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효문화진흥원서 얻은 향내 나는 보석
솔향 남상선/수필가
지난 주 토요일엔 지인의 자혼이 있어 축하를 해 주고 왔다. 풍문에 의하면 신부가 다이아몬드 보석 반지에 희귀석 목걸이를 선물로 받아 가족 모두가 기뻐하고 좋아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역시 보석이란 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음까지 즐겁게 해 준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그래서 결혼식, 생일날 등 즐거운 축하 행사 때에는 으레껏 보석제품이 선물로 오가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한국효문화진흥원에서 근무할 때의 얘기다.
한국효문화진흥원 근무 차 출근을 하려고 집에서 나왔다. 버스시간이 급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파트 앞 정원 어린이 놀이터 소나무 위에서 이른 아침 까치 몇 마리가 유달리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까치 덕분인지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그 날 진흥원서 내 할 일은 전시 1관 안내 해설을 하는 거였다. 조회 시간에 조화사항을 들어보니 예약된 단체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일도, 없는 것 같았다.
오전 10시쯤 소탈하게 보이면서도 온유한 인상을 가지신 어르신 한 분이 오셨다. 아마도 겉잡아 산수(傘壽: 80세)의 연세는 되어 보임직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풍기는 인품의 향기에 매료되어 1관 전시실 안내 해설 중 통성명을 하고 인사까지 드렸다. 그 분이 바로 정준용 어르신이다. 말씀을 들어 보니 연만하신 노모가 계셨다.
요양원에 모셨다고 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는 매일같이 요양원으로 출근하여 노모의 말벗이 돼 드리고, 손발도 어깨도 주물러 드리며 수발들기에 바빴다고 하셨다.
각박한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보기 드문 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도 좋아하셔서 산에도 자주 가는 분으로 산악회 회장 직을 맡아 일한다고 하셨다. 이런 저런 말씀을 많이 들었다. 따뜻한 인간미로 유대 관계를 잘 가지시는 아르신이 존경스러웠다.
교감이 컸던지 전화번호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게다가 매일같이 카톡 자료를 보내고 받는 관계가 되었다.
논어에서 지자요수(知者樂水;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요산(仁者樂山;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란 말을 읽었다. 아마도 효심이 두텁고 인자하며 산을 즐기는 정준용 어르신 같은 분을 일러 기리는 얘기와도 같았다. 세상엔 어르신 같은 분이 계셔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진흥원에서 만난 인연이 매일같이 카톡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카톡 자료를 보내드리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좋은 자료로 답신을 바로 보내셨다.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수시로 근황을 묻는 안부 전화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카톡 자료를 보내드리면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답신 카톡을 주시던 분이 그날은 아무 응답도 없었다. 하루가 지나서 문자가 왔다. 문자 내용은 이렇다.
‘제가 개인 사정으로 며칠간 카톡을 못합니다.’
순간 스치는 예감이 있었다. <요양원에 계신 당신의 노모한테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지체 없이 바로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당님께서 돌아가셔 성모병원에 모셨다는 얘기였다. 전화 통화 끝나자마자 성모병원으로 달려갔다. 창궐하는 코로나 와중애도 조문객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조문을 마치고 조금 있으니 조문 받는 자리에서 보지 못했던 당신의 부인까지 찾아다 정중하게 인사를 시키는 거였다.
장례를 치르고 한 열흘 정도 지났다. 그 날도 내 한국효문화진흥원 근무를 하는데, 정준용 어르신이 찾아 오셨다. 알고 보니 답례인사차 오신 거였다. 내가 좋아하는 견과류를 비롯하여 한 보따리 답례품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선생님 고맙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제 친구들도 여럿이나 안 왔는데, 선생님은 그 와중에도 오셔서 저한테 위로와 힘을 주시니 너무 감사해서 제가 이렇게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이러시는 거였다. 그 후 명절 때만 되면 한 번 거르지 않고 내 근무 날 진흥원으로 선물을 사 들고 찾아오시는 거였다. 작건 크건 감사할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보은하며 사시려는 어르신은 진정 향내 나는 보석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5월 14일은 내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요로결석 통증으로 선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전립선 암 말기 환자 판정을 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살려 주시려 그랬던지 응급실에 간 게 전립선암 말기(4기)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말기 암이지만 장기 전이가 안 됐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 때에도 내가 절망하지 않고 희망으로 살게 하기 위해, 당신의 전립선암 투병 기를 여과 없이 쏟아놓으셨다. 전립선암에서 해방된 당신 친구들이며, 지인들 얘기로 위안과 격려를 주셨다. 전립선암은 착한 암이어서 의지만 있으면 고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수시로 보약 같은 말씀을 주셨다. 좋은 정보만 있으면 놓치지 않고 그걸로 내 주치의 역할까지 해 주셨다. 하루에도 두 세 차례 위로와 격려로 용기를 주셨다. 힘이 나게 해 주셨다.
게다가 내 선병원 입원 당시 창궐하는 코로나로 면회기 안 됐었다. 그런데도 병원에 오셔서 나를 만나고 가셨다. 포도를 비롯한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병원에 오셨다. 면회가 안 되어 병원 1층 휴게실로 내려오라 해서 위로가 되는 말씀을 주고 가셨다.
향기는 꽃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준용 어르신한테서 풍기는 인간미는 그야말로 꽃의 향기 그 이상이었다. 어느 꽃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 향기였다. 사막의 오아시스 생명수와도 같은 인간애의 향기였다. 향내 나는 보석이 따로 없었다. 바로 어르신의 따뜻한 가슴이, 인간애가, 그 인간미가 향내 나는 보석과도 같은 거였다.
‘한국효문화진흥원서 얻은 향내 나는 보석’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행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첫댓글 두 분의 따뜻한 교류
참으로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