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는 예로부터 미의 대명사입니다..
저역시 개인적으로 비너스의 몸매가 부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비너스 상은 팔이 없는 상인데
이것은 밀로섬 (밀로스섬 또는 멜로스섬이라고도 함)에서
1820년 4월 8일 에게해의 밀로섬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밭갈이중에 발견된 상으로서 발견 당시부터 팔이 없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약15년정도 팔이 없는 조각상을 제작하는게
붐이었는데, 아마 그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비너스는 고대시대의 2000년 이상된 유물로,
비너스라는 이름은 고대 신화에 나오는 비너스를 조각한 것이 아니고
후세에 아름다운 여성을 묘사했다 해서 붙혀진 이름입니다.
밀로의 비너스는 작자 미상인 조각상으로
BC 2∼1세기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조각상의 기단부에 아가산드로스,
혹은 알렉산드로스라는 조각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긴 하지만,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작자 미상으로 남겨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발굴 당시 이미 두 팔이 손상된 상태였지만 동세나 근육의 모양으로 미루어,
파손된 한 손으로는 흘러 내리는 옷자락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또 다른 손은 '파리스의 심판'에 등장하는 금사과를 쥐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어진다고 합니다.
좀더 깊이 있게 학문적으로 감상해 볼까요.
하기 내용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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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of Melos)라고도 한다.
1820년 4월 8일 에게해에 산재하는 키클라데스제도의 하나인
밀로스섬에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 근방에서 밭을 갈던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어
마침 이 섬에 정박 중이던 프랑스 해군이 이것을 입수,
(좋게 이야기 해서 입수이지 이건 도적질이 아닌감???
우리나라 외규장각도서도 같은 신세로 프랑스에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인데...)
다음해 리비에르 후작의 손을 거쳐 루이 18세에게 헌납되어
왕명으로 루브르미술관에 수장되었다.
발견 당시 이 여신상은
고전기(古典期)의 거장 브락시테레스의 원작이라고 떠들썩하였으나,
그 후 연구 결과 현재는 BC 2세기에서 BC 1세기 초에 제작되었으리라는 설이
유력하다.
품위 있는 머리부분이라든지 가슴에서 허리에 걸친 우아한 몸매의 표현에는
BC 4세기적인 조화를 보이기도 하지만,
두발(頭髮)의 조각과 하반신을 덮는 옷의 표현은 분명히 헬레니즘의 특색을 나타내고,
그 고전적인 자태는 헬레니즘의 극단적인 사실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고전 양식의 부활이라는 당시의 풍조에서 태어난 걸작이다.
허리부분을 단면으로 하여 상하(上下) 두 개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팔이 없다.
그 없는 부분의 복원(復元)에 대해서는 그 제작연대와 마찬가지로
고고학자나 미술사가 사이에서 계속 많은 고찰이 있었다.
결국 오른손은 왼쪽 다리께로 내려지고 왼손은 팔을 앞으로 내밀어
제쳐진 손바닥에 사과를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821년 루브르미술관에 수장된 후 두문불출의 명작으로도 유명했으며,
1964년 처음으로 세계 나들이를 한 바 있다.
1820년 이 작품이 발굴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원전 5세기
즉 그리스 미술의 최전성기의 원작으로서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여인 입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1893년 독일의 고고학자 푸르트뱅글러는 이 작품이 고전기가 아니라
기원전 2세기 후반 즉 헬레니즘 기의 것임을 밝혀냈다.
그에 의하면 이것은 고전기의 걸작중 하나인
프락시텔레스의 [크니도스의 비너스]에서 포즈와 얼굴 모습을 그리고
<카푸아의 비너스> 에서 하반신을 옷으로 가린 형태를 모방해서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미의 전형으로 알고 있는 밀로의 비너스 는
실제 모방작에 불과한 것으로
그 모체는 프락시텔레스의 비너스에 있다는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이러한 고전의 모방이 다반사였으며
밀로의 비너스는 그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밀로의 비너스가 고전기의 비너스에서
그토록 모방하고 싶어 했던 것은 무엇일까?
프락시텔레스가[전나(全裸)의 비너스]를 제작했을 당시
그리스 사회는 여성 누드에 대한 금기가 있었다.
때문에 그의 비너스는 경건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되어
비너스가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던
소아시아 남해안의 외딴 섬 크니도스로 보내지게 된다.
그러나 막상 크니도스섬으로 이 여신을 보러온 사람들은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이제 막 옷을 벗고 목욕탕으로 들어가려는
이 미의 여신 앞에서 마치 살아있는 여자를 본 것처럼 열광했으며
심지어 그녀를 얼싸안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눈에 비친 이 비너스는 육체적 욕망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누드가 금기시 되었던 당시 사회 속에서
이 비너스는 어떻게 지고의 예술품이라는 명예를 얻을 수 있었을까?
프락시텔레스는 어떻게 이후 모든 비너스의 모범으로써
유럽 미술의 목표가 된 것중 하나
즉 육체적 욕망이라는 비이성적인 본능을 저속하지 않게
아니 고귀하게 여인의 몸을 통해 표현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
그리스인들이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인체에 수학적, 기하학적 원리를 적용시킴으로써
실제 인간의 살덩이를 초월한 영원한 미의 체계를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프락시텔레스는 원래 남성상을 위해 고안된 콘트라포스토
즉 체중을 오른편 다리에 싣고 왼쪽 다리는
마치 움직이려는 듯이 살짝 구부려 S자를 좌우로 뒤집어놓은 것같은 리듬을 줌으로써
자연스러운 균형과 조화를 창조함과 동시에
엉덩이를 살짝 흔드는 것같은 생생한 관능성을 얻어내었다.
그리고 여신으로 하여금 자신의 국부를 다소곳이 가림으로써
전체적으로 고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동물적 본능을 신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도록 했다.
결국 이 여신은 실제의 한 여인이 아니라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 즉 그리스인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미의 전형을
인간의 육체와 결합시킨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인간과는 다른 절대 적 존재가 아니라
사랑, 질투, 분노, 슬픔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가지고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신들로 묘사되고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서양 미술이 인간중심적이고 이상적 미를 현실을 통해 재현 하는
사실주의 전통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므로 밀로의 비너스는 이상미의 추상적 체계를 여성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그리스인의 마지막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밀로의 비너스는 두 팔도 없이 비스듬히 몸을 비틀고 신비로운 미소를 짓는 여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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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다른 작품도 덤으로 슬쩍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