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풍무역(새장터공원)>풍무도서관>장릉가는길>김포장릉(스탬프)>장릉숲길>김포시청>사우사거리>김포향교>계양천산책길>걸포중앙공원>김포아트빌리지(스탬프)>모담산둘레길>모담산전망대>폭포>운양역
김포의지명은:고구려 장수왕(475년)때 ‘신성한 포구마을’이라는 의미로 검포(黔浦)라고 불렸습니다. 이후 통일신라 경덕왕은 757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며 흔히 사용하지 않고 어려운 한자인 ‘검(黔)’보다 일반적이고 좋은 의미의 한자인 ‘금(金)’이 쓰이면서 지금의 김포(金浦)가 되었습니다. 다른 지명으로 금릉(金陵)으로도 불리기도 하였는데, 금릉은 김포의 대표 문화유산인 김포장릉과 김포의 500년 중심지였던 관아가 있었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김포장릉과 김포향교의 옛스러움을 기억하며, 현재 김포의 변화된 모습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김포 장릉(金浦 章陵):조선 선조(宣祖)의 5번째 아들이자 인조(仁祖)의 아버지로, 1632년(인조 10) 왕으로 추존된 원종(元宗 1580∼1619)과 부인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1578∼1626의 무덤이다.1970년 5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왕릉과 왕비릉이 나란히 놓인 쌍릉으로, 병풍석이나 난간석은 설치하지 않고 봉분 아래로 얕은 호석(護石)만 둘렀는데 이는 추봉된 다른 왕릉의 전례를 따른 것이다. 각 능 앞에 상석이 놓여 있고, 상석 좌우로 망주석 1쌍이 있다.봉분 주위로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쌍을 교대로 배치하였으며, 봉분 뒤쪽으로는 3면의 곡장(曲墻; 나지막한 담)을 둘렀다. 봉분 아랫단에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과 장명등, 그 아랫단에 무인석·석마 각 1쌍이 있다. 능원 밑에 정자각·비각·수복방(守僕房)·홍살문·재실이 있다.
1122년현유(賢儒)의 위패를봉안,배향하고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그 뒤의 역사는 거의 전하지 않으며, 1965년에 기와를 개수하였고,1972년 대성전과 명륜당 내외삼문(內外三門) 담장 등을 보수했다.현존하는건물은 6칸의 대성전과 7칸의 명륜당, 내삼문 · 외삼문 · 재실(齋室) 등이 있으며, 대성전 안에는 5성(五聖)과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이 없다 수봄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이 향교는198 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현,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참고문헌『우리고장의 문화재총람』
천주교 인천교구 김포성당은 경기도 김포시 북변동에 있는 성당이다. 성당 건물이 2013년 4월 18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42호로 지정되었다.19세기 후반부터 김포 통진 강화 지역에 천주교 신자들이 있었다. 당시는 조선이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몇 명의 순교자가 있었다.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채결된 뒤 조선은 천주교를 허용하였다. 이후 전국에 천주교의 교구가 설치되고 성당이 자리잡게 되었다 김포지역은 1900년 서울시 중림동의 약현성당 전교회장 유공현이 선교를 시작하여 천주교 신자들이 모이게 되었고1909년 행주성당 산하의 걸포리 공소가 되다.1946년 걸포리 공소에서 걸포리 성당으로 승격되었지만 건물은 여전히 12칸의 초가집이었다.1949년 김포 성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사재관을 짓는 등 성당 건축을 진행하였으나 한국 전쟁으로 중단되었다 전쟁 중이던 1952년 김피득 신부가 현재의 부지를 마련하고 전쟁 후 건축을 하고자 하였으나 1954년 건강 악화로 선종하였고 1955년 새로 부임한 신원식 신부가 성당 건축을 시작하여 1956년 완공하였다.성당의 건축 자재는 신도들이 지역의 석재를 직접 캐어 날라 마련하였다. 인근 해병대에서도 중장비를 지원하였다. 김포 성당은 40여 년 동안 미사를 올리는 본당의 구실을 하다가 1999년 바로 옆에 신축 성당이 세워지면서 교리실, 피정소 등으로 사용되었다1961년 천주교 인천교구가 서울교구에서 분리되어 인천교구에 속하게 되었다. 이로서 김포성당은 답동성당과 소사성당에 이은 인천교구의 세번째 성당이 되었다.[5] 2006년 유리화 작가 조완희가 스테인드 글라스를 제작하였다.2013년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542호로 지정되면서 건축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보존되고 있다[위키백과]
