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구매
책소개
'마지막 협객' 명동 신상사 풍운의 일대기『주먹으로 꽃을 꺾으랴』. 김두한·이정재·이화룡·임화수·유지광·시라소니 등 1세대 거물과 교유하고 싸운 낭만파 주먹 신상현. 그는 1950~70년대 서울의 중심 명동에서 밤의 역사를 썼던 주역이다. 그 질풍노도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 치열한 주먹세계 쟁투의 이면, 쟁쟁한 야인들을 둘러싼 돈과 권력과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신상현
저자 : 신상현
저자 신상현은 1932년생으로 서울 종로3가 아랫동네 관수동에서 태어났다. 이곳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유명했던 기생집 국일관이 있었고, 그곳은 거물 주먹 김두한이 청년 시절을 보낸 텃밭이었다. 신상현은 고교 시절부터 김두한의 휘하와 맞서며 배짱과 담력을 키웠다. 숭실고보 재학 시절 “일본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일본인 담임교사의 계속되는 질책에 반발해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6·25 당시 대구 특무부대에서 상사로 근무한 경력 때문에 그는 ‘신상사’란 평생의 별명을 얻었다. 그는 1950년대 명동에서 가장 강한 주먹조직을 이끌었다. 이후 1960년대 초부터 80년대 말까지 명동의 대표 주먹을 넘어 전국구 보스 ‘신상사’로 군림했다. 탁월한 싸움 실력과 관리 능력으로 다른 조직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기간 이권개입, 무분별한 폭력행사·갈취 등 일체의 범죄행위와 거리를 두었다. 그가 마지막 낭만주먹, 협객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그 세계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이유다.
저자 : 한기홍
저자 한기홍은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월간중앙> 기자와 정치·사회팀 차장을 거쳐 현재 선임기자로 일한다. 정치·사회·문화 각 분야의 인물 인터뷰 기사를 주로 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목차
책머리에
1장 격정의 시대, 낭만파 보스의 탄생
1950년대 명동, 주먹세계의 금도 있었다
-폭력은 더 큰 폭력 앞에 불안하고 취약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을 조용하게 하는 위엄
-“곰보 김두한을 곰보라 했는데 왜 사과하나?”
-“우미관 구경 안 하고 서울 다녀왔다는 말은 거짓말”
-김두한, 정보부 갔다 온 뒤 신상사를 피했다
대구 주먹들 차례로 때려눕힌 ‘특무대 신상사’
-‘눈물의 여왕’ 전옥과 대구 한일극장 추억
-전군의 숙군 단행한 김창룡 부대의 위세
-대구 최강의 주먹 박시덕·최시헌·갑빠 등을 눕혀
-‘최상의 정책’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정치세계는 건달에게는 ‘치명적인 독’
양정·휘문·경복 등 명문고 1진들을 모으다
-마약과 사채, 유흥업소 관리는 손대지 않아
-수사기관 능가한 사채업자 브로커의 정보력
-명동 달러시장은 북한 출신 아줌마 부대가 장악
-달러장수 아줌마와 시라소니
서울의 심장 명동으로 진입하다
-“장충단 공원의 야당 집회를 방해하라”
-단신으로 이정재의 호랑이굴로 들어가다
-“내가 명동 배신한다면 언젠가 당신도 배신할 것”
-경마장 ‘맞대기 주먹패’의 사설경마판
-이정재 비서실장 이경수의 사설경마 척결
-이정재의 질투, 다가오는 파국
2장 신상사와 이정재의 운명 가른 서울의 핏빛 느와르
이정재의 비극은 거대한 야망이 불렀다
-“겉으로 드러난 인격과 처신은 신사에 가까웠다”
-출중한 완력과 씨름 실력이 권력과 가까워진 계기
-미군 불하물자 세계의 ‘전문가’ 홍영철
-미군 입찰관계 책임자를 미인계로 매수
신상사와 유지광의 악연
-경무대 경찰서장 곽영주의 인생유전
-“죽을 때까지 각하의 곁을 지키겠다”
-‘조라치’에서 연예계 황제로 성장한 임화수
-이 대통령을 모두 ‘아버님’으로 불러
-임화수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각
시라소니 린치가 명동-...(하략)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출판사 서평
서울의 중심 명동에서 이뤄진 밤의 현대사
-쟁쟁한 野人들의 돈과 권력과 여자 이야기
“김두한.이정재.이화룡.임화수.유지광.시라소니 등 1세대 거물과 교유하고 싸운 낭만파 주먹 신상현, 그가 생애 최초 고백한 충격적인 주먹세계 일화, 흥미진진한 시대의 풍속도, 화려하게 떠오르고 무상하게 스러져간 야인들의 서글픈 인생, 그리고 당대 무수한 인간군상의 적나라한 생존방식과 투쟁의 기록”
■낭만파 보스 신상현, 격정의 시대 명동을 활보하다
낭만시대 주먹은 여러 명이 한 명에 몰매를 가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겼다. 소위 ‘다구리(몰매)’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흉기를 사용하는 일도 치욕으로 생각했다. 당시 주먹들은 태권도·씨름 등 전통 무술이나 복싱·레슬링 등 격투기를 익혀 몸을 단련했다. 몸과 ‘몸이 발휘하는 기술’이 무기일 뿐, 특별한 도구나 흉기를 동원하지 않았다.
