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정보 설레이는 제주도의 봄 -한겨레 3.27-

[왕실봉]

제주의 봄, 이리 설레도 되는 걸까?

	△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한 섭지코지 유채꽃밭.

유채꽃 파란바다, 하얀 유람선, 물질하는 해녀, 한가로이 풀뜯는 말‥말‥
신혼부부 까르르
드라이브길 개나리,벚꽃마저 툭툭
언덕마루 등대도 봄물이 잔뜩‥
무심하게 무르익는 제주의 봄
무정하도록 눈부시다

요즘 제주가 한껏 물이 올랐다. 봄물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계절의 조화지만, 상춘객은 콩당콩당 설레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다.

도로가며 돌담 아래며, 다소곳한 해안마을이며 시내 빌딩숲속이며, 가는 곳마다 유채·개나리·벚 등 원색의 봄꽃들이 춘흥에 겨워 아우성이다. 포연 자욱한 지구촌 저편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무르익는 남국의 봄은 가슴시리도록 아름답다.

지난 21일 봄바람에 실려온 바닷내음조차 싱그러운 남제주군 성산읍 섭지코지 유채꽃밭 앞에 섰다. 1500평 가량의 드넓은 꽃밭이 물감을 풀어놓은듯 샛노랗다. 어른 가슴높이까지 키가 솟은 유채꽃은 예전에 기름용으로 재배하던 제주의 대표적인 농작물. 가을에 씨를 뿌리면, 겨우내 싹이 자라 이듬해 3월초 꽃을 피워 4월말까지 제주의 봄을 소박하게 장식한다.

유채꽃밭 뒤로는 파아란 바다가 비단처럼 펼쳐져 있다. 때마침 유람선 한척이 흰물살을 일으키며 유유히 떠간다. 노랑, 파랑, 하양 물감의 대비와 조화가 눈부시다. 멀리 봉긋 솟아오른 성산 일출봉이 이 모든 풍경을 여유롭게 감싸안고 있다. 잘 채색된 한폭의 유채화다.

성급한 방문객들은 한발짝 떨어져 감상하는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꽃밭 안으로 뛰어들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그때마다 끼어드는 잡음. “사진찍는 거 돈 받음니다.” 어눌한 말투로 1000원을 내라는 꽃밭 주인은 머리에 수건을 두른 주름깊게 팬 70대 할머니다. ‘인심 한번 박하다’는 생각은 할머니의 행색을 보자마자 허허 웃음으로 변하고 만다.

△  섭지코지 인근 해안에서 미역을 따고 있는 해녀.

성산포 길목에도 일출봉을 배경으로 한 유료 유채꽃밭이 있다. 쿵짝쿵짝 음악소리 요란한 관광버스를 타고온 관광객들이나, 택시기사에게 이끌려온 신혼부부들이 연신 도착한다. 하지만 이곳의 유채꽃은 유채와 갓, 배추 등이 뒤섞인 잡종이다. 가을에 씨를 뿌리면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꽃이 피어있으니 ‘봄의 전령’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바닷가로 툭 튀어나온 좁은 땅(곶)을 뜻하는 섭지코지는 잔디섞인 초지와 절벽해안으로 이뤄져 있는데, 절벽 산책로를 거닐며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색을 즐기는 맛이 일품이다. 파릇파릇 풀덮인 완만한 언덕을 오르면 한가로이 풀뜯는 말들과 유채꽃밭이 등장하고, 오른쪽 언덕마루 흰 무인등대가 운치를 더한다. 요즘엔 <올인>인가 하는 드라마의 성당 세트장이 지어져 더욱 인기다.

인근 해안가에서 돌미역 따는 해녀들의 모습도 겨우내 움츠렸던 심신의 때를 털어내려는듯 활기넘친다. 열흘 물질하고, 닷새 쉬고, 또다른 닷새는 미역을 따는 생활을 반복하는 해녀들에게 바위에 지천으로 붙은 미역은 봄이 왔음을 절감케 한다. 여행객들도 미역이며 고동이며 조개 따위를 잡느라 바지자락을 걷어붙였다. 제주의 바닷바람이 거세지만, 냉기는커녕 온기조차 느껴진다.