김포시 걸포동에 위치한 걸포중앙공원은 김포의 역사와 미래가 담긴 문화 공원을 주제로 2006년에 조성된 김포시의 대표적인 휴식공원이다150,000㎡가 넘는 넓은 규모에 소나무와 조팝나무 등 7만 그루의 나무가 식재되었으며 직선으로 뻗은 중앙 길을 따라 꽃빛자리, 물빛자리, 별빛자리 테마로 산책로와 꽃밭,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여름철에는 공원 중앙 물빛분수 광장은 바닥분수 놀이터로, 은하숲 폭포는 물놀이장으로 운영되어 가족단위 방문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발목까지 오는 수심에 어린이도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은하숲 샘 부근은 그늘막 설치가 가능한 평상이 마련되어 있으며, 한 가족당 한 개의 평상을 사용할 수 있다. 취사와 야영은 금지되며 당일 낮에만 이용 가능하다. 이 외에도,배드민턴,족구,농구,배구, 다목적 풋살장과 활쏘기 체험이 가능한 국궁장이 있으며 특히, 축구장은 인조 잔디를 깔아 놓아 사계절 안전하게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계양천을 끼고 이어진 자전거길과 공원 곳곳에 조성된 아름다운 꽃밭과 정원에서 산책을 즐기기에 좋아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김포아트빌리지”1980년대 초, 서울 북촌과 을지로가 재개발되면서 도시의 한옥을 이축한 것이 김포의 샘재 한옥마을입니다. 재탄생의 이미지를 가진 이 마을은 2004년 김포 한강신도시 지구에 편입되면서 다시 한 번 해체의 위기를 맞이하지만, 하지만 기존 자원의 리모델링을 통한 문화자산의 활용이라는 전망을 가지고 새로운 문화관광복합공간으로 탄생하게 됩니다.김포시 운양동 모담산 자락에 안겨있는 김포아트빌리지는 모담산이 주는 소담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자연친화적 문화·예술 공간으로, 17개의 한옥과 5개의 창작스튜디오, 아트센터와 야외공연장, 전통놀이마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한옥마을의 고즈넉한 전통적 아름다움과 아트센터의 현대적 아름다움이 공존하며 시민들에게는 생활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항상 접할 수 있는 친근한 공간으로, 타 지역의 관광객들에게는 다시 찾고 싶은 즐거운 공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입니다.[김포 문화재단 홈페지에서]
모담산 전망대
첫댓글 오늘 함께하신 길벗님! 엄청더운날씨에 수고 고생많으셨습니다 중간에 더위를 식혀주신 손착해대장님 팥빙수 넘잘먹었읍니다 모든분께도 감사 드림니다
여전히 더운날 경기옛길 구서구석 볼거리 덕분입니다.
엄청 더운날 산머슴님 사진
담으시랴 길 안내하시랴 넘
고생하셨습니다.
후기보며 다시 즐감하며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산머슴님 후기를 보면서 오늘 걸었던 경기옛길을 다시금 걸어봅니다.
걷느라 덥고 힘들다고 놓친 이곳 저곳, 해설이 들어가 있는 역사의 현장,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드러내는 아트빌리지 등. 모두가 아름다운 자연이고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는 한 편의 그림입니다.
무더운 날에 길 안내에 사진까지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인 일정으로 같이하지는 못했으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네요~ㅎ 산머슴님의 자세한 후기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 봅니다.
같이할 시간을 기다리며~~♡♡
산머슴님 짱 이십니다 진짜로 더웠던 날 과거 논으로만 되었던 김포가 몰라보게 크게 변한 모습 발로 디뎌보니 더 크게 느껴지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산머슴님 더운날씨에 사진봉사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세세한설명도 감사드립니다.~
함께하신 길벗님들과 손착해님 리딩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