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여행31 - 기요미즈데라를 보고는 산넨자카를 지나 야사카 신사에 가다!
2024년 11월 22일 난젠지와 에이칸도를 보고 전철로 키후네 진자와 하쿠류엔 (白龍園) 을 구경
하고는 내려와 엔코지(圓光寺) 와 시센도 詩仙堂(시선당)를 보고 다시 전철로
기요미즈 고조역 (清水五条) 에서 내려 20분을 걸어서 언덕을 올라 기요미즈 데라에 도착합니다.
교토의 랜드마크라 할수 있는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청수사) 는 교토 동부에 오토와산(音羽山)
절벽 위에 자리한 법상종 절로 탁 트인 전망에 본당에서 바라보이는 사계절의 풍경이
절경으로..... 벚꽃철과 단풍시즌에는 야간 개방을 하는데 요자쿠라( 夜櫻, 야앵) 가 화려합니다.
그 중에서도 교토의 마을을 내려다 보는 “시미즈의 무대” 는 너무나 유명하고 또
사계절 각각 다른 표정을 볼수 있는데.... 여기 키요미즈데라는 옛날에
여러번 왔으니 오늘 옛 여행을 되돌아 보는데 그때 신녀가 오미쿠지를 팔더라는.....
키요미즈데라는 언덕이라 172개 나무 기둥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본당 모습이 이채로운데
봄이면 화사하게 피는 벚꽃과 가을이면 붉게 물드는 단풍에 겨울 설경 등이 이채로운 절로
본당 오른쪽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세줄기 물이 떨어지는데 사랑, 재물, 목숨을 상징한다나요?
778년에 오토와 폭포를 발견한 엔친 대사가 관음상을 모신 것이 키요미즈데라 절이 생긴 시초라는데
키요미즈(淸水) 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하며 4월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11월 말부터 단풍이
물들어 사시사철 관광객이 찾는데 6시 마감이지만... 벚꽃 철이나 단풍철에는 밤 9시 까지 개장합니다.
밤벚꽃이여 고요함을 깨는 꽃잎의 춤 夜櫻や しじまを破る 弁の舞い
기요미즈의 무대로 부터 뛰어 내리다 淸水の 舞台から 飛び降りる
나라의 절은 원래 평지에 있었으나 교토로 천도한후 천태종이 득세하면서 산에 기대어
절을 짓는 경향이 생겨났는데... 헤이안 말기에 사회가 혼란 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해지니 부처를 믿으면 죽어서 극락정토에 갈수있다는 정토종이 득세 합니다.
정토종이 득세하면서 절은 다시 주택가로 내려오는데 여기에 불교와 신도가 결합하고
바쿠후(막부)로 상징되는 무사정권이 지배하면서 무사 특유의 죽음을 초월하는
탐미적 허무주의 영향으로 일본 불교는 한반도와는 다른 길로 가게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을 보니 문득 와카 和歌 를 계승한 단가(短歌) 를
노래한 요사노 아키코 (与謝野晶子) 의 시 몇편이 떠오릅니다.
“기요미즈데라절 쪽으로 향하여 기온 길을 걷고 있자니,
어렴풋이 달은 벚꽃에 희미해져
오늘 밤 이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름답게 생각되네.”
“부드러운 살갗 속의 타오르는 것 같은 정열의 피 에 닿지도 않고,
외롭지는 않습니까, 사람의 도리만을 이야기하는 당신은.”
내 피부 속의 뜨거운 피 를 보고도 내버려두니
외롭지 않으신지요? 나를 가르치시는 그대여
やは肌のあつき血汐にふれも見でさびしからずや道を説く君
스무살 여인은 빛나는 머리결을 흩날리는 한창 때의 아름다움이어라
その子二十櫛にながるる黒髪のおごりの春のうつくしきかな
키요미즈데라(청수사)는 절벽위에 나무로 받침대를 의지해 세웠는데, 경치가 환상적인데다가
시내 가까이 있으면서도 고요한 산사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며 경내에 학문의
신을 모신 신사 지슈진자 (地主神社) 가 있으니... 불교와 신도가 한자리에 기대어 있는 것이라!
기요미즈데라를 뒤로 하고 내려오다가 오른쪽 골목길인 산넨자카 라는 옛날집들이 다닥 다닥
붙어있는 골목길을 걸어내려가 기온으로 향하는데 여긴 광광객들로 인산인해 입니다.
