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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Lithuania)
리투아니아(Lietuva 리에투바)는 발트 3국 중에서 인구와 영토가 가장 많고 넓다. 인구 300만 명이며
국토 면적 65,300 km ² 로 남한의 2/3 정도이다. 평지가 주를 이루는 나라로, 가장 높은 지역이 불과
294 m 로 자칭 "초원과 언덕의 나라 : A land of grasslands & low hills" 로 홍보 유인물에
적고 있다. 국토의 1/4 이상이 숲으로 덮여 있고 2800개가 넘는 호수로 이루어져 있다.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여 현재는 나토와 유럽연합에 회원국이다.
-유럽의 대형 유통 체인 막시마(MAXIMA)-
** 수도 빌니우스(Vilnius)로 가는 도중에 생수를 구입하기 위해 들린 대형 마트(Mart)이다
-생필품 매장-
** 2층에는 고급의 각종 브랜드 점포가 있다.
- 수도 빌니우스(Vilnius)로 가는 길-
** 서부 유럽의 도시 밖 도롯가 풍경이 그렇듯이 울창한 숲이 아니면 질펀한 평야 뿐이다.
트라카이(Trakai)
빌니우스 에서 서쪽으로 29 km 떨어져 있는 트라카이는 3개의 호수에 둘러싸인 좁은 반도에 위치 해 있다.
14세기 초에 현재의 수도 빌니우스로 천도하기 전 리투아니아의 수도였으며 리투아니아의
역대 대공작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5천 여명(2007년)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국도에서 호수 건너로 바라다 보이는 트라카이 -
-트라카이 성(Trakai castle)-
** 트라카이 성은 갈베(Galve)호수 위에, 붉은 벽돌로 14 세기에 지어진 대공작의 성으로 전쟁으로 파괴,
방치되었다가 1951년부터 복구를 시작하여 현재도 진행 중이다. 간간이 비가 내리는 날씨라서
파란 호수와 하늘 그리고 그 속에 붉은 색갈의 고성이 어울리는 장면은 끝내 볼 수가 없었다.
-트라카이 성(Trakai castle) 전경-
**구글 사진 편집
-고성으로 들어가는 나무다리-
**나무 다리의 길이는 약 200 m 가량으로 보인다. 성채는 199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트라카이 성 성문-
** 성의 평면도(다음 사진)에 의하면 성의 출입구는 이 문 한곳 밖에는 없다.
-트라카이 성의 평면도(안내도)-
** 성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앞부분은 성곽 모서리에 견고한 원주형 탑이 요새화 되어있고
성벽 또한 두텁게 축성되어 있다. 1시 방향으로 지어진 별채는 도개교로 이어져 있는 본성(本城)으로
성의 중추지역이며 성주의 실제 거주지로 사용된 곳이다. 성문 양쪽에는 똑 같은 원주형 탑이 세워져
있으나 위의 평면도에는 오른편 탑이 실제와는 달리, 4각주로 그려져 있어 제도상의 오류로 보인다.
- 성벽에 붙여 건축된 주거 및 생활 공간-
** 작은 면적의 섬이라는 여건에서 넓지 않은 성내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성내에 상주하는
방어 병력의 즉각적인 전투배치를 가능케하는 건축의 묘로 판단된다. 건물 내부가 통로로 사용되어
생활 공간이 좁아지는 비효율을 없애기 위해 외부에 나무 잔교를 설치하여 통로로 사용하였다.
-성문 쪽으로 바라본 성내 전경-
** 앞에 보이는 난간은 본성으로 가는 계단의 난간이다.
-본 성-
- 본성 입구의 출입 차단용 도개교(Draw bridge)-
- 성채 중앙의 궁정-
** 본성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메인 홀(Main Hall)-
- 메인 홀의 대공용 의자-
-트라카이 성(Trakai Peninsula Castle) 전경-
**현재 복원되어 있는 트라카이 성은 그림의 앞에 보이는 성이 아니고
그 뒤쪽 호수 가운데 있는 성이다. 이 그림은 14 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의
트라카이 반도의 성(Trakai Peninsula Castle)을 CG(컴퓨터 그래픽)로 그린 그림이라는 안내문이 있다.
