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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축복의 열쇠 원문보기 글쓴이: 보아너게
시31편 주 제 :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
개요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영장(악사장)은 찬양대지휘자 특히 예배에 있어서의 음악지휘자를 말합니다. 시31편에는 고난과 슬픔, 연약함, 비난, 욕을 당하고 많은 위험과 어려움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공중의 예배용으로는 너무도 음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백성을 공적으로 교화시키고자 하는 성령의 특별한 배려가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31;5)라고 고백함으로 절박한 고통가운데서도 확신과 끈기로 도움을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여호와를 신뢰하고 힘을 얻어 찬양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드높인 다윗은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시31편의 내용은 확실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문체상 기복이 심하여 어떤 때는 눈물의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어떤 때는 바위이시며 산성이신 여호와를 의지하여 확신의 높은 경지로까지 올라가는 형식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과 절망가운데서 긴급한 구원을 호소했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간구와 부르짖음을 들으셔서 반석과 산성이 되어 주셨습니다.
다윗은 지금 누리는 은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쌓아 두신 은혜가 있음을 깨닫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恩惠)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시31;19)라고 감사했습니다.
내용 분석
1. 31;1-8: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감사.
2. 31;9-18: 도움을 호소하고 감사와 신뢰로 축복을 기대.
3. 31;19-22: 확신과 찬양 (자신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묘사)
4. 31;23-24: 훈계 (자신의 경험이 지니는 의미를 성도들에게 보여줌)
시31편 강해
1. 31;1-8: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감사.
31: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31: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31: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31:4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어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31:6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31: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 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
31:8 나를 대적의 수중에 금고치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1-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1) 1절 “주께 피하오니” 다윗의 생애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사울 왕을 통한 시련과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한 슬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파란만장의 삶이었습니다. 때로는 이방으로 도망가기도 하고 굴에 숨기도 했지만 다윗의 피난처는 오직 한곳 주님뿐이었습니다.
2) 사나운 폭풍우가 몰아치고 가까운 자들이 배반하고 비방해도 세상에서 그 어떤 곳도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다윗의 피난처는 오직 한 곳, 오직 주님계신 곳이었고 그는 그곳에 믿음의 닻을 내려놓았습니다.
3) 다윗은 내가 주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았사오니 부끄럽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미덕을 말하지 않고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을 건져달라고 간구했습니다.
4)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는 성도들에게는 진리와 은혜의 하나님께서 절대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9;33)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16;15)
5)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의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주이신 주님으로 자랑할 것 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공효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인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64;6)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
6) 2절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다윗은 여호와께 당신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견고한 바위가 되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7) 주님은 가련한 백성의 신음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우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도우심과 구원이 필요할 때 지체하지 말고 간구하고 기도하면 다윗을 “엔게디”와 “아둘람”에서 구원하여 구원의 보장이 되신 것처럼 성도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8) “보장”(保障)은 “장애가 없이 잘되도록 보호함”을 의미하며 주님은 일시적인 방편으로 우리의 보장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죄로 더러워진 우리를 당신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당신 안에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보장이 되어 주셔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롬14;17)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15;3-4)
3-4절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어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1) 3절. "반석과 산성이시니."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반석(磐石)과 산성(山城)이십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 반석”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2) 어떤 나무는 반석의 갈라진 틈에 뿌리를 내립니다. 모세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백성들로 하여금 마시게 했습니다. 갈라진 반석은 십자가에서 쪼개지신 주님을 말합니다. 그 주님은 우리의 생명 수(生命 水) 이십니다.
“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출17;6)
3) 이 반석은 애급에서 구원받고 광야를 통과할 때 저희를 따르는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10;4)
4)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많은 시련을 당합니다. 이럴 때 주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주님에 대한 확신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5) “주의 이름을 인한 인도와 지도” 주님의 이름은 주님의 인격이며 성품입니다.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사랑이 무한하십니다. “인도”와 “지도”(lead and guide me)는 같은 의미인 것 같지만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주님께 간구할 때는 절박한 결핍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6) 주님이시여 나와 함께 계실 때도 인도해주시고 멀리 있을 때라도 나를 지도하소서라고 고백한 다윗의 기도는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간구입니다. 주님의 인도와 지도는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거룩한 이름이 손상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참으실 수가 없습니다.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36;23)
7) 4절.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어내소서” 다윗의 대적들은 강력했고 교활했습니다. 성도들의 영적 대적들도 다윗의 대적들과 같은 부류에 속한 자들입니다.