해안일주도로를 상쾌한 바람을 쐬며 드라이브하다 보면, 길가에는 개나리가 벌써 앙증맞게 손짓한다. 서귀포 보문단지 입구 등의 벚꽃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여행객의 설레는 마음을 부추긴다. 제주도는 다음달 4~6일 왕벚꽃·유채꽃축제를 연다.

제주/글·사진 김종태 기자 jtkim@hani.co.kr">jtkim@hani.co.kr

※제주 새 명물 '어멍아방 잔치마을'

섭지코지에서 서쪽으로 자동차 10분 거리에 있는 성산읍 신풍리는 이른바 ‘어멍아방잔치마을’이다. 올해부터 농촌진흥청 테마마을로 지정돼 전통체험 민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똥돼지뒷간 제주온돌, 물허벅 연자방아 갖추고 전통체험 민박 운영

자동차 하나 지날만한 아스팔트 길을 따라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나즈막한 현무암 돌담이 에워싼 전통초가집이 눈길을 붙잡는다. 초가집 앞뜰엔 노란 유채꽃이 방문객을 반기고, 좀더 들어가면 돌담밖으로 가지뻗은 하얀 목련이 순수한 자태를 뽐낸다.

운치있는 마을의 풍경에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민박집마다 싱싱한 회를 한다든지, 집앞에 내가 흐르고 있다든지 하는 등의 특색이 있는데, 제주의 이름난 한학자인 오문복(65)씨 집(064-782-0587)은 특히 들러볼 만하다.

10년전 새로 지은 아담한 기와집과 금붕어가 노니는 뒤뜰의 작은 연못, 어려운 한문책으로 가득찬 서재 등에서 느껴지는 멋도 멋이지만, 인상좋은 안주인의 넉넉한 인심이 여행객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준다. 늦은 방문객에게 정성껏 만든 밀감차에 이어 한 소쿠리 가득 밀감을 내놓고,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를 섞어가며 마을과 제주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도 들려준다.

이튿날 떠날 때는 “올해 밀감이 남아돌아 어차피 둬봐야 썩을 것”이라며 손수 농사지은 밀감 한상자를 안겨줄 정도다. 여기에 오씨는 한지에 묵으로 쓰고 그린 글씨며 사군자 그림까지 얹어주니, 1인당 1만원을 내고 묵어가는 여행객이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다.

현재 210여세대 650명이 살고 있는 마을엔 10여곳의 지정 민박집이 있다. 마을 어귀에 재현한 전통 초가집에서는 똥돼지가 사는 제주 전통 뒷간인 ‘돗통시’, 가로지른 장대의 갯수마다 다른 의미가 있는 전통 대문, 너무 뜨거워 남제주군수가 엉덩이를 대어갔다는 제주식 온돌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또 물허벅, 연자방아, 새끼줄꼬기 등도 체험할 수 있다. 의욕넘치는 이장 오제욱(56)씨를 찾으면,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마을 연락처 (064)782-0311.

제주/김종태 기자

※여행정보

●먹을곳=성산읍 신산리 신산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유성식당(064-82-4076)은 물회 등 제주 토속음식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다. 15년째 음식장사를 하는 아주머니가 싱싱한 제주산 해산물로만 정성껏 음식을 내는데, 값도 성게·갈치국 5000원, 해삼물회 8000원 등으로 싸다. 제주산 성게는 알이 작고 색깔이 불그레한 것이 특징. 그러나 값이 비싸 관광지 주변 음식점 상당수가 성게국에 성게를 넣는 시늉만 한다. 이 집 성게국은 성게가 푸짐한 데다 맛도 개운하다. 갈치국 맛도 일품이다. 은빛 살아있는 싱싱한 갈치를 고기잡는 친척한테 직접 공급받아 만든다고 한다. 해삼과 성게를 듬뿍 넣은 해삼물회도 이 집의 자랑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재료를 넉넉하게 쓰다보니, 여태껏 허름한 식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농담을 한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64)=짧은 여정이라면, 비행기+렌터카 여행이 무난하다. 제주공항에 렌터카회사들이 많은데, 요즘엔 성수기가격에서 40~50% 정도 할인해준다.(신형 이에프쏘나타 48시간 11만원 정도) 제주전문 여행사들이 내놓는 항공+숙박+렌터카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다. 제주관광협회(742-8861~4, hijeju.or.kr), 제주도청 관광진흥과 (710-3341, cheju.go.kr), 남제주군청(730-1534, namchej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