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뮬리/최길하
색계(色界)에 와서
색계로 소풍 와서
기념으로 색깔 한 이삭은 잘라가야지.
욕계(慾界)에 와서
욕계로 소풍 와서
터럭 한 올은 속살에 새겨 가야지.
다음 세상에
다다음 세상에 가더라도
아련하고 삼삼한 색계(色界)가
가장 극락이더라고
아내 몰래몰래
이 춘화도를 숨겨놓고 봐야지.
저 색의 비탈
짝맞춰 모여사는 색의 영혼들에
숨은 음영(陰影)도 도굴해 봐야지.
<강의>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란 말이 있다. 기쁨과 슬픔으로 엮어지는 것이
우리네 이 이승의 삶이다.
색계(色界)는 뭐고 욕계(慾界)는 뭐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를 말한다. 색욕(色慾)이라는 말을 성욕이라고만 알고있는데
본래 뜻은 좀 다르다.
색이란 물질을 말한다. 물질 즉 색이 있으니까 색을 취하려는 욕망이 생긴다.
욕망이 생기면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
이 색계(色界) 를 과학으로 풀면 파동에너지다.
이 에너지 때문에 욕계(慾界) 가 된다.
파동은 물리인 전기에너지(물체) 색계(色界)가 되고
색계(色界)는 에너지이므로 움직이고, 이 때 마음으로 변한다.
물질인 물리에너지에서 마음인 화학에너지로 변주하는 것이다.
자연의 현상, 눈으로 보이는 삼라만상의 세계가 색계다.
이 색계 때문에 일어난 욕망, 보이지 않는 형이상적 마음의 동요가 욕계다.
이 색계, 욕계가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승인 것이다.
그런데 '핑그뮬리'를 보고 색계욕계가 내 극락이구나! 역설을 터트린 것이다.
아득한 그리움의 색 이생, 전생, 내생의 삼원색을 섞으면 이쯤 되랴!
세상의 이치가 참 묘하다. 다 릴레이경기고, 끝말잇기고, 군무(群舞)=사회다.
빛의 삼원색을 섞으면 무슨색? 흰 빛이다. 이것은 색이라 하지 않고 빛이라 한다.
우리는 흰색, 빛을 추구한다. 욕심 없는 순수함을 상징하고 빛은 불변이다. 변하지 않는다.
부처에 금빛을 입히는데 白과 金은 같이 본다.
색의 삼원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된다.
색을 모으면 욕망의 시커먼 검은색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자연은 다 경전인가? 다 관계방정식인가?
시로 들어가보자.
옛날 소풍가면 기념품 하나라도 사서 동생이나 부모님께 드렸지.
그래서 색계에 온 기념으로 색 한 이삭 잘라가자.
욕계니까 그 욕망 한 터럭 살속에 새겨가자 한 것이다. 이 핑크뮬리로.
"저 색의 비탈
짝맞춰 모여사는 색의 영혼들에
숨은 음영(陰影)도 도굴해 봐야지"
색의 비탈은 색의 스펙트럼 즉 분광이다. 이것은 힘의 층계다.
빨주노초파남보=도래미파솔라시도로 음계(에너지)가 높아진다.
색의 욕망과 집착이 허공 한줌인 줄 알면서, 홀로그램 허상인 줄 알면서.
그 허상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는 왜 그렇게 색=물질에 집착했던가?
이 마약의 성분이 뭔지 다음 생에서 이 색계의 무덤을 한 번 도굴해 보겠다는 것.
"pink muhly - 분홍 털쥐꼬리새"란다. 구미호의 여우꼬리가 사람을 홀린다더니
분홍털쥐꼬리새가 오늘 나를 홀린다.
이 색은 원색이 아니고 경계를 넘나드는 간색이다. 컬러면서 음영의 그림자를
넘나드는 색이다. 그 게 인간이다.
한강 작품의 사유공간도 그렇다.
