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백운평참안❱으로 알려진 ❰청산리 백운평 학살❱에 대한 이상의 기록을 통하여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청산리 백운평 학살❱은 청산리전투의 패배에 대한 보복성이 아주 강하였다. 다른 지역과 다르게 일본군은 청산리에서는 수색이나 물증 없이 사람들을 발견하는 대로 직결처분(直決處分)하여 대량학살 하였으며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기뻐하는 악귀처럼 가옥과 학교, 교회에 불을 질렀다.
둘째, 학살당한 사람들의 숫자의 편차가 52명, 409명, 100명, 70명, 9명, 기 만 명 등으로 참으로 크다. 그러나 이 숫자는 그냥 나온 것이 결코 아니고 나름대로 다 근거가 있어서 나온 것 일게다. 그러므로 당시 청산리 대랍자(영신동)와 백운평의 인구수를 가지고 어느 것이 현실 가능한 숫자인가를 따지고 싶지 않다. 이 숫자 속에서 당시 일본의 히틀러의 악마성과 다름없는 사악한 폭력에 의하여 개죽음 당한 망국 백성 우리 조상들의 고통과 분노, 비애와 아픔을 절절하게 느끼고자 한다. 우리 조상들을 파리 목숨처럼 취급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교만과 폭력, 악마성을 직시하며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오늘 칼을 쓰는 모든 나라에서 보응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언제 어디서나 국가나 민족, 사상과 이념, 종교와 도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대학살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고통을 주어 자유와 독립, 정의와 평화에의 희망과 꿈, 열정과 비전을 가지지 못하게 하여 사람의 의식과 삶을 퇴행시킨다. 세상을 죽음과 단절, 불신과 증오로 채우며 인간을 동물적인 본능으로 살게 만든다. 그러나 영원한 권력과 힘은 없다. 반드시 전도되는 때가 온다.
홍상표의 기억이 분명하다면 당시 청산리 영신동과 백운평의 인구는 32호, 95명이다. 그렇다고 할 경우, 화룡현공서의 “조사보고서”의 “청산자 골짜기에서 조선족 가옥 32채가 불에 탔으며 52명이 불타죽었다는 기록이 가장 팩트에 가까운 기록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기록을 배제하지 않고 그런 기록이 나오게 상황과 배경을 이해하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하여도 진실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셋째, 방화로 소실된 가옥의 숫자 또한 편차가 크다. 우리가 살펴 본 바로 청산리 전역에 해당되는 것은 23호, 32호, 네 개 마을 전체, 102호, 1,000여 호, 어랑촌에서 화룡현성 사이의 집들, 청산리의 가옥들이다. 노두구 수십 호, 천보산 서구 수십호, 천보산 구호동 모든 가옥, 유수하 모든 가옥, 대령동 모든 가옥, 차조구 천주교촌 모든 가옥, 차조구 천주교촌시장의 건물들, 차조구 천주교촌 골안 모든 가옥, 도목구시장 가옥의 절반, 양병대 모든 가옥, 장흥동 십여 호, 대명월구 중간촌 모든 가옥은 청산리지역이 아닌 안도현의 가옥들이다.
홍상표의 기억이 분명하다면 32호가 불에 탔다는 말이 맞다. 그렇다고 다른 것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23호는 백운평의 가옥만 계수한 것이거나 대랍자(영신동)의 것만 계수한 것일 수 있고 네 개 마을 전체는 백운평, 대랍자, 장은평, 구세동을 의미하고 102호는 청산리전투가 진행된 전투권에 있는 모든 가옥을 합한 것일 수 있다. 또한 1,000여 호는 당시 이도구, 삼도구에 있는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의 가옥을 다 합한 것일 수 있다.
