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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중요한 질문들
우리는 삶 중에서 때때로 다음과 같은 물음을 갖게 된다: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삶이 몹시 괴로울 때에는 또한 다음의 물음을 갖는다: 삶은 그저 우연인가? 세상은 공정한가? 신은 존재하는가?
세상의 위대한 종교들은 위의 질문들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답을 주며, 현대의 과학 이론들도 몇몇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 답변들에 대하여 완전하게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답들이 우리의 머리를 만족시키더라도 때로는 가슴에 와 닿지 않으며, 가슴을 울리는 답변들이라도 마음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종교나 철학 그리고 과학이 제시하는 답변들에도 불구하고, 보다 논리적이고 감명을 받을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신지학(神智學, Theosophy)은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신지학은 매우 오래된 개념이다. 신지학 내용의 일부는 고대 세계의 종교와 철학에서 발견된다. 또 다른 내용들은 과거와 현재의 과학적 발견으로부터 온다. 신지학은 계시 또는 도그마로서 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신지학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철저한 심사와 숙고의 대상이다. 그러면, 신지학의 주요한 개념들을 살펴보자.
첫째, 우주는 그저 자연의 힘이 우연히 작용하는 장소는 아니라는 점이다. 우주가 생성된 이후의 모든 사건은 우주에 내재한 어떤 법칙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이 법칙들은 우주의식(宇宙意識, Universal Consciousness)의 표현이다. 전자(電子, electron)에서 가장 큰 별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안에 의식이 깃들어 있다.
이 근본적인 실재(實在, Reality)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에, 현자나 성인들은 그것을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신(神, God) 이라 불렀고, 어떤 사람들은 법(法, Law)이라고 불렀으며, 또 다른 사람들은 조물주(造物主,Great Architect) 또는 진화(進化, Evolution)라고 불렀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특성이나 경험에 따라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 의식을 어떻게 간주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편의상 여기서는 신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둘째, 신의 본질, 즉 근본 실재는 모든 사람 안에 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썩어 없어질 육체가 아니다. 이 육체는 우리가 잠시 동안 입고 있다가 벗어버릴 의복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불멸의 혼(souls)이다. 신의 완전성은 우리 안에도 들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를 깨닫기 전에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성(神性, divine nature을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의 우리의 운명이다. 우리의 탄생은 마치 대장간이나 실험실에 들어가는 것과도 같다. 거기서 우리는 일과 경험을 통하여 서서히 우리의 능력을 펼쳐 나간다. 그러나 한 생애 만으로는 우리 안에 있는 신성을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되풀이하여 육화(肉化, incarnate)한다.
우리는 생명을 받아 태어나서 자라며, 활동하고, 일을 끝낸 후 돌아간다. 여기서 돌아간다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 이후의 휴식기간 동안, 우리가 계획했지만 이루지는 못했던 기쁨을 맛보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순화되고, 더욱 강해지고, 더욱 현명하게 되어 다시 탄생한다. 그래서 생각과 느낌과 행동에서 한 단계 올라 간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환생(還生, reincarnation)의 싸이클이다. 우리의 삶과 활동을 통하여 우리는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한다.
우리는 이타심(利他心,altruism) 또는 이기심(利己心, selfishness)의 발로에 의해서 선을 행하기도 하고 악을 행하기도 한다. 우리가 악을 행하면 우주의 조화를 깨뜨리게 되며, 우리는 그 조화를 다시 회복시켜야만 한다. 우리가 행한 악은 선행으로 갚아야 한다. 한편 우리의 선행은 더욱 큰 선행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이러한 씨를 심고 거두는 과정, 원인과 결과의 과정을 카르마(Karma)라고 부른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가져오는 재조정의 법칙이다.
모든 혼은 신성을 가졌으므로 모든 혼은 평등하다. 젊은 혼도 있고 나이 많은 혼도 있으나 모두가 형제요 자매이다. 탄생, 능력 및 환경의 차이, 그리고 인종, 종파, 성, 계급의 차이, 또한 선함과 악함의 차이 등 각 사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남자와 여자는 불가분의 형제 관계 (brotherhood)를 이룬다. 우리 모두는, 지위가 높건 낮건, 무식하건 현명하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도움으로써 더욱 성장한다. 형제관계는 성장의 우주법칙이다.