언덕길을 내려오니 난전에서 도자기며 찾잔을 파는데 절 입구의 번듯한 가게보다 더 비싼 것은,
이유를 들으니 이곳은 도자기를 제작한 장인이 직접 들고 나와 팔기때문 이라고 합니다.
일본인은 차(茶)를 광적으로 좋아하여 취미를 뛰어 넘어 다도(茶道) 까지 만들었는데..... 평생에 좋은 다기
(茶器) 한벌 갖추는게 소원이라고 하며.... 그래선지 도처의 자판기 에는 반드시 차가 들어 있습니다.
기요미즈데라 에서 내려가는 언덕길인 산넨자카 三年坂, 니넨자카 二年坂, 네네노미치
ねねの道, 고다이지 高台寺(고태사) 에 이르는 오래된 좁은 길은.....
납작한 돌이 깔린 한적하고 운치 있는 길로 계절에 따라 다른 정취가 있어 걷기 좋습니다.
여기 산넨자카(三年坂) 는 다이도 3년(808년) 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46개의
돌계단이 있는데 여기서 "넘어지면 3년안에 죽는다" 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인데... 이를 액땜하기 위한 호리병 박을 파는 가게가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두운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한국인 가족이 왔는지 모첨럼 아이들이 지르는 한국어를
듣는데... 여행을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한국말이 그리도 반가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곤 했었지만.... 여러번 거듭되다 보니 이제는 그냥 모른체 지나치는게 예사입니다.
큰 도로로 내려오니 눈 밝은 마눌이 저어기 "기모노를 빌려주는 집" 이 있다는데 보통은
여자들 머리 까지 해주니 제법 짭짭할 수입이되는 모양인데, 비단으로 만드는
기모노는 비싼데다가 속옷까지 격식 대로 받쳐 입다 보니 "혼자서 입는건 불가능" 하답니다.
게다가 옷에 맞는 머리모양에다가 장신구며 신발까지 격식에 맞게 갖추어야 하는지라...
유카타 와는 달리 한번 입는게 큰 힘이 드니 저런 전문가의 도움 을 받는데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 한복 치마를 입는 것은 기모노에서는 상상도 할수없는 큰 결례 인가 봅니다?
그러고는 드디어 야사카 신사에 도착하는데 이제 밤이 되어 캄캄하지만 여기 신사
내에는 음식을 파는 가게도 많고..... 붉을 밝힌데다가 수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야사카 신사(八坂神社) 는 교토 동쪽 끝에 위치한 신사로 원래 기온신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인도 사위성(舍衛城)의 기원정사(祇園精舍) 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기원정사(祇園精舍) 는 오랫동안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사원이라 불교인들에게는 유명한데... 기원정사
를 수호하는 우두천왕이라는 신은 일본에 들어와 스사노오와 습합하여 중요한 신격이 되었습니다.
우두천왕 신앙을 일본에 소개한 사람은 한반도 도래인인 듯 한데..... 고구려인 이리지
(伊利之) 가 656년 사신으로 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가 신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이리지의 후손은 성(姓) 을 야사카씨로 바꾸어 이 일대에 거주한 듯 하니 신찬성씨록
에는 야사카씨의 시조가 되는 야사카노미야츠코가 의리좌(意利佐) 의
후손이라고 적혀 있으니 오늘날의 기온이 과거에는 도래인 집단 거주지였던 것입니다.
야사카진자는 수도 교토의 중심부에 있는만큼 위상도 대단하니, 후지와라 가문으로 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이르기까지 역대 권력자들의 비호를 연이어 받았고, 고대 법령인
연희식으로 부터 내려오는 이십이사에도 포함되는 등 대대로 유서 깊고도 큰 신사로 대접받았습니다.
근대사격제도에 따라 관폐대사로 지정되기도 했으며, 근대사격
제도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구 관폐대사' 입니다.
2023년 5월 23일, 야간 참배하던 외국인 관광객이 참배에 사용하는 종줄을 가지고
놀다가, 일본인 참배객에게 주의를 받자, 관광객을 안내하던 백인 가이드
가 일본인 참배객을 무시하는 태도로 노골적으로 멸시를 주는 영상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이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서 외국인 관광객의 무례한 행태가 잇달아 고발되면서.... 이른바
오버투어리즘과 국보 보호의 차원에서 종을 울리는 형태의 야간 참배가 금지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