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대전이라고 생각하면, 교육이나 연구 개발이 활발히 일어나는 곳으로 여긴다. 그것도 아니라면, 철도와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대한민국의 중심지 정도로만 생각한다. 대전에 뭘 즐기러 가야 하지?라고 생각하면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다. 오히려 관광보다는 공부를 하러 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의 도시다. 최근에서야 성심당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렇게 사람들에게 볼거리가 없는 곳으로 인정받은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대전이다. 심지어 대전 광역시청 페이스북에서도 '노잼대전 알고리즘'이라는 이벤트로 대전 시민들에게 관광거리를 추천받았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벤트를 시작하기 위해 선보였던 이미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유되면서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대전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를 '대전 방문의 해'로 지정해 사람들에게 대전의 관광명소 12곳을 홍보하며 관광 도시의 면모를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 관광 사이트(https://www.daejeon.go.kr/tou/index.do#)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친 관광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딱히 대전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던 것뿐이었다. 사이트에서는 추억의 엑스포 과학공원, 중부권 최대의 수목원인 한밭 수목원,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유명한 장태산 휴양림, 대전 둘레길 등을 추천하고 있다. 추천한 곳들을 보면,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곳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대전에서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것 또한 느끼게 된다. 이렇게 튀긴 소보로빵으로 유명한 성심당만 대전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대전은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곳이 된다.
대전은 어떤 도시?
충청도 중남부에 위치한 대전은 충청권 제1의 도시로 중부지방과 영호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다. 전국의 대부분을 차로 2~3시간 이내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전이 한국 최대의 과학 및 연구 도시로 꼽히게 된 이유는 대덕 연구단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철도공사. 중소 벤처기업부, 특허청, 통계청 등 다수의 공기업 본사가 위치한 행정 도시에다가 대한민국 국군의 군사 교육 및 훈련 시설인 자운대가 있어 군사 도시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2019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서울, 부산, 제주에 이어 4위로 꼽히기도 했다. 또한 도시의 신용등급도 좋은 편이다. 대전을 사람에 대입한다면 '엄친아' 처럼 다재다능한 인물로 표현할 수 있겠다. 너무 잘하는 것이 많기에 오히려 관광의 매력을 못 느끼게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대전에서는 무엇을 할까?
이번 대전 여행은 대전에 살고 있는 친구 부부의 추천으로 시작되었다. 살기 좋은 곳이라며 한 번 놀러 오라는 제안을 받아서 구경을 떠난 것이다. 왜 살기 좋은지, 그들에게 대전의 매력을 물었다. 그러나 친구의 답은 예상하던 바 그대로다. '노잼의 도시'와 '성심당'을 언급했다. 살짝 실망하려던 찰나, 친구는 '한적함'을 장점으로 꼽았다.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도시'에서 한적함이라니. 그 의문은 친구를 따라 함께 간 계룡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대전 시내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계룡산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시, 논산시,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걸쳐있는 산으로 시내와 가까워 대전 시민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울창한 나무와 수풀 사이로 계곡이 있어 더운 여름에도 시원함이 절로 느껴졌다. 입구에서 수통폭포까지 길이 잘 닦여 있는지라 가볍게 걷기 좋아서 자꾸 산으로 발길이 향했다. 등산로가 산 곳곳에 잘 발달되어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완주하려면 코스 별로 3~4시간은 걸린다고. 삭막한 서울에서만 지내다가 초록빛이 가득한 산에 오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서울에도 산이 있지만, 등산객이 많아서 사람에게 치인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대전은 산부터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찾아오는구나 싶었다. 산 아래에 있는 수통골에는 카페와 음식점들이 즐비해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산을 내려오면서 자연스레 수통골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에 있는 카페 못지 않은 독특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곳들이 눈길을 끈다. 대전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가 다 있다.
대전 자체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역이다 보니 계룡산 이외에도 다양한 산이 존재한다. 보문산, 식장산, 불무산, 금병산 등이 있는데, 산은 많지만 대부분 해발 500미터 내외이며 차를 통해 등산이 가능한 곳도 많다고 한다. 대전에는 산 뿐만 아니라 공원도 많은 편이다. 이쯤 되면 자연과 함께하는 도시로 불려야 할 것만 같다. 왜 친구 부부가 이곳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이해가 갔다.
어디에서나 느낄 수 없는, 대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한적함
계룡산에 이어 찾아간 곳은 한국과학기술원인 카이스트(KAIST)였다. 이곳은 고급 과학 인재가 양성되고 있으며 국가적 중장기 연구개발 및 국가 과학기술의 첨단화를 위해 설립된 곳이다. 아주 예전에 드라마에서만 보던 곳을 실제로 가보게 되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드라마에서만 아니라 실제로 똑똑한 인재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이 아닌가.
기분 탓인지, 왠지 공기마저 다른 곳과 다른 것 같고 학교 건물마다 숫자가 붙어있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논리적으로 느껴졌다. 이 널찍한 학교 전체를 둘러보기에는 이미 계룡산에서 체력을 소비했기에, 간단히 오리 연못 주변과 학술문화관만 둘러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공부와 연구에 몰두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가 들렀던 시간이 사람이 적었던 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의 분위기가 한적해서 마음이 한결 평온해지는 기분이었다. 계룡산에 이어, 카이스트에서 대전의 매력은 역시 '한적함'이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대전 여행의 마지막은 대전에서 멀지 않은 '대청호'에서 마무리되었다. 대청호는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된 호수로 한국에서 3번째 규모의 호수로 알려져 있다. 대전시, 청주시의 식수와 생활용수 및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는 이 호수 주변으로는 산과 숲이 펼쳐져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산과 물이 함께 있는 여유로운 풍경을 둘러볼 수 있도록, 이 주변에는 다양한 카페들이 자리 잡고 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 좋은 풍경이 서울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왜 이제서야 대전의 참 매력을 깨달았는지, 아쉬워졌다. 다음에 대전에 오면 더 많은 여유로움과 한적함을 즐기기라, 마음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대전은 더 이상 '노잼의 도시'가 아니다.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은은한 재미'가 숨어있는 보석 같은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