이 형제관계는 사람은 물론 , 동물, 새, 어류, 식물, 산, 바다 등 모든 존재에까지 확대된다. 우리는 모든 존재와의 일치를 통하여 성장한다. 우리 안에 신성이 잠재해 있듯이 모든 존재 안에도 신성이 잠재해 있다. 이 신성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내재한 신이 그 아름다움을 발현하게 된다.
두 가지 영원한 신비가 있는데 하나는 신의 신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신비이다. 신에 대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선함, 거룩함, 진실함 및 아름다움은 우리 안에도 내재한다. 종교, 철학, 과학, 예술, 상업, 산업, 및 자선행위는 모두가 신성이 그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인간에게) 하강하는 채널이다. 우리 인간은 이 다양한 형태의 활동에 관련된 능력과 미덕을 쌓음으로써 인간성이 신성으로 고양된다.
신지는 신의 지혜를 의미한다. 그것은 신 또는 우주심(宇宙心, Universal Mind)의 모든 행동 양식과 관계가 있다. 우리가 갖고 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은 진화라는 신의 계획을 이해함으로써 어느 정도 찾아진다. 이는 모든 혼이 유산으로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나 우리 각자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애정을 배울 때에만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신의 지혜의 활동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지혜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제1장 : 신지학과 스승들
신지학은 진화해 나가는 지각을 가진 존재들의 전 영역에 펼쳐 있는 지식의 바다이다. 이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은 끝이 없어 가장 위대한 지력을 가진 자라도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가장자리는 충분히 얕기 때문에 어린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지학은 모
든 사물과 모든 존재 안에 신이 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에 관한 지혜이고, 신은
가늠되거나 발견될 수 없으며 그의 장막 주위는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는 기독교 성서의 명
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에 관한 지혜이다. 신지학은 어원상 신이라는 이름을 포
함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종교 만을 다루는 것처럼 생각될 것이나 과학을 무시하지 않
는다. 오히려 신지학이야말로 과학 중의 과학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혜의 종교라고 불리어
왔다.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자연의 어느 부분이라도 제외시키는 것은 완전한 과학이라
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가정한 계시에만 의존하여 사물과 사물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무시하는 종교라면 그것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발전의 적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진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과학적인 요소와 종교적인 요소를 모두 포
괄하는 신지학이야말로 과학적인 종교요 종교적인 과학이다.
신지학은 사람이 만들어 낸 믿음이나 교리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육체적, 아스트
랄적, 정신적, 그리고 지성적인 요소들의 진화를 지배하는 법칙들에 관한 지식이다. 오늘날
의 종교는 단지 인공적인 교리들의 집합으로서 그들이 주장하는 윤리의 과학적인 근거도 가
지고 있지 않다. 한편, 현재의 과학은 비가시적인 것을 무시하고, 사람 안에 인식 능력의 완
전한 체계가 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유형의 가시적인 세계 안에 엄연히 존
재하는 엄청난 실재의 영역으로부터 괴리되어 있다. 그러나 전체는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외부의 사물과 대상물들은 단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에, 신지학은 자연 -- 내면 및 외부 -- 의 사실들을 정확하
게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지학은 그 자체로 완전하며, 풀리지 않는 신비는 없다고 본
다. 신지학은 우연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빼버렸으며 모든 사물과 모든 상황에 동일한 법칙
이 적용된다는 것을 주창한다.
