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破鏡”은 깨진 거울이란 뜻이다.
옛날에는 거울이 대개 둥글었기 때문에 달을 거울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 쪽이 이지러진 달을 가리켜 파경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은 부부가 영영다시 합칠 수 없게 된 것을 가리켜 파경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혼과 같은 경우다.
이 파경이란 말은, 둥글었던 것이 깨어짐으로써 한쪽이 떨어져 없어지거나 금이 가서
다시 옛날처럼 원만한 모습과 밝은 거울의 구실을 못하게 된다는 데에서
원만하던 가정에 파탄이 생기고 금이 간 것을 깨진 거울에 비유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남북조(南北朝)시대 남조(南朝)의 마지막 왕조인 진(陳)이 망하게 되었을 때,
태자사인(太子舍人: 시종) 이었던 서덕언(徐德言)은 수(隋)나라 대군이
양자강 북쪽 기슭에 도착하자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아내를 불러 말했다.
“사태는 예측을 불허하오. 이 나라가 망하게 되면 그대는 얼굴과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므로
반드시 적의 수중으로 넘어가 어느 귀한 집으로 들어가게 될 거요. 그렇게 되면 다시 만날 수 없겠지.
그러나 혹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지 누가 알겠소. 그럴 경우를 위해……”
하고 그는 옆에 있던 거울을 둘로 딱 쪼개어 한 쪽을 아내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계시오. 그리고 정월 보름날 시장바닥에서 살피고 계시오.
만일 살아있게 되면 그 날은 내가 서울로 찾아갈 테니.”
두 사람은 깨진 거울 반쪽씩을 각각 품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수나라 대군이 강을 건너자 진나라는 곧 망하고 예상한 대로
서덕언의 아내는 적에게 붙잡혀 수나라 서울로 가게 되었다.
그녀는 진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후주(後主)의 누이동생으로 낙창공주(樂昌公主)에 봉해져 있었다.
그녀는 수문제(隋文帝) 양견(楊堅)의 오른 팔로 건국 제일 공신인
월국공(越國公) 양소(楊素)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한편 서덕언은 난리 속에 겨우 몸만 살아남아 밥을 얻어먹으며 1년이 걸려 서울 장안(長安)으로 올라왔다.
약속한 정월 보름날 시장으로 가 보았다. 깨진 반쪽 거울을 들고 소리높이 외치는 사나이가 있었다.
“자아, 거울을 사시오. 단돈 십금(十金)이오 누구 살 사람 없소?”
거저 주어도 싫다고 할 깨진 반쪽 거울을 10금이나 주고 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나가는 사람들은 미친놈이라고 웃기만 했다.
“내가 사겠소!”
서덕언은 사나이를 자기 숙소로 데리고 가서, 거울에 얽힌 사연을 주욱 이야기 한 끝에,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다른 한 쪽을 꺼내 맞붙여 보았다. 거울은 감쪽같이 하나로 둥글게 변했다.
서덕언은 다시 하나로 합쳐진 거울 뒤에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적었다.
鏡與人俱去(경여인구거) 거울과 사람이 함께 가 버리더니
鏡歸人不歸(경귀인불귀) 거울은 돌아왔건만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구나.
無復姮娥影(무부항아영) 항아의 그림자는 다시없고
空留明月輝(공유명월휘) 공연히 밝은 달빛만 머무르게 하는구나.
심부름 갔던 사나이가 가지고 돌아온 거울을 본 서덕언의 아내는 그 뒤로 먹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양소는 두 사람의 굳은 사랑에 감동되어,
즉시 덕언을 불러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太平廣記》166권의 의기(義氣)라는 항목에 있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생이별한 부부가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을 “파경중원(破鏡重員)”이라 부르게 되었다.
깨진 거울이 거듭 둥글게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신라시대 때 있었던 설처녀(薛處女)와 가실(嘉實)의 이야기에도 거울에 대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로는 파경이란 말이 생이별을 뜻하게 되는데, 지금은 이혼의 경우만을 가리켜 말하게 된다.
하긴 이혼도 생이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고사 성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