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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시편-11 하나님은 피난처(시편 46편 1-3절)
성경 말씀은 시편 46편 1절에서 3절까지 봉독합니다.
[시편 46편]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라못에 맞춘 노래>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3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우리가 고라 자손의 시를 살펴보고 있는데,
첫 마디가,
[시편 46편]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라못에 맞춘 노래>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이렇게 고백을 하고 맨 마지막 11절에도,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제목이 될 만한 강조점을 앞에 끌어내어서 말하는 경우가 있고, 뒤에 가서 말하는 수가 있고, 앞뒤 다 말하는 경우도 있죠.
미괄식 두괄식 양괄식 이렇게 하는데, 총괄적인 이야기를 머리에도 나오고 꼬리에도 나오는 것을 양괄식이라고 해요
옛날 사람은 이런것 안 배웠을텐데 어떻게 알았을까..
‘피난처’라는 말이 오늘 우리에게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죠.
그런데 전쟁이 난다든지 난리가 난다든지 환난날에는 피난처라는 것을 찾게 되죠.
한 10여년 전에 모스크바와 쌍떼뻬쩨부르크라는 곳에 가봤어요.
모스크바 시내는 지하철 교통이 아주 잘 발달되었는데, 도시가 방사형으로 되어서 지하철은 뱅글뱅글 도는 것처럼 되어있는데, 제가 놀란 것은 지하철에 에스칼레이터로 타고 내려가는 깊이가 지하 100m까지 내려갑니다.
그런데 그 지하 100m속에 뚫어진 지하철 역들이 거의 예술적으로 디자인 되었어요.
우리처럼 직선에서 직각으로 날카로운 예각이 아니고, 다 곡선 내지는 원형 돔 형식으로 이런 식으로 곡선으로 처리했는데, 역 자체가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고..
우리는 다 똑같죠. 박스형으로..
지하 100m까지 내려갔는데, 그게 뭐냐 하면 냉전시대의 산물이라는 거예요.
즉 핵전쟁이 터질 때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지하철 전체가 피난처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쌍떼뻬쩨부르크는 더 깊어요.
그런데 그렇게 깊은 지하 100m 이상 되는데 지하철을 통과하는데도 역 플렛폼에 서있으면 공기가 가을 들판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설계를 했는지..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콘크리트를 벽면처리 했는데, 금이 가서 균열된 것을 하나도 못 봤어요. 열흘 동안 상당히 정밀하게 살펴봤는데, 그 사람들의 건축 기술에 대해서 지금도 늘 마음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피난처를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는 거죠.
여기 고라자손들이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다.’ 이것은 굉장한 고백이거든요.
여러분 피난처가 왜 필요하냐 하면, 세상 살아갈 때 아무 어려움도 두려움도 환난도 없다고 하면 피난처라는 단어도 아예 안 생겼을 거야.
그렇겠죠?
우리는 피난처 이게 왜 필요하냐? 뭐가 피난처냐 할 정도로 우리 마음은 거리가 먼데, 고라 자손들이 사실은 살아남았던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의 계명 때문에 살아난거죠.
지난번에 말씀드렸죠?
반역을 한 사람 같으면 한국 역사 같으면 3족을 멸한다 할 텐데, 신명기 24장에 보면, 아비의 죄로 인하여 아들을 죽이지 말고 아들의 죄로 인해서 아비를 죽이지 말라. 각 사람은 자기 죄로 죽어야 된다..
그런 말씀 때문에 고라 자손들이 살아났던 거예요.
그리고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이스라엘 땅은 그야말로 참 환난이 많았습니다.
북쪽으로는 항상 앗수르라는 강대국이 있고 남쪽으로는 애굽이 있고 해변 쪽에서 침입을 해 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바벨론이 침략하고 메대 페르시아 군대가 지나가고 헬라 알렉산더가 그리로 지나가고 그야말로 환난의 연속이었어요.
그런 면에서는 우리나라와 운명적으로 상당히 비슷해요.
우리는 아시아 극동쪽에 있는, 이스라엘은 극서쪽에 있는데, 꼭 강대국이 진입할 때 교두보 역할을 하면서 그렇게 환난이 많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마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다.’ 이런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3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아니해야 되겠다’ 그 말이죠.