사람은 불멸의 혼(soul)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류의 공통된 믿음이다. 여기에 사람 자체가
혼이라고 신지학은 말한다. 더 나아가 모든 자연물은 지각이 있다는 것, 다양한 대상물들과
인간은 우연히 한군데에 모인 원자들의 단순한 집합체로서 (진화의)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
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작은 원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전체 안에 내재한 법칙의 적용을
받으며 영원히 진화하는 혼이요 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옛 현인들이 가르쳤듯이 신지학도
가르친다. 진화의 과정은 혼의 드라마이며, 자연은 다름아닌 바로 혼의 경험을 위해 존재한
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 우주에는 인간의 지성이 검정 풍뎅이의 지성보다 뛰어난 만큼 인간
의 지성보다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이 존재들은 자연계의 질서를
통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헉슬리 교수의 주장에 신지학은 동의한다. 그의 스승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신지학자들은 이에 더 나아가, 이러한 지성을 가진 존재들은 한 때는 인간
이었고 우리 인간처럼 그 이전의 세계들로부터 (진화해) 왔다는 것, 그들은 그 이전의 세계
들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주
장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지구에 태어난 것은 지금 처음으로 나타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천체계들에서 오랫동안 수많은 육체적 지적 활동을 추구해
왔으며, 몇몇 천체계는 태양계가 형성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사라졌다. 이러한 엄청난 진화
의 체계는 곧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이 지구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에너지를 남기고 오래 전에 사라진 어떤 다른 혹성의 활동과 진화의 결과라는 것, 그 혹성의 거주자들 자신은 예정된 일을 진행시키기 위하여 어떤 보다 오래된 세계로부터 그곳으로 왔다
는 것을 의미한다. 금성 같이 보다 밝은 혹성들에는 더욱 진화된 실체들이 살고 있다. 그들
은 한 때는 우리처럼 낮은 단계에 있었으나 지금은 우리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위치까지 올라 있다.
우주에서 가장 지성적인 존재인 인간은, 그러고 보면, 항상 친구들이 있었던 셈인데, 특히,
보다 덜 진화된 존재들의 진화 과정을 끊임없이 돌보아 주고, 수많은 세월을 두고 숱한 시
련과 경험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보전하며, 이 지구 및 다른 천체에서 진화해 나가는 지성
적인 인종들을 끌어 모아 예정된 혼의 도착점에 관한 위대한 진리를 고려할 기회를 구하는
일단의 앞선 형제들(elder brothers)을 가지고 있다. 이 앞선 형제들은 자연의 모든 분야의
법칙에 관하여 그들이 얻은 지식을 보전하고 있으며, 주기의 법칙이 허용할 때에는 인류를
위하여 그 지식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언제나 한 몸으로 존재해 왔으며, 누가
어디에 있던 서로가 서로를 다 알고 있고, 모두가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인류를 위해
일하고 있다. 어떤 시기에는 그들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고, 사회 조직, 도덕의 수
준, 및 국가들의 발전 정도가 허락할 때마다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활동하였다. 그들이 공공
연히 나타나 사방에 알려지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신으로 숭배할 것이고, 다른 사람
들은 그들을 악마로 몰 것이다. 그들이 우리 사이에 나타난 경우, 몇몇은 인류의 지배자로,
몇몇은 스승으로, 몇몇은 위대한 철학자로 활동하였는데, 한편 아직도 가장 진화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자들도 있다.
거의 전적으로 돈, 명예, 영광, 및 개성(personality)에만 의존하는 현 문명에서 그들이 모습
을 드러내는 것은 그들이 가진 목적에 위배되는 것일 것이다. 그들 중 하나가 말했듯이 이
시대는 "과도기"로서, 모든 사상, 과학, 종교, 정부 및 사회가 변화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마
음도 새로운 상태로 이전해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상태는 이 앞선 형제들이 우리들에게
그들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수준까지 우리가 진화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진리의 횃불을 밝히는 자들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들
은 모든 존재와 사물에 대해 연구한다. 그들은 인간의 가장 내면의 모습을 알며 인간의 능
력과 운명을 이해한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의 상태와 육체가 죽은 후의 상태를 안다. 그들은
국가들의 요람 곁에 있었고, 고대 문명의 융기를 지켜 보았으며, 흥망성쇠의 주기 법칙에 저
항할 힘을 가지 못했던 자들이 멸망해 가는 것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재앙이 예술,
건축, 종교 및 철학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그들은 그 기록을 인간이나 시
간이 파괴하지 못하도록 안전한 곳에 보전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훈련된 싸이킥 능력을 통
하여 자연과 마음의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세세하게 관찰하여, 그것들을 기록하고 보존하였
다. 그들은 소리와 색깔의 신비들을 밝혀냈는데 이를 통해서만 물질의 배후에 가려져 있는
정령들(elemental beings)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왜 비가 내리는지 무엇을
위해 내리는지, 지구에 구멍이 나 있는지 아닌지, 무엇이 바람이 불게 하고 빛이 빛나게 하
는지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시간의 궁극적인 단위는 무엇인지, 그리고 주기의 의
미가 무엇이고 언제 발생하는지 아는데 이 지식이야말로 자연의 근본 그 자체에 관한 지식
이다.
