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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샤베아브#성전파괴
첫 번째 성전의 파괴: 간략한 역사
제1성전 시대는 강렬한 영성의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선지자들을 만났고, 예루샬라임의 성전은 하나님을 실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영적 존재의 진원지였습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고양감을 추구하기 위해 엉뚱한 곳을 찾았습니다. 우상 숭배가 만연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숭고한 경험에 대한 자신들만의 가짜(ersatz) 버전을 팔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영성과 자기 성찰을 위한 노력보다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쉽게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제 1성전 시대 말기에 유다 왕국은 유다 언덕에서 브엘쉐바에 이르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독립 국가로 남아있었습니다. 북쪽 왕국 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열 지파는 알려진 대로 추방되어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유다 왕국은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주변 왕국들이 매우 탐냈던 나라였습니다. 유다 왕국은 다양한 문화와 문명의 교차점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통치자들은 유다 왕국을 세계 정복의 관문으로 여겼습니다. 지배적인 강대국이었던 이집트와 신흥 강대국이었던 바빌로니아는 모두 유다 왕국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유다 왕에게 충성을 요구했고, 충성을 저버릴 경우 가혹한 처벌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찌드키야 왕
유다의 마지막 왕은 찌드키야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원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왕은 카르케미쉬(Carchemish)에서 이집트군을 물리친 후 예루샬라임으로 진격하여 예호야킨 왕을 폐위시키고 그와 예루샬라임의 나머지 지도층들을 바빌로니아로 잡아갔습니다. 바빌로니아는 또한 성전과 왕궁을 약탈했습니다. (열왕기하 24장)
느부갓네살은 예루샬라임의 지도층을 포로로 잡아가고, 보물을 빼앗은 뒤, 예호야킨(Jehoiachin) 왕의 삼촌의 이름을 말탄야(Matania)에서 찌드키야로 바꾸고, 충성의 맹세를 조건으로 유다의 왕좌에 앉혔습니다.
그리하여 찌드키야 왕은 바빌로니아 왕과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였던 이집트 파라오 모두를 기쁘게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초자연적인 현상에만 너무 집착하여 진정한 정치적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유다 백성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노력 없이도 적들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내부 불안
느부갓네살 왕은 찌드키야를 유다 왕위에 앉힐 때까지 7년간 바빌로니아를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바빌로니아 연대기에는 느부갓네살이 제국 내에서 정기적으로 원정을 벌인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잠재적인 반란군을 위협하며, 모든 속국으로부터 조공을 징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찌드키야가 왕위에 오른 지 2년 후,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바빌로니아에서 그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연대기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 "그(느부갓네살)는 무기로 많은 군대를 죽였고, 그의 손으로 적을 사로잡았다."
반란을 진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느부갓네살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유다 왕국의 반역 분위기
유다에서 느부갓네살 왕의 잔인함과 탐욕을 목격한 후 바빌로니아 왕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태도는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독립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유다 백성들은 느부갓네살의 패배를 갈망했고, 일부는 적극적으로 반란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바빌로니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그들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 벤 아주르(Hananiah ben Azur)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바빌로니아 왕의 멍에를 꺾었다."
학자이자 작가인 랍비 예후다 랜디(Rabbi Yehuda Landy)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그러한 선언은 불과 몇 달 전 바빌로니아에서 일어난 반란을 고려하면, 아마도 사람들의 귀에 잘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 반란은 느부갓네살의 정권이 무너지고 유배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유다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부풀렸습니다.
