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팬들에겐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시드니 올림픽이 주된 관심사이겠지만 10월부터는 아시아 축구 최대의 이벤트인 '아시아 축구 선수권대회 (아시안컵)'이 레바논에서 열린다.
사실 아시안컵은 그 비중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대회인데, 이는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로 양분된 아시아 축구계의 역량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다.
유럽 선수권이나 코파 아메리카와 같이 각 대륙 연맹이 주관하는 대륙 선수권 대회가 FIFA 월드컵 다음 가는 빅 이벤트로 각광을 받는 것과 비교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레바논은 경기장 건설 지연과 제반 시설 미비로 아시안컵 개최권을 박탈당할 위기에 몰렸지만 레바논 정부가 아시아축구연맹(AFC)에 개최 보증각서를 제출함으로써 예정대로 대회를 치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 아시안컵에는 자동 출전하는 개최국 레바논과 지난 대회 우승팀 사우디, 그리고 지역 예선을 통과한 한국 등 모두 12개 팀이 참가하여 4개 팀씩 3개 조로 나뉘어 조별 예선을 치른다. 조 예선 2위까지는 8강에 자동 진출하고 각 조 3위 팀 가운데 상위 2팀이 와일드카드로 합류하게 된다.
A조 이란, 이라크, 레바논, 태국
B조 한국, 쿠웨이트, 중국, 인도네시아
C조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한국은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아시아 최강을 가리는 아시안컵에서는 40년 동안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효창운동장에 잔디가 깔려있었다는 1960년 서울에서 치러진 제 2회 대회에서 우승한 이래 준우승만 세 차례 차지했을 뿐 이렇다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동세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 스스로 아시안컵의 위상을 깍아내리고 지역 예선에 아마추어 선발팀을 내보내는 등 대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레바논 2000에서도 우승 후보로 꼽히지만, 지난 96년 UAE 대회 8강전에서 이란에게 6 대 2로 참패하며 박종환 감독이 경질 당하는 소동을 겪은 것에서 보듯 중동 지역에서 치러지는 대회는 동아시아 팀에게 두 배의 어려움을 강요하기에 우승 확률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다.
역대 기록을 살펴보아도 홍콩과 서울에서 치러진 1, 2회 대회에서 한국이 우승을 차지한 후 92년 히로시마에서 일본이 우승컵을 안을 때까지 32년 동안 아시안컵은 중동세의 차지였다.
게다가 시드니 올림픽팀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 대표팀을 운영하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또다시 짧은 기간 동안 선수 선발과 훈련을 마치고 대회에 임해야 할 것으로 보여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한국은 쿠웨이트, 중국, 인도네시아와 함께 B조 예선을 치르게 됐다. 조 예선을 2위로 통과할 경우 이란 , 이라크, 사우디 등 전통적인 중동 강호나 일본과 8강에서 맞붙을 공산이 커지므로 무엇보다도 조 1위를 차지하는 것이 급선무가 될 것이다.
일단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중국, 인도네시아와 같은 조에 속해 8강 진출은 무난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역대 전적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쿠웨이트와 1위 자리를 놓고 한 판 승부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다.
개최국 레바논의 대회 준비 상황이 여전히 유동적이라 대회 장소와 시기가 바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주어진 일정에 따라 차분히 준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96년 대회의 참담한 결과가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본선에 오른 각팀의 전통적인 축구 실력이나 아시아 지역의 축구 수준을 감안하면 조 편성 결과만을 보고 8강 진출팀을 대략적으로나마 예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승컵을 놓고 동아시아의 한국, 일본이 사우디,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등 중동세와 격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팀이 한풀 꺾이는 전력인 반면 레바논, 중국, 우즈베키스탄이 복병으로 떠오를 것이다.
'풋볼 아시아'는 자신들의 인터넷 사이트(www.asian-football.com)에서 레바논 2000에 대한 전망을 조심스러우면서도 상세하게 내놓고 있다.
우리의 시각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 곳곳에서 보이기에 한 번쯤 참고할 만한 자료로 판단되어 소개한다.
(주: 한국 보다는 일본이나 중국을 우리의 인식보다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아시안컵 Preview A조 (이라크, 이란, 레바논, 태국)
1968, 1972, 그리고 1976년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이란은 레바논 2000에서 역대 대회 가운데 가장 만족할만한 조 편성 결과를 얻어 미소를 지었다.
A조는 1996년 아시안컵과 비교할 때 사우디를 대신해 개최국 레바논이 들어간 것이 다를 뿐, 이란, 이라크, 태국이 4년만에 재격돌하게 됐다.
