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훈 月暈
박 용 래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너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무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溫氣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문학사상〉1976.03. -
〈박용래朴龍來 시인〉
1925년 충청남도 논산 출생
1943년 강경상업학교 졸업
1956년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 <황토(黃土)길>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1년 제5회 충남문화상 수상
1969년 시집 <저녁눈>으로 '현대시학 제정 제1회 작품상' 수상
1980년 제7회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
1980년 사망
1984년 시전집 <먼 바다> 간행
시집 : <싸락눈>1969, <강아지풀>1975, <백발의 꽃대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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