8) 하나님의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이었던 아담을 마귀는 거짓말로 미혹하여 타락하게 했습니다. 오늘 날도 마귀는 똑같은 방법으로 성도들을 미혹하여 그리스도에게서 끊어 내려고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11;3)
9) 어느 시대나 영혼의 사냥꾼이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며 경계의 대상입니다. 영혼을 시험의 그물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영적 분별력이 요구되며 사악한 자들의 술책과 덫으로부터 구출을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백성 너희 중에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의 매복함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렘5;26)
10) “이시니” 다윗은 주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재 요새이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고백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마귀의 어떤 술책에서도 성도를 지키시며 인도하시는 우리 주님은 대적들의 모든 수고를 헛것으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은 나의 산성이십니다. 라고 고백하십니까?
11) 저는 구원받은 후 신앙생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을 읽고 나서 였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5;23) 저는 흠없이 보전하는데 자신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어두워지고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실 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 평안을 얻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거룩이시며 산성이십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유24-25)
5-6절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1) 5절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다윗이 주님의 손에 부탁한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영혼이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표현은 우리 주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임종 시 말씀하셨고 때로는 성도들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했던 말입니다. 이 말은 불신자들과 구별되는 지혜롭고 엄숙한 말임이 분명합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눅23;46)
2) 모든 인생의 염려 대상은 자신의 몸이나 재산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보석이며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부탁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해도 그 영혼을 잃어 마귀에게 빼앗긴다면 가장 불행한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안전합니까?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12;19-21)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잠20;27)
3) “나를 구속하셨다이다” 구속(救贖)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흘리신 피로 대속(代贖)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것을 뜻합니다. 영혼 구원은 이미 이뤄졌습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 지옥 가는 죄입니다.
4)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구속하신 분은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요3;16)
5)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요1;14) 또한 세상 죄를 지고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요1;29)
6) 백성들이 속죄 받기 위해서는 희생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구약시대)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희생제물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영원히 멸망 받지 않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9;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4-25)
7) 6절. “허탄한 거짓된 우상과 여호와” 사람은 누구를 섬길 것이냐 하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반석이시며 산성이신 능력 있고 진실하신 여호와를 의지하고 섬겼습니다.
8) 인간은 연약한 존재임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신을 섬기기 마련입니다. 출애급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우상을 섬기지 말 것을 명령하셨고 마음이 스스로 부패하여 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출20;3-5, 신4;15-18)
9) 다윗은 허탄한 거짓된 것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했습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수공물이며 그 속에 생명이 없고 복도 주지 못하는 거짓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115;5-8)
10) 다윗은 여호와를 의지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는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를 의지하는 자는 구원을 얻으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요1;1-3)
11) 헛된 신을 섬기는 자는 자신을 어리석은 바보로 만들고 그의 마침은 멸망입니다. 다윗은 이런 천박한 자들의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49;20)
7-8절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 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 “나를 대적의 수중에 금고치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1) 7절 “주의 인자(mercy)하심을 기뻐함”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란 주님은 다윗을 크게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지난날 베풀어 주신 “곤란을 감찰하여 환난 중에 있을 때 알아주셨고” “대적의 수중에 맡기지 않으셨으며” “자신의 발을 넓은 곳에 세워주신” 인자하심에 대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2) “기뻐하며” “즐거워한다” 라는 말은 다윗의 마음이 주님의 도우심으로 승리의 감격을 노래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성도의 삶에서 모든 어려움과 역경과 환난과 대적으로 인한 고통을 감찰하시고 아셔서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4) 8절. “대적의 수중에 금고치 아니하심” 다윗은 자신을 어떤 사람의 수중에 가두지 않으심을 기뻐했습니다. 만일 어떤 자의 수중에 넘기셨다는 다윗은 그 사람의 지배를 받는 종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5) 성도들은 죽음이나 마귀의 수중에 있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교단이나 사람의 수중에도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6) 다윗은 자신의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을 알고 즐거워했습니다. 참된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2. 31;9-18: 도움을 호소하고 감사와 신뢰로 축복을 기대.