이란의 코치 Jalal Tallebi는 "같은 조에 편성된 팀들이 약팀이 아니라 그저 경험이 부족한 팀들일뿐" 이라며 일단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란은 4년전 UAE 대회에서 이라크에게 2-1로 패한 기억이 있기에 Talebi 코치의 조심스러운 반응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이란과 이라크의 한판 승부는 5만명을 수용하는 베이루트 City Sportive에서 벌어질 예정이다. 이란-이라크 경기는 양국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 정치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주목을 끌지만 실제 경기에서 이런 정치적인 문제들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Talebi 감독은 "이라크와의 경기는 매우 치열한 경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이라크 정부와 싸우는 것이 아닌 만큼 정당한 게임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과 이라크의 경기가 팬들에게 분명히 줗은 게임이 되리라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A조의 복병은 개최국 레바논. 레바논과 이란의 경기는 개막전으로 치러진다. Talebi는 "레바논의 전력이 상승세"라면서 "지난 5월 요르단에서 있었던 WAFF 대회에서 본 레바논의 플레이를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태국은 96년 아시안 컵에서 비참한 결과를 남겼다. 첫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게 6-0으로 참패한 태국은 나머지 두경기에서도 이란과 이라크에게 각각 3-1, 4-1로 패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첫 경기에서 골키퍼 Wacharapong Somcit이 경기 초반 퇴장 당해 정상적인 경기를 펼칠 수 없었다.
아시안컵 Preview B조 ( 한국, 쿠웨이트,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아시안컵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는 쿠웨이트, 중국,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하게 되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세나라와 한 조를 이루게 된 것을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난 대회에 이어 인도네시아의 상대팀들은 계속해서 상위 그룹의 팀들이다. 쿠웨이트는 최근 두 번의 걸프컵에서 연달아 우승했고 방콕에서 있었던 98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또한, 지난 아시안컵에서 4강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은 아시아의 어느 국가보다도 월드컵에 많이 참가했고 중국도 무한한 잠재력을 드러내며 아시아권에서 강호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다져가고 있다.
새로운 쿠웨이트의 감독은 Dusan Uhrin. 96년 유로컵에서 체코를 결승까지 이끌었던 그는 지난 5년간 쿠웨이트를 이끌며 좋은 성적을 올렸던 Milan Macala 보다 더욱 목표를 높게 잡아 80년 대회 이후 20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노릴 것이다.
한국은 1956년과 60년 1, 2회 대회에서 연속 우승한 이후 그동안 몇 차례 준우승을 차지했을 뿐 우승컵을 안지 못해 이번 대회 참가팀 가운데 우승에 대한 의지가 가장 클 것이다.
중국은 베테랑 코치, 보라 밀루티노비치를 영입해 처음으로 아시안컵 우승을 노린다. 중국 언론은 4번이나 월드컵에 참가한 감독에게 성적을 내라는 강한 압력을 넣고 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는 순위 경쟁에서 제외된다.
인도네시아 감독 Nandar Iskandar의 입장에서는 지난 대회와 같은 상황이 주어진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4년전 첫 경기에서 쿠웨이트를 맞아 2-0으로 앞서다 2-2로 아깝게 비기며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개최국 UAE와 한국을 맞아 4 대 2로 패하며 조 예선에서 탈락했다. 당시 일방적으로 몰리는 경기를 하지는 않아 갈채를 받기도 했지만 홍콩, 캄보디아를 상대한 지난 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 기대보다는 약한 모습을 보여줘 여전히 동남아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멤버를 대체할 놀랄 만한 선수가 등장하는 것이 인도네시아의 유일한 희망일 뿐이다.
아시안컵 Preview C조 (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C그룹에서 예선을 벌였던 두 팀이 4강 또는 결승에서 다시 만나도 그다지 놀랄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일본은 지난 4번의 아시안컵 타이틀을 나눠 가졌다. 또한, 그들의 프로팀 들은 아시아 클럽컵을 놓고 격돌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Waleed bin Bader bin Saud 는 "강한 팀들이 같은 조에 편성됐다. 그러나, 우승을 하려면 조 추첨 결과에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와 일본의 경기는 좋은 경기가 될 것"이라며 "결승에서 다시 만날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했다.
일본 축구협회의 Junji Ogura 역시 "첫 경기에서 가장 강한 팀과 경기를 하게 되었다."면서도 "일본에는 유럽에서 활약하는 3명의 선수(나카타, 나나미, 조 쇼지)가 있으므로 사우니는 좋은 상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C조는 흥미있는 그룹이다. 중동 지역에서 두 팀, 소련 연방에서 한 팀 그리고 일본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각 국의 축구 스타일이 상당히 달라 매우 치열한 경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추첨으로 인해 가장 불운한 두 팀은 C조에 편성된 카타르와 우즈베키스탄이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팀들과 맞붙게 되었다.
이들 두 팀은 사우디, 일본과 비기기 작전을 펼쳐야만할 것이다. 카타르와 우즈케키스탄의 맞대결에서 어느 한 팀이 승리한다면 혼란을 틈타 와일드 카드로 조 예선 통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카타르의 감독 Dzmeal Haziabdic은 조 추첨장에서 " 우리 그룹은 가장 강한 팀들로 구성 되었다. 지금 머리가 아프다.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