두려움이 없다는게 아닙니다. 두려움이 있으니까 피난처도 필요한 것이고,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스스로 다짐하는 거죠.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여기 ‘한 시내’라는 것은 ‘강’이라는 말도 되고 ‘시내’라는 말도 되고, 히브리어로 ‘나하르’라는 말인데, 이것이 아마도 기드론 계곡에서 나오는 실로암 물이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 보좌에서 흐르는 은혜의 강물을 은유한 것인지 잘 모르지만, 어떻든 그런 시내가 있어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여러분 이 동네를 도시를 건설할 때 우리처럼 평지에 한다든지 아니면 지하수를 뚫어서 물을 끌어올릴 때 있다면 다른데, 예루살렘이라든지 헤브론에 가보는 해발 800-900고지 산 꼭대기에다가 도시를 건설하니까,
도시보다 계곡이 높은데 있어야 물이 내려올 것 아녜요?
산 꼭대기에 도시를 설계하면 제일 어려운게 물이예요. 물..
물만 있다면 참 좋겠는데, 물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데 우리는 관심이 있으니까 예루살렘에 가거나 므깃도를 가거나 이 도시는 물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우리 에스라 하우스도 물 때문에 애를 먹잖아요.
물에 관심이 있어서 물을 보고 하는데, 예루살렘에 가보면 기가 막힌게 기드론 샘에서 기혼이라는 기드론 계곡 위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나와서 실로암 못으로 오는 히스기아 터널을 통해서 물이 나와서 실로암 못으로 들어오는데,
그 터널이 제가 겨우 빠져나갈 만 합니다. 저 보다 조금만 더 뚱뚱하면 곤란해.
그리고 저는 키가 좀 크니까 상당히 먼 거리인데, 구부려서 가는데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송선애 집사님은 문제가 없는데, 저는..
모자 안 썼으면, 제가 정글형 모자 있잖아요. 그게 있으니까 참 안 상했지..
몇 번 부딪혔어요.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거리를 돌을 쪼아 파내어서 어떻게 운반해서 어디에 버렸는지, 그것을 통과하면서 물이 종아리 절반만큼 올라오거든요.
큰 홈에 종아리 절반만큼 물이 흘러나오는 거예요. 콸콸..
어떻게 산꼭대기에 그렇게 물이.. 이것도 히스기야 때 주전 600년 정도인데,
2600년간 물이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맑은 물이..
물 양이 엄청난 겁니다. 너비는 우리 어깨만큼 되는데 깊이가 종아리 절반까지 흘러내리니까 그렇게 물이 흘러나오는 거예요.
그 물 하나 때문에, 지금이야 물론 동력으로 갈릴리 호수물을 끌어오니까 그렇지만, 옛날에는 동력이 아니고 자연 수압과 경사로를 이용해서 물을 끌어오는 것이니까 굉장한 거죠.
여러분 혹시 앞으로 예루살렘에 가거든 힘들어도 반드시 가 보세요.
그리고 코스에다가 ‘기혼 샘에서 실로암 못까지 흐르는 수로를 통과하게 하라’고 반드시 적어 놓아야 돼요. 안 적으면 갈 수 없어요.
그 물은 엄청난 물이죠.
5절입니다.
5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꼭 ‘새벽에 도우신다’ 해서, 새벽에 하나님이 기도 들어주시고 저녁에는 안 들어주신다 그런게 아닙니다.
‘새벽’이라는 말은 ‘일찍, 진작부터, 일찍이’ 이런 말이지, 어떤 사람은 새벽에 도우신다고 하니까 ‘새벽기도 안 하는 사람은 기도 응답 안 한다’ 그런다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자정에 0시에 기도하면 더 잘 들어준다 해가지고 중리 어디가면 0시 기도하는 곳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밤 11시 12시에 잠자기 틀렸죠.
그런 이상한 미신 비슷할 것을 가지고 사람 잠도 못자게.. 그렇게 0시에 기도하고 새벽이 4시에 기도하면 잠은 언제 잡니까?
그런 것은 별로 좋은 신앙이 아니야.
할머니 할아버지가 잠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괜찮다지만, 젊은 사람에게 그렇게 하면 이상하게 됩니다.
옛날부터 그런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
6 이방이 훤화하며,
‘휜화한다’는 것은 ‘떠든다’는 거죠. 함부로 떠드는 것을 훤화한다고 해요.
.. 왕국이 동하였더니 저가 소리를 발하시매 땅이 녹았도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여러분 야곱이라는 사람이 어디를 봐도 그렇게 심보가 좋은 사람 같지는 않잖아요.
