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식탁에는 내가 앉는 자리에서 바라보는 곳에 오관게(五觀偈)가 붙어 있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이 음식이 어디서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방송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시간의 여유를 맘대로 못내며 살았다. 자투리 시간을 기막히게 활용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그러던 중에 황금같은 사흘의 여가가 생겼을 때 서울의 삼각산 길상사에서 있었던 수련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불자로서 최소한의 기본이라도 제대로 갖춰볼 생각과 함께, 달리던 내 삶에 브레이크를 잠시 걸어보자는 계산도 있었다.
여러 가지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가운데 '천팔십배'는 단련없이 시도한 탓도 있지만 불심의 부족으로 '칠백배'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수련기간에 있었던 '바루공양'은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부끄러움을 일깨웠다.
그동안 나는 적게 먹느라(비만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너무 좋은 음식을 턱없이 많이 먹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됐다. 밥에 떡에 빵에 과자에 술에 고기에 생선에 드링크류에 건강식에 보양식에.....
그 수련회기간에 공양때마다 외던 오관게---'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는 내 마음을 꼭꼭 찔렀다.
수련이 끝나고 귀가해서, 나는 바로 나의 서툰 붓글씨로 오관게를 썼고 식탁 내 자리에서 바라보니는 곳에 붙였다. 혹시 손님이 왔다가 오관게를 보면 음식을 적게 먹으라는 암시 같을까봐(타종교인도 있으니) 오관게의 맨 끝에 '가족에 한하여'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밥을 먹을 때마다 '오관게'를 쳐다본다. 몸을 지탱할 만큼만 먹자. 과식하지 말자. 음식에 감사하자. 이 음식을 알뜰하게 먹자. 깨끗하게 먹자. 음식 쓰레기를 적게 내자.
북한의 '꽃제비'들이 장바닥에서 먹을 것을 주워먹는 모습을 본 후에 시작한 '밥 한 술 덜어 놓고 먹기'는 '한 술 더 덜기'로 바뀌었다. 단,티내지 않기 위하여 집에서만.우리나라의 1년간 음식물 쓰레기가 8조원이라고 한다. '2천만 불자'를 떠들면 무얼하는가. 배 터지게 먹어대고 살빼느라 난리들인데, 부처님 전에 할 말이 무엇인가.
휴전선 북녘에서는 굶어 죽은다는데, 우리는 살이 너무쪄서 죽겠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 말이다.
금강경을 줄줄 왼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천만'불자들이 오관게만 염두에 두고 실천한다면, 아니 '반의 반만' 동참한다고 해도 복(福)지을 일일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