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 평창 동계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즐기셨을 줄 압니다. 현장에 가신 분들도 있고 TV로 즐기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개최 전부터 말이 많았던 올림픽이고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견해가 많았던 올림픽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래도 결국 올림픽의 주인공은 선수들이었습니다.
저는 올림픽 기간 중 딱 한 번 경기장을 갔었습니다. 지난 2월 13일 밤 최민정 선수가 쇼트트랙 여자 500미터 결승에서 실격처리되어 메달을 놓친 날, 강릉 아이스 아레나 경기장에 있었습니다.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승부는 승부였습니다. 저는 경기장을 빠져나오며 저 20살 어린 선수의 속상함을 우리는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녀가 느낀 감정을 아무도 헤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경기가 끝난 후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후 쇼트트랙 여자 1500미터와 여자 3000미터 계주에서 복수를 하듯 금메달을 따냅니다. 얼마나 기분 좋았을까요. 그 좋은 기분 역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보낸 지난 4년의 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설사 알더라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는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각국의 모든 선수들은 비록 꼴찌를 하였더라도 4년간 자신과의 싸움을 해낸 선수들입니다. 그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 주고 싶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이 어떤 것인지 저는 요즘 조금 맛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지내온 시간과는 절대로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정말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3월 6일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기로 결심하고 몸만들기 최종 과정을 지나고 있습니다. 2016년 2월 24일 보디빌더 대회에 출전해보겠다는 무모한 목표를 세운 지 2년이 지났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디빌더 대회에 나가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으로 작년 5월 22일 목표를 수정한 지 벌써 9개월이 다 되어 갑니다. 사실 몸을 만든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피트니스 2.0의 김용도 대표의 지도하에 근육운동을 매일 1시간씩 빠짐없이 하였습니다. 외국 여행 때도 호텔 헬스클럽에서 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호텔 방에서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치열하게 운동을 하였습니다. 매일 무엇을 정기적으로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회사 일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 것은 어지간한 결심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고 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저와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상상도 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도전을 포기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4년간의 고통을 우리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첫째 체지방을 10킬로그램 이상 빼고 나니 몸이 추위에 엄청 약해졌습니다. 지난 12월 감기로 3주일을 고생하였습니다. 찬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추워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피하지방이 없어지고 나니 찬 기운을 막아줄 보호막이 없어진 것이지요. 단열재 없는 집이라고나 할까요.
하는 수 없이 핫팩을 상용하였습니다. 12월 말 한참 추위로 고생할 때는 핫팩을 6개까지 붙이고 살았습니다. 등에 두 개, 가슴에 두 개, 허벅지에 두 개. 이 이야기 들은 친구가 "조 대표, 아니 식스팩을 만든다고 하더니 식스핫팩을 만들었구먼."하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둘째 성격이 무척 까칠해졌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톡 쏘아붙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짜증이 납니다. 작은 짜증이 증폭됩니다. 사람 꼴이 말이 아닙니다. [인격]이 통제할 상황을 넘어서고 만 것입니다. 코치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왜 그런지 몰랐습니다. 탄수화물 결핍으로 빚어진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피트니스 선수들도 시합을 앞두고는 매우 까칠해진다고 했습니다. 주위가 매우 힘들 거라고 경고했는데 그 경고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가까운 사람은 아내입니다. 아침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아내와 다툽니다. 그러고 나서 돌아보면 제 처지가 말이 아닙니다. 이 나이에 이런 일로 아내에게 짜증을 내다니 창피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잘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인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설탕임을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여중생들은 왜 그렇게 즐거울까요. 아마도 설탕과 초콜릿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해결책은 아내와 덜 마주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주말에 혼자 있으려고 합니다.
셋째 사회생활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는 언제나 음식과 술이 있기 마련입니다. 접대하는 입장에서는 대접하는 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어주는 사람만큼 고마운 사람이 없습니다. 반면 음식을 잘 안 먹고 깔짝거리는 사람은 밉기 마련입니다. 이런 인간사를 잘 알지만 몸을 만드는 과정이라 마음껏 식사할 수가 없습니다. 술도 칼로리가 높아 금지 식품입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제 스스로 약속을 잡기 두려워지고 초대받은 약속 자리도 부담스럽습니다.
운동선수들은 사정이 어떨까요. 김용도 대표의 설명에 의하면 자신이 한창 운동을 할 때 친구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여 결국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더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찍는 3월 6일까지 몇 차례 점심, 저녁 약속이 있지만 솔직히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올림픽 선수들은 운동하는 내내 이런 상황을 견뎌오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목표에 대한 부담이 어마어마합니다. 저는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이 아닌 그저 사진 한 장 찍는 것인데도 3월 6일까지 과연 사진을 찍을 정도의 몸을 만들 수 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가슴 근육은 그런대로 만들어졌는데 문제는 복부 근육입니다. 코치는 4시간에 한 번씩 탄수화물 100그램과 닭가슴살 100그램을 먹으라고 하지만 혼자 판단으로 더 적게 먹기도 하고 끼니를 건너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이 더 망가졌습니다.
코치 지시를 고지식하게 듣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제 판단에 의존하는 것은 목표에 대한 부담 때문입니다. 3월 6일 창피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오늘도 걱정이 앞섭니다. 고작 바디 프로필 사진 하나 찍는 것도 이러는데 올림픽에 나선 어린 선수들이 받는 메달에 대한 부담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자그마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고 있습니다. 속상해도 속상하다는 표현을 다할 수 없고 기뻐도 메달을 못 딴 다른 선수를 의식해야 합니다. 운동선수는 그 훈련 과정 자체가 사람의 인성을 까칠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편하게 먹고 싶은 밥 다 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남의 경기를 관객으로 보는 우리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던 김보름 선수가 은메달을 따고도 기뻐하지 못하고 연신 죄송하다고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 안되어 보였습니다. 저의 짧은 운동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올림픽 출전 선수들은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메달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운동하는 선수가 인성도 갖추면 좋겠지요. 그러나 [인성]은 선수 선발 기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미 말씀드린 대로 탄수화물 결핍이 일어나고, 사회생활에 제한을 받으며 메달에 대한 부담이 극도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게 까칠해지고 말 것입니다. 어쩌면 올림픽 출전선수들은 심리적으로 가장 극한 상태에서 경기에 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들이 우리 보기에 너무 기특한 인성을 보이면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극찬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혹시 그들이 부족한 인성을 보이면 적어도 저는 상황이 상황이라 자신을 자제하지 못해 빚어진 일이라 너그러이 이해하렵니다.
제가 직접 운동을 해보니 운동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제가 운동선수 코스프레를 할 날도 이제 8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남은 기간 동안 가급적 주위에 부족한 인성을 드러내지 않고 살렵니다. 탄수화물 결핍 때문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아내는 여전히 제 인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이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2.26.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