어디를 가든 자꾸 트러블을 만들고, 뱃속에서부터 130세까지 편안한 날이 없어요.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런 야곱에게 약속한 것을 하나님이 지키시는 거예요.
야곱이 잘하고 못하고 그런것 때문에 가끔 늦어지기는 하지만, 생명을 지켜 주시잖아요.
라반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에서도 손대지 못하게 하고 지켜주시는 건데,
그래서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다.
어떤 면에서는 아브라함처럼 요셉처럼 믿어야 피난처 된다면 상당히 불안할거야.
우리는 잘못 믿으니까..
그런데 야곱처럼 개떡같이 믿어도 하나님이 늘 지켜주셨거든요.
그래서 가끔 그런게 위로가 되는 거예요.
꼭 아브라함처럼 요셉처럼 사무엘처럼 그렇게 살아야만 은혜받을 수 있다하면 참 힘들텐데, 야곱처럼 신앙생활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거예요.
그래서 은혜죠. 은혜..
우리가 선행을 해가지고 하나님이 갚아 주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이 갚아 주는게 아녜요.
우리가 먼저 하는게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이고, 우리가 갚지도 못하면서 감사할 뿐이죠.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땅을 황무케 하셨도다
9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피난처’라는 말이 ‘마흐세’라는 말인데, 대피소 피난처 같은 말이죠.
47편도 비슷한 얘기인데,
[시편 47편]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2 지존하신 여호와는 엄위하시고,
‘엄위하다’는 말은 두려운 분이다. 위엄이 혁혁한.. 히브리어로 ‘야레’라는 말은 두려운 분이시다.
.. 온 땅에 큰 임군이 되심이로다
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열방을 우리 발 아래 복종케 하시며
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셀라)
5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6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7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
8 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9 열방의 방백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여호와의 것임이여 저는 지존하시도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영광송 같은 그런 시편입니다.
48편은,
[시편 48편] <고라 자손의 시, 곧 노래시 곧 노래>
1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2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시온산은 해발 800m고지 쯤 되니까 기후가 좋다는 거죠.
위도상으로는 상당히 더울 수 있습니다. 그 쪽이..
그 예루살렘에서 1100m내려가면 여리고가 있어요. 여리고..
여리고 보다 좀 더 낮은 곳이 사해죠.
그래서 사해를 3월달에 가서도 목욕을 할 수가 있어요.
1, 2월에 가도 거의 반팔로, 속에 열이 나는 사람은 반팔로 있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은 추워서 눈이 올 정도인데, 여리고는 해발 -300m쯤 되거든요. 지중해 밑으로 300m 밑에 있는 것처럼 푹 꺼져 있어요.
사해는 그 보다 더 낮고..
거기는 가면 더운데, 해발 800고지로 올라가면, 여리고에서는 1100고지를 올라가는 거죠.
거기 예루살렘은 시원한데, 그래서 예루살렘처럼 헤브론처럼 높은데 도시를 정하는 것은 기후 때문이예요.
그래서 그 쪽에는 일단 터가 높아야 돼요. 높은 곳이 좋습니다.
높은 곳이고 물이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죠.
3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도다
그러니까 어려울 때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께 숨어라.
그렇게 알려졌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세상에 우리가 만약에 인생을 살아가다가 어려움이 없고 죽음이 없다면 아마 땅에 철학도 종교도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다가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그런 어려움 때문에 사람이 더듬어 하나님을 찾게 하실려고 하신 것이 아니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할려고만 하면 이 땅에 질병도 고통도 환난도 없이 이 땅을 낙원처럼 할 수 있는 거죠.
만약 그래봐. 인간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안 찾는 거야.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찾게 되고 철학을 하게 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전도서를 볼텐데, 형통한 날에는 찬송하고 곤고할 때는 생각하라고 했어요.
곤고할 때 생각함으로서 인생의 깊이를 더하는 거죠.
아무 생각없이 살면 인생의 깊이가 없어요.
제가 인도네시아라든지 캄보디아는 제가 가 보지 않았지만, 그 쪽 기후가 비슷하거든요.
철학자 중에 캄보디아 출신 철학자 봤어요?
인류 역사상 인도네시아에서 철학자가 안 나오는 거라.
내가 가 봐도 철학이 안 되겠어.. 더워서..
그리고 먹을 것이 그렇게 풍족하고..
지진이 나니까 신을 찾을 수 있겠지만, 지진 그거라도 안 나면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쪽은 태풍도 잘 안 와요. 어쩌다가 지난 번 쓰나미 한번 오기는 했습니다만 태풍도 거기에서 발생해서 위로 올라오는 거지..
