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렬의 신의료인]
우리나라 국민의 10명 중 1명이 겪는 과민성장증후군에 '타깃 치료'가 가능한 미생물 균주를 국내 연구진이 발견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이동호 교수 연구팀(최수인 선임연구원, 남령희 연구원)은 동물실험을 통해 과민성장증후군의 치료에 '로즈부리아 파에시스(Roseburia Faecis)'라는 미생물이 효과적이라는 점을 입증했다고 15일 밝혔다.
과민성장증후군은 특별한 질환이나 해부학적인 문제가 없는데도 복부 통증과 불편감, 설사, 변비 등 배변 습관에 이상을 보이는 만성적 증상의 집합을 말한다. 전체 한국인의 10%가량이 겪을 정도로 흔한데 주로 식사 후나 긴장할 때 증상이 심해진다. 체질적인 문제라며 쉽게 보기도 하지만 평생 시도 때도 없는 복통과 설사를 경험하는 환자는 학업과 직장 생활에 문제가 따르거나 장거리 운전, 대중교통 이용과 같은 일상 전반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등 심각한 삶의 질 저하를 경험한다.
과민성장증후군은 스트레스, 염증 반응, 장-뇌 신경계 이상, 장내세균 불균형 등이 유병률을 높이고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아직 발생 기전(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고 확실한 치료법도 없는 실정이다.
(사진 왼쪽부터)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 최수인 선임연구원, 남령희 연구원, 이동호 교수.
김나영 교수팀은 건강한 장에서 추출한 유익균을 과민성장증후군 환자의 장에 이식하는 치료법이 효과적이란 사실에 주목했다. 연구를 통해 건강한 공여자에서 관찰되는 '로즈부리아 파에시스' 균주가 항염증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을 확인하고, 설사형 과민성장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을 유발한 쥐에 13일간 경구 투여해 장내 환경 및 배변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로즈부리아 파에시스를 구강 투여하면 과민성장증후군의 증상을 악화시키는 '비만세포'의 수가 많이 감소하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수컷 쥐에서 이런 개선 효과가 컸다. 분변의 세균총을 분석했을 때 필수아미노산의 흡수와 연관된 유전자 발현이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무너진 항상성(생물이 최적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회복되는 결과가 확인되기도 했다. 이 역시 수컷 쥐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건강한 장에서 유래된 로즈부리아 파에시스 균주가 설사형 과민성장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는 프로바이오틱스(체내에 투여 시 유익한 효과가 있는 살아있는 미생물)로서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김나영 교수는 "발효성 탄수화물이 많이 함유된 감자·고구마와 같은 뿌리채소와 베리류, 콩류, 보리, 귀리 그리고 양배추, 당근, 아스파라거스와 같은 채소들이 장내 해당 균주를 증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동물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추후 인체 대상 임상시험 연구를 진행해 수많은 현대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과민성장증후군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으로 이뤄진 이번 연구는 최근 국제학술지 '암 예방 저널'(Journal of Cancer Prevention)에 게재됐다.
박정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