그런데 신문도 읽고 근대의 발전을 신봉하는 19세기의 바쁜 사람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
졌다 : 만약 이 앞선 형제들이 정말로 당신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사람들이라면 왜 역사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며 그들 주위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대
해서는 얼마 전에 A.P. Sinnet이 발간한 앞선 형제들 자신의 답변을 듣는 것이 내가 하는
어떤 답변보다 나을 것이다.
당신이 괜찮다면 우리는 먼저 형제단(Fraternity)이 세상의 역사에 어떠한 흔적도 남
기지 못하였다는 주장에 대해 논하겠다. 이렇게 특별한 능력을 가진 그들이므로 틀림
없이 모든 인종 중에서 보다 발달한 능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그룹 안에 끌
어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라고 당신은 생각한다. 그들이 이러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
는지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 당신은 그들의 노력이나 성패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가?
그것들을 나열해 놓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가지고 있는가?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탐문할 수 있는 모든 접근로를 용의주도하게 봉쇄해 온 그들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
그 증명을 당신의 세계에서 어떻게 채집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불시의 기습을 받
거나 일에 방해를 받지 않아야 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성공 조건이었다. 그들이 한
일이야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의 그룹 밖에 있는 자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그 결과일
뿐이며, 그 원인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하여 각 시대 마다 사
람들은 여러 가지 이론들 -- 신의 간섭 또는 특별한 은총, 운명, 별들과 관련된 우호
적인 또는 적대적인 영향 등 -- 을 개발하였다. 소위 유사시대 또는 그 이전에 우리
의 선조들이 사건을 만들고 역사를 만들지 않은 시기는 없었다. 그런데 이 사실들은
그 이후로 그 시대의 편견에 맞추기 위하여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왜곡되었
다. 당신은 계속되는 역사책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위대한 영웅들이 그저 역사학자들
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우주적 관계 속에서 이 세상
이 표류하는 것을 거슬러서 우리가 이런 저런 위기에 국가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것처럼 주장한 적은 없다. 수레바퀴는 굴러가야 한다. 낮과 밤이 교차하듯이 정신적
도덕적 빛과 어두움의 시기도 교차한다. 대소 유가(yugas)들도 사물의 정해진 질서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 막강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저 작은 흐름
들을 조정하거나 방향을 잡아줄 수 있을 뿐이다.
주기의 법칙 때문에 마음 역사의 암흑기에는 당분간 진정한 철학이 사라지나, 같은 법칙으
로 말미암아 아침에 태양이 다시 떠오르듯이 그 철학이 다시 출현할 것이며, 인간의 마음은
그것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몇 가지 일들은 오로지 스승(the Master)만 할 수 있으
며 다른 일들은 인간 동지(companions)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진정한 철학을 보전하는
것은 스승의 일이고, 그것을 재발견하여 널리 알리는 것은 동지들의 도움을 요하는 일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앞선 형제들은 그 진리 -- 신지학 -- 를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지
알려주며, 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인간 동지들은 그것을 발굴하고 널리 유포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모든 시대나 모든 국가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힘과 동정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이
름 -- 입문자(Initiates), 아뎁트(Adepts), 마기(Magi), 사제(Hierophants), 동방의 왕(Kings
of the East), 현자(Wise Men), 형제(Brothers) 등 -- 을 붙여 주었다. 산스크리트어에도 그
들을 나타내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그들이 다름아닌 인간임을 확인해 준다. 그 말은 크다
는 뜻의 Maha와 혼이라는 뜻의 Atma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말은 위대한 혼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혼이므로 마하트마(Mahatma)를 구분하는 것은 그 위대성
에 있다. 마하트마라는 말은 블라바츠키 여사가 그녀가 갖고 있는 지식을 그녀에게 전해 준
사람들을 스승이라고 부름으로써 신지학회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지 형제들
(Brothers)이라고만 알려졌으나, 많은 힌두교도들이 신지학 운동에 참여하면서, 인도의 풍부
한 전통과 문헌을 배경으로 마하트마라는 말이 사용되게 되었다. 때때로 비양심적인 신지학
회의 적들은 이 이름조차 만들어진 것이며 이러한 존재들은 인도 사람들이나 그들의 문헌에
알려져 있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당시 지배적인 잘못된 신학 교
리들을 완전히 뒤엎어버릴 만큼 위협이 되는 철학 운동을 가능한 한 깎아 내리기 위해 만들
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힌두 문헌에 마하트마라는 말은 자주 언급되며, 인도 북부 지
방에서는 이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모든 힌두 교파가 존경하고 서양의 비평
가들도 그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바가바드 기타(Bhagavad-Gita)라는 아주 오래된
시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이러한 마하트마는 발견하기 어려우니라.
