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이종헌 지음/소울메이트 2014년판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여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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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하는 여행에는 여러 종류와 방식이 있다. 이 책과 같이 역사적 유적지를 찾아보는 역사 기행, 종교 성지를 찾아 떠나는 종교 순례, 그리고 인생의 참 의미를 찾아 세계 각국을 떠돌아보는 문화 체험 여행, 그리고 최근에 유행하는 문학과 예술의 배경이 되는 곳을 찾아 작가와 작품세계를 향유해보는 기획 여행이라든지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다양하다. 그것뿐인가. 리조트 휴양지나 대형 크루즈 선박을 이용한 휴양용 여행도 있고, 오지 탐험을 목표로 떠나는 여행도 있고, 어느 한 나라를 택해 그곳에서 1달간 생활해보는 여행 등 특별한 즐거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있다.
이 책은 역사 기행의 하나로 유적지를 찾긴 하지만 인류 문명의 찬란함을 느껴보려는 지적체험보다는 어두운 역사의 한 부분을 찾아 현재 문명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희구하는 정화적 차원의 여행으로 최근에 시작된 다크 투어리즘(Da가 Tourism)으로 명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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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의 세 나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크로아티아간에 1992년에 내전에서 벌어진 인종청소 및 대량학살 사건을 중심으로 그 원인과 배경을 역사적으로 규명하기 시작하여 주변의 나라인 폴란드, 헝가리, 체코와 슬로바키아, 그리고 오스트리아까지 첨예하게 관계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 시간적 배경은 로마제국부터 시작해서 동서 로마제국의 분리,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을 거쳐 러시아제국의 남하,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절정으로 했다가 20세기 말에 보스니아 내전으로 치닫는 시간대들이다.
공간적으로는 전 유럽과 중동아시아, 러시아, 그리고 중세에 영향을 끼친 훈족의 침략 이동 경로까지 감안한다면 유로-아시아의 전체 영역으로까지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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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극적인 결말로 장식된 발칸반도의 보스니아 내전은 민족주의와 종교간 첨예한 대결로 비쳐지지만 그 내부를 깊이 들여다보면 궁극적으로는 이웃 나라의 영토쟁취에 대한 과도한 욕심으로 판명되고 있다.
그 과도한 욕심은 몇 백 년간 이웃으로 살을 부대끼며 살았던 여러 민족들을 하루아침에 폭력집단으로 변모시키며 서로에게 총칼을 들이밀어 ‘살육과 약탈’이라는 야만적인 폭력을 감행하게 만들었다.
이것으로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관계된 민족과 국가는 ‘집단적 기억’을 일반인들에게 남겨놓는다. 이것은 끝나지 않는 폭력을 불러들인다. 발칸반도의 되풀이 되는 역사가 그렇고, 중동의 ‘이스라엘’과 주변 인접국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쉬이 잊히지 않는 ‘기억’은 시대가 변해도 상황이 악화되면 또 다시 기억에서 원한과 폭력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급기야 전쟁이라는 양상으로 변모하며 이웃에 대한 약탈과 수탈, 지배라는 악의적 양상을 되풀이 한다.
저자는 그래서 아름다운 중세를 보존하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낭만적인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부러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다시 재발할지 모르는 폭력으로 그 평화를 끝장내는 야만적 긴장감을 동시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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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라는 인물의 탄생으로 비로소 인류는 역사의 길로 들어섰다.
(『닥터 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문학 작품 속에서 전개된 이 문장이 이번 책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을 평하는데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적절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인용해서 논해본다.
발칸반도의 보스니아 내전에는 근본적으로 종교상의 차이에서도 기인했다. 각기 정교와 기독교(카톨릭), 그리고 이슬람교의 3개 종교가 각국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중동과 유럽 간의 역사적 오랜 전쟁과 유럽이 서로마와 동로마 체제로 변환되면서 정교와 기독교(카톨릭)으로 분파되면서 생긴 수 많은 갈등과 폭력을 역사적 순간마다 일으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도 책에서 밝혔듯이 이 3개의 종교는 그 근본은 모두 같다. 그 시조가 유대교의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각 종교의 가르침에 의해 각자의 신앙 안에서 그들의 하느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따른다면 이러한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는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지만, 그 종교를 정치에 이용한 지도자들과 그 의도 아래 따랐던 국민들의 대중 심리가 영합하며 인접국에 대한 영토야욕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서 역사적 순간마다 파국으로 치달았던 것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닥터 지바고』에서 예수 탄생으로 인류가 역사의 시간으로 접어드는 순간 무지와 야만의 세계에서 도덕과 바른 종교의 세계로 접어들며 비로소 화려하고 찬란한 문명으로 인류가 도약했다는 내용을 피력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충되는 현실의 지구촌 세계에서 이제 그런 기대와 희망은 무의미할 정도로 희미해졌다. 그러나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각국의 서로에 대한 원한과 악의적 폭력 사용에 대한 경종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또한 그렇지 않은가. 이웃 일본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가까운 식민지 시절부터 과거 왜구들의 침략으로 이 강토가 쑥대밭이 되었던 기억을 잊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우리 또한 역사교과서로 ‘집단적 기억’을 자손대대 승계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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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저자의 바람은 다음과 같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유려한 중세 유적을 보존하고 있는 발칸반도와 주변국이 이번 여행에서 본 것처럼 평화롭고 안정되어 그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축복 속에 일상을 마음껏 누리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것 외에 우리 인생에 무슨 의미가 달리 있을 수 있을까. 어려운 철학을 통한 인생의 의미를 되짚지 않더라도 태어나서 살아가는 자연의 생명체 중 하나인 인간들은 태어난 그 자체가 축복이며 즐겁고 기쁘게 한평생 살아가는 것이 그나마 의미이거나 의무거나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