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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동에서 트럼펫을 만나다
늙은 골목 둘둘 말아 얼굴 내민 저 트럼펫 햇빛 아닌 어둠 한 켜 검버섯 피어나도 하 세월 비음을 삼켜 목덜미가 뜨겁다
밤마다 뛰쳐나와 불을 켜는 포장마차 들숨날숨 겨운 날은 연주 밖에 없노라고 오늘도 온몸 비틀어 시나브로 연주한다
예도옛적 이 도시에 음표 둥둥 떠다녔지 들떠오른 그 너름새 비바체로 사라지고 사람들 가난한 자리 흰 꿈으로 쌓였다
빗장 건 창문마다 커튼 내린 한겨울에 부대낀 시간 모두 슬픈 음역 되더라도 좁은 길 지키고 앉아 성에의 밤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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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지하도 출구 계단 그 너머 누가 사나 막무가내 달려드는 봄날의 지린내여 좁고 긴 그 골목 안에서 남자가 걸어 나온다
한복집 양고기집 제멋대로 살 비비며 피어오른 꽃들을 온몸으로 삼켰지만 독거로 살아가는 세월은 아지랑이 길이 된다
고요에 깊이 잠긴 한옥마을 찾아가다 늙어버린 저 남자 그림자 덮어쓴 채 어디로 흘러가고 있나, 뒷모습이 느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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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 먼로
동살 잡힌 나주별이 부풀어 터질 때쯤
깜짝 놀란 나팔꽃이 둥글게 몸을 만다
먼로는 하, 부끄러워 치마폭을 오므린다
네모가 더 반듯한 벽보판 판넬 위에
풀빛 실루엣 드리운 화사한 그 먼로지만
이제는 잊어버리자, 그녀는 세상에 없다
또다시 찾아와서 사무치게 볕을 안고
언덕바지 오르내린 저 바람의 시린 발등
닳아진 살들*을 안고 떨군 눈물 몇 방울?
* 이호철의 소설 제목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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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좋은 뼈
애절하게 사이좋아 한 집안에 든 그 뼈대들 헤어질 때 허어지지 못하고 궁리만 하던, 네 몸이 내 몸이 되고 내 몸이 네 몸이라던
남들보다 작은 육체 누를 힘 있었었나 휀만한 친구들 다 버텨내는데 내 허리만 4, 5번 척추 밀착이 세상살이 훼방꾼이다
정신과 육체가 한 몸에서 따로 놀 듯 육체를 지탱하는 그것들도 따로 놀았나 쇼크 받고 들붙어버린 들붙어버린 나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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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에 관한 간추린 보고
양파 값 폭락하자 밭이랑 갈아엎고 서울행 기차에 오른 H마을 이․대․로 씨 날마다 일거리 찾아 삭막한 땅 떠돌기만
고시원 좁아터진 방 몸 하나 의지하고 이 생각 저 푸념 두서없이 짚어갈 때 힘없이 망가져가는 혼밥과 혼술의 사이
많은 것 포기하는 9포 세대 시간 속에 빼곡이 휘장 걷고 창밖 멀리 내다보고
이마에 뿔 돋는 소리 이명으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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