그림에 보이는 두 개의 성은 그 구조가 완벽하게 같으나 탑(타워)의 모양이 4각주 와 원주에 차이가 있다.
-화가가 본 파괴된 트라카이 성-
-비타우타스 대공(Vytautas the Great)의 흉상-
**비타우타스(Vytautas the Great) 대공은 1392~1430년 어간에 리투아니아를 통치하였다.
독일의 튜튼 기사단의 끈질긴 침략을 폴란드와 연합하여 탄넨베르크의 전투에서 승리로 이끈
리투아니아의 최후의 대공작 비타우타스는 이 성채에서 생을 마쳤다. 대공이 쓰고 있는
관의 모양은 다음편에 소개 할 구시가지 건물의 돔(Dom)으로 나타난다.
-무장한 기사의 마네킹-
-리투아니아 대공의 무기-
-주 화-
-복원 전의 성벽 모습과 복원에 사용된 벽돌-
**반듯한 붉은색 벽돌은 복원을 위해 제조한 것이며 흰색의 벽돌은 예전의 것이다.
-전통 의상-
빌니우스(Vilnius)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중 가장 큰 나라이며 수도 빌니우스는
동부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중에 하나이다. 빌니우스 시가지는 제2차 세계대전 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착실하게 복원해 238채를 헤아리는 건물들이 중심가를 중세의 분위기로 유지하고 있다.
빌니우스 구 시가는 1,500여 건물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게디미나스 대로(Gedimino Prospektas)-
** 게디마나스 대로는 빌니우스 시를 관통하는 일직선 대로로 그 동쪽 끝이 구시가의 중심으로
빌니우스 대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사진에서도 대성당의 십자가가 멀리 보인다..
-트롤리 버스-
** 유럽의 대중교통 수단의 하나인 트롤리 버스도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구시가지 외곽).
-성 베드로 와 성 바오로(St. Peter & Paul)성당-
** 성 페트로 와 성 포빌로(Petro ir Povilo)성당으로 불리는 이 성당은 리투아니아 바로크 스타일의 진주로 알려져
있다. 이 성당의 이름을 페트라스 와 포빌라스(Petras & Povilas)로 표기하는 자료가 있어 헷갈리기 쉽다.
성당 건물은 1668~1674(6년간) 에 완성되었으나 내부 장식을 완성하는데는 30년이 더 걸렸다.
- 성당 내부를 장식한 바로크 스타일의 석회 조각-
**대리석이 아닌 석회로만 조각되고 장식된 내부는 색채가 없고 단조로운것 같지만
광택이 있는 대리석 조각이나 장식보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느낌도 줄 수가 있다.
돔 천정에 매달린 한 폭의 돛을 가진 배가 있으나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주 제대 뒤 벽화와 겹쳐 보인다. 이 배는 인생을 의미한다고 한다.
-고해에 떠가는 인생항로의 배-
- 주 제대 뒤의 벽화는 사도 성 베드로 와 바오로 이다.-
**이 성당의 설립자는 리투아니아의 군 최고 사령관(그랜드 해트만 : Grand Hetman ) 파카스(M.K. Pacas)이다.
주: 그랜드 헤트만은 최고 사령관이란 의미로 군주 다음의 제2인자의 위치이다.
-소 성당(Chapel)의 제대-
**내부 장식은 이태리의 조각가 페르티(P.Perti) 와 갈리(G.M. Galli)의 작품이다.
-200 여개의 조각상 중의 하나-
-삼위일체(三位一體) 부조-
** 부조의 상부에는 해와 달을 들고 있는 천사가 좌 우에 배치되어 있고 중심에 성부, 성자, 성령이 배치되어 있다.
-삼위일체-
**성부와 성령(비둘기 모양)에는 광휘가 빛나지만 성자에게는 광휘가 없다.
신의 아들이지만 철저히 인간으로 표현한 것 같다. 성자 예수는 한 묶음의 창을 들고
인간들을 벌하려는 분노에 찬 표정이고 한편 성부도 대노한 표정으로 호통치고 있는 모습이다.