특정한 이름에 관련된 논쟁들이야 어쨌든, 위에서 언급한 이 놀라운 지식을 보유한 일단의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였으며 아마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나 증명은 충분하
다. 옛 신비 문헌들에는 그들에 관한 언급이 끊임없이 나온다. 옛 이집트인들에게는 이집트
의 위대한 왕-입문자들, 즉 태양의 아들들과 위대한 신들의 친구들이 바로 그러한 존재들이
었다. 옛날 사람들 자체를 무시하는 현대인들은 그들의 아이디어들도 무시하는 버릇이 있다.
아브라함을 하느님의 친구로 존경하는 기독교인들 조차 이집트 지배자들이 같은 우정을 주
장하는 것에 대해 그저 위엄과 명칭만을 바라는 어린애 같은 생각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그
러나 이 위대한 이집트인들이 입문자들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그들의 수준이나 활
동이 무엇이던 하나의 위대한 조직(Lodge)의 회원들이었다. 후대의 쇠퇴해가던 이집트인들
은, 물론, 그들의 선조들을 흉내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교리나 사제직이
확립되면서 진리가 또다시 암흑기로 접어들기 시작한 때이다.
티야나(Tyana)의 아폴로니우스는 하강 국면에 인간 사이에 출현한 같은 고대 조직의 일원
이었다. 그가 나타난 이유는 단지 미래의 세대들에게 증인으로 남기 위한 것이었다.
유태인인 아브라함과 모세는 다른 두 입문자로서 어느 특정 민족과 관계된 일을 하였다. 아
브라함의 역사 속에서 멜키세덱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아브라함의 훨씬 위에 있었던 자로
서 아브라함에게 위엄과 특권, 그리고 은총을 내려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모세와
아브라함과 같은 이름들과 함께 인류의 역사를 기록한 같은 장에는 솔로몬이라는 찬란한 이
름도 나온다. 그러므로 이 세 사람은 위대한 3인의 아뎁트(Triad of Adepts)이며, 이들의
행적을 아무 근거도 없는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무시해 버릴 수 없다.
모세는 이집트인들에 의해서 미디안(Midian)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 두 집단으로부터 그는
상당한 오컬트 지식을 전수 받았는데, 명안(明眼)을 가진 위대한 메이슨(Masonry) 협회의
회원이라면 그의 책들 안에서 스승의 손과 계획과 일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
또한 그의 시대에 개발된 심령 영역의 모든 기술이나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왕들과 어울릴 수 없었을 것이며 신의 친구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시들의 파
괴에 관하여 전능한 자(the Almighty)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 만으로도 그가 이미 의식
(ceremony)이나 다른 부수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아뎁트(Adept)였음
을 보여준다. 솔로몬이 이 3인의 아뎁트를 완성하는데, 그는 두드러지게 불같은 성품을 지
닌 사람이었다. 그를 둘러싼 수많은 전설, 엘레멘탈의 힘을 부릴 수 있었던 그의 능력, 그리
고 그가 갖고 있었다는 마술력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고려할 때, 그가 인간 사이에 태어난
강력한 아뎁트의 놀라운 본보기이며 위대한 사람이었음을 부정하는 것은 곧 전 고대 세계가
흥을 돋구기 위해 거짓말이나 만들어 내는 바보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비난하는 것과도 같
다. 우리는 솔로몬이라는 이름이나 그가 유대 민족의 지배자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유대인의 기록이 가리키는 아득히 먼 옛날에 아뎁트였던 사람이 지구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움직였으며 나중에 그 이름이 붙여졌다는 사실은 받아들여야 한다. 소
요학파나 부분만을 보는 비평가들은 보편적인 전통 안에서 사람들이야말로 잘 속으며 흉내
내기만 잘한다는 증거나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과 삶을 연구하는 진실한 학
도들은 보편적인 전통이야말로 진실이며 인간의 역사 안에 있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는 것
을 알고 있다.
