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예술가와 비즈니스맨의 차이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추구한다.
그로 인해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오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필연적으로 채산성이나 생산성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가'란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가르킨다.
또 하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창조적인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들은 늘 수요와 공급을 의식하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며 그 안에 자신을 놓는다.
그러면 저절로 모든 것을 비즈니스 감각으로 포착하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직업은 후자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음악가로서의 나의 위치도 후자 쪽이다.
그렇다고 작곡을 오로지 비즈니스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창조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예술가가 되는 것은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품의 내용을 별도로 치면, 그냥 자신이 정하면 되는 것뿐이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아도 자신만 납득하면 되지 않는가.
본인 입으로 "나는 예술가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예술가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만든 작품이 하나도 없어도 된다.
그러나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본인입으로 "나는 그 방면의 전문가입니다" "프로로서 자신이 있습니다"라고 말해봐야 소용없다.
상대가 일을 주지 않으면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제법 재능이 있을 것 같군. 한번 일을 시켜 볼까?"
"제법 괜찮은 것 같은데? 좋아. 어디 한번 맡겨 볼까?"
상대가 이렇게 생각하고 일을 맡기면 실제로 자신이 맡은 일에서 성과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평가하는 사람은 본인이 아니라 일을 맡긴 사람이고, 세상의 수요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그것을 의식해야 한다.
항상 창조성과 수요 사이에서 고민하며 얼마나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느냐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예술가나 비즈니스맨이나 똑같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가치와 의의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뿐이다.
나도 한때는 예술가로서 음악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현대음악에 심취해 있던 나는 대학시절부터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을 추구했다.
현대음악이라는 장르 속에서 내 길이라고 선택한 것이 바로 전위예술이었다.
가령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란 작품은 피아노 앞에 앉아있다가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고 그냥 자리에서 일어선다.
또 글로보카르(프랑스 출생의 유고슬라비아 작곡가)의 작품 중에는 무대 위에서 의자를 집어던지는 우연성의 음악(작곡이나 연주에 우연성을 가미한 음악)도 있다.
음악의 다양한 가능성을 추구한 그들은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던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심취했던 것은 '미니멀리즘(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나타난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 흐름)'의 '미니멀 뮤직'으로, 짧은 선율이나 리듬을 조금씩 변형시키며 몇 번씩 반복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클래식 음악의 잃어버린 리듬이 있었고, 매력적인 하모니가 있었다.
그 음악을 처음 듣는 순간, 나는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충격에 휩싸이며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10년쯤 지나는 사이에 꽉 막힌 공간에 갇혀 있는 듯한 폐색감을 느끼며 내가 왜 음악을 하고 있는지 새삼스레 돌이켜 보게 되었다.
그동안 내 일상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내 음악을 이론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이론을 말로 무너뜨릴 수 있을까?"
모든 것은 내 음악적 실험을 전위예술로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어떻게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으랴.
나는 원래 요령있게 이것저것 모두 잘할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바늘이 흔들릴 때는 극단적으로 흔들린다.
그때도 그러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예술가의 길을 버리고 앞으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폭넓은 음악을 하자! '거리의 음악가'가 되자!"
당시는 나이도 어린 데다 지금보다 외골수였기 때문에 그것과 병행해서 미니멀 뮤직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의뢰만 들어오면 어떤 작품이든 가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작곡을 하던 차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음악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일단 미니멀 뮤직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문은 닫았지만, 미니멀 뮤직의 감각은 다행히 영화음악이라는 장르에서 살릴 수 있었다.
그때 만약 예술가의 길로만 달려갔다면 아마 지금쯤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으리라.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중에서
히사이시 조가 말하는 창조성의 비밀
히사이시 조 지음, 이선희 옮김
첫댓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예술가나 비즈니스맨이나 똑같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가치와 의의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뿐이다.
오늘은 요문장이 팍~~~와닿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화훼장식기사협회에 웬 도서추천??? 그러나 이것이 가장 창조적인 일을 해야하는 현대직업군에서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느끼는 양만큼 달라질 것입니다. 파이팅, 화이팅!!!!
동의합니다
@4기 변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