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단식 21일 째.
체중은 200g 줄었다.
혈압 121-88
과즙 먹고 식후 2시간 뒤 혈당 149.
약을 전혀 안먹고도 다 정상수치이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보름달이 나의 단식종료를 축하해 주고 있다.
오늘 전화를 걸려고 마을에 내려가서 집으로 돌아오려니 체력이 다 소진되었는지 세번이나 중간에 앉아 쉬면서 왔다.
내일부터는 21일간의 회복식에 들어간다.
그래봤자 현미 달맞이씨 홍화씨 참깨 메밀 등을 적당히 섞어 갈아 즙으로 만든 것을 과즙 야채즙 먹던 것에 한봉지 더하는 수준이다.
회복식 과정이 몸의 독을 빼는 2차 디톡스 과정이다.
사실은 지금부터가 관건이다.
자기와의 지독한 싸움인 것이다.
기도 밖에는 길이 없다.
오늘 장로님 강의는 'Auto파지'라 부르는 것이란다.
음식물이 각 소화기관인 위장 소장 대장에 머무르는 시간은 각기 다르다.
먹은 음식물이 완전히 소화되는 데는 약 8시간이 걸린다.
간강식은 하루 두끼다.
간헐적 단식을 권한다.
음식을 먹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몸은 생존을 위해 세포 안에 축적되어 있는 혈전과 찌꺼기까지 다 재활용한다.
오토파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저절로 해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독이 쌓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장로님이 권장하는 오토파지 식사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침 점심만 먹는 것이다.
제일 쉬운데 점심 저녁으로 2끼를 먹더라도 저녁 6시 이후에는 안먹는 게 좋다.
둘째, 저녁 한끼 먹고 24시간 단식하는 것.
셋째, 하루를 무조건 굶는 방법.
어떤 방법을 택하든 음식을 완전히 소화시키고 속을 완전히 비운 상태에서 잠을 자야한다.
은퇴하고 3년이 지난 지금 전도사 시절까지 합해서 나의 사목생활은 30년에 달한다.
큰 스승들의 가르침을 지키고 실천하겠다고 하느님께 서원하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스승들의 삶을 본받아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 애쓰고, 사회정의와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려고 노력했다.
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서도 사목생활 내내 부당한 교회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냈다.
부정과 부패를 사랑으로 감쌀 수는 없는 것이다.
모른 척 눈감으면 결말은 뻔하다.
교회도 사고를 친 당사자도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자기 존재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필사적으로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한다.
무슨 어려움이 있더라도 교회는 자정능력을 회복해야 미래에도 생존이 가능하다.
모든 권력의 속성이 그러하지만 저항하지 않으면 자신이 마치 제왕이라도 된양 군림하려 든다.
주교든 사제든 평신도든 맡은 역할만 다르지 계급이 아닌 것이다.
중벼슬은 닭벼슬 보다 못하다는데 그 닭벼슬 같은 초라한 것을 진짜 권력으로 착각하고 휘두르는 어리석은 짓을 하곤 하는 것이다.
사실 교회권력이라는 말 자체가 존재해서는 안될 말이다.
주교가 사제들과 평신도들을 자기 가족으로 여기는데 어떻게 권력질이 가능할 수 있나?
교회 리더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덕목은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과 정의감일 터인데.
주교는 그저 아버지나 큰 형님처럼 자상하고 따뜻해야 정상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사제생활은 일관되게 교회권력과의 싸움으로 채워졌다.
주교가 바뀔 때마다 집요하게 공격 당하고 제거대상이 되어 시달렸다.
내부고발자로 지목된 탓이다.
나락에 떨어져 고통받는 신자들을 부둥켜안고 가기에도 힘겨운데 교회 권력은 재물에 눈이 멀어 사제의 그런 어려움에는 관심이 없다.
교회내부의 부패하고 타락한 실상을 고발하고 정의를 외치면 교회권력으로부터 되돌아오는 말은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불순분자로 매도한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이권으로 뭉친 교회기득권 카르텔을 흔드는 것인데 사실을 오도하는 것이다.
교회권력으로부터의 반응이 격렬하고 억지로 힘으로 누르려 하면 어두운 비밀이 많다는 증거이다.
종교계가 마음만 달리 먹으면 얼마든지 쉽게 떼돈을 챙길 수 있는 조직임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내부고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는 내부고발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어야 건강을 유지하고 썩지 않는다.
교회가 부패하면 교회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의탁한 약한 민중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주된 관심이 도움이 필요한 약자에로 향하지 않고 엉뚱한 데로 가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사제들 중에는 자신을 헌신해 약자를 돌보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장 큰 행복임을 아는 분들이 대다수다.
단지 싸우기 싫어서 참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런 사제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해서 부당한 권력에 맞서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교회권력에 빌붙어 딴 욕심을 노리는 사람들은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
권력의 특성이 배타적이라 따져 보면 한줌밖에 안된다.
그래서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나면 그저 숨기 바쁘다.
부정을 저질렀다면 주교든 사제든 평신도든 교회의 치리를 받고 법의 심판을 받는 게 상식이다.
사제생활 내내 철칙으로 여기고 지킨 것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로 후원을 요청하거나 구걸하는 표정을 지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것은 사제가 가난하게 산다는 의미를 무색하게 하는 행위이다.
종교의 본령인 자본의 논리를 거슬러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비루하게 남의 동정으로 사는 것이라 배웠다.
'예수원'원장 대천덕 신부님의 가르침이시다.
오직 기도로 구하고 하느님의 손길에 맡기라는 것.
사제가 가난하게 살아야 교회내부를 향해서든 사회를 향해서든 마이크를 잡을 권한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사제는 자발적으로 몸을 낮추어 민중으로 살아야 한다.
민중의 위치에 있지 않으면 민중들이 이 험악한 사회에서 겪는 고통과 서러움을 알 방법이 없다.
내가 스승으로 모신 스승들은 평생을 그렇게 흔들림 없이 신념대로 꼿꼿이 살았다.
타고난 그릇이 스승들에 못 미쳐 아쉽긴 하지만 남은 여생도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다 가는 게 나의 바라는 바다.
새해 벽두부터 단식으로 몸을 만들며 마음을 굳게 다잡는다.
이제 21일간의 단식일지를 마친다.
배가 몹시 고픈 상태에서 쓴 글이라 두서없이 횡설수설이 된 것을 용서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