진짜 적도지방에는 더워서 생각하기 싫어해요. 생각하라고 하면 누워 자 버릴거야. 아마..
그래서 그런 열대라든지 먹을 것이 열대 우림 속에 열대 과일이 풍성하고 어려움도 없고 하면 철학자가 안 나와요.
그래서 사람이 어려운 곳에서 그리고 대체로 보면 문학이나 실내악이나 철학이나 이런 것들이 북쪽으로 올라가야 나옵니다.
독일이나 러시아나..
여러분 러시아 문학작품을 읽어보면 지루해서 한권도 내가 끝까지 다 읽은게 없어. 이 때 내가 고백을 합니다.
밤이 기니까 어떻게 말을 지루하게 하는지.. 정말 짜증하게 해요.
읽어본 사람 공감할거예요.
정말 지루하게 합니다.
꼭 한국 연속극처럼.. 얼마나 지루하게 하는지..
왜 그런가 보니까 겨울이 길고 밤이 길어서 그래요.
그래서 어려운 땅에서 철학이 나오고 종교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런 어려움이 없었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다’ 이런 말이 안 나왔겠죠.
3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도다
4 열왕이 모여 함께 지났음이여
5 저희가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갔도다
6 거기서 떨림이 저희를 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그러니까 괜히 예루살렘을 한번 넘어다 보거나 집적거리다가 도망하면서 고통하는 그 모습을 볼 때 여인이 해산하는 것처럼 그런 고통을 당했다는 거야.
7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동쪽에서 ‘타르수스’라고 하는 스페인 쪽에서 침략해오는 배를 동쪽에서 불어오는 동풍이 확 뒤집어 엎어버리면 지중해에 빠지는 거죠.
타르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8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영히 견고케 하시리로다(셀라)
9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10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11 주의 판단을 인하여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12 너희는 시온을 편답하고 그것을 순행하며 그 망대들을 계수하라
‘편답(遍踏)한다’ 하는 말은 ‘돌아본다’는 말입니다.
13 그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14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인도하신다’는 말이 영어로 가이드(guide)라고 하는 것이고, 히브리어로 ‘나하크’라는 말인데, 인도하신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가 성에 있을 때 보호하시고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신다.
이것은 아마 항상 이런 시라는 것은 체험이 있고 난 후에 그렇게 노래하는 거죠.
자기 간증시처럼..
49편도 고라 자손의 시인데,
[시편 49편]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지금 고라자손들이 노래하면서 뭐라고 하느냐?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이것은 ‘명철을 묵상하여 지혜를 말하겠다’ 이렇게 말해야 더 맞겠죠? 번역을 할려면..
말부터 먼저 하고 그리고 생각하면 안 되잖아요.
먼저 명철을 묵상하고 다음에 지혜를 말하겠다.
히브리어로 보면, 우리말로 하면 ‘명철과 지혜’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데, 히브리어로 보면 음운이 지혜는 ‘하크모트’이고, 명철은 ‘하쿠트’예요.
하크모트 하쿠트. 음이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그 말을 명철을 묵상한 후에 내가 지혜를 말하겠다 하면서,
그리고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이 ‘비유’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마샬’이라는 말인데, 마샬은 잠언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말로 번역할 때,
우리가 나중에 시편 다음에 잠언 공부하는데, 잠언이 ‘마샬’입니다.
그러니까 비유 중에서 은유 직유를 써가면서 생활 지혜 이런 것을 담아내는 문학형식이 마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만나게 될 잠언을 ‘미쉴레숄로모’. ‘솔로몬의 마샬’이라고 그런 말이 됩니다.
그래서 금언 내지 격언 혹은 비유 윤리적 교훈시, 이런 것을 비유 형식으로 혹은 아니면 단문 형식으로 표현한 그런 문학 형식인데,
우리나라에는 ‘속담’ 정도는 있어도 마샬은 없는 것 같아요.
중국에만 해도 명언집을 만들어내죠.
논어도 공자의 명언집이고, 명심보감 동몽선습 이런 것은 다 윤리적 삶의 지혜를 담아내는 그런 형식입니다.
여러분 시간이 나면 우리가 잠언도 읽어보지만, 동양 잠언 중에 논어라든지 명심보감 읽어볼 만해요.
지금은 명심보감 주해가 달려있는 것이 나오거든요. 논어도 주해가 나오니까..