인도로 눈을 돌려 보자. 욕심 많고, 자기중심적이며, 싸우기 좋아하고, 장사속인 서양인에게
는 오랫동안 잊혀졌고 무시당해 왔으나, 인도의 역사는 이 놀라운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데 노아, 아브라함, 모세, 및 솔로몬은 그 안에 있는 소수의 예에 불과하다. 인도 지
방에 살던 사람들은 기질이나 기후 면에서 철학적, 윤리적, 및 심령적 보화들을 보전하기에
적합하였다. 서양의 나라들이 교육과 문명을 확립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초기에 고트(Goths)
나 반달(Vandals)족과 같은 야만인들로부터 노략질을 당했듯이 인도가 야만인들로부터 침략
을 받아 황폐되었다면, 그 철학적, 윤리적, 및 심령적 보화들은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스
페인 카톨릭 통치자들의 군대는 중남미에서 발견한 엄청난 양의 역사적 및 민족적 보화들을
마음대로 불태워 버렸다. 영국인의 보호가 내려지기 전에 인도의 서적들이나 야자 잎에 쓰
여진 기록들이 이러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더라면 미 대륙에서 그랬듯이, 그리고 그들의
선조들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대해서 그렇게 하려고 했듯이, 그 모든 것을 깡그리 소멸
해 버렸을 것이다.
인도의 문헌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위대한 아뎁트 수십 명의 이름이 나오는
데, 그들은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가르쳤다. 즉, 인간 혼의 위대한 서사시를. 그들의 이름은
서양 사람들에게는 낯설지만, 그들의 생각과 업적과 능력에 관한 기록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게다가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 동양에는 오늘날에도 많은 마하트마, 아뎁트, 입문자, 및 형
제들로 구성된 이 위대한 롯지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수백 명에 이른다.
더 나아가서, 그 땅에는 사소하지만 여전히 자연과 자연의 힘을 지배하는 놀라운 힘을 실제
로 발휘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위에서 밝힌 명제를 입증할 수 있는 엄청
난 수의 보증인들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만약에 이 위대한 롯지의 가르침인 신지학이 위에서 말한 대로 과학적이면서도 종교
적이라면, 윤리적인 측면에서 또 다른 증명을 갖고 있다. 윤리적이 차원에서의 강력한 3인
(Triad)는 부처와 공자와 예수이다. 힌두 사람인 부처는 오늘날 기독교도보다 훨씬 많은 사
람들을 포용하고 있는 종교의 설립자이며, 자신 보다 몇 세기 이전에 이미 주어진 윤리를
예수 보다 몇 세기 전에 가르쳤다. 자기 민족을 가르치러 온 예수는 이 고대 윤리를 되풀이
가르쳤으며, 공자는 고대의 훌륭한 중국인들에게 같은 것을 가르쳤다.
