷북수사는 물론이고 '장자연 리스트'에 올라있는 핵심인물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질타대로 대한민국 언론권력의 핵심에 있는 언론사와 그 사주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했던 것이다.
41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수사팀이 모두 27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고, 통화 내역을 14만여 건이나 조사했다. 참고인으로만 무려 118명을 조사했고, 수사를 위해 확인한 계좌와 신용카드 조회 건수 만도 955건에 달할만큼 경찰수사는 요란스러웠다. 그러나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된 다섯 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사건의 핵심인 '성접대 의혹'은 아예 빠져 있었고, 문건에 언급된 언론사 대표, IT업체 대표, 금융업체 대표, 방송국 드라마 PD 등 10여 명의 이름 역시 사라져 버렸다.
사건을 이어받은 검찰의 수사도 경찰과 다르지 않았다. 장자연의 소속사 대표와 전 매니저만 폭행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 처리하며 수사를 종결지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 여배우가 목숨과 바꿔가면서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사회유력인사들의 성상납 문제는 가진 자와 있는 자들의 세상인 대한민국에서는 절대로 드러나서는 안되는 일급기밀이었다.
- <조선일보의 명예, 그러나 한 여배우가 그 때문에 자살했다, 출처:구글이미지 검색>
현재 조선일보와 방상훈 사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서 재판을 진행 중에 있다. 조선일보와 방상훈 사장은 '방상훈 사장이 장씨로부터 부적절한 술접대와 성상납을 받았다'는 의혹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제기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지난 2011년 3월 민주당의 이종걸의원,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을 상대로 20억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또한 '장자연씨가 남긴 문건에 방상훈 사장의 이름이 기재돼 있으며 조선일보가 이를 은폐하려 했다'고 보도한 KBS·MBC 및 KBS·MBC 보도본부장, 신경민 MBC 앵커, KBS 기자 2명에 대해서도 35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미디어 오늘>의 박상주 논설위원과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등에 대해서도 추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소송과 관련 지난 2013년 2월 8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는 조선일보와 방상훈 사장이 KBS·MBC·김성균 전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대표, 이종걸 의원과 이정희 대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고 장자연씨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는 보도 내용은 허위사실이지만, 공익성과 상당성 등 위법성 조작 요건을 갖춰 보도한 언론사 등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라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비록 조선일보와 방상훈 사장이 재판에서는 패소했지만, 재판부는 장자연씨가 쓴 유서의 내용이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재판부까지도 장자연씨의 유서에 담겨있는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사건의 실체를 못 밝히는 것일까? 안 밝히는 것일까?
- <그는 세상을 향해 외친다, 그녀는 죽었지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구글이지미 검색>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노리개>는 허구'라고 최승호 감독은 말한다. 장자연 사건을 모티브로 했을 뿐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렇게 덧붙인다.
"이 영화를 보고 ,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부끄러워했으면 한다"고.
꽃다운 나이의 한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이 속한 기획사로부터 사회고위층과의 술접대 및 성상납을 하도록 강요받았고 실제로 수 십차례에 걸쳐 그렇게 했다. 그녀는 인간들의 세상이 아닌 짐승들이 살아가는 공간에 갇혀 있었고 이를 견디지 못하고 소중한 생명을 끈을 놓아버렸다. 그녀가 죽음을 통해 알리고 싶었던 진실은 그러나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녀가 살았던 세상은 안타깝게도 철저히 가진 자들과 있는 자들을 위한 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과연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한 채, 무엇을 남겨준 채 떠난 것일까?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목숨과 바꿔가며 말하고자 했던 사회고위층과 연결된 연예계 성상납 실태와 관련한 진실들은 경찰·검찰·재판부의 시각처럼 실체없는 허위사실에 불과할 뿐일까?
이 영화가 우리에게 되묻고 있는 듯 하다.
과연 이 영화를 보고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저 짐승같은 자들 뿐일까?
이 질문이 우리가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노리개>를 꼭 봐야하는 이유가 된다. 왜냐하면 이 사건에 침묵하고 있는 우리들 역시 '장자연 사건'의 공범들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계기로 묻혀있던 진실들이 세상 속에 공개 되기를 바래본다. 그것이 고인이 된 장자연씨와 지금 이 시간도 그 어딘가에서 그녀와 똑같은 일을 겪고 있을 지도 모르는 또 다른 희생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속죄가 될 것이다.
(출처: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