32세대의 100여 명의 우리 조상들이 민족의 독립을 꿈꾼 죄로 하루아침에 생명을 잃고 가옥을 잃고 지옥 아수라에 떨어졌을 때 얼마나 참담했을 것인가? 일본군이 망국 백성의 몸 하나 뉘일 집에 불을 붙이고 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을까? 남편과 자식들이 불에 타죽고, 가눌 수 없는 몸과 마음에 삭풍은 불고 눈은 내리고 아! 아! 그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 조상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어떻게 견뎠을까? 미치지 않고 어떻게 고난을 견뎌냈을까?
아시아 제패를 꿈꾸던 일본제국주의는 가옥을 전소시켜 생존자들의 삶의 의지를 박살냈으며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어 조선인 마을이 민족의식으로 세워지지 못하도록, 독립운동을 꿈꾸지 못하도록 사람들과의 관계 연결고리를 끊고자 하였다.일본군은 곡식을 다 불태워 기아와 공포에 직면한 생존자들이 일제에 귀순하도록 유도하였으며 민회나 용정영사관에서 주는 구제를 받으며 일본인으로 동화되게 만들고자 하였다.
넷째, 일본군은 민족교육과 자유와 민족독립에의 희망을 주며 가르치는 교회와 학교를 다 불태워 버렸다. 백운평에도 대랍자에도 교회와 학교가 다 따로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건물 4개를 불태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꿈과 희망, 미래를 불살라 버린 것이다.
망국 백성으로 사는 것이 너무 고달프고 서러워서 청산리 오지로 이주한 그들은 비록 가난하였지만 이주하자마자 자신들의 집보다 먼저 교회를 세웠고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들에게는 꿈이 있었다. 조국 독립과 하나님의 나라! 그러나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딘 순간 그들은 꿈의 대가! 희망의 대가! 믿음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결과가 가족 해체, 마을 해체 그리고 남편과 자녀들의 너무 억울한 죽음, 교회와 학교의 소실이었다. 고통의 무게가 우주보다 무겁고 고뇌의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저주받은 것과 같은 삶을 살아내야 했다. 무겁고 칙칙하고 우울한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화산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기도하며 고난을 견디어 냈다.
일본군은 무력으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고 믿어 학살과 방화로 우리를 즉음에 이르게 하였지만 한 가지 사실을 몰랐다. 학교 하나를 불태우면 민족학교가 열 개가 세워진다는 사실을. 교회 하나를 불태우면 열 개의 굳센 교회가 세워진다는 사실을. 안중근 한 명이 죽으면 열 명의 안중근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면서 학살 생존자로서 어두운 역사의 파고를 헤치고 살아주신 모든 분들에게 그리고 우리 후손들을 대신하여 희생양이 되신 모든 조상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청산리 백운평 학살❱의 진상에 대한 글을 쓰면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첫째, 사가들이 청산리의 기원을 모를 뿐만 아니라 대랍자(영신동)와 백운평으로 이루어졌으며
대랍자의 규모가 더 컸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둘째, 사가들이 교회의 기록들을 거의 참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1920년 일본이 북간도에서 대토벌을 실시하면서 조선인들의 출입을 통제하였다는 것이다. 선교사마저도 일본 영사관의 출장허가서를 받아야 했으니 그 나머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자들이 사건 현장에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하였으므로 간도대학살에 대한 통계는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통계는 더더욱 신뢰할 수 없다.
넷째, 홍상표가 쓴 글에 나오는 불에 탄 마을의 명단은 유수하를 제하고는 사가들의 기록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선열의 기록을 무시하지 말고 마땅히 그 진위가 밝혀야 할 것이다.
다섯째,❰청산리 백운평 학살❱의 진상을 밝히려면 중국공안의 기록, 독립신문, 현지 한국인들의 기록, 현지 중국신문, 일제의 기록 그리고 당시 현지에 거주하였던 선교사들의 기록을 발굴하고 번역하고 정리해야 하는데 새로운 글이나 논문 등에 진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여섯째, 기념사업회를 만들기 좋아하는 한국이나 연변에 1920년 일본의 간도대학살을 기념하는 사업회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일곱째, 대학살에 대한 연구 부족으로 대학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장암촌 이중학살❱과 ❰명동학교 소각❱이라는 것이다.
