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에게 배우기3
억새밭의 나비들
명주잠자리처럼 나비들도 변태를 하여 날아다니는 존재들이다. 저마다 인간이 추구하는 초극에 도달한 존재들이다.
화엄벌에서 발견하는 여름 나비 이야기를 잠깐 해보겠다. 화엄벌은 참억새가 자라는 초원이 넓게 자리해 있다. 자연 참억새를 먹이식물로 삼는 여러 나비와 나방들이 있다. 그 중 6월부터 7월까지 2~3주 씩 차례로 나오는 종이 있다. 바로 봄처녀나비, 흰뱀눈나비, 굴뚝나비다. 지금은 앞의 두 나비가 사라졌고 굴뚝나비들이 흔하다. 물론 다른 나비들도 날아다니지만 드넓은 화엄벌 참억새 밭을 먹이식물 겸 서식지로 삼아 번성하는 종류들이다.
작년에는 봄처녀나비가 대발생을 했다. 수풀 여기저기 몇 미터 간격으로 날아다녀 수만 마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봄처녀나비는 예년의 1/3 수준에도 못 미쳤다. 반면 작년에 비해 흰뱀눈나비와 굴뚝나비 개체가 많아졌다. 기후변화와 관계있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예년에 비해 가뭄과 폭염이 일찍 찾아와 물결나비가 한창 나올 초여름의 날씨가 매우 짧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폭염이 지속되자 흰뱀눈나비와 굴뚝나비가 더 일찍 더 많이 나오게 된 것 같다.
화엄늪의 세 종류 나비의 짧은 일생과 발생 시기 변화를 얘기했지만, 자연은 계절의 물살을 따라 이렇게 무수한 생물로 주인공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래서 자연에는 일방적으로 좋은 것, 일방적으로 나쁜 것이 도무지 없다. 장마면 장마대로, 가뭄이면 가뭄대로 그것을 오히려 기회로 삼는 종들이 새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랫녘 들판의 단작 농경지에서는 장마와 가뭄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하지만 백 천 만의 생물이 어울려 사는 산은 그렇지 않았다. 두 달이 넘게 가물어도 풀과 나무들이 완전히 죽지 않고 서로 물기를 나누며 가난하지만 함께 견뎌내는 모습이 새삼 감동적이었다. 숲 전체가 합심하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한편 이러한 쉼 없는 변화를 보며 아름다운 무상을 느낀다. 2~3주의 발생으로 초원을 주름잡던 나비들이 어느 사이 사라지고 다른 종들이 다시 밀물처럼 나타나 번성하다가 또 빠지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의 원주민인 시애틀 추장은 강제로 땅을 사려는 미국 대통령에게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머지않아 당신들의 부족이 홍수에 불어난 강물처럼 이 대지를 온통 뒤덮을 것이다. 반면에 나와 나의 부족은 썰물과도 같은 운명이 되었다. 이런 운명은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신비와도 같은 것이다. 아스라한 별을 지켜보듯이 우리는 소멸해 가는 우리의 운명을 지켜볼 뿐이다.(중략)
하지만 우리가 왜 불평할 것인가? 내가 왜 내 부족의 운명에 대해 슬퍼할 것인가? 부족의 운명이든 한 개인의 운명이든 마찬가지다. 사람은 왔다가 가게 마련이다. 그것은 바다의 파도와 같은 것이다. 한 차례의 눈물, 한 번의 타마나무스, 한 번의 이별 노래와 더불어 그들은 그리워하는 우리의 눈에서 영원히 떠나간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다. 슬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보며 터득한 지혜가 담긴 말이다. 담담하고 초월적인 어투이지만 밀려오는 백인 앞에 사리지는 동족의 멸망을 바라보는 깊은 연민을 숨길 수는 없었다.
자연은 무상하다. 하지만 계속 변함으로써 영원하고 새롭고 또 아름답다. 우리가 현명하다면 자연을 보고 자연처럼 때를 알고 서로 돕고 겸손을 좀 더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주 안에서 지구의 1년은 얼마나 짧은가? 하지만 지구 안 생명은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