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퀴
2023.1.6.
바람이 사납게 몰아치고 난 늦가을 날이었다. 나무들은 곱게 차려입었던 가을옷을 앗기고 초라하게 서 있었다. 잎들은 마구 벗어 던진 옷가지처럼 마당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작은 바람에도 나무와의 갑작스러운 작별이 낯선지 안절부절못하고 방황하는 그들은 처량해 보였다. 밀려오는 쓸쓸함을 거두려 그들을 모아 담기로 했다.
손으로 하나씩 집으면 온종일이 걸려도 끝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갈퀴로 긁어모아 쓰레기통에 넣으니 두 시간이 채 안 돼서 마치게 되었다. 덕분에 흩어진 나무의 추억이 더는 맘대로 뜰에서 춤추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사람은 어떻게 갈퀴를 만들어냈을까? 반쯤 오므린 손가락을 닮은 갈퀴.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다가, 바닥에 흩어진 자잘한 것들은 훑어 모으다 손을 흉내 낸 갈퀴를 고안해 낸 것은 아닐까?
갈퀴는 삽이나 칼처럼 아주 간단한 도구이다. 땅을 파는 데는 삽이나 괭이를 쓰지만, 그것들로 무엇을 모으기는 어렵다. 칼이나 톱은 자르는 데는 편하지만 넓게 흩어진 것들을 모으기는 불편하다. 마당을 잔뜩 덮은 낙엽만이 아니라 검불이며, 곡식을 한데 모으는 데는 역시 갈퀴가 최고다.
갈퀴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방식을 가장 잘 드러낸 도구가 아닌가 한다. 자연은 공기가 퍼져 섞이듯이, 물이 흘러내려 평형을 이루듯이 그렇게 섞이고 평형을 이루는 법이다. 그런데, 생명은 자연의 질서를 거슬러 존재한다. 모든 생명은 하나 같이 자연에 있는 것 중 제 존재에 필요한 것을 모아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생명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공기, 물, 영양분 등을 빨아들여야 한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들을 빠짐없이 모아 저를 위해 쓰지 않고는 생명은 아예 태어날 수도, 생명을 연장해 갈 수도 없다. 긁어모으는 행위는 인지하든 아니든, 의도하든 아니든 생명 존재의 기본 방식이다.
갈퀴는 이런 생명 존재의 방식을 그대로 보여 준다. 갈퀴를 잡은 이에게 사물을 모아 주니 말이다. 아무리 현자들이 무욕과 무소유를 설파하지만, 무릇 생명이란 마음에 갈퀴를 품어야만 산다. 그 갈퀴는 단지 물질만이 아니라 관심도, 지식도, 지혜도 모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살아가게 한다. 이러니 모으는 행위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모으지 않으면, 낙엽을 치울 수 없을 뿐 아니라 버릴 수도 없다. 모으지 않으면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나눌 수도 없다. 제아무리 후하게 자선을 잘하는 이라 하여도 먼저 모았기에 다른 이에게 다른 생명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다만, 이 갈퀴를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이상으로 무리하게 부리지 않는 슬기를 우리는 터득해야 하는 게 아닐까?
첫댓글 밀려오는 쓸쓸함을 거두려 그들을 모아 담기로 했다.
시인께서 수필을 쓰시니 이런 표현이!
잘 읽고 갑니다 선생님.
윤미숙 선생님, 시작에 매진하시는 모습 멋지십니다. 졸작을 읽고 후하게 평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