읽어보면 ‘야. 이것 하나님을 모르고도 이렇게 지혜가 동양 사람에게 지혜가 있었구나.’
놀랍습니다. 상당히 놀랍니다. 배울게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 고라자손이
4 내가 비유에 (마샬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오묘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히라’라는 말인데, 난제 혹은 수수께끼.
어떤 경우에 성경에 더러 알기 어려운 말이 있는데, 지금 그런 것을 이야기 하겠다는 건데, 놀라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49편에..
5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7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돈 벌어서 돈이 많으면 천국갈 수 있을 것이라든지, 돈만 있으면 천국가는 티켓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착각이라는 겁니다.
한 생명의 구속한 값이 지구상에 있는 돈을 다 가져와도 돈으로 해결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굉장한 비밀이죠.
수많은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돈 있으면 교회까지는 올 수 있습니다. 교회까지는 올 수 있어도 천국은 잘 안 돼요.
돈 가지고 생명의 속전을 내지 못합니다.
너무 비싸기 때문에 은혜로 거저 받아야 하는 것이지 돈 갖고는 안 돼요.
돈 갖고 가면 이건희도 안 돼. 은혜로 하니까 나 같은 사람도 받을 수 있는 거지..
그래서 여기 지금 고라자손이 오묘한 진리를 말하는데,
생명의 속전을 내려고 하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은행의 모든 돈을 다 가져와도 안 된다는 겁니다.
9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그것은 돈 가지고 못한다는 겁니다.
10 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여러분 돈번답시고 그렇게 아둥바둥 하는데, 사실 우리가 하루에 먹는 것 얼마나 먹어요?
입는 것도 하루에 옷을 한번만 입는 거지, 옷을 다섯 번 갈아입으라고 하면 그것도 힘들텐데요.
그러니까 입는 것은 저녁에 추위 가리면 되는 것이고, 먹는 것은 하루 세끼만 먹으면 되고..
도대체 몇백억 몇천억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죠. 그렇죠?
그것으로 좋은 일 한다면 모르지만 그것을 쌓아두면 신문지 쌓아두는 것과 똑같잖아요. 다 못 쓰고..
여러분 힘들거든 신문지를 쌓아 놔.. 몇 백억 몇 천억이 있다. 다 안 쓴다..
종이인데 똑같잖아요.
쓰지 않고 쌓아 놓을 바에 아무 가치가 없는 거예요.
돈은 아름답게 써야 가치를 발하는 것이지, 장롱밑에 쌓아 놓으면 아무 가치를 발하지 못하고 거기는 동록이 슬고 아니면 좀이 파먹고..
그리고 결국은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한 자도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의 재물은 결국은 타인에게 끼치고 마는 거야. 아무 것도 아니죠?
오늘 신문에 보니까 미국에 어떤 교수인데, 한국에 서울대학 교환교수로 왔다가 자기 본국으로 돌아간 거야.
한국 학생들이 자기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영접하고 자기 강의를 경청하고 학문적 열심이 있던 서울 대학생을 생각할 때, 자기에게 재산이 12억 있었다고 해요.
그것을 서울 대학에 6억을 장학금으로 내 놓겠다.. 유언장에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고려대학교에서도 강의를 한 것 같은데, 거기도 6억을 기부하겠다..
한국 대학에 기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었어요. 어제 신문인가 오늘 신문인가 나왔는데..
여러분 미국 사람들 헌금하는 실력이나 내지는 예배 출석하는 실력은 한국 사람보다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런데 유산 처리하는 것은 우리와는 비교가 안 돼요.
그 사람들은 거의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습니다.
물려줘봐야 세금으로 90% 가져가 버리니까 싹 다 빼앗아 가버려요. 유산 받아봐야..
그리 할바에 괜히 그 아이들 의존하게 하는 것보다 교회에 기증하거나 대학이나 자선단체 연구기관 이런 데에 다 기증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없는데 교회는 부자인 경우가 많아요.
성도는 20~30명밖에 안 되는데, 교회는 굉장히 부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갔던 알라바마주에 갔을 때, 거기 한 작은 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거기가 웰밍턴인가 하는 곳인데, 단풍이 너무 아름다운 참 조용한 도시였어요
그런데 거기 미국인 침례교회인데, 성도 수가 많지 않아서 한쪽에는 미국에서 예배드리고 있는데, 한쪽에 부속되는 방을 한국교회 개척한 목사님께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주는 거야.