31:9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31:10 내 생명은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해는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약하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31:11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31: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와 같으니이다
31: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치려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31: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31:15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31: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31:17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31:18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로 벙어리 되게 하소서
9-10절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생명은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해는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약하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 9절. “고통과 근심” 다윗은 자신의 슬픈 처지를 소상하게 주님께 아뢰고 참담한 자신의 마음과 상처를 고백하고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우리 영혼이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기초가 되었듯이 삶에서 고통과 근심에서 치유되는 것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힘입어야 됩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2;4-5)
2) 다윗의 근심은 그의 눈(영)과 혼과 몸을 쇠하게 했습니다.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은 밀접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영(靈)이 병들면 마음도 사라지고 정신적 고뇌와 신체적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3) 미쁘신 주님께 우리의 영혼을 맡기면 그가 보존하시고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하게 지키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병들면 몸도 병들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 강림하실 때까지 성도는 영과 혼과 몸을 흠없이 깨끗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살전5;23-24)
4) 고통과 근심에서 승리하자면 항상 주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셨습니다. 그 주님을 모신 시편 기자는 “마음(혼)이 기뻤습니다. 영광(영)도 즐거워했습니다. 육체도 안전히 거하게 되었습니다. 혼과 영과 육체가 기뻤고 즐거웠으며 안전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시16;8-10)
5) 10절. 다윗의 슬픔과 탄식과 육체가 쇠약하게 된 것은 죄가 그 원인입니다. 사람의 죄는 이렇게 생명을 슬프고 탄식하게 하며 육체는 병들어 쇠약하여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은 다윗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매일 낙심의 감옥에서 지내게 하는 것입니다.
6) “뼈가 쇠하도록” 죄는 인간의 신체 구조의 안쪽 부분까지 쇠약하게 만듭니다. 뼈는 인체에 있어서 가장 단단한 부분이지만 고통과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비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시38;3)
11-14절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와 같으니이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치려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 11절. “대적”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대적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도 많은 대적들이 있어서 욕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가까운 이웃들도 대적이 되어 때로는 혀로, 악한 말로 악의를 가지고 다윗을 궁지 몰아넣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갈망하며 대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대했고 또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바랐습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시64;1)
2) 대적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해본 사람은 그 상처가 얼마나 심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인생 중에 뛰어난 사람들이 대적에게 가장 상처를 받기 쉬우며 잔인한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3) 여기서 우리는 주님을 거절한 자들에게서 받으신 주님의 고통과 상처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죄도 없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죄인인 우리 때문에 받으신 고통이며 치욕입니다.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들도 피했습니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시22;16-19)
4) 12절. “잊어버린 자” “사망한 자” “파기와 같은 자” 다윗은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비참한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용감했던 것과 나라를 위경에서 구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날들과 일들은 망각 속에서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가장 큰 은혜일지라도 곧잘 쉽게 잊는 것 같습니다.
5) 다윗은 “파기와 같은 자”로 쓸모없고 낡아서 무가치하고 버린바와 같이 된 자신을 발견하고 서글퍼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러한 자신을 마음에 두지 않으심같이 보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형편에서도 종의 형체로 낮아지신 자신을 하나님 아버지께 의탁하셨습니다.
6) 13절.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 다윗은 무리의 비방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무이”의 저주는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비방을 일삼는 독사 같은 자들은 혀를 놀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 까지도 위로를 받지 못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삼하16;7-8)
7) 거짓된 자들과 악한 자들은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도 비방하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게 합니다. 심지어 이악한 자들은 생명까지 빼앗아 갑니다. 이런 이들로 인한 다윗의 쓰라린 상태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8) 14절 “주께 의지” 이러한 상황에서도 다윗은 실망하지 않았고 더욱 믿음에 굳게 섰습니다. 주님께 의지하고 주는 내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도들도 사람의 훼방이나 비방에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사51;7)
15-16절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1) 15절 “내 시대(날, 시간)가 주의 손에” (My times are in thy hand) 이 보배로운 진리를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가까이 접할 수 있고 운명이라는 귀신같은 이야기를 쫓아 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2) 내 시대 (날들)가 내 손에 있다면 인생은 큰 절망과 그 날들은 부끄러움과 멸망으로 끝날 것입니다. 인생의 삶은 형통할 때가 있고 곤고한 날이 있습니다. 자기의 날들을 하루하루 주님께 맡기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삶입니다.