이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하나의 형제단(brotherhood)의 회원들이라고 신지학은 말한다. 그
들은 모두 하나의 독트린만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양 문명에 때때로 등장하는 특별한 사람
들 -- 성 제르망, 야곱 뵈메, 카글리오스트로, 파라셀수스, 메스머, 성 마틴 백작, 마담 블라
바츠키 -- 은 적당한 시기에 이 위대한 롯지의 일을 하는 대리인들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으며 사기꾼 소리를 듣는다. 그들의 사후(死後)에는 그들은 대개 인류
에게 혜택을 가져다 주었고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명제나 발견을 이루었음이 밝혀지
는데 왜 당시에는 그들이 그런 비난을 들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에 예수 자신이
오늘날 종로 한복판의 교회에 나타나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을 꾸짖는다면 아마도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파라셀수스는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귀중한 의약 처
방들을 만들어 낸 사람이었다. 메스머는 다른 이름으로 최면술을 가르쳤다. 마담 블라바츠키
는, 그 롯지에는 오랫동안 알려져 있던, 사람과 사람의 본성과 운명에 관한 가장 중요한 체
계를 서양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독창적인 철학은 갖고 있지
않으며,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떤 문명 보다 비참한 비렁뱅이와 죄인들의 숫자가 월등히 많
은 사람들로부터 이들은 한결같이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위에서 입문자라고 부른 사람들, 지금은 누구나 마하트마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알 수 있으며 자연의 법칙을 지배하는 힘을 가질 수 있는 지 대부분의 서
양 독자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 중국 및 다른 동양의 나라들에서는 이들에 대
해 그렇게 놀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물질 문명에 있어서는 모든 면에서
뒤떨어졌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본성과 원하기만 하면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의 능
력에 대한 믿음을 잃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사이에는 이러한 힘과 능력을 가
진 살아있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였다. 그러나 비논리적인 교조주의(dogmatism)에 빠져서
혼의 삶과 본성을 부정함으로써 물질주의 문명을 일으킨 서양의 경우 이러한 주제를 연구한
적이 없으며, 최근까지도 일반 사람들은 그들이 상상하는 신 이외에는 이러한 능력을 소유
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공간, 시간, 마음, 그리고 물질에 대한 힘을 가진 마하트마는 단지 완전하게 된 사람이기 때
문에 가능한 일이다. 모든 사람은 이 위대한 입문자들이 가지고 있다는 모든 능력의 씨앗
(germ)을 가지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우리는 아직 일반적으로 그 씨앗을 개발시키
지 못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런데 마하트마들은 훈련과 경험을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능력을 키웠으며, 그 결과 그보다 덜 진화된 사람들의 눈에는 신처럼 보이는 선물까
지 받았다. 오래 전부터 신지학에서 알고 있었던 텔레파시, 독심술(mind-reading), 및 최면
술 등은 지금까지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의식, 기능 및 능력의 차원(planes)이 사람들 안에 존
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독심술과 멀리서 최면술에 걸린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것은
전적으로 뇌에 의존하지 않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영향을 주는 생각을 보낼 수
있는 매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바로 이 법칙을 이용하여 입문자들은 그들 사이의
거리가 얼마이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최면술사 학파들은 아직 받아들이고 있지 않
지만 그 원리(rationale)는 다음과 같다. 두 마음이 공명하거나 같은 상태로 변화해 들어가면
생각도 비슷하게 된다. 즉, 다른 말로 하면, 멀리 떨어져서 듣는 사람은 상대방이 보내는 인
상(impression)을 받는다. 아무리 비상한 경우라 하더라도, 다른 능력들도 마찬가지로 작용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록 드문 일이긴 하지만 자연적인 현상이다. 마치 뛰어난 음악적 능력
이 일상적이거나 흔치는 않더라도 자연적인 것처럼. 만약에 어떤 입문자가 손을 대지 않은
채 단단한 물건을 움직이게 한다면 그것은 그가 끌어 당기고 밀치는 두 법칙들 -- 그 중
하나는 중력이라고 부른다 -- 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가 허공에서 탄소를 뽑아내
어 -- 우리는 공기 속에 탄소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그 탄소를 이용하여 종이
위에 글을 쓴다면, 그것은 그가 신비의 높은 화학 지식을 알기 때문이며, 훈련된 강력한 이
미지 메이킹(image making)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미지 메이킹 능력은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그가 쉽게 당신의 마음을 읽는다면 그것은 그
가 내부에 있는 유일한 참된 시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진동하는 뇌가 그 사람의 주위에
엮어내는 섬세한 색깔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은 망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하트마가 하
는 이 모든 일은 완전하게 된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한 능력들이 지금 즉시
우리에게 발현되지 않는 이유는 인류가 아직은 이기적이며 여전히 현재와 덧없는 일에만 살
고 있기 때문이다.