랍비 랜디는 에돔, 모압, 암몬 등 주변국의 왕들이 느부갓네살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모였다고 추측합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찌드키야 왕은 반란에 가담하는 것을 고려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직접 바빌로니아로 가서 조공을 바치고 충성을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다 왕국을 구했을 수도 있지만, 영향력 있는 거짓 선지자들을 포함한 찌드키야 왕의 정치적 반대자들의 반감을 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
당시 예루샬라임의 저명한 인물 중 한 명은 예레미야(Jeremiah)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대인 역사상 가장 많은 오해를 받은 선지자로, 일부 사람들에게는 존경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멸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파멸의 예언자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기본 메시지는 바빌로니아 제국에 복종하고 자기 땅에서 한 민족으로 살아남으라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는 유대 민족에게 하나님께 충실하고 정의를 추구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희 행위의 악으로 인해 나의 진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꺼뜨릴 자가 없어 타오르지 않도록 아침에 정의를 실행하고 강도의 손에서 강탈당한 자를 구하라(예레미아 21:12)"라고 선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예레미야의 말은 대부분 무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 생활과 타인에 대한 행동에 아무런 변화도 요구하지 않고 세상을 약속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훨씬 더 선호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거짓이니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내가 발견하였나이다... 예루샬라임의 선지자들 가운데서 내가 무서운 일을 보았나니 간음하고 거짓을 행하며 악을 행하는 자를 격려하여 그 악에서 돌아오지 아니하는도다..."라고 썼습니다. (예레미아 23:11)
예레미야는 유대 민족이 스스로 상상했던 영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군대에게서 기적적인 구원을 기대하지 말라고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레미아 23:17)라고 주장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맞섰습니다. 그는 바벨론이 초래할 실제적인 위험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왕실 관리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위험을 인식하기는커녕 예레미야를 공격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여러 차례 구타를 당하고, 투옥되고, 반역죄로 기소되어 사형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찌드키야 왕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대항하다
자신의 왕국 내부에서 불안이 커지고 이집트의 압력이 커지자, 찌드키야 왕은 통치 9년째에 바빌로니아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찌드키야 왕이 몇 년 전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이후 정확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랍비 랜디는 이집트 파라오가 바빌로니아에 맞서 싸우도록 찌드키야 왕의 충성을 요구하며 작은 유다 왕국을 계속 위협했다고 추측합니다. 바빌로니아보다는 덜 강력했지만 이집트는 그 자체로 초강대국이었으며, 지리적으로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군대보다 유다에 훨씬 더 가까웠습니다. 랍비 랜디는 찌드키야 왕이 "바위와 돌 사이에 끊임없이 갇혀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대가를 치러야 했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랍비 예후다 랜디. 『세페르 예르미야후 발굴: 고고학적, 지리학적, 역사적 관점)
그의 충성에 대한 보답으로, 이집트의 파라오는 찌드키야 왕에게 당시 세계 최고로 알려진 말과 군사적 보호를 약속했습니다.
주변 국가들도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반란에 가담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반란 소식을 듣고 군대를 소집하여 반란군을 향해 진군했습니다. 그는 리블라(Rivlah)에 진을 쳤는데, 오늘날 리블라는 레바논-시리아 국경 근처입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오랫동안 그 지역에 머물렀고, 느부갓네살은 그곳에서 유다를 향한 원정을 지휘했습니다.
예루샬라임 공성전
느부갓네살은 고심 끝에 예루샬라임으로 향했습니다. 도중에 그는 군대의 일부를 남겨두고 유다의 다른 요새 도시들과 싸웠습니다. 찌드키야 왕 11년 테베월 10일, 예루샬라임에 도착하자 느부갓네살은 도시를 포위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군대를 그곳에 남겨두고 자신은 리블라로 돌아갔습니다.
포위 공격은 1년 반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예루샬라임 주민들이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파라오가 보호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파라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노력했습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예루샬라임으로 향했습니다.
이집트의 진격 소식을 듣고 바빌로니아 군대는 포위 공격을 중단했고, 예루샬라임 주민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예루샬라임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빌로니아인들을 겁주어 쫓아내기 위해 가자 지구를 정복했습니다.
랍비 랜디는 "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파라오는 느부갓네살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파라오는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자신을 상대로 싸우려는 것을 보고 이집트로 철수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랍비 예후다 랜디. 『세페르 예르미야후 발굴: 고고학적, 지리학적, 역사적 관점』)
바빌로니아인들은 예루샬라임 포위 공격을 재개했습니다. 그들은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탑과 공성 경사로를 건설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와 찌드키야 왕
포위 공격 중에 찌드키야 왕은 반격할지 항복할지 갈등했습니다. 이집트의 진격으로 바빌로니아 군대가 일시적으로 후퇴하자, 희망에 부풀어 오른 찌드키야 왕은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관리를 보내 유다 왕국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대답은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을 도우러 나온 파라오의 군대가 그의 땅 이집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대아 사람들이 돌아와서 이 도시에 전쟁을 일으켜 점령하고 불로 태울 것입니다." (예레미아 37:7-8)
예레미야는 자신의 정직함이 초래할 위험을 인식하고 예루샬라임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문에서 체포되어 바벨론으로 망명하려 했다는 누명을 썼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혐의가 터무니없다고 항의하자 왕실 관리들은 그를 지하 감옥에 던져넣고 오랫동안 감옥에 갇아 놓았습니다.
