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사람 / 조미숙
며칠째 텔레비전 앞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두 손 모아 빌던 불면의 밤이 지나자 하나둘 어둠에 갇혀 보이지 않았던 날 선 칼이 번뜩이며 나타났다. 무섭다. 그 밤보다 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다. ‘도대체 왜?’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로 생각은 곤두박질친다. 하루 종일 숨 가쁘게 요동치는 정국만큼 반복되는 뉴스 특보에 지친다. 내 눈에도 뻔히 보이는 일을 왜 저들은 모른 척한단 말인가? 차라리 보지 말자. 채널을 돌린다.
멋진 네 명의 배우가 핀란드 시골에서 셋방살이를 한단다. 짙푸른 풍광에 잠시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진정된다. 차를 타고 끝없는 산림 지대를 달린다. 보이는 건 오로지 숲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시원하게 쭉쭉 뻗은 나무와 그 사이로 파란 호수가 그림처럼 지나간다. 행복 지수가 1위라는 나라답게 사람들은 친절하고 천혜의 자연환경은 부러움을 자아낸다. 도로에서 가끔 순록을 볼 수 있는데 마주치면 다들 여유롭게 기다린다. 겨울에는 먹이 때문에 가두어 키우다가 여름엔 방목한다.
포장도 안 된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니 숲속에 숨바꼭질하듯 숨어있는 집이 나타난다. 주인이 집을 소개한다. 먼저 수영장으로 데려간다. 호수다. 낭만에 젖어 환호하던 일행은 샤워장도 겸한다는 말에 기절하기 직전이다. 집에 수도 시설이 없다. 빨래와 설거지도 호수에서 최소한으로 간단하게 해결한다.
집 주변에는 블루베리가 지천이다. 재배한 것이 아니라 새가 열심히 씨앗을 물어 나른 덕분이다. 핀란드에서는 땅의 주인이나 정부의 허락 없이도 자연이 준 선물을 마음껏 받을 수 있다. 버섯이나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자연이 주는 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 ‘모두의 권리(everyman’s right)' 가 있기 때문이다. 부럽다. 우리나라에선 산나물 하나 마음대로 뜯을 수 없다.
다시 방 소개다. 200년 된 집이란다. 고풍스러운 벽난로가 호사롭다. 야크의 뿔이 벽을 장식했다. 야크 한 마리를 사냥하면 일 년을 먹을 수 있다. 전기가 없다. 양초와 호롱불이 전부다. 아무리 자급자족한다지만 최소한의 문명 혜택은 있을 줄 알았다. 예측을 벗어난 환경에 어안이 벙벙하다. 아무리 그래도 전기와 수도가 없이 어떻게 산단 말인가? 원시인도 아닌데.
화장실이 자연 친화적이다. 꽤 이상스럽다. 변기가 있고 밑에는 양동이 같은 게 받치고 있다. 옆에 나무 조각 부스러기 같은 것이 쌓여 있다. 박테리아가 열심히 일해서 세상 무엇보다 깨끗하고 영양가 높은 흙을 만든다. 우리 조상들이 분뇨에 재와 마른 풀을 넣어 만든 퇴비가 생각난다. 우리 집 헛간에도 늘 있었다. 농사 밑천이 되는 귀한 거름이다.
커다란 창고를 연다. 장작을 패서 가득 넣어야 겨울을 날 수 있다. 집주인이 시범을 보인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이라 장작 패기는 호기심 거리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도 몇번 쪼개 본 경험이 있는데 요령이 필요하다.
먹을 물을 찾아 20분을 걸어가야 한다. 길도 제대로 닦이지 않는 곳을 걷다 보면 작은 웅덩이가 나타난다. 고인 물이 아니라 천연 지하수 샘물이다. 얼음장처럼 차갑다. 물 긷다가 동상 걸리겠다고 웃는다. 어렵게 얻은 물인 만큼 절약해야겠다는 자연스럽게 다짐한다. 하루치의 물을 담아 돌아온다. 아직 1회이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자연인 생활을 이어 갈지 알 수 없지만 좌충우돌할 것이 뻔하다. 많은 사람이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연을 닮은 삶을 한번 쯤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에 『무장설법, 자연이 쓴 경전을 읽다』(최상현, 2024, 판미동.)를 읽었다. 저자는 자연농법을 실천하고 있는 농부 작가이다. 우리가 잡초를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삼는 데 반해 그는 함께 사는 친구로 여긴다. 텔레비전에서 자연농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실천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지구보다는 경제적인 이익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이기적인 인간에게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 비록 내 몸이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는 있지만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생태에 관심이 많고 자연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솔직히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동떨어진 허울 좋은 무늬뿐인 삶이다.
“불교에도 있다. ‘복과 덕이 오더라도 받지 말라’는 뜻의 불수복덕(不受福德)의 가르침! 풀어 말하면, 해가 바뀌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하지만, 그와 반대다. 받으려는 생각은 모두 버리고, 끊임없이 지으라는 거다. 하늘로 던진 돌과 같다. 그러니 돌려받을 것은 신경 쓰지 말고 끊임없이 선행을 주위에 베풀라는 그런 말씀이다.”(위의 책, 72쪽.)
쉽진 않겠지만 마음에 새길만한 글이다. 베풂도 친절에서 나온다. 자연이나 인간 모두가 서로에게 좀 더 친절하면 좋겠다. 매사에 그렇게 한다면 뭐든 함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비가 내린다. 겨울비는 반갑지 않다. 아직 영상의 기온인데도 춥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잔뜩 움츠린다. 하얀 눈이라도 소복이 내려 세상을 따뜻하게 품어 주면 좋겠다. 모든 생명에게 잠시 쉬어 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