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닦는 소년 / 정호승(1950년 ~)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구두통에 새벽별 가득 따 담고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눠 주기 위해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하루 내 길바닥에 홀로 앉아서
사람들 발 아래 짖밟혀 나뒹구는
지난밤 별똥별도 주워서 닦고
하늘 숨은 낮별도 꺼내 닦는다
이 세상 별볓 한 손에 모아
어머니 아침마다 거울을 닦듯
구두 닦는 사람들 목숨 닦는다
묵숨 위에 내려앉은 먼지 닦는다
저녁별 가득 든 구두통 매고
겨울밤 골목길 걸어서 가면
사람들은 하나씩 별을 안고 돌아가고
발자국에 고이는 발바람 소리 따라
가랑잎 같은 손만 굴러서 간다
구두를 닦는 게 아니라 별을 닦는다. 별이란 우리의 소망 또는 꿈이 아닐까. 구두를 닦으며 꿈을 나누어주는 소년
하루종일 구두통 위에 발을 감싸느라 더러워진 구두를 올려놓고 반짝반짝 윤이 나게 희망과 소원을 불어넣어주는 일을 숙명처럼하고 있는 어린 소년. 발아래 짓밟힌 별똥별, 부끄러워 숨은 낮별, 이 세상 희망의 빛을 모아 거울을 닦듯 사람들의 목숨을 닦는다. 저녁이 되면 구두통에는 저녁별이 가득넘치고 사람들도 하나씩 별 같은 희망을 가슴에 품고 돌아간다. 어린 소년의 손은 새까만 구두약으로 범벅이 되 가랑잎 같아도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은 바람소리따라 굴러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