3) 자신의 날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았던 욥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사자굴속의 다니엘은 사자의 입에서 보호하심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근심을 떠나게 했습니다. 믿음의 삶은 자기의 시대(날들)가 주님께 있음을 알고 맡기고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4) 가물 때 당신의 조바심은 물 한 방울도 얻게 하지 못하고 당신의 근심은 단돈 일원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고 하시는데 계속 고집하면서 짊어지고 있다면 당신은 힘들 것이며 주님을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에는 구원이 없고 평안도 없습니다.
5) 다윗은 자신의 모든 시대(날)가 주님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맡겼습니다. 의지했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다윗을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만물은 주님의 것이며 주님께로 돌아갑니다. 당신의 영혼도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죄 사함의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11;33-36)
6) 16절 “비취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춰달라는 다윗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어둡습니다. 인간의 영혼도 죄로 말미암아 죽어서 어둡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영혼에 빛이 비취지 아니하면 어둡습니다. 이것은 죄라는 장애물 때문입니다.
7) 다윗은 어떠한 핍박과 비방을 받더라도 주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영혼의 폭풍우가 몰아친다 해도 개의치 않고 감사할 것입니다.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 영혼의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의지하고 바라볼 수 있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8) 주님은 우리의 생명의 빛입니다. 참 빛이 세상에 오셔서 그 빛을 비취지만 죄로 마음이 어두워진 사람들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시편 다른 편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라고 고백하고 생명의 능력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무서움이 없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27;1)
9)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지만 이 세상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구원의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4;3-4)
17-18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로 벙어리 되게 하소서”
1) 17절.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10;13) 말씀을 따라 다윗은 대적 자들과 핍박하는 자들과 비방하는 자들의 멸시와 조롱을 받으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그의 신앙의 표현입니다
2) 기도는 응답받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부르짖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일 하실 차례입니다. 악인을 부끄럽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음부에서 그 간사한 혀를 놀리지 못하게 부끄럽게 하실 것입니다.
3) 18절 하나님을 향한 확신 속에 기도하는 성도들의 간구를 비웃고 조롱하는 가증스러운 자들의 교만하고 완악한 입술을 채우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4) 무례히 의인에게 악행하고 중상하는 자들의 죄는 부분적으로는 그 언어상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무례히 라는 말은 지독한 중상을 의미합니다. 거듭나지도 못한 죄인들이 선한 이들에게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고 조롱하는 것은 얼마나 사악하고 도덕적 가치조차 찾아 볼 수 없습니다.
5) 다윗은 거짓된 입술로 벙어리 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오늘 날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거짓말쟁이들에게는 필요 이상의 자유를 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차라리 철저하게 수치를 당하게 함으로 회개하여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아오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벧후2;1-3)
3. 31;19-22: 확신과 찬양 (자신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묘사)
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恩惠)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31:20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31:21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 기이한 인자를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31:22 내가 경겁한 중에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19절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恩惠)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1) 19절 다윗은 이제까지 자신이 겪었던 쓰라린 상처 즉 “질병” “사로잡힘” “비방과 조롱” “깨어진 그릇” “잊어버린 자”와 같은 자신의 비참한 상태에서도 그러하여도 주님을 의지하겠다는 확신을 간증했습니다.
2) 다윗의 이러한 확신은 주께 피하는 자들을 위해서 “쌓아두신 은혜와 베푸신 은혜” 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큰 은혜에 다윗은 “어찌 그리 큰지요” 하며 감격했습니다. 그 토록 슬픔으로 살았던 다윗은 그 은혜로 말미암아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의 기쁨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바뀌었습니다.
3) 하나님의 은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쌓아두신 은혜이고 다음은 베푸신 은혜입니다.
4) 베푸신 은혜는 인생 앞에 나타난 것이라면 쌓아 두신 은혜는 저축해 두신 은혜입니다. 우리는 나타내 주신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나타내 주신 은혜로 애급에서 구원받았고 광야의 식탁에서 먹었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5)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많은 은혜보다 감추어진 은혜가 훨씬 많습니다. 이것을 “멕클라렌”형제는 현제 유통되는 현찰보다는 은행에 저장된 금괴가 훨씬 더 크다고 비유로 말했습니다.
