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예민한 게 아니야
김영미
오랜만에 남편과의 점심 외식이다. 사람이 많아 대기했다. 외곽에 자리한 식당으로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북적인다. 어느 정도 음식을 먹고 마지막으로 솥 밥과 된장찌개와 밑반찬들을 실은 운반차를 밀면서 종업원이 왔다. 남편의 옆에서 음식을 식탁으로 옮기던 종업원이 밥이 들어있는 솥을, 손을 더 멀리 뻗어 내 앞에 놔둔다. 된장찌개 뚝배기는 그 앞에 가운데 놔두고 주걱도 내 앞으로 두고 간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내 얼굴을 보는 남편에게,
“굳이 가까운 당신 옆에 놔두고 멀리 있는 내 앞으로 팔을 뻗어 놓고 가는 이유가 뭘까”
“눈을 씻고 봐도 부부로 보이나 봐”
라고 말한다. 그 말에 다시 웃음이 나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간만에 안타를 쳤네. 요새 남편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하던 참이다. 때때로 남편은 내가 웃는 게 좋아서 실없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네가 예. 민. 한 거야”
일부러 더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 데 그 입이 못생겼다. 남편은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다. 내가 그동안 침을 튀겨가며 여러 번 이야기했었기 때문이다.
음식쓰레기를 버리고 오라고 하면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해’. ‘나는 하늘이야’ 라던가, 주방 상부 장을 정리하며 ‘겉은 여자스럽게 생겼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라며 들리도록 혼잣말하던 남편은 꼰대다. 본인만 모른다.
내가 예민한 걸 수도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급하게 아이들 용품을 사러 인근 사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열쇠를 맡긴 적이 있었다. 급하게 용품을 사고 돌아와서 관리인 옆에 서서
“12…..”
차번호를 말하려는데 왼손에 뭔가를 들고 눈으로 확인하면서 오른손을 아래로 뻗어 내가 서 있는 땅을 가리키며
“아줌마는 옆에 서 있어요”
거칠고 퉁명스럽게 지시한다. 그러더니 내 오른편에 서 있는 사람에게 공손한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님 차번호는 어떻게 되세요?”
머릿속에서는 ‘뭐 이런 경우가 있나?’ 하는 생각이 스치고 마음은 너무 급한데 말이다. 난 슬며시 눈만 오른쪽으로 돌려 보았다. 키는 나보다 작았다. 잿빛에 가느다란 선들이 들어간 한 벌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었다. 나도 모르게 눈은 재빠르게 아래로 흩어 내렸다. 검정 구두를 신었고 왼손에 얇은 가죽의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둘이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급히 내 옷차림을 새겨본다. 집에서 애들 보다가 나왔으니, 목이 늘어난 하얀 티에 아래는 구깃구깃한 얇은 면 반바지이다. 황당과 옅은 불쾌가 자리한다. 몽글거리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것이 스멀스멀 기분 나쁘게 올라온다. 불쾌한 감정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고 있었다. 난 그때 모지리(머저리)였다. 그래서 한마디도 못 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아마 지금도 비슷한 경우를 당한다면 여전히 나는 모지리 일 수 있다.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차별’이라는 것을 몇 년 뒤에 알았다. 어떤 일이 처음 일어난 때는 나도 모르게 각인된다. 그렇게 그 경험의 시간은 잊히지 않는다.
난 어느 자리에서 차별받는 사람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무지한 어둠 속에서는 색을 구분할 수 없다. 어둠이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그것이 알고 있는 모든 세상이 되는 것이다. 빛이 없으면 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옅은 불쾌감으로 누군가는 별것도 아닌 일로 야단 떤다고 할 수 있다. 불쾌감을 갖는 나는 단지 현재 일어난 일에 대해서만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 감정은 트라우마를 갖게 되고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어린 시절 첫째이며 장녀였던 나보다 동생인 아들 둘에게 학업적 투자를 했던 부모에게 느꼈던 것과 상통한다. 일상에서 가볍게 하는 대화 속에서도 익숙한 불쾌감은 존재한다. 단지 사회적 분위기가 그러니까 내지는 익숙함에 그냥 넘어갈 뿐이다. 남편은 내 앞에 놓인 손가락 두 마디 되는 생선을 젓가락으로 열심히 발라 내 앞에 놓인 밥 위에 연신 올려놓는다. 몇 번의 수고에도 살이 얼마 되지 않는다.
20여 년 전, 카펜터스의 선율이 흐르는 아래에서 마주 앉은 남자에게 말했었다. “난 절대 **씨와 결혼할 일 없어요” 그리고 “절대라는 말은 함부로 쓰면 안 되는데”
라는 답을 돌려주었던 그 남자와 결혼했다.
‘난 절대 예민한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