원색, 권력의 의지 등 인간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공권력이 있다.
공권력에 짓밟혀 희생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되면 저항할 수 없는 침묵 속에
강렬한 역사의 트라우마가 생긴다.
그러면 역사의 관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에게 한이라는 것이 생긴다.
한이 생기는 과정과 한이 작용하는 인간 삶의 파장을 다룬 것이다.
한강은 작품으로 역사강의를 한 것이 아니고,
폭력적인 색계와 욕계의 동물성을 보여주고, 그래서 나는 그 반대 나무가 되고자 한다.
채식주의를 울부짖은 것이다.
남성적 지배의 역사에서 벗어나려는 풀잎 같은 여성성의 심리를 묘사한 것이다.
역사의 사실관계에 악센트가 있는것이 아니라 남성적 힘의 폭력에서 맞서는 것에 방점이 있는 것이다.
역사의 방향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의해 상실된 여성적 연민적 사랑에 색을 입힌 문학이다.
한강은 이렇게 작품에서 말한다.
"작별하지 않는다" - 거대한 역사의 폭력을 연약한 풀잎이 이긴다는 은유다.
"작별하지 않는다" 문장 한 줄 보자.
(넓절한 팔각기둥 모양의 성냥 상자 옆면에 성냥 머리를 부딪치며 말했다.
서울에선 이제 이런 성냥 찾으려고 해도 없는데.
...
정류장 앞 점방에서 샀어. 몇십 년은 된 것 같은데 불은 잘 당겨져.
이내 솟아오른 불꽃의 빛이 그녀의 눈두덩과 콧날을 밝혔다.)
분석해 보자.
" 서울에선 이제 이런 성냥 찾으려고 해도 없는데" 여기서 팔각성냥은 4.3사건.
"옆면에 성냥 머리를 부딪치며 말했다. 몇십 년은 된 것 같은데 불은 잘 당겨져"
오래 침묵했을 뿐 그 역사가 죽은 것이 아니었다. 불이 확 붙는 것이다.
"이내 솟아오른 불꽃의 빛이 그녀의 눈두덩과 콧날을 밝혔다"
그래서 그 폭력의 역사 속 연약한 부모와 자식과 작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속 뜻을 숨겨놓았으니...
팔각성냥이 상징하고 있듯, 억눌려 침묵해야만 했던 인간 삶. 거기서 생긴 한.
서사를 전달하는 문학의 방식이 이렇게 변했다.
문학사조가 구조에서 구성으로 바뀌고 있다.
욕망이 들끊는 색과 욕의 세계에서 핑크뮬리는 어슴프레 그 그늘이 드리워진 색이다.
강렬한 남성적 색욕의 세계에서 연약한 여성적 음영의 혼색이다.
원색은 대립하여 易을 만들지만, 그 대립을 지우기 위해 핑크뮬리는 혼색을 만든다.
색들은 모두 사회를 이룬다. 식물은 군락을 이루고, 동물은 떼를 지어 살며 이동한다.
개미 벌 모든 곤충들도 끼리끼리 사회를 이루고 산다. 주파수 공명 때문이다. 에너지 효율성 때문이다.
"세상은 모두 에너지인데 그것은 진동과 파동이다."
나는 이 시를 세상에 최고의 시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이 쓴 이 짧은 시.
이 짧은 시 속에 세상은 다 수렴된다.
e=hv
e = 에너지 만물, h=허공이라는 매질, v=진동 주파수
즉, 세상(e)은(=), 텅 비었으면서 꽉찬 매질(h=프랑크 상수) 의, 진동 주파수(v).
너무 엮었나? 어차피 문학은 구라인데 구라가 아닌듯 포장 잘하는 사람을 프로라 하니까.
(강의노트는 정리가 안된 프리노트고 강의는 즉흥적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글로 정리 못하고, 강의 중에 핑크뮬리 2작품이 있는데 오늘은 그 중 하나 올립니다.)
(10/16 강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