6) 베푸신 은혜는 쌓아두신(저장) 은혜의 시작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만으로도 이 기쁨, 환희, 평안, 행복 감당하기 힘 드는데 앞으로 우리에게 가져올 쌓아 두신 은혜를 생각하면 감격스럽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3;1-3)
7)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 하늘에 저장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아들을 통하여 은혜의 실체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입은 많은 성도들의 간증을 통하여 놀라운 은혜의 실체들을 들을 수 있고 거듭난 성도들도 주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변화된 삶을 통해서 은혜의 경이로움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20-22절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 기이한 인자를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내가 경겁한 중에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1) 20절. “은밀한 곳에 숨기사”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는데 성전 가운데서도 가장 은밀한 곳은 지성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악한 자들은 교만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들을 “사람으로 꾀”로 “구설의 다툼”으로 주님에게서 끊어 내고 타락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당신의 은밀한 곳 (지성소)에 거룩한 자들을 감추시고 어떤 자도 감히 침입하지 못하게 보호하고 지키십니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고 그 위에 시은소가 있어서 그 피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3) 오늘 날도 주의 은밀한 곳(지성소)에 거하는 자들은 마귀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그곳은 안전한 곳입니다. 우리 주님의 피 묻은 손은 세상에서 어떠한 상처를 받았든지 치유를 받고 위로를 받을 우 있는 손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91;1-3)
4) 21절.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다윗은 “견고한 성”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견고한 성이 어디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하나님의 은총을 가장 많이 경험했던 예루살렘일 것입니다.
5) 우리 주님은 도시나 산간, 바닷가, 시골 가리지 않으시고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주님께서 사랑을 보여 주신 곳은 어디 입니까? 그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부어졌습니까? 그렇다면 다윗처럼 주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6) 22절 다윗은 경겁 중에 내가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가치한 말입니다. 대체로 인생은 급할 때 말에 실수가 많습니다. 성급한 말은 한 순간이지만 그 말은 양심 속에서는 오랫동안 머무는 것입니다. 성도라면 정직해야 합니다. 본의 아니게 죄를 지을 때도 있습니다. 주님께 정직하게 아뢰고 고백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7) 다윗은 언제나 자신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서 낙심할 때나, 대적들로 인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나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 간구하면 들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4. 31;23-24: 훈계 (자신의 경험이 지니는 의미를 성도들에게 보여줌)
31: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31:24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23-24절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1) 23절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성도들을 매우 감동적인 언어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사랑하라 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그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는 아름다움의 마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사랑은 많은 물로도 끌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을 구원받은 성도가 찬양하지 아니하고 사랑하지 아니하면 누가 사랑하겠습니까? 주님을 향한 성도의 사랑은 구원받은 모든 식구들이 보편적으로 주님께 진 빚입니다.
3) 주님은 성실한 자들은 보호하시지만 교만히 행하는 자들에게는 엄중히 갚으셔서 징계하시고 깨닫고 돌아와 성실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4) 24절. “강하고 담대하라” 다윗은 많은 전쟁에서 두려움은 자신을 약하게 만들고 담대함은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승리는 용감한 자의 깃발임도 알았습니다.
5)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강하고 담대함은 필요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두려워서 전도지 한 장도 감히 전하지 못하는 심약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간증도 사람 앞에서 부끄러워서 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6)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피로 값 주고 사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시거나 떠나지 않습니다. 항상 함께 하셔서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십니다.
7) “여호와를 바라라”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고 생존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바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 바라기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 주님을 의지하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4;18-19)
결 론
다윗은 수치를 당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거듭난 성도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 수치를 당하는 삶을 산다면 이는 정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윗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고난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고 비난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어려운 가운데서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세상에 믿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바위도 대리석도 놋쇠도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그에게는 바위이시며 산성이신 위대하신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 전능하신자의 은밀한 처소에 거할 때만 안전함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그의 영혼을 주님께 부탁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시대(날)가 주님의 손에 있음을 알았고 당신의 날들을 주관하심을 깨닫고 주님을 의지하는 당신의 삶이 헛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는 베푸신 은혜와 쌓아두신 은혜가 있을 알았습니다. 지금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는 쌓아두신 (저장)은혜의 시작임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절망 상태를 고백하고 자신의 수치스러운 일까지 시인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성도들이여! 여호와를 사랑하라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로 시31편을 끝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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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축복의 열쇠 원문보기 글쓴이: 보아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