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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원문보기 글쓴이: 김용만
[민족의 혼, 고구려 여행] 씨름무덤 벽화 ‘씨름’은 저승으로 가는 통과 의식 씨름 무덤은 각저총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각저’(角抵)는, 씨름을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길림 성 집안 시에 있는 씨름 무덤의 북쪽 이웃에 춤 무덤이 있는데, 이 두 무덤의 주인공이 아마도 형제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광개토 대왕의 무덤으로 보이는 태왕릉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 가까운 곳에서 씨름 무덤이 보입니다. 이 무덤이 만들어진 때가 5세기 전반이라서, 광개토 대왕과 같은 무렵에 살았던 귀족의 무덤이라고 볼 수 있답니다. - ‘개’는 영혼을 저승으로 이끄는 길잡이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이처럼 서역인의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쌍영총ㆍ삼실총ㆍ장천 1호분 등에서도 서역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분 벽화에 씨름 장면이 그려진 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은 씨름을 장의 행사의 하나로 여겼던 것이 분명합니다. 자세히 보면 씨름꾼과 심판(노인) 사이의 공간에 구름 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씨름이 현실 세계가 아닌 저승에서 벌어지는 놀이임을 나타냅니다. 씨름을 저승 세계로 가기 위한 통과 의식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무덤 안에는 죽은 사람이 저승으로 가기 위한 내용을 담은 그림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앞방과 널방을 잇는 이음길에는 큰 개 한 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당시 고구려와 이웃한 오환 사람들은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동물을 개라고 생각했답니다. 따라서 이음길에 그려진 개는 죽은 영혼을 지켜주고 저승으로 이끌어 주는 길잡이입니다. - 이승과 저승 연결해 주는 ‘나무’
널방 동벽의 나무와 서벽에 그려진 3 그루의 나무를 합하면, 무덤 안에 모두 12 그루나 그려져 있는 셈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나무들을 그린 것일까요? 씨름 무덤의 널방 북벽에는 덕흥리 고분에서처럼 무덤 주인의 생활상이 그려졌습니다. 의자에 앉은 무덤 주인공과 온돌 바닥에 앉은 두 명의 부인이 실내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벽에는 북쪽부터 맨 앞쪽에 작은 나무가 섰고, 그 뒤에 시종이 말을 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와 수레가 번갈아가며 그려졌습니다. 말과 2 대의 수레는 주인공 부부가 저승으로 갈 때 타기 위해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한편, 동벽에는 씨름 그림 외에 부엌이 그려져 있습니다. 부엌은 주인공 부부가 저승에 갈 때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곳이랍니다. 그런데 부엌과 씨름은 서로 어울리지 않아요. 나무 그림은 바로 벽면을 분할하는 구실을 하는데, 또 다른 뜻도 갖습니다. 무덤 안에 있는 다른 벽화들을 보면, 천정엔 삼각형의 불꽃 무늬ㆍ넝쿨 무늬ㆍ해와 달을 비롯한 별자리, 그리고 연꽃이 맨 위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이 무덤에서 가장 많이, 가장 중요한 소재로 그려졌는데, 단지 배경을 꾸미거나 화면을 나누기 위한 목적만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서벽의 나무에는 하늘로 올라갔다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능력을 가진 새, 즉 신의 전령 역할을 하는 새가 앉아 있습니다. 또 나무 좌우에는 호랑이와 곰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군 이야기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무는 신성한 것, 하늘(저승)과 땅(이승)을 연결해주는 영혼 사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나무를 통해 신과 인간이 소통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씨름 무덤의 나무는 영혼이 천상으로 올라가는 통로로 그려진 것입니다. 또한 무용 무덤에 그려진 나무는 생명의 나무이기도 합니다. 잎이 떨어졌다가 다음해에 다시 새싹이 돋듯이 죽은 영혼의 새로운 탄생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무덤 안에 가득 나무들을 그려놓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김용만(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