그 사이 포위 공격이 재개되고 예루샬라임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찌드키야 왕은 쓸데없는 아첨 대신 항상 진실을 말했던 유일한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였습니다.
찌드키야 왕은 비밀리에 예레미야를 지하 감옥에서 데리고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질 것이오."
예레미야는 왕에게 자신의 투옥 조건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찌드키야 왕은 선지자를 감옥 마당으로 이송했습니다.
지하 감옥과 달리 감옥 마당은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공공장소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조국의 운명을 염려하며 백성들에게 항복을 촉구했습니다: "이 성읍에 머무는 자는 칼이나 기근이나 전염병으로 죽고 갈대아로 나가는 자는 살리라." (예레미아 38:2)
예레미야의 말에 화가 난 왕의 신하들은 예레미야를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찌드키야 왕은 "왕이 너희에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으니 그가 여기 너희 손에 있다"라고 대답하며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했습니다. (예레미아 38:5)
관리들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졌는데, 왕의 다른 신하가 왕을 설득하여 선지자를 구출하지 않았다면 그는 죽었을 것입니다.
구출 후, 찌드키야 왕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다시 비밀 회동에 불렀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며, 어떤 반응이 나오더라도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다시 한번 항복을 권고했습니다: "당신이 바벨론 왕의 관리들에게 나가면 당신의 영혼은 살 것이며, 이 성은 불에 타지 않을 것이며 당신과 당신의 집은 살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 왕의 관리들에게 나가지 않으면 이 성읍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겨져 불사르게 될 것이며, 당신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예레미아 38:17-18)
그러나 포위된 예루샬라임에서 기근이 심화되자, 찌드키야 왕은 예레미야의 조언을 따르기에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예루샬라임 함락
아브월 9일, 티샤 베아브, 바빌로니아군은 포위된 도시에 침입했습니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유대인 수비대들은 용감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성전산과 고대 성벽 근처에서는 높은 요새와 화살촉, 투석기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랍비 예후다 랜디. 『세페르 예르미야후 발굴: 고고학적, 지리학적, 역사적 관점』)
그러나 약해진 방어군은 학살과 파괴를 일삼는 바빌로니아 군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바빌론군은 예루샬라임 성벽을 허물고 도시를 황폐화시켰습니다. 당시 화재로 인한 파괴의 흔적과 재가 쌓인 흔적이 이 지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최고 집행관인 느부자라단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샬라임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모든 집을 불태웠습니다." (열왕기하 25:9)
탈무드에 따르면 우상 숭배와 간음과 유혈사태, 이 세 가지 죄로 인해 첫 번째 성전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았고, 결국 그 대가를 치렀습니다. (탈무드 요마 9b)
찌드키야 왕과 그의 가족은 비밀 터널을 통해 예루샬라임을 탈출하려 했지만, 붙잡혀 리블라(Rivlah)에 있는 느부갓네살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찌드키야의 아들들은 그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했고, 왕 자신은 눈이 뽑힌 채 바빌로니아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열왕기하 25장)
유다 왕국 사람들 대부분도 바빌로니아로 유배되었고, 유다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만이 남아서 땅을 경작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상심에 빠진 채 자신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자신도 쇠사슬에 묶여 유배를 당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사람들도 유다 백성들처럼 그를 오해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찌드키야 왕과 백성들에게 항복하도록 설득한 예레미야의 노력에 대해 들었고, 그를 같은 편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선지자를 풀어주고 그를 해치지 말라는 엄격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남은 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땅에 남았습니다.
By Yehudis Litvak(author of Jewish-themed historical fiction)
참고:
Rabbi Yehuda Landy. Uncovering Sefer Yirmiyahu: An Archeological, Geographical, Historical Perspective. Halpern Center Press, 2019. Page 112-113. 116. 147.
Ibid., page 114. page 127. page 150.
Talmud Yoma 9b.
https://www.chabad.org/library/bible_cdo/aid/16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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