대학살의 현장을 수차례 돌아보면서 대학살에 희생양이 되신 조상들을 생각하며 감사와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을 추모하는 모임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마음에 품은 지 6년이 되는 해, 2024년 10월에 처음으로 대학살추모기념기도회를 가졌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조상들이지만 민초인 그분들이 우리의 수난을 대신 지셨기에 우리가 있음을 알기에 그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 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함께 묵상하며 울었다. 아무런 조직도 없이 혼자 그분들을 기리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좋다. 그러나 때로는 함께 공부하며 연구하며 유적지를 찾아갈 동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미력하지만 참변에 대한 글을 써서 가난하고 작고 초라하게 살았던 그러나 믿음으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고난과 희생을 우리 후손들과 나누고 싶다.
아! 올해는 어디서 누구와 함께 126년 추모기도회를 가질 것인가?
2026년 1월 3일 토요일 축시
우담초라하니
미 주
1) 김철수 저, ⌜연변항일 사적지 연구⌟, 479쪽, 연변인민출판사, 2001
2) 김춘선 저, ⌜북간도 한인사회 형성과 민족운동⌟, 500쪽,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6
3) 위의 책 515. 516쪽
4) 용정3.13기념사업회 외 ⌜룡정 3.13반일운동 80돐 기념문집⌟, 291쪽, 연변인민출판사, 1999
5) 김택 주필 외 ⌜홍범도장군⌟, 186쪽, 연변인민출판사, 1991
6) 양소전 외 4인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207쪽, 연변인민출판사, 2009
7) 홍상표 저, ⌜북간도독립운동소사⌟ 61,62쪽, 한광중고등학교(비매품), 1966
8) 위의 책 60쪽
9) 양전백, 함태영 외⌜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하⌟,367쪽, 604쪽,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17
10) 김택 주필 외 ⌜홍범도장군⌟, 214쪽, 연변인민출판사, 1991
11) 김춘선 저, ⌜북간도 한인사회 형성과 민족운동⌟, 509,510쪽,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 원, 2016
양소전 외 4인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207쪽, 연변인민출판사, 2009
12) 마가렛 마틴 무어 저 ⌜만주의 마틴 폭풍 속의 횃불⌟, 251쪽, 보고사, 2025
13) 김철수 저, ⌜연변항일 사적지 연구⌟, 445, 446쪽, 연변인민출판사, 2001
14) 홍상표 저, ⌜북간도독립운동소사⌟ 76,77쪽, 한광중고등학교(비매품), 1966
15) 양전백, 함태영 외⌜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하⌟,613쪽, 614쪽,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17
16) 현규환 저, ⌜한국유이민사 상권⌟, 632쪽, 어문각, 1967
서굉일 외 7인 ⌜한국기독교와 민족운동⌟, 525쪽, 종로서적, 1986
참고서적
* 김철수 저, ⌜연변항일 사적지 연구⌟, 연변인민출판사, 2001
* 김춘선 저, ⌜북간도 한인사회 형성과 민족운동⌟,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6
* 용정3.13기념사업회 외 ⌜룡정 3.13반일운동 80돐 기년문집⌟, 연변인민출판사, 1999
* 김택 주필 외 ⌜홍범도장군⌟, 연변인민출판사, 1991
* 양소전 외 4인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연변인민출판사, 2009
* 홍상표 저, ⌜북간도독립운동소사⌟ 한광중고등학교(비매품), 1966
* 마가렛 마틴 무어 저 ⌜만주의 마틴 폭풍 속의 횃불⌟, 보고사, 2025
* 현규환 저, ⌜한국유이민사 상권⌟, 어문각, 1967
* 서굉일 외 7인 ⌜한국기독교와 민족운동⌟, 종로서적, 1986
* 일본조선군사령부,⌜간도출병사⌟, 경인문화사, 2019
* 조영진 외 ⌜항일무장 독립투쟁사⌟, 도서출판 일웡,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