-30년 걸려 완성한 섬세한 석고 조각의 일부-
-빌니우스 대성당(Cathedral Basilica)과 종탑-
**리투아니아의 심장이라고 불리우는 대성당과 종탑은 빌니우스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건물이라고 한다.
현재도 종탑의 종은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으며 종에 의해 연주되는 멜로디가 표준시각으로
리투아니아 전국에 방송된다고 한다. 공식 명칭이 성 스타니스로스 와 성 블라디스라스 대성당
(The Cathedral of St. Stanislaus and Vladislas)인 리투아니아의 주 카톨릭 성당으로
1387년 조가일라 왕(King Jogaila)이 성당의 건축을 시작하였다.
새로운 세기마다 파괴와 복구를 반복하면서 대성당은 모습이 변하여 왔다.
현재의 고딕양식을 가미한 클라식 스타일은 18세기에 완성되었으며 외벽에 배치된 석상들은
19세기에 추가된 것이다. 57 m 높이의 종탑은 1522년에 세워졌다.
성당 지붕 전면의 세 인물은 성 헬레나, 성 카시미르, 성 스타니슬라우스 이다.
-성당 외벽을 장식한 석상의 일부-
-오랜 역사를 가진 종탑의 민낯-
**왼편은 종탑을 쌓아 올린 석재가 건설 폐자재와 잡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절단면이다.
오른편 종탑 출입구도 씨멘트 마감을 벗겨내고 속살을 보여주고 있다. 중세의 건물과 성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건설자재가 부족했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예이다.
-대성당 뒤편에서 본 정경-
** 오른편 높다란 좌대 위의 동상은 이 도시의 건설자인 게디미나스 대공(Gediminas Grand Duke)이다.
-게디미나스 대공(Gediminas ; Grand Duke of Lithuania)의 동상-
**게디미나스 대공(Gediminas Grand Duke 1275~12.1341)은 대략 1315년 부터 사망할 때까지
리투아니아의 대공이었다. 그는 영토를 확장하여 사망할 때에는 영토가 발틱으로부터 흑해에 까지 이르렀다.
수도 빌니우스의 건설자였고 왕권을 확립하여 폴란드, 헝가리 및 보헤미아 등의 유럽 왕권 확립에 영향을
끼쳤다. 교황과 기타 기독교 국가의 지도자와 능란한 협상으로 무속을 기독교로 전환하는데 성공하였다.
좌대 앞 부분에 보이는 동물은 갑옷을 입은 늑대로 게디미나스가 트라카이성에서 이곳 빌니우스로 사냥 나와
머물다 꿈에 본 동물로 이곳에 도시를 지을 꿈이라는 해몽을 듣고 빌니우스를 건설하였다는 전설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대성당 제대-
-돔 천정과 주변의 벽화-
-천정 벽화의 일부-
-소성당(Chapel)의 제대-
**장식용 대리석 기둥은 보석으로 보인다.
-고해소에서 용서 받을 사람을 기다리는 사제-
** 성당 한편에 놓인 괴목의 목각 장식으로 착각할 정도로 현대적으로 지은 고해소에
사제가 앉아 있다. 사제가 고백성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카메라를 들이 대면서 알아 차리게 되었다.
-STEBUKLA (= 기적)-
** 리투아니아 어로 기적이라는 의미의 이 STEBUKLA 라는 글자는 빌니우스 대성당 광장에 새겨져 있다.
이곳이 역사상 가장 긴 678 km 의 인간띠, 소위 "발트의 길"이 출발한 곳이다.