신상사가 전국구 보스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걸출한 ‘싸움 실력’이 한몫했다. 1950∼60년대의 명동 바닥에서 맞짱 싸움 실력이 달려서는 결코 보스가 될 수 없었다. 신상사는 탁월한 발차기 실력, 번개 같은 선제공격, 단호하고 또 과감하게 상대의 눈을 순식간에 찌르며 급소를 가격하는 능력이 출중했다. 결코 싸움을 오래 끌지 않고 단번에 끝내는 실력은 다른 주먹들이 따라오기 힘들었다.
1949년 군에 입대한 신상사는 1953년 특무부대 상사로 제대했다. 평생에 걸친 별명 ‘신상사’가 붙은 유래다. 신상사는 그 특무대에 근무하는 동안 권력집단의 속성과 권력 운용 메커니즘을 깊이 공부할 수 있었다. 사람을 사귀는 방법, 설득하는 방법, 위협하거나 겁주는 방법, 또 위협하는 자들에게 맞서는 방법을 터득했다. 특무부대에는 전국에서 모인 걸물, 기인, 자칭 천재, 지독하게 불우한 자, 기회주의자, 표독한 자, 싸움꾼 등으로 넘쳐났다. 대부분 두뇌가 우수했다. 신상사는 특무부대 근무 중 다양한 군상을 겪으면서 자신의 주먹 기질이 더욱 강인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1950년대 서울의 주먹들은 3각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극장 우미관을 중심으로 한 김두한, 명동의 이화룡과 정팔, 종로파의 이정재가 그들이었다. 이화룡과 정팔 세력을 명동연합이라 한다면, 나중에 합류한 신상사는 자신의 독자 조직을 꾸리는 가운데 명동연합에 느슨하게 결합했다. 화신백화점을 끼고 있는 우미관 패들은 서울 출신의 김두한이 장악했다. 명동연합은 명동 시공관을 중...(하략)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책속으로
“1950년대의 주먹은 여러 명이 한 명에 몰매를 가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겼다. 소위 ‘다구리(몰매)’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흉기를 사용하는 일도 치욕으로 생각했다. 당시 주먹들은 태권도, 씨름 등 전통 무술이나 복싱, 레슬링 등 격투기를 익혀 몸을 단련했다. 몸과 ‘몸이 발휘하는 기술’이 무기일 뿐, 특별한 도구나 흉기를 동원하지 않았다.” --- p.22
“신상사는 특무부대 상사로 근무하는 동안 권력집단의 속성과 권력 운용 메커니즘을 깊이 공부할 수 있었다. 사람을 사귀는 방법, 설득하는 방법, 위협하거나 겁주는 방법, 또 위협하는 자들에게 맞서는 방법을 터득했다. 특무부대에는 전국에서 모인 걸물, 기인, 자칭 천재, 지독하게 불우한 자, 기회주의자, 표독한 자, 싸움꾼 등으로 넘쳐났다. 대부분 두뇌가 우수했다. 다양한 군상을 겪으면서 신상사의 기질은 더욱 강인해졌다.”--- p.41쪽
“술집을 상대로 한 모든 종류의 영업이나 ‘갈취’는 엄금됐다. 영업부장이나 기도 일을 하면서, 찾아오는 손님에게 인사하고 서비스하는 행위는 건달이 해서는 안 될 일로 보았다. 돈에 목매는 일이 다른 조직에 비해 훨씬 드물었다. 이 같은 전통은 먼 훗날, 노태우 대통령이 소위 ‘범죄와의 전쟁’을 벌일 때 명동파의 피해를 극소화하는 데 기여했다. 대조적으로 상경한 호남 출신 주먹들은 그때 결정적인 타격을 받고, 복구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 p.246쪽
“조창조의 사과, 그리고 신상사가 써준 합의서는 이후 서울 주먹계의 판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선 조양은이 양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는 점이 부각된다. 검찰에 합의서를 제출하면서 그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게 되고, 1980년 구속될 때까지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사보이호텔 사건이 주먹 역사에서 반복해서 회자되는 이유는 이 사건을 계기로 호남 주먹이 분화하면서 김태촌·조양은이란 희대의 라이벌 주먹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 p.269
“1960∼70년대 여자 연예인들에게 가장 큰 수입원으로 떠올랐던 것이 일본인을 상대로 하는 술시중이었다. 1순위가 요정 ‘삼청각’ 출입, 강남이 개발된 이후에는 요즘으로 치면 대형 룸싸롱 격인 ‘대각’ 출연이 둘째로 큰 수입원이었다. 삼청각이나 대각에는 여자 연예인들의 사진과 전화번호가 실린 앨범이 비치돼 있었고, 일본인 관광객들은 그 앨범을 보고 자신의 파트너를 선택했다. 그 앨범 안에는 몇몇 스타급 연예인의 이름도 올라 있었고, 이들도 연락을 받으면 주저없이 달려나갔다.” --- p.279
[예스24 제공]
네티즌 리뷰(2건)
92014.06.02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소위 건달들의 세계에서 신상사의 위치가 어느정도인지.수 많은 오보와 루머로 인해 잘못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