되풀이 말하거니와, 진정한 독트린은 사람들 사이에서 때로는 사라지지만 다시 나타나게 되
어 있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것은 불멸하는 사람의 본성 중심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며, 둘
째로, 위대한 롯지가 그것을 영원히 보전하기 때문인데, 실제 객관적인 기록 안에만 보전하
는 것이 아니라 지성이 있고 완전한 자의식이 있는 사람 안에도 그것을 보전한다. 지금 우
리가 있기 이전의 수많은 단계를 성공적으로 진화해 온 인류는 그들이 얻은 그 귀중한 소유
를 잃을 수 없다. 앞선 형제들은 진화의 가장 높은 산물이며, 그들만이 전 인류 가족과 협
력하여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의 계획들을 장인(匠人)처럼 질서정연하게 수행해 나갈 수 있
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그들과 그들의 롯지에 대해 언급을 하
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세가지 근본원리(The Three Fundamental Principles)
The Secret Doctrine (by H.P. Blavatsky) 은 세가지 근본 원리를 확립하였다. 신지학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이 몇 가지 기본 개념들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과거에 존재하였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들의 根本原因(Cause)인 唯一無限原理(One Infinite Principle)가 있다. 이 원인인 自身(Self)은 모든 공간에 존재하며, 우리들은 그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없고 변화하지 않는 바로 그것(THAT)이다.
우리가 인지하고 알고 경험하는 모든 것 뒤에는 바로 이 통합된 하나의 自身(One undivided Self) 이 있다. 감각기관을 통하여 보고 알거나 또는 경험하는 것들 이외의 것을 인지하고 알고 경험하는 우리 안에 있는 능력은 바로 이 唯一自身(One Self)이고, 하나의
意識(Consciousness)이며,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있고, 모든 존재 안에 있는 능력이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兄弟愛(Brotherhood) --- 인간 이상의 모든 존재와 인간 이하의 모든 존재를 하나로 결속하는 끈 --- 의 기반이 있는 것이다.
둘째,
두번째 원리, 즉 法(Law)은 카르마(Karma)라고 불리운다. 이것은 자연(Nature) 안에 존재하는 되풀이되는 순환 법칙으로서 깨진 균형을 회복하려는 끊임없는 흐름이다. 카르마는 우리의 도덕성에 적용되는 법칙이다. 그것은 윤리적인 인과법칙이고, 正義(justice)와 賞罰의 법칙이며, 탄생과 재탄생(rebirth)의 원인이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단지 원인에 따라 발생하는 결과이고, 작용과 반작용이며, 모든 생각과 행동의 결과이다. 카르마는 문자상으로 행위(action)를 의미한다.
신지학에서는 우주를 지성을 가진 전체(an intelligent whole)로 본다. 따라서 우주 안에서의 모든 움직임은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이며 이 결과는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행동하고, 좋건 나쁘건 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우
리들이 필연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반응은 결국 우리가 스스로 야기한 원인들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절대정의의 개념과 자유의지의 핵심도 여기서 도출된다.
카르마와 관련된 또 다른 순환법칙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還生(Reincarnation)이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들은 혼(soul), 정신(mind), 및 영(spirit)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진화무대인 이 지구상에 신체를 빌어서 거듭 태어난다.
인간은 인간존재의 법칙에 따라서 이 지구상에서 진화를 완성해야 한다. 각각의 삶 안에서 각자는 하나의 인격(personality)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겁의
전체를 통하여 우리 자신 안에 있으며, 우리의 이름이나 모습 또는 기억과는 독립된 하나의 正體性(identity)을 느끼는 個人(individual)이다.
셋째,
우주의 모든 존재는 인식의 낮은 단계로부터 출발하여 보다 높은 個體化(individualization)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 세번째 원리이다. 인류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들은 인류의 단계를 거
쳐 지나갔다.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무한한 우주 안에서 진화는 결코 멈출 수 없다. 누가 어느 시점에서 어느 수준의 단계에 도달했건 언제나 더 높은 가능성이 그 너머에 열려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경험, 즉 삶과 그 안에 있을 수 있는 客體(object)를 볼 때, 우리 스스로 바라는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Nature)이 우리에게 의도하는 모든 것들을 이루기에는 한 삶은 너무나 짧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경험의 규모와 다양성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다. 자연 안에 존재하는 진화하는 모든 형태의 知性(intelligence)은 과거에 사람이었거나 현재 사람이거나 앞으로 사람이 될 것이다.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