한 교회 예배당 한 건물 안에 미국인 교회도 있고, 한국인 교회 예배를 따로 드려요.
건물도 쓰게 해주고, 전기도 그냥 쓰게 해 주고, 또 교회가 어렵다고 도와주고..
참 역시 멋쟁이들이다.
그런데 알아보니까 성도는 얼마 안 되어도 교회는 부자라는 거예요.
다 돌아가실 때 교회에 재산을 몽땅 다 헌납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타인에게 어설프게 끼치지 말고 지혜롭게 잘 써야 되겠죠.
11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하나님께서 한번도 위임장 써준 적도 없는데, 자기 이름으로 이전등기 해 놓고, 전부다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을 가만히 보니까,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문제는 장구치 못한다는 거야.
여러분 한번 물어봅시다.
여기는 보니까 저 보다 나이 많은 사람 별로 안 보입니다만, 어떻든 60년 70년 살면 만족해요?
영생이 있다손 쳐도, 영생은 어차피 영원한 거니까, 그것은 끝도 없는 거니까 영생은 오래산다고 삭감되는 것 아니잖아요.
영생은 영원하니까 놔두고, 비록 초가삼간 오두막에 살아도 이 땅에서 좀 더 살아봤으면 좋겠죠?
60~70은 너무 짧잖아요. 그렇죠?
좀 불편해도 100살 120살은 살아야 돼요.
이게 100살 하면 만족하냐? 만족하지 않아요. 그 때 가도.
저는 이게 비 본래적이라는 거야. 원래부터 우리가 60~70년 사는게 본래적인것 같으면 만족하겠죠.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만족하지 않아요.
그냥 ‘이것이 인생이로다’ 하고 철들자 망령들고.. 이것이 이생이야.
가만 생각해보니까 비 본래적이고, 잘못된 거죠.
잘못되어서 짧아졌기 때문에 만족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참 존귀한데..
여러분 동구밖에 은행나무보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존귀합니까?
그런데 은행나무는 600년~700년 사는데, 우리는 10분지 1 밖에 못 사는 거야.
그것도 아픈날이 많고 병든 날이 많고..
그래서 이 고라자손이 노래하기를 ‘사람은 존귀하기는 분명한데, 장구치는 못해.’
장구치 못한 점들이 멸망하는 짐승과 똑같아..
거북이도 그렇게 느리게 살아도 100년 넘게 사는데, 사람은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니고 공부한다고 골머리가 빠지게 해 놓고는 그렇게 빨리 헤프게 죽어버리는 것 아닙니까?
이게 장구치 못하며 멸망하는 짐승과 똑같이 그저 어떻게 이렇게 짐승과 똑같이 취급을 당하느냐?
13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셀라)
이렇게 돈만 알고 그것을 쌓아놓고 쓰지도 못하고 발발떨고 죽어서 다른 사람에게 끼치고 그렇게 하면서, 그렇게 하는게 잘못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우매한 사람들은 그것을 칭찬한다는 거야. 그렇게 사는 것을..
그런데 보니까,
14 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인간이 이렇게 어리석은 일에 온 마음을 다 빼앗기고 누리지도 못하고 나누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살고 만다는 거예요.
그러나 지혜있는 자가 말하기를,
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셀라)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지어다
여러분 옆집에서 혹시 갑자기 로또복권에 당첨되어서 갑자기 부자가 된 것을 보고, 그것 때문에 서러워하거나 노여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17절 봐요.
17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이 땅에서 누가 부귀 영화 명예 권세 다 누렸다할지라도, 그것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예요.
요즈음도 연예인 치고 결말이 좋은 사람 없어요.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핍박하거나 욕을 하거나 어리석다고 하거나 아니면 박수치거나 그런 데에 너무 요동할 필요 없어요.
여러분 예수님을 보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던 사람들이 며칠 있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했잖아요.
군중이라고 하는 이런 세계는 별로 우리가 일부러 욕 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런 사람들이 우리에게 욕한다고 해서 거기에 요동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 저는 신문 기사 밑에 댓글 다는 것 영원히 없애버렸으면 좋겠어.
좋은 말 쓰는 것은 한 줄도 안 나와.
신문하는 사람도 보람이 없을 텐데..
사람들이 하는 말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영광 따라가지 못해요. 오히려 천국 갔을 때, ‘얘 너는 땅에서 좋은 것 다 받았어. 너는 다 누렸잖아.’ 그렇게 될 위험성이 있어요.
18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