-발트의 길(인간띠)-
<구글 사진>
[인간띠] : 2차대전의 결과 발트 3국은 소련에 귀속되고 3국의 국경은 지도 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44년이 흐른 1989년 8월 23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소련의 발트 3국 지배의 부당함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한 자리에 모였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지나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까지 600 km 가 넘는 거리를 3국의 200만명이 저녁 7시를 기하여 손에 손잡고
역사상 가장 긴 인간띠를 만든것이다. 이것을 기적이라 하는 이유는 인구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적은 발트 3국은
도시 간의 거리가 상당히 멀고 도시를 벗어나면 끝없는 숲과 평야만이 보이는 곳이다. 당시 승용차는 인구의
10% 정도에 불과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시에 끝없이 먼 약속 장소에 이동하는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저녁 7시, 도시와 숲, 평야를 가로질러 600km 에 늘어선 200만명의 인간띠는 15분 동안
"자유"를 외쳤고 이 광경은 전 세계에 매스콤을 통하여 전달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3국은 소련으로 부터
독립을 쟁취하였다.
-발트의 길을 밟은 발자국-
** 대성당 광장에 새겨진 발자국이다. 동시에 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나타났다.
왼편 사진은 필자가 찍은 사진이고 오른편은 동반자가 찍은 사진이다. 비도 간간이 뿌렸고 흐린 날씨라
필자는 푸른색을 강조하였고 오른편은 표준색상으로 촬영한 것이다. 본론은 하나는 물 고인 음각의 이미지고
하나는 양각의 이미지로 표현되어진 것이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성 안나(성 onos)성당-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시 이 성당을 보고 손바닥에 얹어 빠리로 가져가고 싶다는 찬사를 한것으로 유명한,
비타우타스 대공(Vytautas the Great)의 부인 안나에 의해서 14세기에 세워진 성당으로
뽀죽한 첨탑들과 33가지 종류의 붉은 벽돌로 지은 가장 아름다운 중세 고딕양식의 건물이라 한다.
외벽의 벽돌 쌓기를 보면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당 내부-
** 나폴레옹이 모스크바 원정에서 실패하고 퇴각하면서 나폴레옹의 심사를 모르는 병사들은
혹한에 땔감이 없어 이 성당의 나무제대를 불 태워버렸다고 한다.
-제대 뒤의 벽화-
** 제대를 장식하고 있는 우람한 기둥은 무늬가 있는 백색 대리석으로 깔끔하게 보인다. 제대 뒤의 벽화는
가운데 아기 예수와 오른편에 성모 마리아 그리고 왼편에 인간의 얼굴색으로 붉게 그려진 여인은
교회의 설립자 성 안나로 여겨진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 : Bernardine)성당-
**왼편으로 성 안나 성당과 오른편 성 안나 성당의 종탑 사이로 보이는 분홍빛 건물이 성 프란시스 성당이다.
성 안나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성회의 일파인 베르나딘 수도사들이 1501년에 지은 성당이다.
빌니우스 구시가지를 감싸고 흐르는 큰 강 네리스(Neris 강)의 지류로 남북으로 흐르는 샛강 빌니아(Vilnia 강)
오른편 강안에 두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성당의 주변은 넓은 정원으로 베르나딘 정원(Bernardine Garden)으로
불린다.
(주 :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 : Bernardine)성당으로 성당 이름이 지어진 것은 프란시스라는
동명의 성인이 많기 때문에 특히 이태리의 아시시 출신 프란시스 성인과 구분하기 위해 아시시를 붙인 것이다.)
--교회 내부-
** 성당 내부는 대부분 목재로 조각되고 장식되어 있다. 목재가 주는 질감이 부드럽게 느껴질듯 하지만
오래된 목재의 어두운 색갈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 여행객이 느끼기에는 아늑한 맛이 없다.
-목제 제대-
** 광채를 표현하기 위해 꽂아 놓은 빗살은 섬찟한 느낌마져 들게 한다.
-성인들로 보이는 액자-
** 짐작컨데 프란시스 성인과 베르나딘 성인 두 분일 것으로 보인다.
-목각 장식-
-베르나딘 정원의 석상-
** 성 안나 성당과 성 프란시스 성당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석상은 폴란드의 문인 '아담 미스키에비치'이다.
이곳은 1987년 소련 지배 하의 리투아니아 대중들이 자국의 권리를 주장하며
최초로 대중 집회를 연 장소이기도 하다.
- End of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